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1일차


도를 아십니까?

벌써 30여년 전에 일이다. 도를 아십니까 접근하는 사람을 따라 적이 있었다.

나를 보고 기운이 좋다고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자신과 함께 도를 공부하는 곳을 가보자고 권유를 했었다. 그때 정말 호기심에 따라 갔다.

알고보니 OO진리회라는 종교 단체였다.

사실 OO진리회는 증산교에서 파생된 종교단체라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대략 알고 있었다.

왜냐면 나의 할아버지가 증산교를 믿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증산교라는 종교는 19세기 말, 강증산(본명: 강일순 1871~1909)이라는 사람이 자칭 천제 즉,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천지공사라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신흥종교다.

특히 불교의 미륵사상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천지 공사와 후천개벽을 주장하는 믿음을 가졌.

나도 알지는 못하지만 강증산 교주가 죽은 증산교의 세력은 사분오열되었고, 거기서 한 종파가 OO진리회가 되었다고 이해를 했다.


지금도 정확하게 이들 종교들에 대한 이해는 없지만 당시 우리나라 대표 신흥 종교하면 항상 거론되는 종교 단체중 하나라고만 기억한다

특히 세상이 어지러운 말세에 미륵 부처가 출현하여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사상은 기독교의 종말론과 결을 같이 하는 사이비 신앙으로 대중은 오도하기에 좋았다.

도를 아느냐고 접근한 그들을 따라 나선 나는 그들의 성전에 들어갔다.

거기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당시 내 수중에 3만원이 있어서 그걸 줬다.

없냐고 하길래, 없다고 하니, 집에 연락해 더 가져 올 수 있냐고 했지만, 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없이 돈으로 라도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하면서 그들이 주례를 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들의 제사의 법도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

물론 당시 나는 이게 정통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 반감은 없었다.

끝까지 제사를 마치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나를 가입을 시키려는 회유 공작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 제사를 마치고, 그들이 말하는 도가 바로 이런 거냐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당황을 하며 도는 공부를 통해서 얻는  이라고 했다.

나는 제사가 공부냐  다시 물었다. 그들은 조상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나는 그들이 행하는 제사의 진지함을 알았지만 제사 그들이 하는 말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는 도가 아님을 있었다.

 

우리 동양권 문화의 사람들은 부터 항상 ’ 라는 것을 추구했다.

단순히 도를 아느냐를 넘어선 일상에서 도를 혹은 깊은 산속에서 찾았다.

현대 중국어에서 안다  표현을 지도(知道:쯔다오, 모른다 부지도(不知道:뿌쯔다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도를 안다, 도를 모른다  바로 알고 모르고의 기준이 것이다.

도는 일상에 함께 하고 있었다.

도는 또한 어떠한 정신적 경지를 의미하는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은 어느 한 분야의 정점에는 항상 도를 붙였다.

차를 마시는 다도를 비롯하여 검도, 유도, 공수도 같은 무술의 도를 무도라고 이름 지었다.

불교에서도 깨달음이 바로 도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는데 그래서 도를 깨우친다는 표현을 쓴다.

                                           

 

노자가 남긴 도덕경에는 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덕경의 첫 구절에는,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다 라고 한다. 그리고 이 구절은 사람들 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 도라는 경지 말하다  행위가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추상어와 동사가 함께 사용되어져 모호함과 확실함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니 도는 무엇이면서 무엇이 아닌 것이 되어져 버린다.

현대 양자 물리학의, 입자인가 파동인가의 논쟁처럼, 도는 한마디로 규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생활에서 이미 도라는 말을 없이 쓰이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제 도가 무엇인지 아무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럼에도 노자는 도를 말했다. 그가 말한 도는 무엇일까?

도대체 도는 무엇인가?

 

해마다 시기가 되면 겨울 바람 탓인지 자꾸 정진이라는 단어가 마음 속에 맴돈다.

작년 이 맘 때에는 영가현각 선사의 <증도가>를 가지고 100일 정진을 이어간 적이 있다.

해에도 뭔 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이 생각을 쉽게 떨쳐 버리질 못할 것 같다.

 

스님들이 겨울철에 선방에서 정진하는 기간을 동안거(冬安居)라고 한다.

