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저택 사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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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사는 재수생인 오자키 다카시는 대입 시험을 앞두고 혼자서 도쿄에 있는 한 호텔에 투숙한다.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을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부담감과 자신도 하루빨리 고교 동창들처럼 대학생이 되어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시험일을 기다리는 다카시의 눈에 생소한 사진 한 장이 들어온다. 그것은 지금의 호텔 자리에 있었으나 전소되어 사라졌다는 '가모 저택'의 사진이다. 


사진 옆에는 가모 저택의 주인이 전 육군 대장 가모 노리유키였고, 그가 1936년에 일어난 2.26 사건 때 자결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으나 대부분의 일본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근현대사에 무지한 다카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긴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본 이후로 다카시는 호텔에서 이상한 남자와 여러 번 마주치고, 급기야 한밤중에 큰 화재에 휘말린다.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을 때 바로 그 이상한 남자가 나타나 다카시를 구해주는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다카시가 눈을 뜬 곳은 다카시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대와 장소다. 과연 언제 어디일까.


<가모 저택 사건>은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1996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2.26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 소설이지만, 타임슬립이 등장하는 SF 소설이기도 해서 1997년 일본SF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최근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집 <안녕의 의식>을 읽고 미야베 미유키가 처음으로 SF 소설집을 선보였다고 리뷰에 썼는데 90년대에 이미 SF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큰 상까지 받았다니 공부가 부족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가가 자신의 역사관을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2.26사건은 극우 성향을 지닌 젊은 군 장교들이 천황(일왕) 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쿠데타로, 이 사건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는 폭주에 가까우리만큼 급속히 진행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후대의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작가는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정규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수험 공부 중인 다카시가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무관심한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일본의 근현대사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다. 타임슬립을 통해 2.26 사건 직후의 가모 저택으로 가게 된 다카시는 쿠데타로 인해 외부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저택 내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탐정 역할을 맡게 된다. 이는 추리소설의 한 장르인 '클로즈드 서클'의 설정에 딱 들어맞는다. 다카시는 갑자기 나타난 외부인이기 때문에 저택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대신 미래에서 온 인물인 만큼 사건 전후의 사정이나 사건 현장을 보존하는 방법, 범인을 추리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당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안다. 이런 식으로 평범하고 무식한 사람이 비과학적 현상(타임슬립)으로 인해 발생한 지식의 격차로 인해 비범하고 유식한 탐정이 되고 종국에는 사건 해결에 이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세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약자, 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다. 다카시는 자신을 구해준 히라타라는 남성으로부터 세상에는 자신처럼 타임슬립 능력을 지닌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소외 당하며 음울한 삶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이 능력을 숨기지 않고 용기를 내서 발휘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이 세상의 모든 약자, 소수자에게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느꼈다. 작가 자신을 포함한 예술가, 창작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라고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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