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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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교수가 서울 연신내에 동네서점 '니은서점'을 차려서 잘 운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과정을 담은 책인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읽어볼 생각은 미처 못했다. 그러다 최근 노명우 교수의 책 <교양 고전 독서>를 읽다가 니은서점 이름이 나왔고, 이참에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전자책을 TTS 기능으로 듣다가 예상보다 재밌어서 여러 번 다시 들었다.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재미있고, 책에 묘사된 자영업의 현실이나 한국 사회의 세태 등은 동네서점에 관심 없는 사람도 공감하거나 새롭게 인식할 만한 점이 많아서 잔잔한 느낌의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가 갑자기 동네서점을 차린 건 개인적인 계기에서였다. 1년 몇 달 차이로 부모님 두 분의 상을 치른 저자는 장례를 치르고 남은 조의금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 서점을 떠올렸다. 저자의 부모님은 그 시절 어른들이 대부분 그랬듯 가난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자연히 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부모님이 열심히 산 덕분에 저자와 형제들은 원없이 교육을 받고 책도 넉넉히 읽었는데, 정작 이들의 자식 세대인 조카들은 입시 치르고 취업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저자는 자식 교육에 아낌이 없었던 부모님의 뜻을 받들고 조카들의 장래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네서점을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지금 한국에서 동네서점을 운영한다는 건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전망이 안 좋은 사업이다. 여기서 이 책의 장점이 드러나는데, 저자는 책에서 단순히 책이 안 팔린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소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이 안 팔리는 이유,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한다. 첫째는 사회학자로서, 둘째는 다수의 책을 출간한 저자로서, 셋째는 현업 동네서점 종사자로서. 특히 니은서점이 위치한 골목에 들고나는 가게가 많아도 부동산은 한결같이 존재하며 그 수가 많다는 사실을 통해 한국의 자영업의 현실을 일깨우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전망이 안 좋은 장사라고 해도 장사인 이상 매출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저자가 하고 있는 시도들도 흥미롭다. 가령 소음 문제로 서점에서 커피를 팔지 않는 대신 저자가 직접 내린 커피를 준다든가, 인터넷서점에서 제공하는 가격 할인이나 마일리지 적립, 굿즈 제공 같은 혜택은 없는 대신 북텐더인 저자가 맞춤형 책 추천을 해준다든가. 부디 오래오래 운영이 잘 되어서 한국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 되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나도 꼭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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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24-05-1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봤는데 아담하고 이뻐요~ 줌강의도 있어요^^

키치 2024-05-13 09:46   좋아요 1 | URL
가보셨군요! 저도 조만간 꼭 가서 책 한아름 사오고 싶네요.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모 저택 사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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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사는 재수생인 오자키 다카시는 대입 시험을 앞두고 혼자서 도쿄에 있는 한 호텔에 투숙한다.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을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부담감과 자신도 하루빨리 고교 동창들처럼 대학생이 되어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시험일을 기다리는 다카시의 눈에 생소한 사진 한 장이 들어온다. 그것은 지금의 호텔 자리에 있었으나 전소되어 사라졌다는 '가모 저택'의 사진이다. 


사진 옆에는 가모 저택의 주인이 전 육군 대장 가모 노리유키였고, 그가 1936년에 일어난 2.26 사건 때 자결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으나 대부분의 일본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근현대사에 무지한 다카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긴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본 이후로 다카시는 호텔에서 이상한 남자와 여러 번 마주치고, 급기야 한밤중에 큰 화재에 휘말린다.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을 때 바로 그 이상한 남자가 나타나 다카시를 구해주는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다카시가 눈을 뜬 곳은 다카시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대와 장소다. 과연 언제 어디일까.