겨울 내내 토굴이나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깨우침을 목표로 정진하는 것이다.

물론 정진한다고 반드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은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것 쯤은 안다. 그렇다고 어차피 얻지도 못할,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을지 모를 깨달음을 왜 얻으려고 하는가? 

그건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차가운 언 바람을 맞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아궁이가 불을 지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게는 아직 동안거가 필요한 가보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번 정진 하기로 결심했다.

오늘부터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여정을 하기로 했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물론 이 사유여정이 어디까지 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적당한 지도 한 장을 구했다. 이 지도는 내가 예전에 한번 사용해 봤던 지도이므로 이번에 한 번 더 본다면 눈에 더 익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바로 신심명(信心铭)이다.  


신심명은 선가의 어록이며 선종의 3조 승찬대사(僧瓚大師 ?~606) 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승찬대사, 문둥병에 걸려 2조 혜가를 찾아 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어떻게 도를 말 했을까?

신심명을 불쏘시게 삼아 앞으로 겨울, 내 안의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겠다.

 

도를 아십니까.

지금은 사이비 종교의 전도에 쓰이는 전매 특허 (?) 처럼 되어 버렸지만 정말 무엇일까?

도를 굳이 알아야 하나?

공기를 아십니까? 공기를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 것과 다르지 않는가?

밥을 아십니까? 똥을 아십니까?

길을 아십니까?  아니, 도를 아는 것과 다른 것들을 아는 것이 차이가 있나?  

도를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굳이 도를 알아야 할까?

옛 사람들이 추구했던 도가 이제는  이렇게 어렵게 되어 버렸을까?

 

: 신심명(信心铭: 믿을 신, 마음 심, 새길 명)믿음을 마음에 새긴다는 뜻.



By Dharma & Maheal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5-12-29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도(道)를 몰라(不知道)감히 안다(知道)고 할 때는 밍바이(明白)를 사용합니다. ㅎㅎ

100일 동안의 좋은 정진 되시길 기원합니다.

마힐 2025-12-30 19: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밍바이를 많이 써요. 쯔다오(知道) 하면 말의 뉘앙스가 전부를 다 아는 것 처럼 우쭐되는 마음과, 부쯔다오(不知道) 하면 뭔가를 강하게 부정하는 것 같아요. 둘 다 말이 좀 과격해져요.
그래서 가장 무난한 단어가 밍바이(明白)즉 우리 말의 단순한 뉘앙스로 알겠다고 답하는게 편해요. 좀 부드럽죠. ^^
동러마?(懂了吗)(이건 아주 좀 알밉죠? ㅎㅎ)
 

제목: 줄탁동시, 움직이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다. (仁者心動)- 육조단경 중에서



육조혜능(六祖慧能,638~713)이 오조홍인(五祖弘忍,601~674)으로 부터 의발과 법을 전수 받고 남방에서 숨어 살다가 어느덧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느낀 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광주의 법성사란 사찰에서 열반경 법회가 열렸는데 혜능은 그 법회에 청중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사찰에 세워진 깃발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을 보고 스님들 의견이 분분했다.

'저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야!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니 깃발이 움직이니 대중들은 설왕설래를 하며 논쟁을 하던 중,

그때 혜능이 홀연히 답한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그럼 뭔데?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仁者心動)' 라고 하자 청중은 놀랐다고 한다.(一衆駭然: 일중해연)

이때, 5조의 법을 이은 혜능이 세상 밖으로 자신의 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당시의 대중은 어떻게 혜능이 단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라는 대답에 심상치 않음을 알고 놀랐을까?

그냥 무시 할 수도 있는 답이 아닌가?

어떻게 대중들은 혜능의 대답에 주목하고 탄복 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혜능의 대답보다 그 당시 대중들이 답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이란 답을 아는 인식을 대중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혜능이 당시에 깨달음을 지녔다고 하지만 그 깨달음을 아는 대중의 안목 또한 대단한 게 아닌가 싶다.


쇼펜하우어(1788~1860)는 천재란 자신의 경지를 보통 일반 사람들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한 바가 있다.

