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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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아니라 펜을 놀려 싸우는 평화로운 전쟁터는 지성과 감성이 다투는 터전이다. 거기에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느라고 무리수를 두었던 애국적 필자들은 이제 인기가 시들하다. 교과서적인 명성을 날리던 저술도 죽을 쑤고 있다. 한때 박식한 사가들은 위증을 위한 증거 자료처럼 방대한 책을 써냈고, 이런 책들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다국어로 번역되곤 했다. 그런데도 한 세기도 안 된 지금은 헐값에도 찾는 사람이 없이 비만증에 걸려 병상에 누운 거물처럼 서가에 처박혀 있다." (p.208)

 

"번역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것이므로 번역서가 번창하는 시대는 상호 이해에 더 다가설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치지 않는 곳에서 상호 공존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영어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로서는 번역을 더욱 다변화해야 하는데도 되레 경시하는 풍조야말로 불길하기 짝이 없다. 모국어와 동시에 여러 외국어를 이해하는 번역가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균형 잡힌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외국어 잘하기보다는 모국어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pp.270-1)

  

 

정진국이 쓴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제목 그대로 스위스,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3국,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각지에 산재해 있는 책마을을 저자가 직접 방문하고 그곳의 역사와 실정을 기록한 책이다. 책마을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파주에 위치한 헤이리 출판문화단지가 유명한데, 저자는 이런 산업적인 목적으로 건설된 출판문화'단지'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거나 자생적인 책'마을'에 주목했다. '마을'이다보니 대부분이 책마을의 운영 방식과 각 서점의 성격, 취급하는 책의 종류 등이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특색이 있다. 

 

 

