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법
양창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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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사람들에게 꾸미고 치장한 내 앞모습만 보여 주려고 애써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도 뚜렷하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나한테 보기 싫은 뒷모습도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남에게 보여 줄 생각을 하랴. 하지만 그 순간은 달랐다. 그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것, 사실은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시련이 견디고 손톱만큼이라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지금 이 순간 내 전부를 수용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자각이 너무도 명료하게 떠올랐다. (중략) 그러면서 그동안 환경 탓, 주위 탓으로 돌리면서 원망하고 분노하던 문제들도 사실은 내 선택의 결과였음을 깨달았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이나 나쁜 선택이 있었을 뿐, 그 행동의 주체는 나였던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내 인생이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pp.231-2)

   

 

어제는 '심리 데이(Day)'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고 책장에 꽂혀 있던 심리학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먼저 읽은 책은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이 쓴 <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 법>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실한 마음'이란 곧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애를 바탕으로 하다보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사기 쉬운데, 긍정적인 나르시시즘은 정신적 갈증이나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건강하고 낙관적인 마음, 즉 자존감을 가져다 주며, 타인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끔 한다. 문제는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이다. 열등감과 완벽주의, 흑백 논리와 노이로제적인 경쟁심, 지나친 자기 도취, 비정상적인 분노의 폭발, 잦은 비탄과 우울, 왜곡되고 변형된 페르소나 같은 문제들이 바로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 이러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긍정적이고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자기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타인의 나르시시즘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는 것이다. "우리 누구도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격심한 상처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좌절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분노하며 복수하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략) 그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은 때로 매우 치명적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못할 일이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나르시시즘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71) 이 대목에서 나는 왜 책의 제목이 '나르시시즘 이해하기', '긍정적인 나르시시즘 가지기'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 법'인지를 이해했다. 나의 마음이 상처입지 않게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마음이 상처를 입든 말든 돌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나를 위해 남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 것 역시 문제고, 이는 긍정적인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이다. 이 둘이 한끗 차이라는 것과,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하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나처럼 상처도 있고 실수도 하고 불안해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다. 겉치레가 아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인간관계,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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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정병욱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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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개인의 몸을 길들이는 여러 다양한 기법과 전술을 통틀어 '규율'이라 하는데, 규율에 주로 동원되는 세 가지 주요 수단이 관찰(감시), 제재, 시험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관찰이다. (중략) 학교는 학생의 마음과 방과 후 생활까지도 관찰하기 위해 일기를 쓰게 하고 제출토록 했다. 강상규는 두 종류의 일기를 썼다. 학교에 제출하는 '학생 일기'와 자신만 보는 '개인 일기'. 먼저 '개인 일기'를 쓰고, 그중 군데군데를 골라 일본어로 '학생 일기'를 적어 제출하는 식이었다. (중략) 이쯤이면 권력에 길들여져 '정상화'되는 개인과 다른, 자신을 스스로 주체화하는 개인을 상정해도 되지 않을까. 권력의 '규율화'에 맞서서 스스로를 '개체화'하는 개인. '개체화'도 관찰로부터 시작하며, 그 결과물이 '개인 일기'다." (pp.42-4)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고 실현한다는 식으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근대사회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제반 조건을 만들고 이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 것도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다. 근대 개인이 이러한 자아실현의 꿈을 키우고 그 실현 방법을 배우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위인전이다. 개항기나 일제 시기에 영웅전이나 위인전이 많이 읽혔던 것은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와도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p.30)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인 정병욱이 쓴 <식민지 불온 열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불온'하다는 평가를 받은 여러 사람의 일생을 늘어 놓은 '열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다룬 책인 만큼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색채가 짙지만, 경성 유학생 강상규, 자소작농 김영배, 중국인 숙소에 불을 지른 신설리(지금의 신설동) 패, 소학교 벽에 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을 비난하는 낙서를 한 김창환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 운동'을 다룬 책이라서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도 강상규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전라북도 옥구 출신인 그는 부농의 아버지를 두고 머리가 명석한 덕에 당시 최고 명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 학급에서는 부급장을 맡고 성적은 전교에서 5등에 드는 모범생이자 수재였다. 일제에 충성하는 관료나 기업가로 키워질 운명이었던 그는 사실 조선의 독립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불온' 청년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목적도 '적국 정찰'이었고, 친구를 사귈 때에도 독립 운동을 함께할 동지를 가르듯이 했다. 심지어는 급우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서 독립 운동을 함께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결국 그것이 발각되어 징역을 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10대 후반의 소년이 어떻게 그토록 비밀스럽게 모범생과 불온 청년의 '이중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명문고 졸업생이자 엘리트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체제에 반항하는 선택을 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강상규의 이중생활은 일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일부러 두 개의 일기를 작성해서 스스로를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으로 구분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일제가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까지 감시하려 했고, 그 수단이 일기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90년대에만 해도 일기 쓰기 숙제가 있었다. 저학년 때는 몰랐는데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고 숙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학급 임원이자 모범생으로서 일기도 모범이 되게 써야한다는 '자기검열'이 그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 후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글인지 보다 뚜렷하게 알게 되면서부터는 자기 검열을 덜 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인터넷에 올리는 글도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고 감시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불편하다. 강상규는 진작에 일기의 의도를 알아채고 두 개의 일기를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10대 후반의 소년 강상규로 하여금 일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이중생활을 이어가게 만든 동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가 어린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동네 노인들로부터 유충렬전, 조웅전 같은 영웅전을 자주 들었다는 것을 든다. 영웅전 하면 보통 민족주의로 연결짓는데, 저자는 강상규의 경우 영웅전을 통해 민족주의뿐 아니라 개인주의도 키웠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개인주의 성향은 그로 하여금 독립운동에 바로 발을 들이지 않고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이러한 개인주의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타주의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강상규의 경우를 보면 회의적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해서 자기 이름을 날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판사가 왜 독립을 희망하는지 묻자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싶고, 그러자면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조선을 독립시켜야 된다고 생각한 주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조선에서 내가 마음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댔다. 이때 민족은 입신출세와 자아실현의 장이다." (pp.80-1) 즉 독립 자체를 목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치가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운동을 택한 것인데, 이는 그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할 때에도 훌륭하게 일제에 전향한 모습을 보였고 출소 후 뚜렷한 행적을 보이지 않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상규라는 청년의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 것이라 새롭고, 저자의 분석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다 읽고나니 그 어떤 교훈이나 생각보다도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남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이성에 눈을 뜨고, 밤새워 공부하고 놀기도 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그 시기에,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을 구분하며 비밀스럽게 살아간 그의 삶이 너무나 가엾고 불쌍하다.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느 나라의 식민 치하가 아닌 지금도 모종의 권력이나 체제에 의해 길들여지고 억압되고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국가 권력만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기업 권력, 학교 권력, 가정 권력, 사회 권력, 또래집단 권력 등 수없이 많은 권력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다. '불온' 청년 강상규는 그것을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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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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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확실히 보장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쓸데없이 1년만 낭비하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이루어놓은 것들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두려워서 내 안의 열정이 나를 떠미는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내가 온 가슴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난 오히려 그것이 더 두려웠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안정과 최고만을 찾다가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죽은 삶'을 사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나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누르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마음으로 운명이라는 끈에 나를 맡기고 떠났다. (pp.331-2)

