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의 열매 8
히가시모토 토시야 지음, 원성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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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의 열매> 7권은 마코의 형 히데키와 트러블이 있는 마코의 상사 야나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히데키가 환자들을 차갑게 대하는 것을 보고 불만을 품고 있던 야나기는 극심한 두통이 있는데도 수술을 히데키에게 넘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한다. 결국 수술 직전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고, 수술은 히데키에게 넘어간다. 


야나기는 검사 결과 녹내장 진단을 받고 의사 일을 그만두게 된다. 왜 진작에 자신에게 수술을 넘기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는 히데키에게 야나기는 의대 시절 은사로부터 "환자에게는 몸을 갈라 들여다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을 결코 상처 입혀서는 안 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히데키는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 


한편 오타루에서 유소년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쿠로다는 언제부터인가 화장실 출입이 잦아 훈련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쿠로다를 마코가 일하는 스즈카케 병원에 데려가는데, 쿠로다는 담당의인 마코에게 자신의 증상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쿠로다의 아버지는 마코의 아버지와 안 좋은 인연이 있는 듯한데, 이들의 사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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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야기 와이드판 9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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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야기> 9권의 주인공은 8권과 마찬가지로 파리야다. 거친 성격과 험한 말투 때문에 오해를 사는 일이 많은 파리야는 그런 자신을 신부로 맞이하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을 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마르라는 소년의 집안에서 혼담을 보내오고, 하루라도 빨리 딸을 시집 보내고 싶어 했던 파리야의 부모는 반색하며 받아들인다. 


그 때부터 파리야는 혼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 시대 이 지역의 혼수 준비란 결혼해서 쓰게 될 옷이나 침구류 등을 신부 측에서 전부 손바느질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느질을 잘 못하는 파리야는 혼수 준비 속도가 더뎌서 속이 탄다. 이러다 오마르의 마음이 바뀌어 혼담이 취소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러다 우연히 오마르가 수차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고, 수차로 오마르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려고 하는데...!


이 시대에는 혼인 전인 남녀가 단둘이 외출하는 걸 정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여겼다는데, 남들 눈을 의식하면서도 오마르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파리야의 모습이 성장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오마르에 대해 알고 싶어서 어른들 대화를 엿듣다 혼이 나기까지 했는데, 결국 원하던 결과를 얻게 되어 다행이다. 언제쯤 신부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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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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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년 찰리 리드는 사고로 엄마를 잃고 현재는 술 중독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찰리가 사는 마을에는 '사이코 하우스'라는 별명이 붙은 집이 한 채 있다. 사이코 하우스는 주변의 깔끔하고 아담한 집들과 다르게 더럽고 여기저기가 망가져 있으며, 그 집에 사는 노인과 개는 성질이 아주 더러우니 건들면 큰일 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찰리도 그렇게 믿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사이코 하우스 앞을 지나가던 찰리는 개 한 마리가 길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사람에게 겁을 주려고 내는 소리가 아니라 겁이 나서 내는 소리라고 직감한 찰리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얼마 후 훨씬 더 작게 들린 소리. "도와줘." 찰리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한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사이코 하우스의 주인인 보디치 씨였다. 


