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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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지혁은 소설을 계속 쓸지 말지 고민한다. 이 와중에 투병 중인 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다는 연락이 오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희망이 보였던 한국어 강사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다. 여기까지가 문지혁의 소설 <초급 한국어>의 줄거리이자 결말이다. 후속편에 해당하는 <중급 한국어>는 주인공 지혁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의 일들을 그린다. 


지혁은 귀국 후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헤어진 여자친구 은혜와 다시 만나 결혼했다. 한 권의 책을 냈고, 강원도의 한 사립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 자리를 얻어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뉴욕에서 혼자 살면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지혁은 현재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안 생기고, 책은 냈지만 여전히 등단하지 못했다. 강원도까지 출퇴근하기 힘들고 수업은 힘든데 이마저도 귀한 자리라서 그만둘 수 없다.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소설은 지혁의 일기처럼 이어진다. 지혁은 매일 눈 뜨면 출근하고 수업하고 퇴근하고 잔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지만, 분명 변화는 있다. 일단 오랜 불임 치료 끝에 지혁과 은혜 부부에게 첫 아이 은채가 태어난다. 지혁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의 실패를 딛고 세 번째 책을 집필한다. 지혁이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학생들과도 약간의 교류가 생긴다. 팬데믹을 겪으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비대면 온라인 수업 도중 갑자기 방으로 들어온 은채를 보고 학생들이 환영해 주는 대목이다. 지혁의 학생들은 수업이라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인 비자발적인 관계이고, 지혁은 이를 서운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은채를 보고 자발적으로 환영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을 보면서, 온전히 사랑받기에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느꼈던 자신의 존재가 딸로 인해 채워진다고 느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식을 가지나 보다 싶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아빠 껌딱지였던 은채가 얼마 후 BTS 오빠들 노래만 듣는 반전이 ㅋㅋㅋ) 


지혁의 글쓰기 수업 장면들도 좋았다. 매 수업에서 지혁은 프란츠 카프카, 안톤 체호프, 레이먼드 카버, 롤랑 바르트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각각의 소설은 당시 지혁의 삶과 연결되고, 지혁은 그것을 소설로 쓰고 그 소설이 다시 지혁의 삶을 바꾼다. 소설이 삶이 되고 삶이 소설이 되는 가장 훌륭한 사례랄까. 작가 자신의 삶이 소재인 점, 그러나 에세이와는 다르고 자서전과도 다르다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 닮았지만, 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둘 다 좋다). 얼른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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