<가모 저택 사건>은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1996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2.26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 소설이지만, 타임슬립이 등장하는 SF 소설이기도 해서 1997년 일본SF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최근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집 <안녕의 의식>을 읽고 미야베 미유키가 처음으로 SF 소설집을 선보였다고 리뷰에 썼는데 90년대에 이미 SF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큰 상까지 받았다니 공부가 부족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가가 자신의 역사관을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2.26사건은 극우 성향을 지닌 젊은 군 장교들이 천황(일왕) 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쿠데타로, 이 사건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는 폭주에 가까우리만큼 급속히 진행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후대의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작가는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정규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수험 공부 중인 다카시가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무관심한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일본의 근현대사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다. 타임슬립을 통해 2.26 사건 직후의 가모 저택으로 가게 된 다카시는 쿠데타로 인해 외부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저택 내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탐정 역할을 맡게 된다. 이는 추리소설의 한 장르인 '클로즈드 서클'의 설정에 딱 들어맞는다. 다카시는 갑자기 나타난 외부인이기 때문에 저택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대신 미래에서 온 인물인 만큼 사건 전후의 사정이나 사건 현장을 보존하는 방법, 범인을 추리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당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안다. 이런 식으로 평범하고 무식한 사람이 비과학적 현상(타임슬립)으로 인해 발생한 지식의 격차로 인해 비범하고 유식한 탐정이 되고 종국에는 사건 해결에 이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세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약자, 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다. 다카시는 자신을 구해준 히라타라는 남성으로부터 세상에는 자신처럼 타임슬립 능력을 지닌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소외 당하며 음울한 삶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이 능력을 숨기지 않고 용기를 내서 발휘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이 세상의 모든 약자, 소수자에게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느꼈다. 작가 자신을 포함한 예술가, 창작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라고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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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 우리가 시를 읽으며 나누는 마흔아홉 번의 대화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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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 연재된 총 백 편의 콘텐츠 중에서 마흔아홉 편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먼저 읽고 뒤늦게 오디오클립의 존재를 알게 되어 부랴부랴 앱을 다운로드하고 클립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새로운 콘텐츠가 업데이트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동안 쌓인 백 편의 콘텐츠를 귀로 즐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책으로 먼저 만난 마흔아홉 편의 시와 글 이외에 다른 시와 글을 오십일 편이나 더 만날 생각을 하니 흥분마저 된다.


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모르는 시와 시인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는 시와 시인이 많아서 놀랐다. 이육사, 김소월, 한용운, 김영랑, 백석, 정지용, 윤동주, 김기림, 이상 같은 시인들은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김민정, 유희경, 서효인, 김소연, 이성복, 유병록 같은 시인들은 시도 유명하지만 산문집도 유명하다. 진은영, 정끝별의 시도 반갑고, 윌리엄 B.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외국 시인의 시도 새롭다. 에드거 앨런 포는 공포 소설 작가로만 알았는데, 정식으로 출판된 첫 책이 시집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책에는 시와 함께 각각의 시에 대한 작가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박상순 시인의 <너 혼자>를 처음 읽었을 때 저자는 시 속의 '너'가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 속의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시는 같은데 시를 읽은 내가 변화하거나 성숙해서 시에 대한 인상이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시의 매력이자 장점이 아닌가 하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 감상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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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랑과 혁명 1~3 세트 - 전3권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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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의 '백탑파' 시리즈를 좋아한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대소설의 시대> 이후 신작 소식이 없어서 작가님 근황이 궁금했는데, 2023년 9월에 신작 장편 소설 <사랑과 혁명>이 나온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구입해 읽었다.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인 <사랑과 혁명>은 19세기 초 전라도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옥사인 정해박해를 배경으로 한다. '백탑파' 시리즈와는 공간적 배경도 다르고 등장 인물도 다르지만, 시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 조선 후기의 사상적 변화와 새로운 조류를 그린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느꼈다.


소설은 전라도 곡성 장선마을에 사는 젊은 농사꾼 들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관기였던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열 살 때부터 농사를 지은 들녘은 밤낮으로 농사 생각뿐인 천생 농사꾼이다. 그런 들녘이 마름의 횡포로 큰 빚을 지게 되고, 빚을 독촉하는 마름을 두들겨 팬 죄로 마을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도망자 신세가 된 들녘은 산에 사는 나무꾼 곡곰 밑에서 나무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 과정에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소녀 아가다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들녘은 아가다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아가다의 흔적을 좇다가, 옹기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옹기촌인 줄로만 알았던 덕실마을이 실은 관에서 금지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숨어 사는 교우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과 혁명> 1권은 정해박해가 일어나기 전 들녘과 아가다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2권은 정해박해 당시 곡성 교우촌 교인들이 당한 박해의 내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권은 농사 밖에 모르는 소년이었던 들녘이 사랑을 알게 되고 신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일종의 성장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져서 비교적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에 반해 2권은 투옥된 교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자세히, 지겨울 정도로 나와서 읽기가 힘든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당시 교인들이 실제로 당한 고문의 정도와 박해의 수위는 소설에 묘사된 것 이상이었을 테고, 작가는 그러한 역사의 폭력과 폐해를 현대의 독자들에게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신체적인 고통까지 당하면서도 신을 믿고 종교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정해박해 이후를 그린 3권을 읽으면서 약간의 답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당시 조선 사회에서 피지배 계층으로 산다는 건 목숨이 지배 계층에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짐승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만인이 평등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를 접한다면, 그러한 종교를 따르며 선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혹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2권에 묘사된 것처럼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 금세라도 배교할 것 같은데, 3권을 보니 이들에게 중요한 건 현생의 안락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현생 이후의 명예 또는 영생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영생은 물리적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한다. 소설에서 교인들은 숨어 지내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야기를 짓거나 노래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시대에 가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핍박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선에 사는 이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결국 성경과 찬송의 형태로 전해진 이야기의 힘 덕분임을 이들이 알기 때문이다.