보디치 씨를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디치 씨의 간병인이 된 찰리는 보디치 씨의 집이 외관만 허름한 게 아니라 안에 있는 물건들도 엄청나게 낡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래서 가난한 노인인 줄 알고 병원비는 어떻게 낼지 걱정했는데, 어느 날 보디치 씨의 부엌 밀가루 통에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발견하고 며칠 후에는 보디치 씨의 금고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 알갱이가 담긴 양동이를 본다. 대체 이 노인 정체가 뭘까.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페어리 테일>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제목이 왜 동화(fairy tale)인지 궁금했다. 운동 특기자인 17세 소년과 사이코로 소문난 노인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것부터가 전혀 동화 같지 않은 데다가, 보디치 씨의 간병을 하면서 신뢰를 얻은 찰리가 보디치 씨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으로 지정되고 그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받는 것은 동화보다 범죄 스릴러 소설에 어울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디치 씨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알려준 대로 뒷마당으로 간 찰리가 동화 속 세계로 이어지는 우물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며 이 소설은 동화가 맞는다는 걸 알았다. 그것도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하는 본격적인 환상 동화! '세상의 우물'을 통해 입장할 수 있는 그 세계에는 수명을 연장해 주는 거대한 해시계가 있고, 찰리는 그 해시계를 이용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개에게 두 번째 삶을 주고 싶어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인터넷과 휴대 전화가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던 소년이 거대한 박쥐 떼가 날아다니는 환상의 세계를 모험한다는 설정이 기발하고 신선하다. <그림 동화> 같은 고전부터 <사악한 것이 온다>, <로건의 탈출>, <끝없는 이야기> 등 유명한 SF 소설을 언급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해시계를 이용해 수명을 연장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데 그 대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서 2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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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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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에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는 이성애자 커플이 나온다. 여자가 사십 대 초중반이고 남자가 이십 대 중반인데, 이 커플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여자도 남자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둘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같은 여자인데도 '나라면 저렇게 어린 남자(애)랑 사귈 수 있을까' 싶고, 둘이 함께 있을 때 여자 쪽이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걸 보면 '나는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연하남 만나는 여자분들 전부 동안+미인...)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는 제목 그대로 저자가 자기보다 훨씬 젊은 남자와 연애했던 경험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때는 1998년. 저자는 대학생 A와 만남을 시작했다. 당시 저자의 나이는 54세. A는 저자보다 서른 살 가까이 어렸다. A에게는 동거 중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A의 친구들은 "어떻게 폐경한 여자랑 잘 수 있냐"라는 눈으로 저자와 A 커플을 바라봤다. 저자는 그래도 좋았다. 저자는 A에게 운명적인 사랑이나 결혼 또는 아이를 바라지 않았다. 이 연애로 새로운 책을 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실제로 A와의 연애를 통해 저자는 새로운 책의 영감이 될 만한 경험을 많이 했다. A가 사는 집 창문에선 저자가 불법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후에 출혈을 일으켜 실려간 병원이 보였다. 아직 학생인 A의 낡고 검소한 집은 전 남편과 신혼 초에 살았던 불편하고 초라한 집을 떠올리게 했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 차가 있다 보니 저자가 어릴 때 직접 경험한 일이 A에게는 오래된 역사처럼 느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반대로 A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 저자에게는 미래의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도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인식한 것은 저자의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저자는 A와의 연애를 끝낸 후 이십 대 초반에 불법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경험을 고백한 책 <사건>을 발표했다. A의 집 창문 너머로 그 병원을 보지 않았다면, 그 시절로부터 시간상으로는 이만큼 멀어졌지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다는 걸 깨닫지 않았다면, <사건>이라는 역작이 출간되지 않았거나 더 늦게 출간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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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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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지혁은 소설을 계속 쓸지 말지 고민한다. 이 와중에 투병 중인 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다는 연락이 오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희망이 보였던 한국어 강사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다. 여기까지가 문지혁의 소설 <초급 한국어>의 줄거리이자 결말이다. 후속편에 해당하는 <중급 한국어>는 주인공 지혁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의 일들을 그린다. 


지혁은 귀국 후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헤어진 여자친구 은혜와 다시 만나 결혼했다. 한 권의 책을 냈고, 강원도의 한 사립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 자리를 얻어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뉴욕에서 혼자 살면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지혁은 현재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안 생기고, 책은 냈지만 여전히 등단하지 못했다. 강원도까지 출퇴근하기 힘들고 수업은 힘든데 이마저도 귀한 자리라서 그만둘 수 없다.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소설은 지혁의 일기처럼 이어진다. 지혁은 매일 눈 뜨면 출근하고 수업하고 퇴근하고 잔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지만, 분명 변화는 있다. 일단 오랜 불임 치료 끝에 지혁과 은혜 부부에게 첫 아이 은채가 태어난다. 지혁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의 실패를 딛고 세 번째 책을 집필한다. 지혁이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학생들과도 약간의 교류가 생긴다. 팬데믹을 겪으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비대면 온라인 수업 도중 갑자기 방으로 들어온 은채를 보고 학생들이 환영해 주는 대목이다. 지혁의 학생들은 수업이라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인 비자발적인 관계이고, 지혁은 이를 서운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은채를 보고 자발적으로 환영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을 보면서, 온전히 사랑받기에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느꼈던 자신의 존재가 딸로 인해 채워진다고 느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식을 가지나 보다 싶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아빠 껌딱지였던 은채가 얼마 후 BTS 오빠들 노래만 듣는 반전이 ㅋㅋㅋ) 


지혁의 글쓰기 수업 장면들도 좋았다. 매 수업에서 지혁은 프란츠 카프카, 안톤 체호프, 레이먼드 카버, 롤랑 바르트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각각의 소설은 당시 지혁의 삶과 연결되고, 지혁은 그것을 소설로 쓰고 그 소설이 다시 지혁의 삶을 바꾼다. 소설이 삶이 되고 삶이 소설이 되는 가장 훌륭한 사례랄까. 작가 자신의 삶이 소재인 점, 그러나 에세이와는 다르고 자서전과도 다르다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 닮았지만, 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둘 다 좋다). 얼른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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