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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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메이슨 커리가 쓴 <리추얼>은 내가 평소 '애정하며 애청하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내가 산 책' 코너에 일주일 전엔가 소개된 책이다. 동진님이 소개해주시는 책들은 대부분 좋지만 가끔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책들도 있어서 다 찾아 읽지는 못하는데 이 책은 소개를 듣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해서 바로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만큼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재미를 기대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알고 싶었다던가, 작가나 예술가의 삶을 흠모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저자 메이슨 커리가 이 책을 기획하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아침형 인간'인 그는 오전에는 작업을 잘 하지만 오후부터는 집중을 못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러던 2007년의 어느 날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관련된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는 그 결과물들을 혼자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의 습관'이라는 제목의 블로그에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은 <리추얼>이라는 제목의 멋진 책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렇게 쉽게 책 한 권을 뚝딱 완성하다니!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대부분(이라고 해도 일본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고 전부) 서양인인데, 우리나라 작가들을 대상으로 <리추얼> 한국 버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출판사 관계자 혹은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감히 제안드려 본다.

 

 

탄광 일은 중노동이지만 글쓰기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 작가라는 직업에는 엄청난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습니다. 지속적인 의심이 어떤 식으로든 사라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의사는 자기 일과 다투지 않지만, 훌륭한 작가는 자기 일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입니다. 대부분의 직업에는 시작과 중간 단계와 끝이 있지만, 글쓰기에는 시작밖에 없습니다. 기질적으로 우리 작가들은 그런 새로움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는 반복이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실제로 모든 작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일을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입니다. (필립 로스 인터뷰 중 p.124)

 

 

작가나 예술가들은 보통의 직업인들과 달리 원하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여가 시간도 마음껏 가지리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책에 소개된 사백 여 명의 작가, 예술가들 대부분은 일분 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극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며, 하루 중 휴식을 취하는 걸 제외하면 따로 여가 시간을 가지는 일은 드물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작업하는 이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침형 인간들이 많았다는 점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물론, 귄터 그라스, 마크 트웨인, 토마스 만, 토니 모리슨 같은 유명 작가들은 이른 아침부터 오전에 글을 썼다. 

 

 

아침에 쓰든 밤에 쓰든, 규칙적으로 쓰든 마음 내키는 대로 쓰든, 공통점은 글쓰기에 수반되는 기나긴 인고의 과정을 버텨냈다는 것. '모든 작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일을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이라는 필립 로스의 말대로 이들 모두는 머릿속을 종이 위에 게워내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는 데 지치지 않았다. 그 원천력은 타고난 천재성도 아니요, 번뜩이는 영감도 아니요, 일정한 일과를 묵묵히 감수해내는 '리추얼(ritual, 의식)'이었다니 믿어지는가? 나의 일상에는 인생을 바꿀 만한 어떤 리추얼이 있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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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보았다 - 분노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이얼 프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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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이유는 인간 본성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중, 고등학교 내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고자 했던 나는 원서 접수 막판에 정치외교학과가 있는 사회과학계열로 전공을 바꿨다. 신방과가 거품이라는 말을 듣고 그럴 바엔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바꾼 것이었지만(국제부 기자나 외국 관련 프로그램 PD가 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관을 따르기 잘했다 싶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신문방송학은커녕 방송 자체에 대한 흥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을 뿐 아니라, 정치학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인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가 등등에 대한 의문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늘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가 쓴 <양심을 보았다>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작가와 나의 관심사가 어쩌면 이렇게 일치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42년 독일 유제푸프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을 읽던 저자는 학살 명령을 받은 경찰대원들 중에 명령을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상사가 명령을 내리면 부하는 선택의 여지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당시 경찰대원들 역시 그러했으리라고 믿었는데, 생과 사가 오락가락하던 그 순간에 몇몇 대원들은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학살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반대로 나머지 대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 학살에 가담하기를 원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은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다수의 폭력을 거부하고 양심을 택한 네 명의 실제 인물들의 삶을 추적했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1938년 나치의 핍박을 피해 독일, 오스트리아부터 탈출한 유대인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경찰관 그뤼닝거다. 경찰관인 그는 상부로부터 이민자들을 받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입국시켰고, 그 대가로 비극적인 여생을 살았다. 그는 특별히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반골정신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국인 스위스를 끔찍하리 사랑하고 법과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사회에 반기를 들고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은 날 때부터 그렇게 규정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뤼닝거에 이어 등장하는 1990년대 초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간 전쟁 당시 몰래 크로아티아인들을 구한 세르비아인 야초,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한 지역에서 근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대원 아브네르,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유명 금융사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레일라 역시 남들보다 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이들이 남들과 달리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친밀성을 든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심리학자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을 예로 들며 '언제라도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태와 희생자에 대한 친밀성은 반비례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거나 본 사람은 감정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자신과 무관한 사람에 대해서는 선택에 대한 감정적 부담을 덜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 친밀성을 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관료제와 책임 소재의 분산,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든다. 다수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관료제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산시키며, 결과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위를 하게끔 조장한다. 관료제에 대한 충성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포함되는데, 남과 다른 소리를 내서 남들의 비난을 받는 것, 이로 인해 혼자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결국 양심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해악이다.