즉 천재성을 깨달음으로 바꿔 표현한다면 진정한 각자(覺者)의 위대함은 누구 에게나 가지고 있지만 발현 되지 않은 불성(佛性)을 자각(自覺)하게 해주는데 있다.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은 각자(覺者:깨달은 이) 이여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천재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발현 시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 보통 사람들 가운데 한 두명 특출난 천재성을 발현한 사람, 혹은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면 이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숨겨진 천재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타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거나 깨달음의 경지를 단박에 알수 있다면 그건 이미 본인 내면에 본래 갖추고 있던 천재성이나 불성을 비추어 본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


이렇게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거의 완성형이 아닌가?

다만 아직 알이 깨지기 전 상태, 어미 새가 밖에서 한번 쪼아 주는 것이 부족한 상태.

그래서 선지식의 '할(喝)'과 '방(棒)'이라는 한방 쳐주는 방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석가모니 부처님과 큰스님을 비롯한 모든 선지식은 지금도 우리에게 줄 한방을 준비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알 껍질 안에서 좀 더 쪼아 놓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어쩌면 깨달음은 줄탁동시(啐啄同時) 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성장과 완성은 어쩌면 한 껍질을 벗겨 내는 가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


주: 줄탁동시 (啐:우는 소리 줄,啄: 쪼을 탁, 同:같을 동, 時 때 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새끼가 안에서 울고 동시에 어미 닭이 호응하여 밖에서 쪼아야 한다는 뜻.


By Dharma & Maheal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시우행 2025-12-27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일반대중의 안목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자고로 인물은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인가 봅니다.

마힐 2025-12-28 00:15   좋아요 0 | URL
네. 슈퍼 스타의 탄생은 대중의 호응이 신호탄이기도 하네요. 사람들의 호응이 곧 안목이었네요. 그러니 슈퍼 스타와 대중은 상호 공명을 하는 게 아닐까요? ㅎㅎ
호시우행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잉크냄새 2025-12-28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마야 놀자> 라는 영화에 나오는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라는 선문답이 육조혜능의 고사에 기인했군요. 그 내용과 연계된 줄탁동시 이야기 너무 적절한 비유입니다!!!
개인적으로 줄탁동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글귀중 하나입니다.

마힐 2025-12-28 22:08   좋아요 0 | URL
선종의 초조, 즉 1대조가 달마대사예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달마는 소림사에 머물며 선종을 세웠죠. 또한 중국 소림 무술의 시조가 되기도 하지요. 어쩌면 달마는 소림사에서 부터 아주 잘 놀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줄탁동시가 잉크냄새님이 사랑하는 글귀 중 하나라 하니 다른 사랑하는 글귀도 알고 싶어지네요. ^^
 
코드 붓다
엔조 도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I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만일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무척 흥미롭네요. 사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자각을 할 수가 없는 존재인데 소설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이사를 했다.

11년을 살았던 이곳 북경의 왕징 아파트에서 근처 외곽의 작은 아파트로 옮겨갔다.

, 이삿 짐을 꾸리던 중에 아주 오래 전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부모님의 이사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집은 참 이사를 많이 했다.

기억 속으로 울산으로 때가 내가 6살때인데  지금 까지 약 30년을 넘게 울산에서만  살았는데 그 시간 동안 이사를 간 게 20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을 했었는데 이제는 가물 가물 해진다.

 방어진부터 시작 해서 주로 동구를 왔다 갔다 했지만  구(區)를 넘나들어 중구(성안동) 에서도 산적이 있다.

너무 이사를 자주 해서 한번 씩 떠나 있을 때 마다 집이 바뀌어져 있다

군대 (대송동)과 휴가 나올 때(전하동 아파트)와 제대 할 때(서부동)가 다 틀리다.

중국 갔다 올 때도 마찬가지, 유학 하러 갈 때(서부동)와 들어오니 집(2층 상가 주택)이 틀리고, 결혼 하기 전(성안동)과 결혼 후(방어동) 들어오니 집이 이사를 했다.

전에는 이런 것들에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부모님 나이를 점점 드시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고 사시는가.

나도 한국에 없고 동생도 결혼 했고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데도 이사를 다니실까?

 

이사 한번 보면 알겠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거의 연례 행사 맞이 하듯이 자주 하시니 이삿짐 싸시는 데는 도통 하신 걸까?

이제는 제발 그만 이사를... 