 


몇 년 전 돌연 KBS 아나운서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인기를 버린 손미나의 행적이 이채롭다. 여행작가로 변신해서 베스트셀러 책을 몇 권 쓰기도 했고, 파리에서 첫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완성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손미나의 여행사전>, 줄여서 '손여사'라고 불리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그녀의 팬이 된 건 첫 소설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즈음이었다. 어느 기사에선가 그녀가 파리의 집 앞에서 아침 식사로 나온 크루아상을 먹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는 문장을 읽은 게 계기가 되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것도 아닌 그녀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소설을 썼다는 소식이 신기했는데, 생애 첫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고작 크루아상 때문이었다니! 그런데 그 말이 전혀 엉뚱하게 들리지 않고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프랑스 남부의 봄 레 미모자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워서, 이런 소설을 써낼 정도라면 창작에 대한 열정은 진작부터 활화산처럼 끓고 있었겠고, 크루아상은 아주 작은 계기에 불과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정이 끓어 넘치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이 써준 글을 읽는 아나운서로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매력에 푹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그녀가 아나운서 생활을 그만두기 전, 입사 10년째 되는 해에 스페인 유학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은 그녀의 첫 책이다. 총 4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는 대학 시절 스페인 여행을 했을 때의 추억과 유학을 떠나기까지의 과정, 도착 후의 생활이 담겨 있고, 2부와 3부에는 바르셀로나 대학원에서의 생활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 4부에는 스페인 생활 틈틈이 다녀온 여행과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2006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편집이 다소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매 순간, 매 장소마다 그녀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진솔하고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여행기, 유학 생활기로서 부족함이 없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이 그저 인기 아나운서의 '시선끌기용'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가 이후의 삶을 펼치는 데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이후 많은 아나운서들이 여행이나 유학 등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를 냈지만, 손미나처럼 책에서 공언한대로 '안정과 최고만을 찾다가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은 드물다. 그녀가 왜 돌연 안정적인 직업과 인기를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택했는지, 남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는지, 그 첫 마음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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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書 - 부를 경영하는 전략적 책읽기
이채윤 지음 / 큰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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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공 비결은 독서, '책 읽기는 나의 힘'이랍니다." 

