모린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뵙는 작가님이었다. 이번에 읽어본 단편집 <모린> 중 수록된 작품을 다른 수상작품집 등에서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정말 처음으로 만나뵙는 작가님의 작품이라 설레고, 기대되기도 하며, 걱정스런 마음 또한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고… 정말 좋은 단편들이 많이 실려있는 작품집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담담’이라는 단편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싶다.

<담담>은 내게 ‘회복의 서사’로 읽혔다. 양성애자인 주인공 ‘혜재’는 약 십 년의 기간을 만났으나 끝내 안 좋게 헤어진 동성 연인 ‘수윤’을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 그 상태로 학교 선배의 주선으로 소개팅에 가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은석’에게 혜재는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바로 털어놓는다. 그러나 은석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은석이 혜재에게 ‘ ‘라고 물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실 자신은 아내와 딸아이를 ‘사별’로 떠나보낸 사람이라고.

한동안 저한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유가족이었어요. 여전히 중요한 정체성이고요. 이제 ‘가장’이란 말은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육 년 걸렸네요. (103p)

‘바이섹슈얼’이라는 혜재의 정체성은 그녀의 ‘핵심이자 빈틈이었고 빈번히 의심의 빌미’(106p)가 되었다. 전 연인들은 이에 대해 그녀에게 질투 섞인 농담으로 혹은 ‘이별을 목전에 두었을 때는 날 선 힐난’을 던지곤 했고, 이는 그녀에게 ‘메워지지 않는 균열’로 남곤 했다. 그러나 은석은 묻지 않았다. 그는 타고나길 다정한 사람이었고, 섣부르지 않은 태도가 몸에 벤 사람이었다. 하여 혜재는 은석을 만나는 동안 수윤의 그림자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고, 독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혜재의 모습을 보며 뭉클한 마음을 절로 품게 될 것이다.

<담담>외에도 <핀홀Pinhole>, <또,> 등 마음을 울리는 단편들이 있었다. 이 작품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싶지만, 인스타에서 쓸 수 있는 글의 분량에는 한계가 있고 단편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그냥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다소 구차한 변명을 대본다. 한국문학에서 좋은 울림을 주는 단편집을 찾아보기가 요즘 힘들었던 것 같은데, <모린>을 통해 안윤 작가님을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던 2025년 첫 소설 완독 후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나가는 것들 달달북다 6
김지연 지음 / 북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달달서포터즈2기

1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곳은 2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쓰는 대형 카페, 게다가 홍대입구역 출입구 바로 앞에 있는 ‘초역세권’의 카페였기 때문에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개인 카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그래서 근무 시간동안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커다란 낙이었다.

그 많은 직원들 중 ‘연애’와 관련한 질문이나 밸런스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동료가 한 명 있었다. 진짜 ‘이런 것도 얘기한다고??’싶을 정도로 연애와 관련한 온갖 소재의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한줄평에도 적은) 이것이었다.

“내 애인이 사실 양성애자라면, 어떨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생각을 굳이 왜 하나, 싶어서 답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것 같은데, 그 질문을 하셨던 직원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친구들이랑 술자리 갖는다고 할 때, 이성이 끼어있으면 반대하고 동성끼리 먹는다면 별 반대 없이 보내잖아요? 근데 양성애자면 모든 술자리가 신경쓰일 것 같아요.”

이런 얘기로 독후감의 서두를 꺼낸 것은 바로 이번에 읽은 김지연 작가의 <지나가는 것들>의 내용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이었다. ‘내 애인이 양성애자’라는 가정을 ‘동성애자’의 시선으로 전개하는 이 소설은, (비록 위에서 언급한 직원분은 이성애자이긴 했어도)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느껴졌다. 사실 위 직원 분의 질문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내 애인을 믿는다면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굳이 신경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가는 것들>의 내용처럼 만약 다른 이성과 같이 있는 사진을 봐버린 동성 연인이라면… 그것만으로 애인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박살날텐데, 그렇다면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생각을 오래 하게 하는 이 작품 <지나가는 것들>이 나는 정말 좋았다.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점을 붙들어 사색에 잠기게 한달까. 단편인 만큼 자세한 줄거리는 따로 소개하지 않겠으나, 위의 감상으로도 어느 정도의 내용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 김지연 작가의 작품은 거칠고 과격한 어투로 쓰였다는 느낌이 강해서 계속 피해왔는데, 이 작품으로 김지연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3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제목만 보고는 따듯한 소설일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으나,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앞선 한줄평에서도 밝혔듯이, ‘식빵 굽는 시간’과 ‘가족의 기원’ 모두 가족이라는 관계가 일그러져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중 더 인상 깊었던 <식빵 굽는 시간>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식빵 굽는 시간>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여진’과 그의 아버지, 이모, 그리고 죽은 어머니. (방랑자 같은 남자 주인공이 나오긴 하는데 이는 넘어가기로 하자.) 암투병하다 죽은 어머니는 임종을 앞둔 직전까지 병동에서 딸의 면회를 수락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거부당했다는 생각이 든 주인공은 이 경험이 마치 트라우마처럼 그녀의 일상에 영향을 꾸준히 끼치는데, 이는 곧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소설 중반까지도 밝혀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는 후반부에 엄청난 반전으로 밝혀진다. 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충격이 배로 느껴졌던 감상이었다.

