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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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나 정신분석에 대한 책은 한 달에 한 권만 읽자, 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한테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아서...) 이번달은 예외로 해야겠다.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몇 번이나 결제할까 말까 고민한 책이,  도서관 신간 코너에,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물론 책을 정리하는 사서님들의 손은 탔겠지만... 그리고 배달하신 분도, 서점 직원도... 음음...) 놓여있는데 어찌 안 읽을 수 있으랴... ㅎㅎ 

<홀가분>은 정신과의사 정혜신과 그녀의 남편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함께 쓴 책이다. 부부가 같은 분야에서 때로는 동료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밀고 당기고 보완하며 활동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이렇게 책까지 같이 쓰시다니, 부러움을 넘어 배가 슬슬 아프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지난 5년간 나눈 고민과 생각의 결실을 화가이자 아트디렉터인 전용성의 그림과 함께 담아낸 그림 에세이로, 제목대로 '홀가분'하게 읽기 좋다. 나도 잠자기 전이나 이동할 때 틈틈이 여러 편씩 읽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개운해져서 좋았다. 시간도 훌훌 잘 갔다.    

 

한 초등학생은 백 점을 맞았는데도 아빠한테 눈물이 쏙 빠질만큼 혼이 났답니다. 백 점은 맞았지만 글씨가 삐뚤빼뚤해서 앞으로 글씨를 똑바로 쓰지 않는 나쁜 버릇이 생길까봐요. - 모진 사랑(pp.144-5) 
박태환을 축구장으로 데려가 박지성만큼 뛰지 못한다고 윽박지르고, 김연아에게 골프채를 쥐어주고 미셸 위처럼 스윙을 못한다고 한숨 쉬고, 조용필의 글발이 양인자만 못하다고 혀를 차기 시작하면, 견뎌낼 장사가 없지요. - 자책은 이제 그만(pp.44-5) 

  

사회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자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사는 시민으로서 이러한 사회적인 압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어렵다. 먹고 살려면 수없이 다치고 깨지면서 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고, 그런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 점을 맞아 기분이 좋은 아이를 글씨가 안 예쁘다는 이유로 야단을 친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으니 맥이 탁 풀린다. 열심히 했는데도 칭찬은커녕 생각지도 못한 트집이 잡혀 혼이 나는 아이의 모습은, 안 놀고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취업이 어렵고, 취업을 해도 버티기가 힘들고, 높기만 한 집값에 물가인상에 교육비에 등록금에 노후대비 등등 갈수록 걱정이 태산인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닮았다. 

게다가 한 번뿐인 인생 내 맘대로 살 권리가 있는데도 친척, 이웃, 지인 등등 감 놔라 배추 놔라 오지랖 넓은 사람도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특징이자 문제다. 진짜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이 대개 비슷비슷하다는 것. 대학은 어디 이상 가야 한다, 결혼은 언제까지 해야 한다, 애는 몇 이상 낳아야 하며 연봉을 얼마를 받아야 어쩌고저쩌고... 왜 그 이상을, 그 너머의 것을 생각하지 못할까.     

 

제 경험에 의하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힘의 근원은 자기를 절절하게 느끼는 행위에서 비롯합니다. 잘나든 못나든, 상처투성이든 아니든 그 안에서 내 본래의 모습이 이랬구나, 내가 그래서 힘들었구나, 나한테 이런 욕구가 있었구나...... 를 알아차리고 발견하기. 그럴 때 인간의 자기치유력은 극대화됩니다. - 자기치유력의 근원(pp.194-5) 

  

이 책의 저자들은 답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아보자고 말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처가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마주하는 것을 꺼린다. 아마도 입시에 취업에 경쟁에 숨 쉴 틈 없이 살다보니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귀중한 시간을 놓쳐서는 인생 자체에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주변을 보면 재수, 삼수를 하거나 입대, 유학 중에 처음으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는 사람이 제법 있다. 시간도 남고, 원래 생활에서 비껴나 있다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자기가 진짜 원하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거나, 전역 후 전보다 치열하게 살게 되었다거나, 유학 후 진로를 변경하는 등 인생의 반전을 이루었다는 스토리도 심심찮게 듣는다.  

