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일일 2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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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타이요의 신작 장편 만화 <동경일일>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일본의 출판 만화 업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다. 1권에서는 23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출판 만화 편집자 시오자와 카즈오가 자신이 담당했던 만화 잡지가 폐간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퇴직을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퇴직 당일, 자신의 퇴직 소식을 알리기 위해 그동안 담당했던 만화가를 찾아가 사죄 인사를 드리는 시오자와. 심지어 열심히 사모은 만화책도 헌책방에 팔아버릴 결심을 한다.


그러나 만화와 결별하려고 했던 시오자와의 결심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해 또 다른 출발로 이어진다. 2권에서는 시오자와의 새로운 출발 이후에 생긴 변화들이 그려진다. 1권에서 시오자와가 퇴직한 후 그의 후임을 맡았던 후배 편집자 하야시는 모두의 걱정과 불안이 무색하게 한 명의 편집자로서 담당한 업무를 잘 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상부의 결정에도 굴하지 않고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인다. 하야시는 자신의 선임인 시오자와에게 어떤 형태로든 은혜를 갚고 싶어 하지만, 후배의 보은에 대한 시오자와의 입장은 단호하다. 


1권에서 만화를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그리는 듯 보였던 신인 만화가 아오키의 신변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오키는 그동안 자신의 뛰어난 감각과 실력을 독자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만 늘어 놓았는데, 막상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고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자 당혹스러워 하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반짝 인기를 끌고 사라지는 예술가, 창작자들이 어느 업계, 어느 장르에나 많은데, 이런 이들에게 부족했던 것, 필요했던 것은 뭘까 생각해볼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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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일일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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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만화 편집자 시오자와 카즈오는 담당했던 만화 잡지가 폐간된 후 책임을 지고 퇴직을 결심한다. 시오자와는 그동안 알고 지낸 만화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열심히 사모은 만화책을 헌책방에 팔아 넘기며 자신의 만화 편집자 인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단단했던 시오자와의 결심은 조금씩 흔들린다. 빠른 속도로 저물어 가는 출판 만화 업계에 대한 절망을 만화에 대한 사랑, 작가들에 대한 책임감, 독자들에 대한 믿음만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 <동경일일>은 전술한 대로 일본의 출판 만화 업계의 사정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린다. 1권의 중심 인물은 출판 만화 업계에서 23년 이상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판매 부수 감소와 디지털 만화 업계의 부흥 같은 새로운 경향에 밀려 자신의 설 자리를 잃은 출판 만화 편집자 시오자와 카즈오다. 시오자와는 일본 쇼와 시대의 샐러리맨의 전형처럼 보이는 고지식하고 성실한 인상의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오십 대가 넘어서 직장에서 밀려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주변 인물들도 실제 업계 인물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듯 실감이 넘친다. 출판사를 퇴직한 시오자와가 제일 먼저 찾아가는 만화가 미야자키 초사쿠가 특히 재미있다. 많은 만화가들이 그저 만화가 좋아서 만화가를 꿈꿨고, 만화를 그리다 보니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가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고 엄정해서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혼을 버리거나 업계를 떠난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며, 만화 업계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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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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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이 봤는데, 실제로 형사였던 분이 쓴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 분은 그냥 형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양천서 최초의 마약수사팀장, 강남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 등 엄청난 타이틀을 줄줄이 가진 형사 중의 형사다. 남초 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이라서 인사상의 수혜를 입은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에는 탈옥수 신창원,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수사 등 그가 맡은 사건 하나하나가 굵직하다. 그의 이름은 바로 책 <형사 박미옥>의 저자 박미옥이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저자는 대학 갈 형편이 안 되니 취업을 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선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찰 공무원이 되었다. 교통순경으로 근무했던 저자는 1991년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로 '여자형사기동대'가 창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 합격했다. 이후 23세에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가 되었고, 소매치기부터 절도, 폭행, 마약, 살인, 성범죄 등 다양한 범죄 현장에서 활약했다. 1990년대에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던 방송 프로그램 <경찰청 사람들>에서 여형사가 주인공이었던 회차는 전부 저자의 경험담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30년 넘게 형사로 재직하며 경험한 일들을 담은 일종의 회고록이지만, 관계자만이 알고 있는 일종의 대외비를 떠벌리며 독자의 호응을 유도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류의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범인을 잡으려면 범인의 심리를 이해해야 하고,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려면 그를 닦달하거나 겁박하기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하고 공감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마음의 내상을 많이 입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의 추악한 면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심신 모두 지쳐서 경찰을 그만두고 스님이 될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형사 일을 계속한 건, 결국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일말의 선함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남초 직장에서의 생존법도 나온다. 남자 형사로부터 웬 '냄비(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은어)'가 왔느냐는 말을 듣고 바로 "주전자는 가만히 계시죠."라고 응수해 입을 다물게 했다거나, "보이시한 외모인데 시집은 가셨냐"라는 질문에 "보이시는 산업재해이고 시집은 제집(자기 집)이 있어서 안 갔다"라고 호방하게 대답했다는 에피소드가 특히 좋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해서 형사를 하기에 힘들다는 편견이 있지만, 잠복 수사를 할 때는 형사 티가 나는 남자 형사보다 형사 같지 않아 보이는 여자 형사가 유리한 면도 있다. 자칫하면 오늘 출동 나갔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경찰의 세계에선 남경과 여경의 구분이 없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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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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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아일랜드. 석탄 목재상인 빌 펄롱은 결코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도 없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비록 남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랐지만, 성장 과정 내내 주변 어른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일꾼을 몇 명이나 고용한 사업자가 되었고, 아내와의 사이는 원만하고 딸 다섯은 다들 착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펄롱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명확한 계기나 이유는 없다. 그저 남은 생을 계속 이대로 산다고 생각하면 착잡하고, 이대로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배부른 고민인 걸까.