나라별, 지역별 특색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예로부터 인접 국가의 사상범, 망명자들이 피난처로 즐겨 찾았던(?) 나라라서 사상에 관한 책이 유난히 많다. 예술로 유명한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은 화첩과 화가들의 일생을 다룬 책들이 많다. 북유럽의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동화, 환상문학 등이 발달한 나라답게 동화책, 판타지 문학책이 많다. 책마을이라고 해서 다 비슷비슷한 중고책들을 팔 줄 알았는데 각각 특색이 있어서 재미있고 신기했다. 여행기 형식인만큼 유럽에는 어떤 책마을이 있고 외국의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감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마을'이라는 테마를 통해 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해보며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저자 역시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감상만 늘어놓지 않고, 책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기있는 서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는지 등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좋은 책이란 무엇이며, 좋은 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문화적 토양, 사회적 환경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뼈있는 말을 남겼다. 가령 시류에 편승하고 당대에만 주목받는 책보다는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든가(), 한국의 출판문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번역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대목이 그렇다. 번역에 대해서는 고인이 된 요네하라 마리도 같은 논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고, 그 중에서도 영어, 일본어 번역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출판계에, 나아가 문화계와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출판계까지 갈 것도 없이, 프랑스어나 독일어, 스웨덴어 같은 유럽 지역의 언어를 모르는 내가 유럽의 책마을에 간들 얼마나 볼 것이고 얼마나 느낄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 책이 처한 문제는 책 자체나 책마을보다도, 책 이전의 국민들의 문화적, 언어적 소양의 부족, 나아가 사회적 환경의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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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 이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성적 신호의 비밀
오기 오가스 & 사이 가담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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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는 남성에 대한 호기심과 이성 교제에 대한 갈망을 드라마와 아이돌 영상으로 대신하던 나의 예전 모습을 정확히 설명하는 책이다. 공저자 오기 오가스와 사이 가담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를 어떻게 인지하며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지를 다양한 관점과 차원을 통해 분석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성은 이미지, 즉 시각적인 자극에 취약해서 포르노와 같은 매체에 탐닉하고, 여성은 감정적, 심리적인 자극에 약하기 때문에 로맨스 소설, 드라마, 영화 등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남성이 포르노, 야동에 탐닉하는 건 알겠는데, 여성이 로맨스 소설과 드라마, 영화로 성적인 호기심과 욕구를 해소한다고? 놀라지 마시라. 2008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로맨스 출판업의 수익은 온라인 포르노의 수익보다 높았다. (p.169) 우리나라에도 드라마, 영화에 탐닉하는 여성의 수는 엄청나게 많고, 아이돌, 만화, 팬픽, 라이트노벨 등 서브 컬처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여성이 포르노, 야동을 즐겨보지 않는다고 해서 성욕이 없는 건, 성욕을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드라마, 영화, 만화, 아이돌 영상 등의 매체를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팬덤을 통해 확산시키거나, 팬픽, 팬아트 등 창작 활동을 통해 재생산하는 기세를 보면 그 욕망이랄까 에너지가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남성은 여성의 가슴, 엉덩이말고도 발에 민감하다. 남성의 발모양에 민감하지 않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과거 중국에 전족이라는 풍습이 있었던 것을 보면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남성의 성적 관심사는 어린 시절의 성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어린 시절에 성적 자극을 준 여성이 뚱뚱한 여자라면 뚱뚱한 여자에게, 가슴이 작은 여자라면 가슴이 작은 여자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 남성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취향을 가졌으리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신체적 흥분과 심리적 흥분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신체적으로 흥분해도 심리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으면 끌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 연예인의 얼굴과 외모를 주로 보는 남성들과 달리, 남자 연예인의 학벌, 가정환경, 교우관계, 학교생활, 장래희망부터 혈액형, 별자리, 좋아하는 음식, 선호하는 브랜드, 패션 스타일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싶어하는 여성의 심리는 이런 데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외모가 별로인 남성이라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어린시절에 어떤 상처를 입었고, 가족과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같은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물론 과장이나 허세, 거짓말은 빼라. 솔직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불쌍한 이야기에 여자는 더 끌린다. 개인사, 가십을 좋아하는 보통의 여성이라면, 전부는 아니라도 반쯤은 당신에게 호감을 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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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팔리는가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소비자 행동의 3가지 비밀
조현준 지음 / 아템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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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불완전하고, 심지어 왜곡된다는 것은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억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의 연구팀은 <소비자연구저널>에 '팝콘 실험'에 대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를 두 집단으로 나눠 신제품 팝콘 광고만 보게 했다. 한 쪽은 생생한 이미지 광고였으며, 다른 쪽은 이미지가 없는 텍스트형 광고였다. 1주일 뒤 진행된 신제품에 관한 태도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생생한 이미지 광고를 본 집단은 자신들이 팝콘을 먹었으며 이는 확실하다고 대답했다(실제로 먹지 않았다). 이들은 실제 제품을 먹어본 집단과 동일한 정도의 확신과 호감을 보여주었다." (pp.133-4)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여성은 빠른 판단이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우수한 자손을 낳기 위해서 훌륭한 남성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성의 뇌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느리지만 좌뇌와 우뇌를 모두 사용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한 마디로 듀얼 코어다). 양쪽 뇌를 모두 사용한다는 것은 감정 정보가 어느 뇌에 전달되든 감정 관련 정보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높은 감정 정보 처리능력으로 여성은 남성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능력으로 인해 여성은 남성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상품, 매장, 판매원 등의 세밀한 부분(디테일)까지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디테일에 대해  여성의 감정의 뇌는 더 많은 자극을 받고 즐거워한다. 여성이 쇼핑 자체를 즐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p.282-3) 


   

녹차보다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아메리카노 커피보다는 프림이나 설탕이 잔뜩 든 인스턴트 커피가 몸에 훨씬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마시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모자라 커피전문점에서는 밥 한 끼 값에 달하는 커피를 사서, 거기에 크림과 시럽을 듬뿍 넣어 마시는 이유는 뭘까? 원가가 몇백 원, 몇천 원 밖에 하지 않는 외국 화장품을 몇만 원, 몇십만 원 주고 사는 이유는 뭘까? 결코 수지나 김태희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들이 광고하는 제품을 사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SK 마케팅앤컴퍼니 틸리언 컨설팅 그룹 사업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조현준이 쓴 <왜 팔리는가>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비합리, 비이성적인 소비 행위에 주목하는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마케팅에 관해 수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소비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동기, 이유에 관한 설명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다. 뉴로마케팅은 뇌과학을 이용하여 기존 마케팅 법칙들이 설명하지 못했던 소비자 행동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이다. 뉴로마케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소비자가 의식을 이용해 합리적, 이성적으로 소비를 결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이 소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를 합리적인 소비 주체,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전제하고 마케팅을 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황당한 건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피땀흘려 번 돈을 꼼꼼히 따져보고 알뜰하게 써도 모자랄 판에,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의식이라는 녀석이 제멋대로 지갑을 열고 있다니!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마실 때, 큰맘 먹고 큰 돈 들여 화장품 살 때마다 챙겨야 할 것이 지갑만은 아닌 셈이다. (내 의식부터 챙기자!)