나는 재수도 안 했고 1년 휴학 기간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건만 대학 졸업 후 취업을 못해 인생 최초로 여유로운(또뜨는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한테는 지금이 그 재수, 삼수, 입대, 유학 같은 기간인 것 같다. 이 시간 덕분에 나는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그 결과 평생을 걸고 싶은 공부도 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특히 심리학 책에 눈을 뜨면서 내 안의 상처와 욕구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나니 첫째, 화내는 일이 줄었다. 덤으로 화내고 나서 후회하는 일도 줄었다. 둘째, 자신감이 생겼다. 나조차도 몰랐던 콤플렉스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셋째, 여유가 생겼다. 아픈 말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그 사람 마음에 병이 있나보다 하며 넘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신경쓰이는 일이 줄고 마음 다치는 일도 별로 없게 됐다. 어쩌면 누구보다 날 괴롭히고 힘들게 한 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일이 잘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인에게 억하심정이 있던 설렁탕집 주방장이 주인에게 손해를 끼칠 요량으로 뚝배기에 고기를 듬뿍듬뿍 넣었더니 '고기 반 국물 반'이라는 소문이 나서 최고의 설렁탕 전문점이 되었다는 전설처럼요. 그래서 모자람이 성취의 가장 중요한 동기라는 성공신화는 어떤 경우엔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잠언이 됩니다. 지금 무언가 모자란다고 느낀다면 '조만간 무엇을 이루겠구나' 하는 신호일지도요. - 결핍 동기(pp.58-9)


먼저 나부터 돌보자는 말에는 심리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 바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하나 이상의 결핍 요소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다, 내 말이 곧 법이요, 진리다.' 라는 식으로 믿을 때 문제가 생기고 사람들과 갈등이 생긴다. 먼저 자신의 존재의 불완전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기라는 철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세상을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는가' 라는 유명한 노랫말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바꾸지 않아도 시간이나 상황이 저절로 바꾸어주는 때가 있고, 내가 굳이 말하고 행동하지 않아도 남이 저절로 깨닫고 바뀌는 때가 있다. 또 내가 맞다고 여긴 것이 훗날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자다가 하이킥한다는 말이 절로 이해가 된다.)  

그저 홀가분하게 모든 걱정근심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한 안테나를 조금 접어두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는 법이라고, 조금만 덜 빡빡하게 살자고 말하는 이 책, 참 홀가분하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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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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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통 잠이 안 와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고 고른 책이 이 책이었다.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술도 안 마시고(못 마시는 건 아님), 담배도 안 피우고, 돈이 안 번다는 핑계로 쇼핑도 안 하는 내가 그나마 '중독'될 만큼 좋아하는 것이 책 읽기 정도인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중독 축에도 못 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책을 많이 안 산다. 책 산다고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것이 책을 많이 안 산다는 반증이다. 진짜 많이 사는 분들은 한달에 10만원어치, 100만원어치도 사신다던데 난 어쩌다 쿠폰 생기고 적립금 받으면 사는 정도이니 발끝이나 따라갈까.  

게다가 책을 수집하지도 않는다. 물론 소위 '내 인생을 바꾼 책' 같은 건 소장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라도 나중에 구입한다. 열심히 알바해서 번 돈으로 산 전공서적도 아까워서 남한테도 못 주고 팔지도 못한다. (누가 사지도 않을 것 같지만...) 하지만 돈 내서 산 책이고, 한 번 읽고 괜찮다 싶은 책이라도 '내 인생을 바꾼 책' 급이 아니면 빨리 중고샵에 등록한다. 내 책장에서 먼지가 쌓이느니 다른 사람들한테 귀하게 읽혀지는 게 그 책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인류 공영을 위해서도 더 좋다고 믿는다. (너무 멀리 나갔나...)  