"성공을 준비하는 사람은 늘 도서관을 끼고 다닌다. (중략) 늘 책과 신문을 지니고 다닌다면 도서관을 끼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게 되면 당신은 항상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고, 성공을 향해 훨씬 빨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p.229) - 오프라 윈프리 (p.228)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보면 '빌 게이츠가 추천한 책',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즐겨 읽은 책', '마크 주커버그가 감명 깊게 읽은 책' 등등 유명한 사람이 읽었다는 내용의 광고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전부 거짓은 아니겠지만, 그런 책들이 하도 많다보니 참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유명한 사람들이 즐겨 읽은 책을 소개한 책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책 <부자의 서>만큼은 그런 걱정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 소개된 명사들이 자신의 저서나 매체를 통해 수없이 많이 밝힌 '내 인생의 책'만 콕 집어 소개한 책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만 해도 그렇다. "나를 만든 건 우리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소문난 독서광이었던 그는 전공 분야인 컴퓨터와 경영 외에도 정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그는 하버드대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을 '강추'했는데, 이 책이 그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 마이크로소프트 최고 경영자을 사임한 후 자선재단을 세워 지구촌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유도 다 그 책 덕분이라고 한다. 일본기업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여러번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추천한 바 있다. 재일교포 3세로서 온갖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며 살던 그가 사카모토 료마의 호쾌한 인생 여정을 보고 어떤 영감을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아시아의 최고 부자 리자청은 <무경칠서>라는 중국의 병법서를 탐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한 그는 오랫동안 책을 읽으며 배움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고 하는데, 그가 읽은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책이 <무경칠서>라고 하니 얼마나 위대한 책일지 짐작이 간다. 이 책에는 이밖에도 워런 버핏,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 야나이 다다시, 이건희, 마크 주커버그 등 총 아홉 명의 세계적인 부자, 명사들의 애독서와 인생 여정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 오프라 윈프리의 애독서가 인상적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적인 방송인이자 기업가, 명사, 부자이면서, 자신의 쇼에 '오프라 북클럽'이라는 코너를 마련, 수많은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출판계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는 어떤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언급했을까? 바로 마크 네포의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이라는 잠언집이다.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대중문화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읽는 책이 잠언집이라니, 사실 처음엔 놀라웠다. 그런데 이 책이 고요함에 관한 책이고, 물질적인 것에 비해 영적인 것, 영적인 세계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 '역시 오프라 윈프리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이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며 정치, 경제, 경영, 역사 같은 책을 읽을 때, 오프라 윈프리는 그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에 눈을 돌렸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그것이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아닐까?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이 그저 명사들의 애독서와 인생 여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다름아닌 큰나무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독서경영 조찬 세미나'의 강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이다. 무려 7년 동안, 기업 CEO와 임원, 공직자, 교수, 의사, 변호사 등 3,000명이 넘는 국내 명사들이 이 세미나에 모여 주기적으로 명사들이 읽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그들의 삶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모색했다는 점이 흥미롭고 또 자극이 된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뿐 아니라 국내 최고의 명사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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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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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는 퀴니에게 쓴 말을 생각하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창피했다. 그는 자신이 편지를 부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모린이 데이비드를 부르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퀴니가 버윅에서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삶은 똑같을 것이다. 그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편지는 우체통의 어두운 입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해럴드는 도저히 편지를 놓아 버릴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날씨도 좋잖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다음 우체통까지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포스브리지 로의 모퉁이를 돌았다." (pp.22-3)

 

 

