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오른쪽 가슴에 멍울이 만져진다 했는데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니 가벼운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일단은 조직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고 해서 집 근처 대학병원에 검사 신청을 해놓고 대기 중인데 기다리는 마음이 여간 불안하고 무거운 게 아니다. 


동생이 멍울 얘기를 꺼낸 게 최근이 아니고 올해 초쯤인데 그 때 나는 얼마 간의 목돈을 쥐어주며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만 건넸을 뿐 동생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도록 이끌지는 않았다. 동생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제 앞가림을 하고 있으니 불편하면 제가 알아서 하리라 여겼지, 동생이 지금 얼마나 불안하고 겁먹었는지, 그래서 병원에 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내가 가장 무서운 건 동생이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고, 동생이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게 붙잡을 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간절히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돈도.


하필이면 이때 엄마가 친척 동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때는 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적이 있었기에(아주 잠깐이었지만)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부러운 마음부터 들었는데, 그건 그저 그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과 안정된 수입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일 뿐, 공무원으로서 하는 일이나 앞으로 살게 될 인생에 대한 부러움은 아니다. 


다만 안정된 직업을 최고로 치는 엄마가 친척 동생의 소식을 전하며 은근히 부러움 & 남에게 자랑할 거리 하나 없는 자식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는 건 어쩔 수 없이 불편했다. 아니,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해서 죄송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니, 더는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 살지 않아서 후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이 나이 먹도로 돈도 못 모으고 남들한테 내세울 만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 내가 그저 미련하게 여겨졌을 뿐이라고 해야 하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좋고 내 삶에 대해서도 그럭저럭 만족한다. 다만 이 일이 정년이 보장되지 않고 안정된 수입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건 불만족스럽고, 어떻게든 그걸 손에 넣은 사람을 보면 엄청 부럽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부럽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건 비혼으로서 기혼인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 어쩌면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싫어하는 것도 아닌 브랜드의 백을 볼 때나,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남들이 잘생겼다고 하는 연예인을 볼 때의 감정과도. '저건 내 것이 아니야. 근데 저게 내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누가 거저 주면 가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내 걸 버리진 않을 거야.' 


누군가는 이걸 같잖은 오기나 아집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조차도 그렇게 여기는 마음이 일말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게 날 아주 죽여버리기 전까지는 붙잡고 있고 싶다. 어떻게 되나 - 내가 정말 끝까지 아무 것도 안 되는지 - 두고 보자고. 


아무튼 11월은 끝나가고 있고 다사다난했던 2018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빨리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건은 빠르게 흘렀으면 좋겠고, 동생과 보내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으면 좋겠다. 연말이라고 흥청망청 살지 말고 돈 아끼고 돈 모으고 동생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지.


후회할 짓은 하지 말고, 후회할 짓을 했으면 깔끔하게 반성한 다음 더는 후회하지 말자. 이 다짐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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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8-11-3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동생분 좋은 결과 있으시길 ㅜㅜ

키치 2018-11-30 22:35   좋아요 0 | URL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안한 불금 &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bookholic 2018-12-0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제 동생도 머리 시술을 해서 한참 걱정을 했었어요... 키치님의 동생분 증상도 정말 별것 아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키치 2018-12-01 09:31   좋아요 0 | URL
bookholic 님 동생분은 이제 괜찮으신가요. bookholic 님께서도 걱정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함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서니데이 2018-12-01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님, 동생분의 일로 걱정 많이 되실 것 같아요. 기다리는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키치 2018-12-01 09:3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함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이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