오늘도 아버지와 통화하다가 올해 어쩌면 남창으로 이사 하실 수도 있다고 하길래

속에서 울컥 하고 올라 온다.

..  도대체 왜 ?

우리 집은 집이 없는 걸까? 왜 이사를 해야 하는 걸까? 오늘 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부모님께 원망스런 마음이 올라 오길래 잠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부모님 이사 하시는데 내가 도움 준 것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이삿 짐 싼 적이 없으니...

고생은 부모님만 하시는 거였다.

내가 불편 하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나는 거였다.

사실 사시는 부모님이 불편하시지 만 그걸 감수 하면서 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텐 데 나는 입장에서만 생각했었다.

 

마음속에 놓고 간절히 고한다.

이제는 부모님께서 안정 되고 편안하게 살게 해야지.

행복 하게 살게 하셔야지.

 

아예 이왕 이사 하시는 것 차라리 근처로 이사 있도록 마음 내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마음을 닦으시면서 여생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는 중국에서 비교적 이사 없이 오래 사는 편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중국에서 이사 횟수를 잠시 계산 해봤다.

중국에서  13년째 생활 하고 있는데 지금 사는 집에 오기까지 이사를 5번을 했었다.

회사 숙소 때문에 나만 매년 마다 계약 된 숙소를 옮기느라 이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사는 우리 가문의 숙명일까? 업 일까?

정말 업 이라면 녹이고 싶다. > 2012 년 9월 12일 일기 중에서....

 

이번에 내가 11년만에 이사를 하게 이유가 있다.

아들이 모두 한국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아내와 나,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줄여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13년 전, 부모님의 이사를 보며 '이사라는 업'을 끊겠다 던 나는 결국 한 곳에서 11년을 버텼으니, 나름의 정박(碇泊)에는 성공한 셈이다.

 

오늘 이사를 보니…. 

역시 이사는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힘든 일을 연래 행사로 하셨었다니…. 

이제 내가 당신들 부모님 나이가 되어가니 이제는 이사하게 되는 심정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어진다.

누군가 말하길 방황은 아름답다  했다 지만 부모님의 수많은 이사 또한 방황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방황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당신들의 현재의 힘든 삶을 담보로 미래에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자리를 찾기 위한 치열한 삶의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을 건사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해야 했던 고단한 방황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1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같다.

결국 부모님의 방황은 아름답진 않지만 아련해진다.

 

이사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기분도 우울한 점도 있고 무엇보다 새로 머물 곳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내 맘에 드는 곳을 찾는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즐비 하게 서 있지만 그 곳 어느 한 곳도 내가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게 참 신기하다.

 

오늘 이삿짐은 새집에 부려 놓았지만, 계약 해지를 앞두고 마지막 추억을 정리하러 다시 비어버린 옛 집으로 돌아왔다.

이사는 공간의 이동이다

이제 다시 이곳에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 본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이 공간과는 영영 이별이다.

좋은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이 공간은 이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공간을 다시 만나게 모르겠다

고마운 곳이었다.

이사, 몸은 떠나도 마음은 남는다.

이제 이상 나는 이사를 '업' 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그저 삶의 여정이었다.

13년전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제 이 일기는 앞으로 몇 년 뒤에 다시 읽히게 될 까?

 

 


By Dharma & Maheal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yamoo 2025-12-1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그러는데요...중국에서 이사 견적비는 어느정도 나오나요? 저기 위 사진의 차1대 분량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정도 되는지요?

마힐 2025-12-18 22:14   좋아요 2 | URL
사진으로 보는 차의 길이가 4.5미터 크기로 차량 크기와 이사 거리에 따라 가격이 책정 된답니다. 저희는 짐이 많아 1차로 다 못 실어서 3.8미터 짜리 1대 추가로 했어요. 거리가 5키로 남짓 되는 곳인데 짐꾼 3명 포함해서 모두 900위안화 (한화 약 18만원) 들었어요. 이사 업체마다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완전 포장 이사는 저희 가격의 4~5배는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의 물류 운송업체도 경쟁이 심해 예전에 비해 바가지 쓰는 일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ㅎㅎ

yamoo 2025-12-19 11:40   좋아요 1 | URL
와~~싸네요...근데 포장이사는 우리나라 보다 조금 싼 느낌?! 중국의 대도시는 이제 한국과 물가나 경제력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보입니다요..ㅎㅎ

잉크냄새 2025-12-18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것은 전설의 군대 악몽 <휴가 나왔더니 집이 없어졌어요> 시리즈군요.
또한 아들 피해 다닌 부모님을 끈질기게 추적한 추격자 스토리 아닙니꽈!!!!

