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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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저녁 열 시에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열한 시쯤에 자는데, 어제는 이 책을 읽다가 열한 시, 열두 시를 넘기고 결국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그만큼 초반부터 훅 빨려 들었고, 읽는 도중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으며, 모든 인물들의 결말을 알기 전까지는 책장을 덮고 싶지 않았던 책이다. 


이 책은 화자인 '나'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울에서 상담 전문가로 일하는 '나'는 텔레비전 출연을 계기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1004'로부터 연락을 받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때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었던 2002년 여름. 지방 도시 D에서도 대입 경쟁이 가장 치열한 학군인 수성구의 중학생 '나'는 하루빨리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 목표다. 대부분의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다른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가까운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해서다. 


매일 학교와 학원만 오가고, 친구는 많지만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 친구는 없었던 '나'. 그런 '나'의 앞에 동갑인 소년 '윤도'가 나타난다. 독서실 옆자리에 앉는 윤도에게 첫눈에 반한 '나'는, 그해 여름 윤도와 함께 동네 수영장과 '오래방(오락실 노래방)'을 다니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나중에는 윤도네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컨테이너를 아지트로 삼기도 하고, 싸이월드에 둘만의 다이어리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윤도에게 느끼는 감정이 윤도가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과 일치하는지, 쉽게 말해 둘의 관계가 단순한 친구인지 연인인지 헷갈리는(혹은 확신할 수 없는)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는 윤도와의 사랑을 키우는 한편으로 '무늬'라는 여학생과 친해진다. 워낙 자주 붙어 다녀서 커플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를 좋아하는 '나'와 여자를 좋아하는 무늬는 둘도 없는 친구일 뿐이다. 무늬 덕분에 '나'는 취향이 일치하지 않는 또래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만화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자신보다 훨씬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무늬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사는 것을 보며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이 소설은 주인공 '나'와 주변 인물들의 서사 자체도 재미있지만,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음악과 만화, 영화, 잡지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시절의 한국 사회 분위기와 교육 문제(입시 경쟁, 학교 폭력 등)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나를 비롯해) 이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옛 기억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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