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확실히 보장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쓸데없이 1년만 낭비하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이루어놓은 것들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두려워서 내 안의 열정이 나를 떠미는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내가 온 가슴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난 오히려 그것이 더 두려웠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안정과 최고만을 찾다가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죽은 삶'을 사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나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누르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마음으로 운명이라는 끈에 나를 맡기고 떠났다. (pp.331-2)

 


몇 년 전 돌연 KBS 아나운서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인기를 버린 손미나의 행적이 이채롭다. 여행작가로 변신해서 베스트셀러 책을 몇 권 쓰기도 했고, 파리에서 첫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완성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손미나의 여행사전>, 줄여서 '손여사'라고 불리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그녀의 팬이 된 건 첫 소설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즈음이었다. 어느 기사에선가 그녀가 파리의 집 앞에서 아침 식사로 나온 크루아상을 먹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는 문장을 읽은 게 계기가 되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것도 아닌 그녀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소설을 썼다는 소식이 신기했는데, 생애 첫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고작 크루아상 때문이었다니! 그런데 그 말이 전혀 엉뚱하게 들리지 않고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프랑스 남부의 봄 레 미모자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워서, 이런 소설을 써낼 정도라면 창작에 대한 열정은 진작부터 활화산처럼 끓고 있었겠고, 크루아상은 아주 작은 계기에 불과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정이 끓어 넘치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이 써준 글을 읽는 아나운서로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매력에 푹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그녀가 아나운서 생활을 그만두기 전, 입사 10년째 되는 해에 스페인 유학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은 그녀의 첫 책이다. 총 4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는 대학 시절 스페인 여행을 했을 때의 추억과 유학을 떠나기까지의 과정, 도착 후의 생활이 담겨 있고, 2부와 3부에는 바르셀로나 대학원에서의 생활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 4부에는 스페인 생활 틈틈이 다녀온 여행과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2006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편집이 다소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매 순간, 매 장소마다 그녀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진솔하고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여행기, 유학 생활기로서 부족함이 없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이 그저 인기 아나운서의 '시선끌기용'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가 이후의 삶을 펼치는 데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이후 많은 아나운서들이 여행이나 유학 등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를 냈지만, 손미나처럼 책에서 공언한대로 '안정과 최고만을 찾다가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은 드물다. 그녀가 왜 돌연 안정적인 직업과 인기를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택했는지, 남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는지, 그 첫 마음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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