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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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k 님이 강추하셔서 읽게 된, 정지돈 작가의 산문집이다. 그전에 정지돈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어렵다는 생각만 들고 줄거리도 무엇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편집자k 님의 채널에서 정지돈 작가님의 글이 얼마나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렇다면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소설보다 만만한 에세이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읽은 게 <영화와 시>였는데 재밌었고, 곧이어 읽기 시작한 이 책도 소재는 다르지만 분위기나 내용은 엇비슷해서(응?) 즐겁게 읽었다. 곧 정지돈 작가의 소설도 각잡고 읽어볼 예정이다. 


이 책의 부제는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고, 실제로 저자가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산책이라는 행위에 대해 인문학 또는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담은 글이 대부분인데, 내용이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저자와 저자의 문인 친구들(금정연, 오한기, 이상우, 박솔뫼 등)이 어디를 어떤 식으로 산책하며 노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웃었다. 지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 책을 이미 한 번 읽었지만 여러 번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이 책도 다시 읽고, 정지돈 작가의 소설도 읽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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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넌 도일 -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클래식 클라우드 20
이다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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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님이 코넌 도일에 관한 책을 쓰고 계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게 언제였을까. 기억을 거슬러 오르다, 지금은 업데이트되지 않는 북이십일(현 21세기북스) 팟캐스트 <책보다 여행>의 첫 게스트가 이다혜 작가님이었던 게 떠올랐다. 팟빵에서 해당 회차를 찾아보니 등록 일자가 무려 2017년 9월 1일. 짧으면 몇 달, 길어야 1년 정도 기다리면 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기다림은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지나서야 겨우 책이 나왔다(만세!). 


그런데 책이 나온 지 2년이 지나서야 다 읽은 건, 책 때문이 아닌데 책 때문이 맞다(응?). 예약구매한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백여 페이지까지는 쉬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그러다 이 책에 어떤 책이 유난히 자주 언급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줄리언 반스의 소설 <용감한 친구들>이다. 줄리언 반스가 코넌 도일에 관한 책을 썼다니. 그것도 코넌 도일이 실제로 관여한 법정 사건에 관한 소설이라고? 어느 순간부터 읽고 있는 책보다 <용감한 친구들>이 훨씬 더 궁금해졌고, 결국 이 책을 읽다 말고 <용감한 친구들>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있었고, 줄리언 반스의 다른 책들을 더 읽다가,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온 게 며칠 전... (하하)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 책. 이번에는 셜록 홈스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서, 큰맘 먹고 황금가지에서 나온 셜록 홈스 전집을 장만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지만, 이제는 코넌 도일의 생애에 대해서도 알고, 당시 영국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알고, 추리 소설에 대해서도 조금은 식견이 생겼으니 많은 것이 보이지 않을까. 그 사이 팬데믹도 소강되는 분위기로 바뀌어, 저자의 안내를 따라 코난 도일과 셜록 홈스의 자취를 좇아 런던과 에든버러를 여행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게 되었다. 언젠가 영국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꼭 가지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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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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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고고학자 강인욱의 책이다. 저자의 책 중에서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유라시아 역사 기행>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잘 읽혔고 쉽게 이해되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한겨레>에 연재된 글이라고 하는데(단행본으로 엮는 과정에서 절반 이상을 추가하고 다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주제를 다루며, 내용도 저자의 전공인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유라시아 전역과 고고학 전반을 포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 중에는 잘못된 것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예가 4대 문명이다. "4대 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활보할 때에 만들어졌다. 문명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달했고 나머지 지역은 미개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몇몇 선진국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22쪽) 이를 입증하듯, 최근 4대 문명의 발상지가 아닌 지역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터키 남부의 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토기 2만 년 전의 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용어를 배우게 된다. 이는 4-6세기에 아시아로부터 밀려 들어온 훈족에 의해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 안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점차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을 일컫는다. 이때의 훈족이 유라시아 동쪽에서 맹위를 떨쳤던 흉노의 후예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 시절 흉노가 워낙 강성했기 때문에 신라에도 흉노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흉노는 유목 사회였기 때문에 단일 민족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식으로 기원이나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하고 공존과 평화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와 나치의 티베트 숭배다. 우생학과 인종주의에 경도된 히틀러와 나치는 '순수한' 아리아인을 찾고 찾다가 티베트에 주목했다. 이때부터 서양에서는 티베트를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신비롭고 성스러운 공간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으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묘사되었듯이 서양인들의 무분별한 약탈이 시작되었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정치적,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역사를 공부하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역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고고학이 막아준다고 하니, 앞으로 역사뿐 아니라 고고학에 관한 책도 계속 읽어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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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과 미오의 예술기행 - 카프리초스에서 앨범까지
이경희 지음 / Spanner Studio(스패너스튜디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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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방람푸에서 여섯날>을 읽고 팬이 된 이경희 작가의 책이다. 처음 책을 샀을 때 가격에 비해 사양이 너무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드커버 양장본인 데다가 사이즈도 일반 단행본에 비해 훨씬 크고, 심지어 형식은 그래픽 노블. 내용도 알차고, 이경희 작가님 그림 좋은 거 말해 뭐해... 근데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정가가 겨우 15,000원!!! 인터넷 서점에서 10퍼센트 할인받으면 13,500원!!! 여러분 이 책 사세요... 두 권 사서 한 권은 친구한테 선물하세요...! (=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인 미오(이경희 작가)와 만화가, 화가인 하울은 8년 차 부부다.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릴 텐데도 그림에 대한 갈증이 컸던 두 사람은, '그림만 실컷 보고 오는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프랑스 파리를 떠올렸다. 파리에는 부부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도 많고, 프랑스가 만화로 유명한 만큼 만화 서점이나 사람들이 만화를 즐기는 방식을 볼 수 있는 장소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2015년 가을과 2017년 여름, 두 번에 걸쳐 파리를 여행했다. 일정의 최우선은 당연히 그림이었다. 프티 팔레에서는 고야를 비롯한 낭만주의 화가들의 판화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감상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인상주의 이전부터 인상주의, 인상주의 후기의 미술 작품들을 보았다. 퐁피두 센터 현대 미술관에서는 20세기의 현대 미술 작가들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을 만났다.