(덧. 리뷰가 평소보다 짧다고 느꼈다면, 맞다. 서평을 되도록이면 짧게 써달라는 출판사의 말마따나 최대한 내용을 간추리고 요약하고자 했다. 길게 쓰는 것도 힘들지만, 짧게 쓰는 것 역시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주 트리플 28
김남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철은 딱 일 년 치만 복수를 하겠다고 했다. 보상금이라고 생각하고, 일 년, 그러니까 열두 달 동안 달마다, 많이도 아니고 딱 백만 원씩만 보내라고. 그러면 딱 열두 달 뒤에 사라져주겠다고. 안 그러면 계속 나타나서 괴롭힐 것이라고. 현철은 자신의 조건을 말하면서도 ‘많이도 아니고 딱 백만 원’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깟 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22~23p)


작가를 꿈꾸고 있는 나로서 한 가지 쓰고 싶은 소재가 하나 있다. 바로 ‘복수극’이다. 복수하는 과정에서 ‘통쾌’한 맛을 선사하고 싶은 느낌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내가 정말로 복수극을 쓰고 싶은 이유는 ‘복수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서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완벽한,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설계된 복수극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쓰고 싶은 복수란, 바로 이 작품집의 표제작 <파주>에 나오는 것이다.

군 폭력에 시달리던 ‘현철’은 가해자 ‘정호’ 앞에 나타나 위와 같은 매우 시시한 복수가 시작될 것임을 선언한다. 만약 현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정호가 근무하는 곳에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모조리 다 소문낼 거라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끝까지 그가 한 짓을 모두 폭로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정호는 ‘다음에 만나서 술 사주고 미안하다고 풀어주면’ 된다며 같잖게 이를 여기지만, 곧 그러지 못하게 된다. 현철이 그림자처럼 매우 시시하지만서도 또 너무도 끈질기게 정호 곁을 맴돌면서, 결국 정호는 현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현철의 태도, 너무도 시시하고 하찮아서 별볼일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더 처연하고 절박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서, 독자로서도 너무 그 마음이 절감되는 듯하였다. 현실에서 <더 글로리>의 문동은 같은 복수는 없다. 이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통쾌하다. 그러나 <파주>는 정말 극한의 현실적인 복수를 선보인다. 만약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야만 한다면, 정말 <파주> 속의 현철의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시시하지만 끈질기게, 하찮지만 집요하게 말이다.

표제작 <파주>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어 이에 대한 리뷰가 길어졌지만, 같이 수록된 <그런 사람>과 <보통의 경우>도 아주 씁쓸하고 처절한 현실적 인간의 고뇌를 그리고 있어서 좋았다. 직장 내 불륜과 폭력, 강박적인 가려움으로 표상된 현실적인 스트레스가 너무도 직관적으로 느껴져 읽다보면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그 감각이 좋았던 김남숙 작가의 <파주>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



책의 뒷표지에 쓰인 이 문구만큼이나 <희랍어 시간>을 잘 설명하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소설에는 오직 ‘그’와 ‘그녀’라는 대명사로 지칭되는 두 주인공이 나온다. <희랍어 시간>은 두 인물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설,이 아니라 각 인물이 겪었던 사연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후반부에 두 사람을 교차시키며 마무리된다. 큼지막한 사건이 있는 게 아니라 인물의 사연을 듣는 데 초점을 맞춰야하는 소설이므로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그렇지만 그 각각의 서사가 품고 있는 여운이 너무도 묵직하고 처절한 작품이다.



‘그녀’는 ‘말(語)’을 잃었다. 한때 ‘그것’이 그녀에게 찾아와 말을 잃었던 적도 있지만 그때는 ‘한 개의 평범한 불어 단어’ 덕분에 다시 말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런 ‘그것’이 이번에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왜, 어째서 그녀는 말을 잃은 것일까. 심리치료사는 이혼 소송에서 패소하고 양육권을 빼앗긴 것,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등의 거대한 외부적 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와 그런 것이라 함부로 추정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며 이를 부정한다.



그녀는 왜 말을 잃었을까. 심리치료사가 말한 이유도 납득할 수 있지만, 왜 그녀는 이를 부정한 것일까. 내가 감히 짐작해보건대, 그런 외부적 충격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말을 잃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자아’를 잃어버린 것이고, 그 자아를 잃게 만든 데에 외부적 충격들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즉, 그녀는 이혼 소송을 겪으며 ‘~의 아내’를 못하게 되었고, 양육권을 빼앗겨서 ‘~의 엄마’ 또한 이제는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육친의 죽음으로 ‘~의 딸’이라는 호칭도 잃게 되었으니,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모조리 없어져 내면의 자아가 부서지고, 이것이 결국 말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 아닐까?

여하튼 말을 잃은 그녀는 고대 희랍어를 배우게 되고, 그곳에서 강사인 ‘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유전적인 질환으로 ‘눈(眼)’을 잃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질병과 관련된 말실수를 저질러 첫사랑을 잃었다. 또한 아버지에게는 평생 떳떳하지 못한 아들로서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그것이 오해였음을 깨닫는다. 그가 앓고 있는 유전병이 아버지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느끼는 죄책감, 자기혐오 등으로 인해 아들인 그를 온전히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두 사람이 만나며 이야기는 고조된다. 얼굴로 달려드는 새를 피하려던 ‘그’는 건물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그런 그를 ‘그녀’가 발견하면서 두 사람은 비로소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하고, 그녀는 그의 손에 글을 적는 방식으로 말이다. 과연 두 사람은 어떤 끝맺음을 향하게 될까,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게 될까? 아니면 두 사람이 함께 전락해갈까?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0’인 것, 그리고 그 챕터가 ‘그녀’의 시점으로 서술되어있는 것은 위 질문에 대해 작가가 알려준 답이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결국 1인칭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소멸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마침내 구원해주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