이 책에 따르면 책 중독자는 책을 그저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닥치는대로 사고, 있는데도 또 사고, 번역 다르다고 사고, 표지 다르다고 사는 등등 책을 소유하는 것에까지 탐닉하는 수준의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나의 가볍디 가벼운 지갑과 처량한 통장 사정이 이런 때는 또 어찌나 감사한지... 뭐 내가 사랑하는 것은 책보다도 책 속의 이야기니까. (이러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은 굉장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만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가슴먹먹해지는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맞아, 맞아' 공감할 수 있는 고백록이자, '낄낄' 또는 '큭큭' 정도의 웃음소리를 자아내는 유머 모음집이다.  

재미있는 책이라서 읽고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단지 할인판매를 한다는 이유로 책을 산 적이 있다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광고 시간이 지루하여 책을 곁에 둔다거나, 미용실에서 책이 없으면 당황한다거나, 책방을 들르지 않고는 쇼핑센터를 지나칠 수 없다거나, 친구 선물로 주로 책을 준다거나, 침대 옆에 적어도 대여섯 권의 책을 놓아두시는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스스로를 진단해보는 것은 어떨지. (...이상은 내가 해당되는 사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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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실천법 : 부의 비밀 - ‘시크릿’으로 부를 끌어당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시크릿 실천
퍼거스 오코넬 지음, 임지은 옮김 / 길벗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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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권수가 팔렸다는 <시크릿>과 그 추종작(?)들은 싫다. (웬만하면 책에 대해 '싫다'는 말 안 하고 싶은데, 싫다.) 그저 '생생하게 꿈만 꿔도 꿈이 이루어진다'니, 그 말을 믿으라는 건 독자에 대한 기만이고 피땀 흘려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건, 그래도 이 책 제목에 '실천법'이라는 세 글자가 들어가 있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분명 다른 점은 있다. 일단 시크릿의 목적이 분명하다. '부', 즉 부자가 되는 것, 돈을 버는 것으로 목표를 한정했다. (부를 추구한다고 해서 속물이라고 비웃지 말자. 부모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지 않은 한, 우리 모두 하루 세 끼 먹기 위해 공부하고 돈 버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양한 실천 도구들이 등장한다. '내가 원하는 것 10가지 알아보기', '현 상태 파악하기', '마인드맵 그리기', '돈 버는 습관 만들기' 등 제목만 보아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읽으면서 하나하나 적어보고 따라하는 과정은 할만 했다. 또한 이 책을 미리 읽은 베타테스터들의 실천 사례가 소개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꿈이 있나,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궁극적인 메시지는 <시크릿>, 그리고 그 추종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부를 얻기 위한 세 단계(원하라, 행동하라, 믿어라)를 제시하는데, 저자 본인의 사례에 따르면 그가 원한 것은 '15억'원이었고,  이를 위해 1년 동안 '네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으며, 이를 간절히 믿었다고 한다. 15억은 몰라도, 단기간에 네 권의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그가 전업작가이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기가 가능한 일이었지 보통 사람한테는 아니다.  

차라리 그가 어떻게 해서 전업작가가 될 수 있었으며, 전업작가로서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며 글쓰기를 잘 하는 자신만의 비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썼다면 읽는이의 '자기계발'에 더욱 도움이 되고 감동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결국 이번에도 또 속았다.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시크릿'은 책 안에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진짜 비밀이라면 이렇게 대중에게 공개된 책에 적혀서 나올리도 없다. 그저 우직하게 파고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더 굳게 믿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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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환자들 - 정신분석을 낳은 150가지 사례 이야기
김서영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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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때 짝이 공부를 굉장히 잘 했다. 반에서 4,5등 정도였던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전교권에서 '놀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특목고, 외고 개념이 없었는데도 그 친구는 일찍부터 알고 민사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합격했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책도 많이 읽고 성격도 좋아서 친구인데도 배울 점이 많았다.   

언젠가 그 친구한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이 법조인이나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 친구는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때 나는 프로이트가 누군지, 정신분석이 뭐 하는 학문인지도 몰라서 '아, 그래? 대단하네...' 정도로 얼버무렸는데, 나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만으로 친구와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 나중에 들은 소식에 따르면 친구는 현재 정신분석가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할 친구지만 친구의 꿈을 응원했던 사람으로서 조금 아쉽다.)  

