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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혈맥 3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2월
평점 :
일본에서 보기 드문 양심적인 만화가로 손꼽히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역작 <하늘의 혈맥> 제3권이 출간되었다. 처음에는 작가가 <건담 디 오리진>을 그렸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만화인데, 이제는 신간이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읽고 있다. 만화의 내용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만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한중일의 근대사와 관련된 지식이 너무나도 방대해서 공부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늘의 혈맥>을 읽고 있다.
<하늘의 혈맥> 제3권은 러일전쟁이 끝난 후 흉흉한 정세 속에서 시작된다. 일고를 졸업하고 제대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고대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아즈미 료는 어느 날 한밤중에 약혼녀 미도리가 기숙사로 찾아와 입장이 난처해진다. 미도리는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수상한 행색의 남자가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한다고. 아즈미는 미도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날 밤 악몽을 꾸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중국 유학생들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하늘의 혈맥> 제3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안중근의 등장이다. 아즈미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만주 철도회사 조사부의 일원으로 파견된다. 만주에 가기 전 고대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을 찾기 위해 한양에 머무르던 어느 날 밤, 아즈미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안중근과 대면하게 되고 둘은 금세 의기투합해 술까지 나누어 마신다. 이 만화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작가가 창작한 픽션이니 이 또한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허구의 사건이겠지만, 덕분에 안중근과 더불어 당시 몰락한 양반, 몰락한 지식인, 몰락한 기업인이 일본에 대해 어떤 감정과 태도를 가졌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하늘의 혈맥> 제3권에는 한국 근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무척 많이 나온다. 청일전쟁, 아관파천, 을미사변, 헤이그 밀사 파견, 고종 퇴위, 정미의병 등 굵직한 사건은 물론, 경복궁, 덕수궁(경운궁), 광화문, 숭례문(남대문)을 비롯한 당시 한양 도성 안의 풍경도 나온다. 아즈미와 미도리가 탑골 공원을 산책하며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올려다보는 장면과 아즈미가 해태상을 바라보며 "전쟁의 화마를 몸으로 진정시킨다는 이 신수의 영묘한 힘만 있었다면 이 나라나 백성이나 훨씬 평안하고 풍요로웠을 텐데."라고 읊조리는 장면도 있다.
전편에 이어 야스히코 요시카즈와 역사가 마츠모토 켄이치의 대담도 실려 있다.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 당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의 목적은 조선의 근대화가 아니라 식민지화였던 게 분명하다는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김옥균에 관해서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또 다른 역작 <왕도의 개>에 자세히 나온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