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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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으로 수록된 작품을 읽노라면 언제나 어려울 것 같고, 괜히 막막한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렇지만 <검찰관>은 아주 쉽고, 가볍고, 짧고, 유쾌하다. 그렇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또한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고전’을 읽어보고는 싶은데 어려울 것 같아서 선뜻 시도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작품을 꼭 소개하고 싶다.

<검찰관>에는 아주 고약한 탐관오리 ‘시장’이 있다. 그는 지주, 경찰 등의 관료들과 일종의 끈끈한 카르텔을 맺어 시민들의 삶을 착취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하나 날아든다. 바로 ‘검찰관’이 이 지역을 내방한다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그는 그만 여관에 묵고 있던 하급 관리 ‘흘레스타코프’를 검찰관으로 착각하고 만다.

‘흘레스타코프’ 또한 아주 골때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허영심이 가득한 허풍쟁이여서, 시장을 비롯한 윗대가리들이 본인에게 빌빌대자 이를 한껏 악용하여 돈을 갈취하고 냅다 튀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물론 흘레스타코프에게 돈을 쥐어주면서도 시장은 자신이 그에게 뇌물을 주니 큰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착각에 휩싸여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짜 검찰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곳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게 된다. 곧이어 진짜 검찰관이 시장을 부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오션스 13>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오래전에 봤던 터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호텔 CEO가 호텔 등급을 매기는 감별사(?)에게 잘보이려는 것을 역이용하여 그 CEO에게 복수하려는 조지 클루니 일당의 내용이, 어쩐지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과도 겹쳐보였던 것이다. 1800년대에 쓰인 작품이 가진 서사와 주제가 2000년대의 콘텐츠 속에서도 끊임없이 활용 및 주창되는 것을 보면, 고전의 힘을 다시금 체감하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고대의 서술자가 겪고 말하는 내용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보편성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리고 연극으로 상연된 이 희곡 작품은, 당시 군림하고 있던 황제 니콜라이 1세도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보았다고 한다. 니콜라이 1세는 연극을 본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음, 모두 멋있게 두들겨 맞았어. 그러나 누구보다도 호되게 얻어맞은 것은 황제인 나야.” 자신을 저격하는 듯한 느낌에 화를 내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렇게 속시원히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왜인지 너무 멋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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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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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소년 소설을 몇 권 읽었는데, 감히 말하건데 이번에 읽은 <유원>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아… 진짜, 왜 이제야 읽었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았다. 사실 올해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백온유 작가님이 수상하셨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엥? 청소년 소설 쓰시던 분이 아니었던가’ 싶어서, 사두고 몇 년째 묵혀두고 있던 이 작품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Michin 너무 좋잖아??