좋다면서 사지 않는 소비자, 방금 보고도 어느 제품의 광고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소비자, 비싼데도 더 싸다고 말하는 소비자, 브랜드가 곧 차이라고 믿는 소비자, 제품은 사지 않으면서 프로모션, 이벤트 혜택만 누리려고 하는 소비자 등등 수많은 유형의 소비자들을 상대하느라 마케터들도 참 힘들 것이다. 오죽하면 애플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할까? (p.26) 그러나 이러한 비합리, 비이성적 소비 행위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소비자들 자신이다. 먹어본 적도 없는데 광고의 이미지를 본 것만으로도 먹어봤다고 착각하는 소비자들.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지갑을 여는 그네들이 애처롭다. 뭐, 나라고 다르겠는가? 광고에서 신제품 맥주를 들이키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먹어본 적도 없는 맥주맛이 입에서 맴돌고, 수지가 방긋방긋 웃으며 살랑살랑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본 적도 없는 화장품의 향과 촉감이 느껴지고...... 지갑이 안 열리는 게 이상할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업은 소비자들보다 한발 앞서 소비 행태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각 소비자 그룹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여러가지 전략 중에서 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노린 마케팅 전략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감정 정보 처리능력이 높아서 한꺼번에 많은 자극에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를 더 즐기고, 물건을 구입할 때도 물건 자체의 기능 외에도 브랜드, 패키지, 매장, 서비스, 스토리텔링 등 부가적인 요소, 즉 디테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기업들이 여성들의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성으로서는 즐거운 일이지만, 이로 인해 소비의 노예로 전락하고, 과소비의 그물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팔리는' 물건에 정신은 물론 인생마저 '팔리면' 곤란할테니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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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법
양창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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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사람들에게 꾸미고 치장한 내 앞모습만 보여 주려고 애써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도 뚜렷하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나한테 보기 싫은 뒷모습도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남에게 보여 줄 생각을 하랴. 하지만 그 순간은 달랐다. 그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것, 사실은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시련이 견디고 손톱만큼이라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지금 이 순간 내 전부를 수용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자각이 너무도 명료하게 떠올랐다. (중략) 그러면서 그동안 환경 탓, 주위 탓으로 돌리면서 원망하고 분노하던 문제들도 사실은 내 선택의 결과였음을 깨달았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이나 나쁜 선택이 있었을 뿐, 그 행동의 주체는 나였던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내 인생이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pp.231-2)

   

 