그런 펄롱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에 간다. 주문받은 석탄을 배달하기 위한 수녀원 행이다. 전에도 몇 번이나 가본 적 있는 수녀원인 데다가, 수녀원 옆에 있는 여학교에는 펄롱의 두 딸이 다니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평소처럼 석탄을 배달하고 계산을 치른 후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 때문에 안 그래도 심란했던 펄롱의 마음이 심하게 요동친다. 나는 과연 좋은 사람일까. 나는 과연 좋은 아버지일까. 나는 과연 좋은 기독교인일까... 이런 고민들이 펄롱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만큼 강렬한 '사건'은, 놀랍게도 실화에 기반한다.


클레어 키건이 2021년에 발표한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결코 길지 않은 분량(114쪽)이지만 내용의 강도와 여파는 여느 장편 소설 못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클레어 키건의 전작인 <맡겨진 소녀>를 무척 좋아해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두 작품 모두 분량이 짧다는 것 외에 평범한 사람들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작품의 중심에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미혼모라는 이유로 가혹한 대우를 받는 어린 여성들이 있다. <맡겨진 소녀>가 학대 당하는 여성이 타인의 선행을 처음 경험하는 이야기라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 타인이 학대 당하는 여성에게 선행을 베풀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는 점이 다르고 또 닮았다.


배경이 크리스마스 직전이기도 해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진정한 기독교인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은 독실한 기독교(가톨릭)인이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약자를 위한 배려,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위한 희생 같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교리나 미덕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인물은 (펄롱 이외에) 별로 없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예수를 섬기면서 아버지 없는 아이들을 매매하고, 혼자서 아이를 낳은 성모를 모시면서 혼자서 아이를 낳은 여자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참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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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노부인이 던진 네 가지 인생 질문
테사 란다우 지음, 송경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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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인 '나'는 몇 년째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은 직장에 보내고 아이들은 등교 시키고, 자기도 출근해서 온종일 바쁘게 일하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쌓여 있는 집안일을 해치우고, 쓰러지듯 잠들면 또다시 어제와 같은 아침이 펼쳐지는 것이 그의 삶이다. 몸과 마음 모두 휴식을 간절히 원하지만 제대로 쉬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고, 친구들과 수다라도 한바탕 떨면 좋겠는데 다들 비슷하게 바빠서 모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내 인생인가. 이대로 계속 살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홀린 듯 숲으로 향하고 그곳 벤치에서 뜻밖의 노부인을 만난다.


독일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테사 란다우의 책 <숲속 노부인이 던진 네 가지 인생 질문>은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대학 졸업 후 여성지에서 일하던 저자는 결혼과 출산 후 일과 육아, 집안일을 병행하며 엄청난 스트레스와 번아웃에 시달렸고 결국 퇴사했다. 이후 상담 심리를 공부하며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 먹은 저자는 2016년 스트레스와 번아웃 컨설턴팅 회사를 창업했다. 2020년에 발표한 이 책은 과거의 저자처럼 번아웃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네 가지 질문을 담고 있다.


숲속 노부인이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은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자면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있다. 가령 네 가지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인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는 문장 자체는 단순하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퇴사나 이직, 전직 같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누구나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적어도 나는 아니다).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된들 그걸 실천하기도 힘들다. 가령 퇴사 후 창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 역시 비슷한 의문을 품고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가지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왠지 다르다. 질문을 가지기 전에는 주어진 일상을 의무적으로 꾸역꾸역 해내는 방식으로 살았다면, 질문을 가진 후에는 어떤 일을 하든 이 일을 내가 왜 하는지, 정말로 하고 싶은지 자문하니 선택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세 질문도 '나'의 삶을 바꾸다. 독자인 나의 생각도 조금씩 변했다. 이 책, 얇다고 얕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사유를 담고 있구나. 그래서 독일 대표 일간지 <슈피겔>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6개월 이상 머물렀구나.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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