<유원>은 십여 년 전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여덟 살 주인공 '유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사고 당시 어릴 적 유원을 구하기 위해 유원의 언니가 그녀를 이불로 감싸 11층에서 밖으로 던졌고 결국 언니는 죽는다. 그리고 언니가 던진 유원을 1층에서 받은 어떤 아저씨는 이로 인해 다리를 다쳐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평소 다니던 직장에서도 해고된다. 이로 인해 이 아저씨는 유원의 가족 곁을 늘 맴돌며 돈이 필요하면 이들에게 빌리는 등 오랜 시간동안 유원을 괴롭힌다. 유원의 가족은 이 아저씨를 끊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쨌거나 아저씨는 유원의 목숨을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유원은 사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학교에서 언제나 홀로 다닌다. 이 사고가 워낙 큰 화제를 얻었기 때문에 유원을 둘러싼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모두 그 사고를 알고 있었고, 때문에 유원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그 사고 걔?’라는 시선이 끈덕지게 남았다. 그렇게 초중딩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유원은 자신을 거리낌없이 진솔하게 대하는 ‘신수현’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더이상의 내용을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유원이 수현을 만나면서 자신이 겪고 있던 딜레마적인 부담을 힘겹고도 훌훌 벗어 던져내고야마는 그 과정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져있어 독자들은 뭉클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내가 이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유원>에 담긴 서사의 성격 때문인 것 같다. 바로 ‘구원’의 성질을 띠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 인물이 가지고 있던 내면 속 아픔, 슬픔, 부담, 무게를, 스스로가 결국 털어버리고 일어서는 따뜻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내게는 너무도 아름답고 벅찬 마음으로 읽힌다. 그러므로 <유원>은 내 취향과 너무도 잘 맞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이제야 백온유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 안타까운 마음과,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많아 기쁜 마음이 동시에 나를 덮친다. 작가님의 젊은작가상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나는 이만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구입하러 가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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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75
이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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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얼마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예소연 작가의 <영원에 빚을 져서>와 맥락이 비슷한 작품을 읽었다. 바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이다. 앞선 책과 이번에 읽은 책을 같은 비교선상에 두는 이유는 바로, ‘참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약간의 차이 또한 있었다. <영원에 빚을 져서> 같은 경우에는 사건을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제삼자의 시점에서 전개되었다면,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의 경우에는 그 참사에서 살아나온 ‘생존자’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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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이기도 하고 분량이 2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만큼 줄거리 소개를 하기에는 작품 스포일러를 할 위험이 따를 것 같아 이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만 ‘참사’를 둘러싼 희생자, 생존자, 유족, 그외 제삼자 등의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애도와 추모의 의미를 탐색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연대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말은 하고 싶다. <훌훌>, <고요한 우연> 등 어느 정도 믿고 읽는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 역시 만족스런 감상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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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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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담겨있는 서사는 분명히, 상당히, 지극히 ‘막장’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존속살인’을 소재로 하여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가’를 찾아나가는 구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하면 그래도 다른 추리 장르의 소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지 않나 싶지만, 소설 속 아들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파헤치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막장에 탄성을 내뱉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건의 피해자는 ‘표도르 카라마조프’, 호색한인데다 술과 향락을 즐기는 파렴치한 망나니라 할 수 있다. (죽어도 싸다.) 그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다. 첫째 부인의 소생인 장남 ‘드미트리’는 아버지와 같은 여자를 좋아하여(?!) 연적 관계에 있다. 평소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떠벌리고 다닐 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깊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 할 수 있다.

둘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은 두 명이 있다. 바로 둘째 ‘이반’과 셋째 ‘알료샤’. 두 사람은 아버지가 둘째 부인이 죽었을 때 제대로 장례를 치르거나 잘 보내주지 않았다는 데에 작지 않은 앙심을 품고 있다. 그중 ‘이반’은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유일한 아들인 점이, ‘알료샤’는 본인이 따르던 조시마 장로가 죽은 뒤 난생 처음으로 술을 먹고 방황하던 날 밤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심스럽다.

마지막 아들은 표도르의 원나잇(?)으로 낳은 사생아 ‘스메르쟈코프’이다. 표도르의 저택에서 하인(요리사)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존재 자체가 꺼림칙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간질 발작으로 범행시각 동안 내내 방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과연 네 아들 중에서 누가 아버지를 죽였을까?

물론 이런 내용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이 작품을 추리소설 혹은 범죄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큰 오산이다. 읽으면 알겠지만, 속도감을 중요시하는 장르소설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도스토옙스키만의 밀도 높은 문체가 부담스러우리만치 섬세하고 집요하게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다만 이런 의문 하나가 들 수 있다. ‘대체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너무도 다행히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석영중 교수님의 ‘도스토옙스키 강연’을 들었어서 이를 깨달은 채로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고자 했던 건, 바로 ‘조시마 장로’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실천적인 사랑은 몽상적인 사랑에 비해 엄혹하고 무서운 것이니까요. 몽상적인 사랑은 금세 만족할 만한 신속한 위업을 갈망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주기를 갈망합니다. (…) 하지만 실천적인 사랑 - 그것은 노동이자 인내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마 하나의 완전한 학문과도 같을 것입니다. (1권 119p)

‘실천적 사랑’이란 관념적인 사랑이 아닌, 정말로 ‘실천하는 사랑’을 말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실천적 사랑은 희생, 겸손, 인간의 도리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형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조시마 장로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부분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을 받는 알료샤의 모습에서도 이 실천적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알료샤가 외쳤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권 465p)

“사랑하는 덴 뭔가 이유가 있는 거야, 너회 둘이 나한테 뭘 해줬는데?”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해봐, 알료샤처럼."

