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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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인 은하는 암 수술 후 남미 여행을 마치고 방송국에 복귀한다. 복귀작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맡게 되어 몇 달 동안 열심히 만들지만, 예측하지 못한 사건 사고가 계속 일어나 방송 당일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방송작가인 누나를 둔 한가을은 휴학을 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경은 선배가 새로 오픈한 스튜디오에서 방송 촬영을 한다는 말을 듣고 동료와 함께 출연하기로 약속하지만, 촬영 당일 아무리 기다려도 동료가 나타나지 않아 애가 탄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은 총 7부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점은 김금희 작가가 2021년에 발표한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도 실린 <크리스마스에는>이다. <크리스마스에는>에는 음식 사진 한 장만 봐도 전국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파는 음식인지 맞히는 '맛집 알파고'가 등장하는데, 이 맛집 알파고가 <크리스마스 타일>에 실린 이야기 속 여러 대목에 등장한다. 이야기의 어느 대목에서 어떤 모습으로 맛집 알파고가 등장할지 기대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각각의 이야기들도 좋았다. <은하의 밤>은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져서 좋았고, <데이, 이브닝, 나이트>는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한 남자와 그를 곁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한 여자의 마음이 달콤 쌉싸름했다. <월계동 옥주>, <하바나 눈사람 클럽>은 연작소설로 묶지 않고 단독으로 읽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다. <첫눈으로>,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는 팬데믹 시대의 직장인들의 단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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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6
문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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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인 지원은 어느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는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인 동해의 한 어촌으로 향하는 지원의 기분은 그저 담담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지원은 아버지와 늘 서먹했다. 오래 전부터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고, 떠난 후로는 다시 찾지 않았다. 지원은 장례식장에서 옛 친구 주미와 만나지만 둘 사이에 더는 공통점이라곤 없다. 주미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는 지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고향에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호텔을 운영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문진영의 소설 <딩>은 총 5부로 구성된 연작 형태의 소설이다. 각 부의 주인공은 지원, 주미, 재인, 영식, 쑤언이며, 이들은 모두 가늘게 연결되어 있다. 1부에서 지원의 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온 어릴 적 친구로 등장하는 주미가 2부의 주인공이고, 2부에서 주미가 운영하는 호텔의 장기 투숙 손님으로 등장하는 재인이 3부의 주인공이고, 3부에서 재인이 단골로 드나드는 포장 마차의 사장으로 등장하는 영식이 4부의 주인공이고, 4부에서 영식과 한 집에 사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로 등장하는 쑤언이 5부의 주인공인 식이다. (이들은 또한 다른 이야기에도 짧게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인 '딩'은 서핑 용어로 '보트가 뭔가에 부딪혀서 난 상처'를 일컫는다고 한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건 재인이 주인공인 3부다. 하와이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여성인 재인은 남자친구 P가 서핑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바다가 어딘지 보러 왔다가 예정과 다르게 오래 머물게 된다. 생전에 P는 재인에게 '딩'의 뜻을 알려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하고 "(딩 난다는 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라고. 그러니 상처 입고 아프고 힘들더라도 계속 살라는 메시지가 나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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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를 기다리며 위픽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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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는 소꿉친구 우영이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우영이 산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는 정해는 우영이 바다에서 자살했을 리가 없다고 보고 우영이 죽은 섬으로 간다. 우영이 죽은 섬은 정해가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잠깐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영산교라는 토착 종교 조직이 섬 전체를 장악한 상태다. 우영이 죽은 이유가 영산교와 관련이 있음을 직감한 정해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영산교에 뛰어든다. 


조예은의 소설 <만조를 기다리며>는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의 한 권인 만큼 길이가 길지 않다(132쪽). 그러나 재미와 감동의 볼륨감은 장편소설 못지 않다. 우영이 태어나고 자란 섬 '미아도'를 장악한 '영산교'는 신자들에게 '재회, 소망, 사랑'을 강조한다. 교주인 최양희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헌신하면 그들이 다시 만나고 싶은 상대와 재회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영산교의 약속이다. 정해는 그 말을 믿지 않지만 믿는 척하면서 최양희의 지근거리로 다가가는 한편 우영의 죽음에 대해 조사한다. 


정해는 우영과의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누비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정해에게 우영은 단순한 소꿉친구가 아니다. 정해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곁을 지켜준 유일한 사람이며 말 그대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다. 정해는 그런 우영을 소중하고 특별한 친구로 생각했지만, 우영도 정해를 그렇게 생각했을까. 우영이 정해에게 해준 만큼 정해는 우영에게 뭔가를 해주었던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은 미안함과 죄책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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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발명 -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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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캐나다의 추리 소설 작가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읽는 중이다. 전부터 이 시리즈의 존재를 알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읽기 시작한 건, 이 시리즈가 원작인 드라마 <쓰리 파인즈>를 봤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아르망 가마슈에게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발견하는 사람이군요." 그 말이 좋고 그 말을 듣는 아르망 가마슈의 성품이 좋아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거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발견하는 사람. 


