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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해럴드는 퀴니에게 쓴 말을 생각하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창피했다. 그는 자신이 편지를 부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모린이 데이비드를 부르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퀴니가 버윅에서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삶은 똑같을 것이다. 그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편지는 우체통의 어두운 입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해럴드는 도저히 편지를 놓아 버릴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날씨도 좋잖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다음 우체통까지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포스브리지 로의 모퉁이를 돌았다." (pp.22-3)
여기 암에 걸린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영국 남부 끝에 위치한 킹스브리지에서 스코틀랜드 바로 밑에 위치한 버윅까지 걷겠다고 선언한 사내가 있다. 이름은 해럴드 프라이. 자그마치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걷겠다고 했으니 몸짱에 체력도 엄청 좋은 사람이 분명하다고? 놀라지 마시라. 그는 그저 몇십 년 동안 주류 회사에 다니다가 얼마 전에 은퇴한 60대 할아버지에 불과하다. 운동은커녕 별다른 취미 생활도 하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엄청난 도전을 한 것을 보니 그 동료와 은밀한 관계였던 게 분명하다고? 그것도 아니다. 동료와는 오랫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고,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이 엄청나고도 뜬금없는 일에 도전한 것일까? 소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 그 답이 실려있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 데다가, 줄거리라고는 해럴드 프라이가 오로지 걷고 또 걷는 것뿐이기 때문에 사실 읽기 전에는 이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좋게 말해서 '평범'이지,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아내와의 싸움을 반복하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해럴드가 예전 직장 동료의 편지에 답장을 보낸다는 것이 그 길로 길고 긴 순례를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짧지만 매혹적이었고, 그랬던 그가 '오로지 걷고 또 걷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 아내와의 불화, 하나뿐인 아들 데이비드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직장 생활 등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또 어떤가? 겉보기엔 허름하고 보잘 것 없던 여인이 그에게만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녀(聖女)가 되고, 누가 봐도 세련되고 멋진 차림의 중년 남성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임을 토로하는 등 해럴드는 길 위에서 수많은 기적을 만났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그를 성자 또는 영웅으로 그릴텐데, 이 소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칫 화려하게 끝날뻔 했던 그의 순례는 지극히 순례답게 끝이 났다. 판타지 드라마에 나올 법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반전도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그가 순례 끝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지도 않았다. 나는 이런 결말이 지극히 영국적이라서, 소설치고는 너무 '소설같지' 않고 현실적이라서 좋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책 끝부분에 실린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 소설은 그냥 소설이 아니라 저자 레이철 조이스의 이력과 경험이 상당 부분 투영된, 실화 내지는 우화와도 같은 소설이기 때문에 그토록 감동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레이철 조이스는 배우로 활동하다가 결혼과 함께 방송 작가로 전직했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각본가로 활발히 활동해온 그녀는 몇 년 전 후두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위해 이 소설의 초안이 되는 라디오 극본을 집필했다. 그녀의 극본은 BBC 라디오4의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그 해 최우수 라디오 드라마 상을 수상할 만큼 많은 청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극본을 가지고 어릴적부터 꿈꿔온 첫 소설 집필에 도전했다. 열네 살 때 가명으로 출판사에 글을 보냈을 만큼 오랫동안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정작 소설이라는 벽의 문을 두드리지는 못하고 연기와 극본이라는 다른 문만 두드리며, 그야말로 변죽만 울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생애 처음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이다.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으며, 그녀에게 브리티시 내셔널 북 어워드 신인 작가상 수상과 맨 부커 상의 후보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이 소설을 쓰게 만든 계기인 아버지는 소설은커녕 그보다 전에 방영된 라디오 방송조차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해럴드 프라이는 저자, 해럴드가 찾아간 예전 직장 동료는 저자의 아버지가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나를 위해 희생을 하고,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준 사람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결국 구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 회한,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겠다는 용기와 희망 등등 우연이라기엔 닮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저자에게 순례란 곧 소설 쓰기라는 해묵은 숙제였을 터. 해럴드가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순례를 떠난 것처럼,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소설 쓰기라는 자기만의 순례를 하다가, 꼭 해럴드처럼 구하고 싶은 사람은 구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구원한 저자가 느꼈을 슬픔과 마음 한편의 성취감, 그 모순적인 기분을 상상하니 나까지 가슴이 저릿하다.
어떤 이는 이 소설을 한 노인의 순례기 또는 여행기로, 어떤 이는 한 편의 로드무비와도 같은 소설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이 소설이 그 어떤 작가의 자서전보다도 진솔한, 자기고백 같은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 속 해럴드 프라이의 이야기도 충분히 멋지고 감동적이지만, 글쓰기도 좋아하고 아버지도 한없이 사랑하는 나는 저자를 주인공으로 상상한 이야기에 더 큰 감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