3권에서 교인들은 정해박해로 인해 교인들의 수가 크게 줄고 교세가 많이 꺾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신부를 모셔 오려고 노력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2024년 현재 이들이 믿었던 종교(천주교)는 대한민국에서 공인된 종교로서 다수의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이들을 박해한 조선 정부는 망해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앞으로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보다 종교의 힘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야기의 힘이 더 강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역사 소설인 줄 알았고 중간에는 종교 소설로도 읽혔지만, 결국 현재 어떤 이야기를 믿고 따르는 지가 미래를 만든다는 교훈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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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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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끝자락에서 태어난 여자애였고, 고향을 떠나는 내 어깨에는 하인의 망토가 둘러져 있었다." (78쪽)  


서인도제국 출신의 십 대 소녀 루시는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백인 가족의 입주 보모(오페어)로 일하러 뉴욕에 간다. 처음에 루시는 세계 최대의 도시에서 백인 상류층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에 대해 기쁨과 설렘을 느낀다. 다행히 집 주인 가족은 친절하고 네 아이를 돌보는 일도 크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루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집 주인 가족의 배려가 위선으로 느껴지고, 루시 자신도 아직 어린데 다른 아이를 넷이나 돌봐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난다. 급기야 자식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부모와, 후손들을 피점령국 출신으로 태어나 점령국 국민들의 하인으로 살게 한 조상들을 원망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가 1990년에 발표한 소설 <루시>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성장소설이다. 저자는 주인공 루시와 마찬가지로 1949년 서인도제국의 영국 연방 내 독립국가인 앤티카 섬에서 태어났다.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해 입주 보모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후 비서, 모델, 클럽의 보조 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야간 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간 끝에 1976년 <뉴요커>에 칼럼니스트로 데뷔했고, 다수의 소설, 에세이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수로 자리잡고 2004년에는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소설은 총 148쪽으로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제국주의, 여성주의, 섹슈얼리티, 성장과 자립 등 묵직한 주제들이 잘 연결되어 있다. 십 대 청소년인 루시는 언제까지나 부모의 보호를 받는 아이이고 싶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며 괴로워한다. 같은 또래의 십대 청소년들처럼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지만 입주 보모로 남의 집에 기숙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 집 주인의 아내인 머라이어는 같은 여성으로서 루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잘해주려 하지만, 루시는 인종과 계급이 다른 머라이어의 친절을 기만 또는 위선으로 느낀다. 제국의 국민이 식민지 국민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야수들이 천사를 가장하고 천사들이 야수로 묘사되는 환경"(29쪽)과 다름 없다고 본다. 


“그녀가 아름다운 꽃을 보는 그곳에서 나는 비통함과 원한만을 본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달라질 수 없었다. 우리가 그 장면을 똑같이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의 맛은 다를 것이었다.” (29쪽)


다른 사람이 나를 고유한 존재로 보지 않고 출신이나 인종, 계급, 학벌, 성별 등으로 단정짓고 판단하는 것은 무척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루시는 아직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외국에 나가 외국인 보모로 일하며 사춘기까지 겪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문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루시의 국적과 피부색, 성별 등은 바꿀 수가 없고, 더 절망적이게도 이것들은 일종의 꼬리표로서 루시 자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힘들게 만들 거라는 점이다. 


다행히 루시는 계속해서 비뚤어지는 대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돈 벌기, 부지런히 공부하고 글쓰기가 그 방법이다. 이러한 루시(와 작가)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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