정혜윤 작가의 <삶의 발명>을 읽으면서 작가님도 그런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서문에서 작가님은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고백한다. 사고 직후 치아가 몇 개나 부러졌다고 하신 것을 보면 큰 사고였던 것 같다. 나라면 가해자를 욕하고 나한테 이런 사고가 일어나다니 하늘을 원망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사고 덕분에 겸손을 배웠다고, 삶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셔서 놀랐다. (그래도 작가님 더는 다치지 마시고 아프지 않으시길... ㅠㅠ)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책에는 라디오 PD인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연은 일제강점기 때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인 전범들의 이야기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조선인들을 포로감시원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은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통해 알고 있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병사로 전쟁에 끌려가느니 포로감시원으로 끌려가는 편이 대우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일본은 패망했고 일본군에 부역한 이들 중 다수는 전범으로 처형되고 나머지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자신이 한 일을 말할 수 없었다. 


이들은 '무지가 죄'라며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들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지은 일본인 전범들이나 친일파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책에 나오는 대구 지하철 사고, 씨랜드 화재 사고,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 사고, SPC 산재 사고의 유족들은 여전히 고통받는데,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잘만 살아간다. 가해자 측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사람들 또한 괴로워하고 자책하는데, 결정권자였던 사람들은 영화 <밀양>의 가해자처럼 스스로 용서하고 용서받았는지 아무런 반성이 없다. 


여기까지는 내가 늘 접하는 이야기이고 나도 늘 하는 생각인데, 저자는 이런 이야기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한다. 전범으로 지목되어 사형을 앞둔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살핀 이야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다른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유족들을 챙기는 이야기, 인간만큼 동물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발명'되는 한, 우리의 삶도 계속해서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전해주는 저자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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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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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주의 6두품 집안 설씨 가문의 열한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미은은 부모님과 손위 형제를 연달아 잃는 불운을 겪는다. 이 와중에 미은보다 한 살 많은 오빠 자은마저 세상을 떠나자 유일하게 남은 손위 형제인 호은이 미은에게 무시무시한 제안을 한다.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있던 자은을 대신해 미은이 자은인 척하고 당나라에 다녀오라는 것이다. 남동생이 형 행세를 하는 것이면 몰라도 여동생이 오빠 행세를 할 수 있을까. 미은은 망설였지만 호은의 태도가 강경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규방에 갇혀 사는 것보다 나아 보였다. 그래서 미은은 자은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예정보다 당나라에 오래 머물렀던 자은이 마침내 신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신라에 도착할 때까지 거친 사내들이 득시글득시글한 비좁은 배 안에서 남장여자인 걸 들키지 않고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인데, 신라에게 망한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이 자꾸만 자은에게 말을 건다. 이 와중에 배 안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남자와 동행이었던 여자들이 항해 중인 배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정세랑의 신작 장편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역사 추리 소설이다. 참고로 나는 역사 추리 소설을 소설 장르 중에 가장 좋아한다. 작가 후기에 언급된 김탁환 작가님의 '백탑파 시리즈'도 전부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시리즈도 거의 다 읽었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도 무척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 정세랑 작가가 지금처럼 SF, 판타지,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계속해서 한국의 코니 윌리스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안 되어도 괜찮아요. 작가님 마음대로 써주세요 ㅎㅎ).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총 10편으로 예정된 시리즈의 1편이다. 책에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네 개의 에피소드 모두 좋았지만, '이게 정세랑이다' 싶었던 에피소드는 세 번째 에피소드인 <보름의 노래>였다. 매년 여름 금성(경주의 옛 이름)에서 펼쳐지는 베 짜기 시합에 사용되는 베틀이 부서진다. 누군가가 고의로 베틀을 부순 걸 알게 된 자은은 범인 찾기에 나서는데, 용의선상에 오른 여성들의 사연이 하나같이 안타깝다.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고 있다거나, 남편이 폭력적이고 무능하다거나. 대체 이 피해자 같은 용의자들을 자은이 어떻게 할지 궁금했는데, 과연 완벽하게 -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고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해결되어 기뻤다. 그러니 안심하고 읽으시길. 


자은과 인곤의 티키타카도 좋았다. 자은은 여성이고 인곤은 남성이니 이성 간의 밀당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두 사람의 성별이나 젠더와 관계 없이 두 사람이 나누는 모든 대화가 재미있었다. 마치 셜록과 왓슨의 대화 같았달까. 겉보기에는 둘 다 남성이지만 자은은 사실 여성인데,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은이 우위에 있는 점도 좋았다. 여성인 자은은 정치와 역사에 해박하고, 남성인 인곤은 옷과 장신구, 가구 등에 조예가 깊은 점도 성별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트리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얼른 2편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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