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14년 차 번역가 노지양의 마음 번역 에세이
노지양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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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등을 번역한 16년 차 번역가 노지양의 에세이집이다. 각 장의 제목이 'reminiscence', 'day to day', 'fair weather fan' 같은 영어 단어 또는 숙어로 되어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 읽고 보니 영어 제목은 기억에 안 남고 이야기만 남았다.


책에는 저자가 번역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공인 영어로 밥벌이를 해보겠다고 번역가로 전업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번역가가 되고 보니 번역가가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고충들이 있었다. 연차가 쌓여도 오르지 않는 번역료(그마저도 운이 나빠 떼먹힐 때도 있다), 남들 눈에는 백수로밖에 안 보이는 프리랜서 생활, 일도 하고 살림도 해야 하는 워킹맘의 스트레스 등등...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인가' 하는 자책과 후회가 밀려들 때면, 일단 밖으로 나가서 무작정 걷거나 뛰었다는, 그러다 보면 거짓말처럼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지고 다시 뭐라도 해볼 기운이 났다는 조언이 좋았다. 부디 좋은 책 많이 번역해 주시고 꽃길만 걸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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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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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분야를 얕게 아는 사람이 쓴 책보다는 좁은 분야를 깊게 아는 사람이 쓴 책이 좋다. 잘 모르는 분야라도 잘 아는 사람이 쓴 책 덕분에 새롭게 발견하고 덩달아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언제나 원한다.


유지원의 책 <글자 풍경>은 그런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저자는 타이포그래피를 전문으로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타이포그래피란 활판 인쇄술에 사용되는 글자, 즉 활자를 일컫는다. 글씨는 글씨인데 사람의 손글씨가 아니라 기계로 만들어내고 찍어낸 글씨. 그런 글씨를 전공으로 배우고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책을 읽는 건 처음이라 여러모로 신기하고 신선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선 저자가 유럽과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발견한 각국의 글자 문화를 소개하고, 2부에선 한글을 비롯한 한국의 글자 문화를 설명한다. 3부에선 우주와 자연, 과학과 기술이 글자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를 설명하고, 4부에선 종이에 남은 글자의 역사를 조망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흥미로웠지만, 무엇을 보든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저자가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가 어떤 글자체가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라고 극찬할 때는, 나 같은 일반인의 눈에는 이 글자체나 저 글자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저자의 눈에는 어떤 글자체가 더 아름답거나 추해 보인다니 신기했다.


글자의 미추를 인식하는 감각은 연습이나 훈련에 의해 길러지는 것일까. 외국 방송에 나오는 한글은 대체로 내가 평소에 보는 한글보다 훨씬 어색하고 추해 보인다. 한글이 낯선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 글자체나 저 글자체나 다 같은 한글로 보이는 까닭이다. 어떤 글자체가 더 아름답거나 추한지 알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걸까.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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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를 읽는 시간
이택광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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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작가다. 예전에는 울프 하면 우울증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남자 형제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실과 "여자는 학교 교육이 필요 없다"라고 믿는 아버지의 반대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사실(참고로 울프의 아버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남자보다 덜 주목받은 사실 등이 울프를 괴롭게 만들고, 그래서 말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버지니아 울프 하면 좀 더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얼마 전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의 책 <나의 영국 인문 산책>을 읽다가 울프에 관한 재미난 일화를 발견했다. 젊은 시절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는 오빠 토비의 인맥을 동원해 존 케인스, 로저 프라이, 에드워드 포스터 등 지적이고 개성 강한 젊은이들을 모아 '블룸즈버리 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당시 울프는 그룹의 단둘뿐인 여성 멤버로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는데, 그 활약상을 보니(멤버 중 가장 잘생긴 남자와 케임브리지 대학 안에 있는 호수에서 나체로 수영을 했다든가...) 울프의 젊은 시절이 참으로 신나고 즐거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책에는 울프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실려 있다. 울프가 사망한 1941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다. 당시 영국에선 조만간 독일의 히틀러가 영국을 침공해 유대인을 전부 학살하거나 수용소로 압송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울프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남편인 레너드가 유대인이었고, 자신에게 헌신적인 남편을 몹시 사랑했던 울프는 만약 독일이 영국을 침공하면 동반자살하기로 다짐했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전황이 나빠지니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울프의 생애를 알면 알수록 울프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책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독파하는 데 있어 든든한 가이드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등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을 하나씩 읽으며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잘 알려진 작품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도 고루 다뤄서 요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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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3-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부모님, 언니 바네사, 남편 레너드, 브룸즈버리 그룹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와 E.M. 포스터 등등의 실물 사진도 두루 구경할 수 있었고요.(여태까지는 존 메이너드 케이즈의 모습만 알고 있던 형편이었는데 말이지요.) 시간 나시면, 재미삼아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MTUYTbjXDbA

키치 2020-03-25 15: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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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첫날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낯선 학교, 낯선 교실, 낯선 선생님, 낯선 친구들... 낯설기만 했던 모든 것들이 언제부터 익숙하고 정든 것들로 바뀌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낯선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과, 그들을 따라다니며 새롭게 익힌 것들로 인해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리라.


조현아의 <연의 편지>는 2018년 8월 네이버 웹툰에서 여름 특선 10부작으로 공개된 만화다. 연재 당시 9.98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했고, 이듬해 출간된 단행본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소리가 이전 학교에서 겪은 학교 폭력의 후유증으로 새로운 학교에서도 겉돌다가, 어느 날 우연히 책상 안쪽에 붙어 있는 숨겨진 편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소리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읽으며 조금씩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소리는 예전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구하려다 그 자신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 때문에 학교를 옮긴 후에도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 사귀는 걸 두려워하고 힘들어한다.


나도 한때는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봐, 남들이 나를 미워하고 배척할까 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말 걸어준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이든 간에 소리처럼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민망해하고 반성해야 한다. 사람을 가려서 환대하는 자리에는 선이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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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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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좋아한다. 대표작 <오베라는 남자>도 좋았고, <브릿 마리 여기있다>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작품은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이다(두 작품은 연작이다).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다음에 출간된 책이 <일생일대의 거래>라서 큰 기대를 품고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길이도 너무 짧고 내용도 빈약하다. 알고 보니 <일생일대의 거래>는 <베어타운>과 같은 2016년작이고, <우리와 당신들>은 2017년작이라고.


이야기는 추운 겨울날, 한 남자가 어느 술집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남자는 얼마 전 암 선고를 받고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 술집을 찾아왔다.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의 아들이 술집 안에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남자는 일만 중시하고 가족들을 등한시했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을 책망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다그쳤다. 남자는 술집 안에 있는 아들을 보면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과거의 잘못들을 돌이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에도 등장하는 소재다. <오베라는 남자>도 그렇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만을 좇다가 관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행복을 잃어버린 나이 든 남성, 이른바 꼰대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딱히 그들에게 관심은 없지만,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망쳐왔고 어떤 식으로 다른 집단 혹은 세대에서 재생산되는지에는 관심이 있다. <일생일대의 거래>는 그들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더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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