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과 잿빛의 세계 7
이리에 아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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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있어도 황홀해지는 작화와 환상적인 이야기 연출이 일품인 이리에 아키의 장편 만화 <란과 잿빛의 세계>가 7권으로 완결되었다. 지난 6권에서 미카도 오타로가 최후를 맞이하고 이에 상심한 란이 깊은 잠에 빠지면서 이대로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7권에 그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행복한 결말이니 마음 놓고 읽어보길 권한다. ​ 


<란과 잿빛의 세계>는 하이마치를 지키는 마법사 가족의 다사다난한 일상을 그린 만화다. 주인공 우루마 란은 특별한 운동화를 신으면 어른으로 변신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여자아이다. 어느 날 어른으로 변신한 란은 미카도 오타로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오타로는 란이 사실은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첫눈에 반한다. 한편 란의 유일한 학교 친구(이자 남자사람친구)인 히비 마코토는 란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란과 잿빛의 세계> 제7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우루마 일가에게 찾아온 새로운 미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오타로의 최후를 알게 된 란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란을 끔찍이 아끼는 오빠 진과 아버지 젠은 인간으로 치면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란이 홀로서기를 하는 게 불안하기만 한데, 어머니 시즈카는 란이 자신을 뛰어넘는 마법사 역대 최강의 마녀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에 흐뭇해하는 눈치다. ​ 


란이 홀로서기를 위해 수행을 떠나 있는 동안 오빠 진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그동안 서로 마음만 주고받았던 실의 마녀 산고와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란을 라이벌로 여기는 겟코인 니오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란과 니오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날이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나로서는 두 사람이 주인공인 스핀 오프 작품도 읽고 싶다. 부디 이리에 아키 작가님이 여기서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끝내지 말고 다음 이야기를 더 써주셨으면 좋겠다(그러자면 <북북서로 구름과 함께 가라> 연재에 차질이 생기려나. 두 작품 모두 너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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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혈맥 3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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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보기 드문 양심적인 만화가로 손꼽히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역작 <하늘의 혈맥> 제3권이 출간되었다. 처음에는 작가가 <건담 디 오리진>을 그렸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만화인데, 이제는 신간이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읽고 있다. 만화의 내용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만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한중일의 근대사와 관련된 지식이 너무나도 방대해서 공부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늘의 혈맥>을 읽고 있다. ​ 


<하늘의 혈맥> 제3권은 러일전쟁이 끝난 후 흉흉한 정세 속에서 시작된다. 일고를 졸업하고 제대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고대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아즈미 료는 어느 날 한밤중에 약혼녀 미도리가 기숙사로 찾아와 입장이 난처해진다. 미도리는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수상한 행색의 남자가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한다고. 아즈미는 미도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날 밤 악몽을 꾸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중국 유학생들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하늘의 혈맥> 제3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안중근의 등장이다. 아즈미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만주 철도회사 조사부의 일원으로 파견된다. 만주에 가기 전 고대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을 찾기 위해 한양에 머무르던 어느 날 밤, 아즈미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안중근과 대면하게 되고 둘은 금세 의기투합해 술까지 나누어 마신다. 이 만화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작가가 창작한 픽션이니 이 또한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허구의 사건이겠지만, 덕분에 안중근과 더불어 당시 몰락한 양반, 몰락한 지식인, 몰락한 기업인이 일본에 대해 어떤 감정과 태도를 가졌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 


이 밖에도 <하늘의 혈맥> 제3권에는 한국 근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무척 많이 나온다. 청일전쟁, 아관파천, 을미사변, 헤이그 밀사 파견, 고종 퇴위, 정미의병 등 굵직한 사건은 물론, 경복궁, 덕수궁(경운궁), 광화문, 숭례문(남대문)을 비롯한 당시 한양 도성 안의 풍경도 나온다. 아즈미와 미도리가 탑골 공원을 산책하며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올려다보는 장면과 아즈미가 해태상을 바라보며 "전쟁의 화마를 몸으로 진정시킨다는 이 신수의 영묘한 힘만 있었다면 이 나라나 백성이나 훨씬 평안하고 풍요로웠을 텐데."라고 읊조리는 장면도 있다. ​ 


전편에 이어 야스히코 요시카즈와 역사가 마츠모토 켄이치의 대담도 실려 있다.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 당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의 목적은 조선의 근대화가 아니라 식민지화였던 게 분명하다는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김옥균에 관해서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또 다른 역작 <왕도의 개>에 자세히 나온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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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둘이서 함께한 대만 여행
후카자와 나오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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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비혼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후카자와 나오코가 엄마와 둘이서 대만을 여행하며 겪은 일화들을 담은 책이다. 엄마 또는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서 실컷 웃으며 읽었다(후카자와 나오코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우리말 번역, 출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 


2년가량 혼자서 국내 여행을 해온 저자는 이제 슬슬 외국 여행을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 난처했다. 누구라도 같이 가면 좋겠는데 남자친구는 없고 친구들에게 부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사람이 바로 엄마! 여행지는 거리도 가깝고 기후도 따뜻한 대만으로 정했다. 일정은 5박 6일. 엄마의 요구 사항은 단 하나, 에스테틱을 받게 해줄 것! 저자는 엄마가 만족할 만한 에스테틱 업소를 찾아 예약하고 꼼꼼하게 여행 준비를 하느라 여행 출발일에 위통을 앓는 참사를 겪는다... 





