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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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할 말이 별로 없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영화를 왜 보느냐고 묻는 것과 같고,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이돌 가수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좋으니까. 그것보다 날 즐겁게 하는 게 없으니까(그러니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왜 좋아하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책 중에서도 소설이 그렇다. 문학 작품은 삶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거나 돈 버는 데 먼지만큼이라도 쓸모 있는 정보를 구하려고 읽는 게 아니다. 좋으니까, 재밌으니까, 읽으면 즐거우니까 읽는 것이다. 



나에겐 김연수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그렇다. 2013년에 처음 나왔을 때 저자 사인본을 받기 위해 일부러 예약까지 해가며 구입한 이 책을 이제서야 다 읽은 건 책에 실린 열한 편의 소설이 하나같이 좋고, 재미있기 때문이었다(늦게 읽은 변명이 아니다!). 옛 여친이 준 명품 시계가 짝퉁이라는 사실을 알고 황당해하는 남자의 에피소드를 그린 <벚꽃 새해>, 눈 먼 강아지에게 '기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남동생의 이야기를 그린 <깊은 밤, 기린의 말>, 미국에 사는 이모로부터 처녀 때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 남자가 나오는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등 인상적인 작품이 한두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굳이 최고를 고르자면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누나의 말에 깊은 밤 안산에 있는 터널을 찾은 남자는 어머니가 불렀던 엉터리 샹송의 가사가 '모든 게 다 끝났다는 걸 난 안다. 사랑은 떠나갔으니까. 한 번만 더 둘이서 사랑할 수 없을까'라는 뜻이고, 여기엔 '인생을 한 번만 더 살 수 있다면, 자기도 그언니처럼,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람처럼, 불어 노래도 부르고, 대학교 공부도 하고, 여러 번 연애도 하고, 멀리 외국도 마음껏 여행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이 떠나간 것, 흘러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어쩔 수 없음의 정서를 그리지만 이 작품의 울림이 내겐 유독 컸다. 만끽할 새 없이 지나가버린 젊음을 아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일까.


 

이밖에도 좋은 작품이 많다. 故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날 타계한 소설가의 유작을 손에 넣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과 책 한 권을 통해 아버지의 과거를 이해하게 되는 <우는 시늉을 하네>도 좋았고, <일기예보의 기법>, <동욱>, <파주로>, <인구와 나다>도 좋았다. 작품들의 분위기나 주제가 대개 비슷한 데 반해, 제3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만 색다른 느낌이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한 걸까. 몇 번 더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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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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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1장으로 끝내는 업무기술
미키 다케노부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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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업인 미키 다케노부가 쓴 <A4 1장으로 끝내는 업무기술>은 A4용지 한 장으로 시간관리부터 사고력 강화, 회의, 리더십 강화, 기획력 강화, 문장력 강화, 비즈니스 라이프 개선 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첫째로 주제마다 이렇게 많은 업무기술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둘째로 이 많은 일을 A4용지 한 장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관심 분야인 기획력 강화에 대한 챕터를 보면 아이디어 연결 시트, 유사 콘셉트 시트, 홉 스텝 점프 시트, 브레인스토밍 시트, 발상 체크 시트, 삼각 연상 시트 등 활용할 수 있는 업무기술이 무려 여섯 개나 된다. 신제품이나 신서비스 기획을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일 때는 여기에 제시된 여섯 개의 시트를 하나하나 차례대로 해볼 생각이다. 하나는 걸리겠지.


A4용지 한 장의 위력도 새삼 깨달았다. 기록벽, 정리벽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할 때는 먼저 노트나 수첩부터 마련하는 편인데, 부끄럽게도 끝까지 쓴 적은 별로 없다. 이제부터는 노트나 수첩을 따로 쓰지 말고 A4용지처럼 일정 규격의 종이에 기록하고 파일을 만들어서 정리해야겠다. 그 편이 실천하기도 쉽고, 보관하기도 쉽고, 돈도 덜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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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해부 - 위대한 석학 22인이 말하는 심리, 의사결정, 문제해결, 예측의 신과학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3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강주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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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해부>는 영국 석학들의 모임인 엣지 재단이 만드는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3권이다. 1권 <마음의 과학>, 2권 <컬처 쇼크>에 이은 3권 <생각의 해부>는 엣지 재단에 속한 석학 22인이 심리와 의사결정, 문제 해결, 예측 등 인간의 사고를 주제로 심리학, 뇌과학, 통계학, 신경학 등 여러 학문의 관점으로 사고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한 내용을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은 학문의 최전선에 있는 학자들의 '따끈따끈한' 연구 결과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학문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모인 심포지엄에 참여하는 느낌이랄까. 책의 주제가 인간의 사고라고 해서 사고력, 창의력 같은 내용을 다룰 것으로 짐작했는데, 정서 예측, 어림셈법, 청결감, 테스토스테론 같은 예상치 못한 주제가 나오는 점이 신선했다. 단점은 일반 대중이 읽기엔 내용이 어렵다는 점. 다만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고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의 <사사분면 : 통계학의 한계>이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수치와 통계에 매달리는 학문으로 오해하기 쉽고, 평범한 머리로는 극단과 예외에 눈길이 가기 쉬운데, 나심 탈레브는 수치와 통계에 속지 말고, 극단과 예외에 휘둘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인생은 한방이 아니다. 대박을 꿈꾸지 말고 쪽박을 피하자. 그러기 위해선 수치와 통계, 벼락부자와 슈퍼스타에게 현혹되지 말고 눈 앞에 있는 일,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슴에 와닿고, 지극히 나심 탈레브다워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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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명화 한 점 - 명화 같은 인생, 휴식 같은 명화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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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계의 이슈는 그림을 통한 힐링이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하다시피 한 컬러링북의 인기가 대표적. 여기에 한 점의 명화를 통해 우리네 일상을 사유하는 내용을 담은 <출근 길 명화 한 점>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트 메신저 '빅쏘' 이소영이 네이버 포스트에 인기리에 연재 중인 시리즈 <출근길, 명화 한 점>과 <아침, 명화 배달>을 엮은 책이다. 미대 출신에 미술교육원 원장,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해설자로 활동 중인 미술 '전문가'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미술과 일상을 접목한 글을 쓴다는 컨셉은 전에도 있었지만, 책으로 나오기 전에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검증받은 건 이 책이 처음인 듯하다. 