 

그 후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대해 주워듣는 것이 생겼고 자연히 프로이트가 어떤 학자인지 알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학자이기는 하지만, 남근과 거세, 항문 성애, 근친 상간 등 성(性)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 때문에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친구가 왜 프로이트를 좋아한 것인지 한동안 심각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환자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남근, 항문 성애, 근친상간 같은 내용이 그의 이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론이 나오기까지 프로이트가 실시한 수많은 정신분석과 자체적인 연구, 분석에 대해 모르면 겉만 핥고 속은 까보지도 않은 것과 같다.     

 

정신분석의 마지막 목표는 탓하지 않는 주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도전과 변화로 채우겠지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남을 돌볼 여유도 생깁니다. 내 삶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남근과 오이디푸스와 거세와 항문 성애는 이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도움을 구한 도구들입니다. 그것들은 중심이 아니라 덤입니다.(p.253) 

이 책은 저자가 프로이트 영어판 전집 스물네 권을 하나하나 읽으며 사례만을 모아 정리하고, 사례의 의미와 시사점, 정신분석학과의 연관 등을 꼼꼼하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신분석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는데, 저자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 같다. 나처럼 프로이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사례를 읽으며 편안하게 정신분석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고, 성경의 욥기 분석, 레오나르도 다빈치 분석 등 (학문적으로는 유명하겠지만) 그동안 몰랐던 프로이트의 자체적인 연구 성과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프로이트의 분석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그의 이론 중에 현실과 맞지 않는 것, 후대에 틀리다고 밝혀진 것조차도 소개하여 프로이트에 대한 생각을 넓혀준 점이 좋았다. 세상에 완전한 이론이 어디 있겠는가.   

 

멈추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타인과 갖는 관계를 우리는 상상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상상계 안에서 나는 가능한모든 변명과 이유를 모아 '나'라는 허상을 지키려 애씁니다. 그런 사람은 굉장히 바빠지지요. 틈이 생기는 족족 메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이미지가 좀 무너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정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균열이 생긴 불완전한 인생이지만 뭐 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은 여유가 있지요. 성급히 메우고 확인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과연 정답인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상관없습니다. 살면서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의해 인생이 휘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이 있던 곳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끝없이 불안해하고 끝없이 확인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 인생의 중심에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하기를 촉구합니다.(pp.210-1)

정신분석 사례에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도 일품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에 대한 거짓된 상, 즉 허상 또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허상과 실제 자신의 간극이 커지면 실수를 하거나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는 몸에 병이 나기도 하며, 꿈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다시말해 사람의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고통을 겪는 것인데, 고통이 있을 때 꿈으로 나타나는 무의식을 분석하고 내면 속에 침잠하는 학문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라는 것이다.     

 

내가 무심코 하는 이야기, 행동, 실수를 적어놓고 그것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내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방식대로 그 사건과 그 말과 그 행동과 그 실수가 내 과거의 어떤 순간과 닮았는지 기억해내고 그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당시의 내 모습이 보입니다. 과거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면 내 괴로움과 분노와 외로움이 보일 것입니다. ... 하지만 그 이상하고 불합리한 행동들은 괴로움을 참고 견디기 위해 내가 사용했던 전략들입니다.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혼자 외롭게 견디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내 이상한 모습을 두 팔로 감싸 안게 만듭니다. 괴로운 반복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p.251)

이렇게 내면을 알게 된 다음에야 인간은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 가령 프로이트는 복잡한 배경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으며, 이복형에 대한 동경과 사촌누나에 대한 사랑 등 보통 사람들보다도 다난한 마음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한 감정이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단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복잡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훗날 남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왜곡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모나리자라고 한다.)    

 

이 역사상의 천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통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 하지만 그 고통과 상처를 아름답게 승화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그 원인조차 몰라 번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다가 인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괴롭더라도 고통을 직시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다보면 언젠가는 아물고 새 살이 돋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중3 때 그 친구가 했던 말들 중에 유독 '프로이트를 존경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 것도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하나둘 어루만지게 될 줄 미리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친구를 동경하는 마음이 그 문장으로써 기억된 것일까? 책은 다 읽었지만 이 문제는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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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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