2015년 파리 여행 중에는 만화가 출판 시장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만화 강국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들렀다. 르네 마그리트 뮤지엄과 만화 서점, 벨기에 만화 센터, 캐릭터 피규어 박물관 등을 방문했다. 파리에도 적지 않은 수의 만화 전문 서점이 있다. 참고로 프랑스어권에서는 만화를 '방드 데시네(Band Dessinee)'라고 부르며, 줄여서 '베데(BD)'라고 말한다. BD 문화권에서 출판되는 단행본 형태의 책은 '앨범(Album)'이라고 부른다. 


그림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저자 부부처럼 그림만 실컷 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프랑스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벨기에도 만화 강국이라고 하니 언젠가 프랑스와 벨기에 모두 가보고 싶다(그전까지 프랑스어 공부에 진척이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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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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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저녁 열 시에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열한 시쯤에 자는데, 어제는 이 책을 읽다가 열한 시, 열두 시를 넘기고 결국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그만큼 초반부터 훅 빨려 들었고, 읽는 도중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으며, 모든 인물들의 결말을 알기 전까지는 책장을 덮고 싶지 않았던 책이다. 


이 책은 화자인 '나'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울에서 상담 전문가로 일하는 '나'는 텔레비전 출연을 계기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1004'로부터 연락을 받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때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었던 2002년 여름. 지방 도시 D에서도 대입 경쟁이 가장 치열한 학군인 수성구의 중학생 '나'는 하루빨리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 목표다. 대부분의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다른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가까운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해서다. 


매일 학교와 학원만 오가고, 친구는 많지만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 친구는 없었던 '나'. 그런 '나'의 앞에 동갑인 소년 '윤도'가 나타난다. 독서실 옆자리에 앉는 윤도에게 첫눈에 반한 '나'는, 그해 여름 윤도와 함께 동네 수영장과 '오래방(오락실 노래방)'을 다니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나중에는 윤도네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컨테이너를 아지트로 삼기도 하고, 싸이월드에 둘만의 다이어리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윤도에게 느끼는 감정이 윤도가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과 일치하는지, 쉽게 말해 둘의 관계가 단순한 친구인지 연인인지 헷갈리는(혹은 확신할 수 없는)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는 윤도와의 사랑을 키우는 한편으로 '무늬'라는 여학생과 친해진다. 워낙 자주 붙어 다녀서 커플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를 좋아하는 '나'와 여자를 좋아하는 무늬는 둘도 없는 친구일 뿐이다. 무늬 덕분에 '나'는 취향이 일치하지 않는 또래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만화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자신보다 훨씬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무늬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사는 것을 보며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이 소설은 주인공 '나'와 주변 인물들의 서사 자체도 재미있지만,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음악과 만화, 영화, 잡지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시절의 한국 사회 분위기와 교육 문제(입시 경쟁, 학교 폭력 등)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나를 비롯해) 이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옛 기억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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