여기 암에 걸린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영국 남부 끝에 위치한 킹스브리지에서 스코틀랜드 바로 밑에 위치한 버윅까지 걷겠다고 선언한 사내가 있다. 이름은 해럴드 프라이. 자그마치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걷겠다고 했으니 몸짱에 체력도 엄청 좋은 사람이 분명하다고? 놀라지 마시라. 그는 그저 몇십 년 동안 주류 회사에 다니다가 얼마 전에 은퇴한 60대 할아버지에 불과하다. 운동은커녕 별다른 취미 생활도 하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엄청난 도전을 한 것을 보니 그 동료와 은밀한 관계였던 게 분명하다고? 그것도 아니다. 동료와는 오랫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고,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이 엄청나고도 뜬금없는 일에 도전한 것일까? 소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 그 답이 실려있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 데다가, 줄거리라고는 해럴드 프라이가 오로지 걷고 또 걷는 것뿐이기 때문에 사실 읽기 전에는 이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좋게 말해서 '평범'이지,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아내와의 싸움을 반복하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해럴드가 예전 직장 동료의 편지에 답장을 보낸다는 것이 그 길로 길고 긴 순례를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짧지만 매혹적이었고, 그랬던 그가 '오로지 걷고 또 걷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 아내와의 불화, 하나뿐인 아들 데이비드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직장 생활 등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또 어떤가? 겉보기엔 허름하고 보잘 것 없던 여인이 그에게만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녀(聖女)가 되고, 누가 봐도 세련되고 멋진 차림의 중년 남성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임을 토로하는 등 해럴드는 길 위에서 수많은 기적을 만났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그를 성자 또는 영웅으로 그릴텐데, 이 소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칫 화려하게 끝날뻔 했던 그의 순례는 지극히 순례답게 끝이 났다. 판타지 드라마에 나올 법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반전도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그가 순례 끝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지도 않았다. 나는 이런 결말이 지극히 영국적이라서, 소설치고는 너무 '소설같지' 않고 현실적이라서 좋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책 끝부분에 실린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 소설은 그냥 소설이 아니라 저자 레이철 조이스의 이력과 경험이 상당 부분 투영된, 실화 내지는 우화와도 같은 소설이기 때문에 그토록 감동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레이철 조이스는 배우로 활동하다가 결혼과 함께 방송 작가로 전직했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각본가로 활발히 활동해온 그녀는 몇 년 전 후두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위해 이 소설의 초안이 되는 라디오 극본을 집필했다. 그녀의 극본은 BBC 라디오4의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그 해 최우수 라디오 드라마 상을 수상할 만큼 많은 청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극본을 가지고 어릴적부터 꿈꿔온 첫 소설 집필에 도전했다. 열네 살 때 가명으로 출판사에 글을 보냈을 만큼 오랫동안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정작 소설이라는 벽의 문을 두드리지는 못하고 연기와 극본이라는 다른 문만 두드리며, 그야말로 변죽만 울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생애 처음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이다.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으며, 그녀에게 브리티시 내셔널 북 어워드 신인 작가상 수상과 맨 부커 상의 후보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이 소설을 쓰게 만든 계기인 아버지는 소설은커녕 그보다 전에 방영된 라디오 방송조차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해럴드 프라이는 저자, 해럴드가 찾아간 예전 직장 동료는 저자의 아버지가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나를 위해 희생을 하고,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준 사람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결국 구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 회한,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겠다는 용기와 희망 등등 우연이라기엔 닮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저자에게 순례란 곧 소설 쓰기라는 해묵은 숙제였을 터. 해럴드가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순례를 떠난 것처럼,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소설 쓰기라는 자기만의 순례를 하다가, 꼭 해럴드처럼 구하고 싶은 사람은 구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구원한 저자가 느꼈을 슬픔과 마음 한편의 성취감, 그 모순적인 기분을 상상하니 나까지 가슴이 저릿하다. 

 

 

어떤 이는 이 소설을 한 노인의 순례기 또는 여행기로, 어떤 이는 한 편의 로드무비와도 같은 소설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이 소설이 그 어떤 작가의 자서전보다도 진솔한, 자기고백 같은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 속 해럴드 프라이의 이야기도 충분히 멋지고 감동적이지만, 글쓰기도 좋아하고 아버지도 한없이 사랑하는 나는 저자를 주인공으로 상상한 이야기에 더 큰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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