 

 

악으로부터 선을 지키기 위해 결집한 공동체가 결국에는 선을 무시하고 악을 조장한다니. 이런 아이러니를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턱밑까지 차오른 '아니오' 대신 '예'를 말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당히 '아니오'를 외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있으리라. 이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든든한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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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적 공간 -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
오근재 지음 / 민음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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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역 5번 출구로 나와 운현궁 맞은편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들러 점심 식권을 서둘러 예약하고 종묘시민공원까지 되돌아오는 동안 거의 모든 골목길에서 금은방과 마주친다. 금은방 끝자락에 자리한 간판 없는 허름한 식당들과 소주방, 좁은 골목 사이에서 커피 파는 아줌마들을 만나면 그곳이 바로 종묘시민공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혹여 노인복지센터에 늦게 도착해서 점심 식권을 못 받게 되더라도 이곳에서 파는 콩나물 국밥 정도라면 3500원의 용돈으로도 허기를 면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젊은 시절처럼 금은방을 드나들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시민공원과 금은방의 경계가 담으로 차단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들의 쉼터가 삶의 공간으로부터 아직까지는 격리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다. (p.204)



요즘 나이 쉰은 노인이 아니라지만, 현재 오십대 중반인 부모님이 문득 노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올해로 입사한 지 삼십 년째인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시고, 어머니는 갱년기 탓에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으시다. 이러다 몇 년 후면 환갑을 맞으실 테고, 나나 동생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영락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실 터. 내 기억 속에는 지금의 나처럼 젊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남아있는데, 지금 내 눈 앞에 계신 두 분은 그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 더 가깝다. 멀게만 느껴졌던 노인의 삶이 이제 우리집 거실까지 넘어들어온 것이다. 

 


<퇴적 공간>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노인 문제를 다뤘다. 노인 문제 하면 보통 고령화사회나 실버산업, 은퇴후 생활 등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책이 많은데, 이 책은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장을 지내며 오랫동안 학자, 교육자로서 살아온 저자의 이력을 살려 노인 문제를 인문, 철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읽은 여느 노인 관련 책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저자는 탑골공원을 비롯하여 종묘시민공원, 서울노인복지센터, 허리우드 극장, 인천 자유공원 등 노인들의 '아지트'에 직접 가봤다. 이제껏 강남역, 명동, 홍대 등 서울 시내 젊은이들의 공간을 다룬 책은 많이 보았지만, 노인들의 공간을 다룬 책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가 같은 노인으로서 보고 느낀 바를 여실히 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노인이 아닌 사람들이 노인 문제를 말하는 경우는 많지만 노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쩌면 이것 또한 노인들을 중심부에서 밀어내는 이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이제껏 무심코 지나쳤던 '퇴적 공간'을 알고 나니 태어나고 자란 이 도시 서울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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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이론과 좀비
대니얼 W. 드레즈너 지음, 유지연 옮김 / 어젠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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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자로서 보기에 정치외교학은 경제학, 사회학 등 타 사회과학 학문에 비해 다른 학문과 연계하거나 대중이 흥미를 가지게끔 어필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그야 정치외교학이 타 사회과학 학문과 비교할 때 방법론상 특징이 뚜렷하지 않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외교학과 가까운 사회학이 최근 인문학, 예술, 대중문화 등과 활발히 융합 내지는 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관심과 노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제정치이론과 좀비>이 나왔을 때 참 반가웠다. 국제정치학과 좀비라니. 이보다 신선한 조합이 또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핫'하게 떠오른 테마 중 하나인 좀비를 이용해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신보수주의, 관료정치 등 국제정치학 교과서의 주요 개념들을 소개하는 구성도 흥미로웠다. 미소 냉전이 끝나고, 테러와의 전쟁, 민족 갈등, 종교 분쟁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전은 사라지고 국지전만 남은 상황에서, 인권, 환경 등을 빼고 국제정치학계가 관심을 가질 만한 카드는 별로 남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냉전을 전제로 쓰인 국제정치학 교과서들이 사실상 폐기될 위기에 놓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으며, 국제정치학 주류인 현실주의가 상정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좀비라는 소재를 택한 저자의 발상이 참으로 놀랍다. 이런 게 진짜 크리에이티브가 아닐까.