마힐 2025-12-18 22: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ㅎㅎ 입대해서 휴가 나올 때 마다 집을 찾아 다녀야 했어요. 그래서 인지 어른이 된 지금은 집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대신 어릴 때 살았던 곳들이 오히려 더 기억이 남아 있네요.

2025-12-3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4일차: 정치의 시작과 끝, 왜 무의식인가?

 

사람들은 정치를 이성의 영역이며 공학적인 설계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법과 제도, 정책과 숫자, 명분과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현실은 늘 이 믿음을 배반해 왔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분노, 합리로는 납득 되지 않는 선택, 결과를 알면서도 늘 반복되는 충돌로 끝나고 만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는가.

나는 이유를 정치가 이성의 게임이기 전에, 집단 무의식의 반사 작용이라고 본다.

 

정치는 언제나 표면에서 싸운다. 그러나 진짜 충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 해결되지 않은 기억, 역사 속에서 봉합 되지 못한 상처들이 세대를 건너 축적된다.

동학 이후 땅에는 하나의 질문은 여전히 봉인 되지 못하고 남았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시대, 다른 이름을 달고 되돌아왔을 뿐이다.

 

해방 이후, 전쟁 이후, 산업화 이후, 민주화 이후에도 이 질문에 답을 명쾌하게 내 놓을 수 있는가?

그래서 한국 정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갈등’ 을 겪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다시 재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도, 국가에도 무의식은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억압 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한 번 실패한 해방은 다른 방식으로 재등장한다.

이때 이성은 뒤늦게 명분을 만들어 따라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많은 정치적 선택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보다 ‘왜 그런 감정에 반응 했는지’ 를 물어야 이해된다.

 

정치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서로를 이해 불가한 집단으로만 규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해할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서 “정치는 피곤하다.” “정치는 더럽다.”

그래서 “정치는 관심 두지 않겠다.” 고도 말한다.

현대 한국 정치는 불안한 무언가에 잠식되어 있다.

의식이 빠진 자리에 불안한 무의식이 채웠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원초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 감정에는 공포, 분노, 복수, 보상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감정들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언어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낳는다.

그래서 무의식을 다루지 않는 정치는 결국 균열과 파열의 형태로 돌아온다.

관계의 파괴는 물리적, 사회적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특정 진영을 옹호하려는 것도, 어떤 결론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단지 정치를 무의식으로 보지 않으면, 우리는 선택하는 시민이 아니라, 반응하는 군중으로 남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오래된 감정에 끌려 다닐 뿐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왜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지, 무엇이 날 흔들어 이끄는지에 대한 책임을 되찾는 일이다.

질문에 대한 책임을 있게 정치는 비로소 소음이 아닌 성찰의 언어가 된다.

 

우리는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무의식이었다.

우리가 무의식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미래는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 이미 겪은 과거의 업을 되 풀이 하게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진행 중이다.

그래서 지금, 정치는 내 진영이 옳다는 신념을 내세우기 전에, 나와 상대 진영의 신념 뒤에 감추어진 집단 무의식의 흐름을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작은 사유의 여정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지점이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이다.

우리의 무의식, 이제는 한번 쯤, 조용히 되돌아볼 때가 아닐까?


 

By Dharma & Maheal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시우행 2025-12-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정치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직업이 되면 이렇게 엉터리 사이비 집단으로 변하기 쉽지요. 그 철밥통이 과연 밥그릇을 포기할까요?ㅠㅠ

마힐 2025-12-16 00:07   좋아요 0 | URL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함께 생각해볼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잉크냄새 2025-12-1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뿐이겠습니까.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드리워진 그늘이겠지요. 주제가 무거워 댓글을 달지 못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이었습니다.

마힐 2025-12-18 22: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무거운 주제라 저도 쓰면서 멈칫 했어요. 많은 생각을 하셨다면, 그걸로 이 글의 역할은 충분히 다 한 것 같네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