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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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에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는 이성애자 커플이 나온다. 여자가 사십 대 초중반이고 남자가 이십 대 중반인데, 이 커플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여자도 남자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둘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같은 여자인데도 '나라면 저렇게 어린 남자(애)랑 사귈 수 있을까' 싶고, 둘이 함께 있을 때 여자 쪽이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걸 보면 '나는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연하남 만나는 여자분들 전부 동안+미인...)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는 제목 그대로 저자가 자기보다 훨씬 젊은 남자와 연애했던 경험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때는 1998년. 저자는 대학생 A와 만남을 시작했다. 당시 저자의 나이는 54세. A는 저자보다 서른 살 가까이 어렸다. A에게는 동거 중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A의 친구들은 "어떻게 폐경한 여자랑 잘 수 있냐"라는 눈으로 저자와 A 커플을 바라봤다. 저자는 그래도 좋았다. 저자는 A에게 운명적인 사랑이나 결혼 또는 아이를 바라지 않았다. 이 연애로 새로운 책을 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실제로 A와의 연애를 통해 저자는 새로운 책의 영감이 될 만한 경험을 많이 했다. A가 사는 집 창문에선 저자가 불법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후에 출혈을 일으켜 실려간 병원이 보였다. 아직 학생인 A의 낡고 검소한 집은 전 남편과 신혼 초에 살았던 불편하고 초라한 집을 떠올리게 했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 차가 있다 보니 저자가 어릴 때 직접 경험한 일이 A에게는 오래된 역사처럼 느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반대로 A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 저자에게는 미래의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도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인식한 것은 저자의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저자는 A와의 연애를 끝낸 후 이십 대 초반에 불법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경험을 고백한 책 <사건>을 발표했다. A의 집 창문 너머로 그 병원을 보지 않았다면, 그 시절로부터 시간상으로는 이만큼 멀어졌지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다는 걸 깨닫지 않았다면, <사건>이라는 역작이 출간되지 않았거나 더 늦게 출간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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