비록 위통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으나, 대체로 즐겁고 신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여행 첫날 들른 야시장은 "활기라는 게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고, 딤섬, 소룡포, 과일 등 음식도 맛있었다. 엄마가 염원한 에스테틱도 만족스러웠다. 에스테틱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도 호기심이 동할 만큼 만족도가 높았다고. 대만의 지하철도 쾌적하고 편리하고, 대만이 자랑하는 타이페이 101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끝내줬다. 아주 가끔 실망스러운 경험도 했지만, 대만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대만 음식도 거의 다 맛있고 대만의 유적이나 관광지 또한 살면서 한 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 


이 책은 무엇보다 저자가 솔직해서 좋았다. 39세의 딸이 노령의 엄마와 생애 처음으로 단둘이 여행을 하게 되면 대체로 좋겠지만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을 터. 저자는 나이 든 엄마가 힘들지 않도록 여행 준비를 하면서 신경 쓴 점이나 여행하는 동안 마음고생한 점, 여행 후 반성한 점까지 가감 없이 공개한다. 성인이 된 후 노령의 부모와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저자의 심경에 깊이 공감할 터. 목적지가 대만이 아니어도 부모와 함께 여행을 할 계획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고 부모와의 여행에 대비(!) 하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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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맛 여행
나가라 료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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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 살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 나가라 료코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먹어본 맛있고 독특한 현지 음식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 


저자는 현재 남편과 단둘이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부부 모두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이나 사람들, 음식들이 세계를 넓혀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결코 풍족한 살림이 아닌데도 짬을 내어 '작은 여행'을 하곤 한다. 베를에서 저가 항공을 타면 1~2시간 안에 도착하는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 등의 도시를 여행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해본 적 없는 음식들을 먹어본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작은 여행들의 결과물이다. 





부부 모두 빵을 유난히 좋아해 어느 도시에 들르든 우선 빵부터 먹어본다. 파리에선 1,2위를 다투는 크레이프 집을 방문해 캐러멜 크림 크레이프와 고르곤졸라와 벌꿀 갈레트를 먹었는데 역시나 맛이 일품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선 '자동판매기 크로켓'이라는 걸 먹어봤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판매기 뒤에 있는 사람이 갓 튀긴 크로켓을 주는 원시적인 시스템인데, 어쨌거나 크로켓 맛은 좋았다. 


이 밖에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식욕 또한 샘솟게 하는 음식이 연이어 소개된다. ​ 저자 부부의 느긋하고 훈훈한 여행기와 정감 넘치는 일러스트 또한 이 책의 매력 요소. 음식은 물론 해당 국가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한 점도 돋보인다. 작은 여행을 즐기는 저자만의 여행 팁이 실려 있는 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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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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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갑질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요즘이다. 해고 등 보복이 두려워 고발하지 못하는 피해자, 자신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피해자까지 합치면 직장 갑질 피해자는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식 '직장 갑질'의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일까? <88만 원 세대>, <국가의 사기>,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경제학자 우석훈의 신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를 읽으며 그 답을 찾아보았다. ​ 


직장 갑질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주 성격 안 좋고 기본이 안 된 개인이고, 다른 하나는 집안에서는 선량한 남편, 아버지인 사람도 '개새끼'로 만드는 조직 구조다. 많은 경우, 결국은 구조의 문제다. 저자는 멀쩡한 사람도 나쁜 상사로 만드는 구조를 지닌 조직의 사례로 잘 알려진 항공사, 병원, 학교, 기업 등의 예를 소개한다. 정부와 언론은 이들 조직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인권이나 젠더 문제라고 인식하지만, 저자는 인권이나 젠더 문제라기보다는 비용의 문제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간호사들 간에 벌어지는 '태움' 문제의 경우, 병원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강보험에서 간호사 인건비에 대한 수가 기준인 '간호수가'를 높이면 크게 개선될 여지가 있다. 병원이 의사나 약품을 쥐어짤 수 없으니 간호사들만 쥐어짜서 벌어지는 현상이 태움이다. 항공사 승무원 문제도, 기업 내 비정규직 문제도 다르지 않다. ​ 


이 책은 단순히 문제 현상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나 실제 사례도 소개한다. 인상적이었던 글은 '자유한국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간 사람들'이라는 글이다.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 연봉이 높은데도 자유한국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자유한국당 내의 관료적, 수직적 조직 문화와 더불어민주당 내의 동지적, 수평적 조직 문화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밖에도 서울우유, 카카오, 여행박사 등 이미 직장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조직 또는 기업의 사례를 다수 소개한다. 이들 사례를 보면서 직장 갑질은 바꿀 수 없는 당연한 일이 아니며, 직장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결국 기업의 매출 증대 및 사회적 이미지 제고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저자는 서문에서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책 작업을 하면서 두 가지 문장을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하나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이다. 싫다고 떠난 사람이 많은 절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들이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하는 기업들의 목록이 떠오른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탈한국(탈조선) 열풍도 떠오른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문장도 떠올렸다. 저자는 지금 한국 경제가 이 모양으로 헤매는 것은 직장 민주주의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기업이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기업, 일찍 출근하고 싶은 기업, 신나게 일하고 싶은 기업, 평생 헌신하고 싶은 기업으로 바뀐다면 한국 경제가 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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