(2권 151p)

물론 실천적 사랑이 정확하게 어떤 형태의, 어떤 모습의 사랑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삶을 더 살고, 더 많은 경험을 겪은 뒤 얼마 간의 깨달음이 쌓였을 때, 그때 다시 한번 이 작품을 읽으며 더욱 ‘실천적 사랑’에 대한 구체화를 키워나가고 싶다. 아직 나는 많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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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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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13기

혹시 ‘에세이’라고 불리는 산문 형식의 글을 좋아하는가. 인스타 피드를 보면 에세이 리뷰들을 적지 않게 보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그렇게 즐겨 읽지는 않는다. 이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기인한 일종의 깐깐함인데… 뭐랄까, 나는 에세이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인 동시에 ‘아무나’ 잘쓰기 힘든 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평소 일상을 살고 있는 독자에게 소설의 비일상적인 세계관과 소재 등은 얼마간의 감탄과 쾌감을 선사하기 수월하다. 하지만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작가가 직접 겪은 ‘현실’ 차원의 경험담이 적혀있거나 작가의 생각 및 주장이 보다 직접적인 언어로 드러나있다. 그래서 소설보다 ‘참신’하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기가 정말 어렵다고, 그래서 잘 쓰기 정말 힘든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이유를 구차하게 구구절절 설명해보았다. 그래도 에세이를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궁금할 때는 그 사람의 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산문을 찾아 읽는 편이고(하루키, 신형철 등), 또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필요로 할 때는 그 ‘소재’를 깊이 다룬 산문을 탐독하기도 한다(나쁜 책, 아무튼 시리즈 등). 그렇게 이번에 만난 정용준의 산문 <밑줄과 생각>은… 너무나도 황홀할 정도로 좋았다.

정용준 작가의 소설은 <내가 말하고 있잖아>와 <유령>, <선릉 산책> 이렇게 세 권을 읽어보았고, 그에 대해 내가 느낀 바로는 ‘다양한 ‘아픔’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작가다’였다. 쉽게 말해, 무척이나 좋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정용준’이라는 사람이 더 궁금하게 되어 그의 문학론 <소설 만세>까지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 역시도 너무나 좋았었다. 단순히 문학에 대한 생각만을 넘어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나와 비슷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아서 감명 깊이 읽었다.

그래도 이전 산문집 <소설 만세>가 ‘문학’을 중심 주제로 두고 넓게 뻗어나가는 저자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었다면, 이번에 읽은 <밑줄과 생각>은 보다 더 다양하고 직접적으로 인생에 대한 정용준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작보다 조금은 더 냉정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쓰여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어조가 더 단단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기존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문체였다면 뭔가 어정쩡하다고도 생각되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보다 더 결연하게 느껴진달까?

이십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는 조언들도 너무나 직관적으로 와닿았고, 그럼에도 등을 토닥여주는 위로 또한 느껴져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살면서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은 플래그잇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와닿는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다. 나의 감상은 이정도로 마무리하고, 어서 빨리 밑줄 그은 정용준의 문장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 좋은 산문집을 찾는다면, 거두절미하고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

많은 학과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 학과’로 명칭을 바꿔 통폐합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도전’ ‘꿈’ ‘비전’ ‘희망’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은 결국 ‘안정’이라는 종착역으로 향하는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 누구와 경쟁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미 뒤처져 있다는 자각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텅 빈 스탠드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25p)

나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지나치게 정적이고 안 좋은 의미로 너무 어른스럽다. 흥분하고 도전하고 좋아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것은 어린이들이고 그것들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53p)

어차피 망칠 거라면 시작도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나를 설득한다. 포기하려는 나를 두둔한다. 당장 쓰기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이 저조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상하지. 그 기분에서 벗어나는 건 쓰기를 시작할 때다. 시작할 수 있도록 계속 시도할 때다. (70p)

소설을 쓰는 작가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공감의 영역에서 만난다면,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는 멈춤의 순간에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면, 그건 실제 사건과 경험이 같거나 유사해서가 아니다. 나도 그 인물처럼 될 수 있고, 할 수 있고, 있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는 실존적인 이해다. (206p)

어차피 죽을 거 미리 죽는 자가 어딨나. 먹어도 곧 배고플 테니 안 먹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은 내일 때문에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수도 없이 포기해도 몸과 마음으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244p)

뫼르소에게 나는 배웠다. 타인의 인정이나 보증을 필요치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삶에 절실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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