아쉬운 점은 내가 국제정치학만 배웠지 좀비 영화는 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이 책 내용 절반은 아예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좀비를 모르니 어쩔 수 없이 국제정치학에 대한 설명 부분만 자세히 읽고 나머지는 그 내용을 좀비와 어떻게 연결하여 서술했는가를 확인하는 정도로만 읽었다. 시도만큼은 인상적이나 좀비를 모르거나 국제정치학을 모른다면 반쪽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물론 국제정치학과 좀비에 모두 해박한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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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수학 -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수와 기하
EBS 문명과 수학 제작팀 지음, 박형주 감수 / 민음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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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과목이었다. 과학만큼 싫지는 않았지만 결코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공부를 할 때도 문제의 답을 맞추기에 급급했지 풀이하는 과정이나 원리를 알아가는 기쁨은 느껴본 적이 없다. 결정적으로 싫어하게 된 계기는 수능시험. 아무리 싫어도 평소 모의고사 1등급을 꾸준히 유지했는데 수능에서 2등급 후반의 점수가 나왔다(게다가 '물수능'이라고 불릴 만큼 난이도가 낮아서 타격이 컸다). 그 때부터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하고도 경제수학, 경제통계 같은 과목은 피하거나 재수강을 하지 않을 만큼만 공부했다.



EBS 5부작 다큐멘터리 <문명과 수학> 제작팀이 만든 책 <문명과 수학>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학창시절에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까?'. 고대 이집트 문명부터 그리스 문명, 인도, 아랍을 거쳐 유럽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궤적을 따라 수학의 역사를 파헤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수학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저 시험 과목의 하나로, 지긋지긋한 문제 풀이의 대상으로 여겼던 수학이, 인류 문명의 정수가 담긴 핵심이자 위대한 발명품이었을 줄이야. 대학에서 과학사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과학에 흥미를 느꼈던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3500년 전 이집트 서기관이 썼던 파피루스 한 장을 근거로 이집트에서 수가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하고,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를 중심으로 수학의 체계가 만들어지고, 인도에서 이른바 '신의 숫자'라 불리는 0이 발명되며, 아랍에서 수학이 급격히 발전하고, 유럽에서 미적분이 발명되고, 현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 불리는 난제가 해결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나는 특히 유클리드가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스승이기도 했으며, 그가 쓴 <원론>이 미국 독립선언문과 스피노자의 <윤리학> 등에 영향을 끼치는 등 수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이제까지 수학과 정치, 윤리학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인 유클리드가 이집트 왕의 스승이었으며, 민주주의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립선언문>, 그리고 <윤리학>의 기초가 되었을 줄이야......!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으리라.


수학은 숱한 천재들의 에너지를 극한까지 소모시킨 후라야 어떤 세계를 열어 보이는 걸까. 하지만 그곳은 그만큼 엄정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세계일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창조 속으로 수렴되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문명 뒤에는 언제나 수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 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아직도 수학에는 남겨진 문제들이 존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p.163)


수학은 언제나 당대 최고 문명 국가에서 발전했고, 정치, 경제, 행정, 건축, 문화, 예술 등 다른 분야와 결합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런데 우리나라 수학의 현실은 어떤가. 입시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대학에서도 수학과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 2014년 8월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라는 큰 행사가 열릴 예정이지만 그 때까지 현실이 바뀔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 책의 모태가 된 방송 EBS 다큐멘터리 <문명과 수학>이 2012 한국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2012 대한수학회 특별공로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등 10개가 넘는 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수학이 지금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적어도 이 방송을 본 시청자, 책을 읽은 독자라면 교과서와 문제집 너머의 '진짜 수학'의 모습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취미 삼아 수학 문제집을 푼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한번 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문제를 못 맞혀 아쉬울 것도 없고, 점수가 안 나와 속상할 것도 없다. 게다가 이 간단한 수식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머리를 짜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 어려웠던 수학이 한결 쉬워보일 것 같다. 심지어는 따뜻하고 뭉클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지 않을까? <문명과 수학>. 아무래도 이 책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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