이 책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에 한 챕터씩 읽을 수 있게 일곱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명이나 화가 이름, 미술 사조 같은 내용은 미술에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나로선 기억하기 어렵지만,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자신을 거둬 아를에 정착해 살 수 있게 도와준 술집 여주인 지누 부인을 위해 그림을 그린 고흐, 자신의 그림으로 유명세를 얻어 화가로 이름을 남기는 대신 동료들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도록 애쓰며 후원자로 남은 구스타브 카유보트,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결혼으로 화가 생활을 접은 언니 대신 동생이 노력 끝에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된 모리조 자매 등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엇보다도 좋았던 건 작품명이나 화가 이름 등을 달달 외우는 '공부' 말고 그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성찰하는 '감상'의 기술을 저자가 직접 보여준 점이다. 거장의 그림 너머로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오랜 세월 당뇨로 고생하는 어머니, 일찍 결혼해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동생의 모습을 발견한 이야기, '서른 살 여름, 7월의 마지막 날에 파리 에펠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과 파리를 찾은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대학 시절 서양 미술사를 배우면서 언젠가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명화를 감상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언제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십 대는 지났으니 삼십 대엔 꼭 이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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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 미술관에서 명화를 직접 감상하는 꿈, 꼭 이루셨으면 합니다. ^^
 
시간자결권 - 자유롭게 충만하게 내 시간을 쓸 권리
칼 오너리 지음, 박웅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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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밥도 빨리 먹고, 걸음도 빨리 걷고, 일도 빨리 하고, 책도 빨리 읽고, 뭐든 빨리 해치우고(!) 싶어하는 성격이라서 그런 것 같다. 결혼만큼은 빨리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지만. 나처럼 뭘 하든 '빨리'를 외치는 성격이라면 칼 오너리의 <시간자결권>을 읽어보길 권한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라는 제목으로 몇 년 전에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인들이 쉽게 조급증을 느끼고 심하게는 분노와 격분의 감정에 사로잡히는 이유로 '속도에 대한 강박'을 든다. 내가 그렇다. 빨리 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면 짜증이 나고 가끔씩은 화마저 난다. 내가 시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쫓는 것 같달까. 시간이 가든 말든 상관 없이 느긋하고 여유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저자는 이런 속도에 대한 강박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슬로운동'을 제시한다. 슬로운동은 단순히 느린 것을 찬양하며 매사를 느리게 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자기 삶의 리듬을 자신이 조절한다'. 즉 빠름과 느림 사이에 균형을 잡는다는 의미가 더 크다. 슬로운동은 의식주는 물론 업무, 운전, 의료, 교육, 심지어는 성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빠름에 중독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중 다수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값싼 패스트 푸드로 한 끼를 때우는 대신 직접 재료를 골라 조리해 먹는 '슬로푸드', 성냥갑 같은 아파트 대신 설계부터 완공까지 직접 참여해 지은 집에 사는 '슬로주택' 등이 그 예다. DIY, 셀프 인테리어, 뜨개질, 컬러링북도 기성품을 구입하는 대신 시간을 들여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느린 취미'다. 한 권의 책을 몇 시간, 며칠씩 사유하며 읽어나가는 독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슬로활동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에 있어서도 슬로운동을 적용할 수 있다. 대기업 등 거대한 관료제 조직 속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며 일에만 매여 사는 것이 과거의 일에 대한 관념이었다면, 이제는 탄력근무제, 잡셰어링, 프리랜서 등의 형태로 일을 하면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대안이 있다. 저자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업하면서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고 여가를 즐길 수 있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한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수입이 줄긴 했어도 출퇴근, 외식 등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지출도 줄어 오히려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고 하니 솔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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