어제는 '심리 데이(Day)'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고 책장에 꽂혀 있던 심리학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먼저 읽은 책은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이 쓴 <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 법>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실한 마음'이란 곧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애를 바탕으로 하다보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사기 쉬운데, 긍정적인 나르시시즘은 정신적 갈증이나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건강하고 낙관적인 마음, 즉 자존감을 가져다 주며, 타인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끔 한다. 문제는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이다. 열등감과 완벽주의, 흑백 논리와 노이로제적인 경쟁심, 지나친 자기 도취, 비정상적인 분노의 폭발, 잦은 비탄과 우울, 왜곡되고 변형된 페르소나 같은 문제들이 바로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 이러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긍정적이고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자기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타인의 나르시시즘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는 것이다. "우리 누구도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격심한 상처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좌절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분노하며 복수하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략) 그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은 때로 매우 치명적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못할 일이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나르시시즘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71) 이 대목에서 나는 왜 책의 제목이 '나르시시즘 이해하기', '긍정적인 나르시시즘 가지기'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 법'인지를 이해했다. 나의 마음이 상처입지 않게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마음이 상처를 입든 말든 돌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나를 위해 남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 것 역시 문제고, 이는 긍정적인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이다. 이 둘이 한끗 차이라는 것과,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하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나처럼 상처도 있고 실수도 하고 불안해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다. 겉치레가 아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인간관계,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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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정병욱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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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개인의 몸을 길들이는 여러 다양한 기법과 전술을 통틀어 '규율'이라 하는데, 규율에 주로 동원되는 세 가지 주요 수단이 관찰(감시), 제재, 시험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관찰이다. (중략) 학교는 학생의 마음과 방과 후 생활까지도 관찰하기 위해 일기를 쓰게 하고 제출토록 했다. 강상규는 두 종류의 일기를 썼다. 학교에 제출하는 '학생 일기'와 자신만 보는 '개인 일기'. 먼저 '개인 일기'를 쓰고, 그중 군데군데를 골라 일본어로 '학생 일기'를 적어 제출하는 식이었다. (중략) 이쯤이면 권력에 길들여져 '정상화'되는 개인과 다른, 자신을 스스로 주체화하는 개인을 상정해도 되지 않을까. 권력의 '규율화'에 맞서서 스스로를 '개체화'하는 개인. '개체화'도 관찰로부터 시작하며, 그 결과물이 '개인 일기'다." (pp.42-4)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고 실현한다는 식으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근대사회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제반 조건을 만들고 이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 것도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다. 근대 개인이 이러한 자아실현의 꿈을 키우고 그 실현 방법을 배우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위인전이다. 개항기나 일제 시기에 영웅전이나 위인전이 많이 읽혔던 것은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와도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p.30)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인 정병욱이 쓴 <식민지 불온 열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불온'하다는 평가를 받은 여러 사람의 일생을 늘어 놓은 '열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다룬 책인 만큼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색채가 짙지만, 경성 유학생 강상규, 자소작농 김영배, 중국인 숙소에 불을 지른 신설리(지금의 신설동) 패, 소학교 벽에 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을 비난하는 낙서를 한 김창환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 운동'을 다룬 책이라서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도 강상규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전라북도 옥구 출신인 그는 부농의 아버지를 두고 머리가 명석한 덕에 당시 최고 명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 학급에서는 부급장을 맡고 성적은 전교에서 5등에 드는 모범생이자 수재였다. 일제에 충성하는 관료나 기업가로 키워질 운명이었던 그는 사실 조선의 독립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불온' 청년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목적도 '적국 정찰'이었고, 친구를 사귈 때에도 독립 운동을 함께할 동지를 가르듯이 했다. 심지어는 급우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서 독립 운동을 함께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결국 그것이 발각되어 징역을 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10대 후반의 소년이 어떻게 그토록 비밀스럽게 모범생과 불온 청년의 '이중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명문고 졸업생이자 엘리트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체제에 반항하는 선택을 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강상규의 이중생활은 일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일부러 두 개의 일기를 작성해서 스스로를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으로 구분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일제가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까지 감시하려 했고, 그 수단이 일기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90년대에만 해도 일기 쓰기 숙제가 있었다. 저학년 때는 몰랐는데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고 숙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학급 임원이자 모범생으로서 일기도 모범이 되게 써야한다는 '자기검열'이 그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 후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글인지 보다 뚜렷하게 알게 되면서부터는 자기 검열을 덜 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인터넷에 올리는 글도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고 감시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불편하다. 강상규는 진작에 일기의 의도를 알아채고 두 개의 일기를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10대 후반의 소년 강상규로 하여금 일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이중생활을 이어가게 만든 동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가 어린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동네 노인들로부터 유충렬전, 조웅전 같은 영웅전을 자주 들었다는 것을 든다. 영웅전 하면 보통 민족주의로 연결짓는데, 저자는 강상규의 경우 영웅전을 통해 민족주의뿐 아니라 개인주의도 키웠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개인주의 성향은 그로 하여금 독립운동에 바로 발을 들이지 않고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이러한 개인주의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타주의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강상규의 경우를 보면 회의적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해서 자기 이름을 날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판사가 왜 독립을 희망하는지 묻자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싶고, 그러자면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조선을 독립시켜야 된다고 생각한 주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조선에서 내가 마음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댔다. 이때 민족은 입신출세와 자아실현의 장이다." (pp.80-1) 즉 독립 자체를 목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치가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운동을 택한 것인데, 이는 그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할 때에도 훌륭하게 일제에 전향한 모습을 보였고 출소 후 뚜렷한 행적을 보이지 않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상규라는 청년의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 것이라 새롭고, 저자의 분석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다 읽고나니 그 어떤 교훈이나 생각보다도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남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이성에 눈을 뜨고, 밤새워 공부하고 놀기도 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그 시기에,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을 구분하며 비밀스럽게 살아간 그의 삶이 너무나 가엾고 불쌍하다.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느 나라의 식민 치하가 아닌 지금도 모종의 권력이나 체제에 의해 길들여지고 억압되고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국가 권력만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기업 권력, 학교 권력, 가정 권력, 사회 권력, 또래집단 권력 등 수없이 많은 권력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다. '불온' 청년 강상규는 그것을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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