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2일차

<至道無難/지도무난/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唯嫌揀擇/유혐간택/오직 가리고 택하는 마음만 꺼릴 뿐이요>

 

다시 신심명(信心铭)이다.

신심명은 3조 승찬대사(僧瓚大師 ?~606)   어록이다.

승찬대사는 2조 혜가로 부터 법을 이었고, 2조는 1대조 즉, 초조(初祖)달마대사로 부터 법을 이었다.

그래서 선종宗) 보리 달마대사를 시조(始祖) 삼는다. 보리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 온 사건은 역사적으로나 선 ()사상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한다.

달마가 서쪽에서 이유 자체가 하나의 화두가 되기 때문이다.

달마서래의(達磨西來意), 달마가 왜 서쪽에서 왔을까?


달마가 중국으로 넘어갈 인도에서 불교는 이미 점점 힌두교 같은 종교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었다.

현대 인도에서 불교도는 거의 자취를 찾아 없을 만큼 맥이 끊겼지만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불교는 아직도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붓다 생존 시 붓다는 불법의 미래에 대해 미리 예측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붓다 열반 500년은 상법시대로 불법은 번창하고, 깨닫는 이도 많다고 했다.

상법시대가 끝나고 500년은 중법시대로 깨닫는 이는 드물지만 불법은 외적으로 화려해 진다고 했다.

, 절을 짓고 승려들을 배출하며 경전을 연구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법시대가 500년이 지난 후 말법시대가 도래하는데 깨닫는 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오히려 불교는 종교화가 되어 화려해지고 깨달음과는 거리가 교조적으로 변한다고 전했다.

붓다 열반 1500년 이후는 완전한 말법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시기가 바로 인도에서 불교가 완전히 소멸되는 시기와 겹친다.


달마의 동쪽 행은 꺼져 가는 붓다의 마음 불을 이으려는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희미해진 불법의 불씨는 중국에서 선이란 형식으로 불교를 다시 태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선종의 시작이다.

마침 중국이란 나라의 풍토는 도교의 노장 사상(老莊思想) 민간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렸다.

노장 사상의 시조, 노자 역시 붓다와 더불어 축의 시대를 연 인류 사상사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미 노자에 의해 도가 무엇 인지를 중국인들은 어렴풋 이라도 파악하고 있었다.

불교의 (空) 노자(道) 도는 서로 다른 같지만 의미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인도 불교가 중국 도교와 만나서 만들어 것이 선불교라고도 주장한다.

 

이제 인도의 불교는 완전히 소멸되었지만 명맥은 선을 통해 다시 불씨를 살려냈다.

이제 불교는 붓다가 전한 말은 글로 남아 () 가 되었고, 붓다의 마음은 선( 되었다.  

선을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승찬스님은 분명 붓다의 마음 차원에서 신심명이란 어록을 남겨 놓았을 것이다.

스님이 깨닫고 보니 도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라고 먼저 선언한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지극한 도란 지극하고 간절한  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글자 그대로 도에 이르는(至:이를지) 것은 무난하다. 즉 어렵지 않다.

유혐, 즉 오직 꺼려야 한다. 무엇을 ?

간택, 즉 가리고 택하는 것을. 즉 분별(分别)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하는 마음, 즉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된다.

 

신심명의 구절은 <신심명> 전체를 털어 가장 핵심 구절이며 명확한 선언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어질 어록들은 모두 선언의 변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가장 강력한 임팩트 있는 첫 소절을 우린 신심명에서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지도무난, 유혐간택, 도에 이르는 것은 쉽다. 오직 분별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여기서 모순 점이 발생한다.

안의 간택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쉬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행을 하는 것인데...

분별을 꺼리라고 하는 것은, 분별을 싫어 하는 마음 자체가 분별이 아닌가?

그럼 이제부터, 무엇이 간택 하는 마음이며 무엇이 분별하는 마음 인지를 살펴봐야겠다.

 


: 至道: 이를 , 길 도: 도에 이르는 것, 즉 도를 얻고자 하는 것

無難: 없을 , 어려울 난: 무난하다, 즉 어렵지 않다.

唯嫌: 오직 , 꺼릴 혐: 오직 싫어한다. 즉 오직 꺼린다.

揀擇: 가릴 , 가릴 택: 간택 하는 것. 즉 가리고 택하는 (마음을)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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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3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힌두교에서 보존의 신인 비슈누는 10개의 아바타로 현신하여 구원하는데 그 아홉번째가 부처라고 합니다. 일원론적 다신교인 힌두교에서 신은 하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이라는 믿음이 강하니 가능한 이야기겠죠. 구태여 부처를 따로 믿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로 자연스레 불교를 흡수했다고 합니다.

마힐 2025-12-31 02:18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런 이유로 달마가 동쪽으로 가지 않았을 까요?
불법을 살리려면 부처가 신이 되길 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힌두교가 흡수한 것은 부처의 껍데기 형상일 뿐이죠.
결국 부처를 형상과 소리와 이름에서 찾지 말라는 경책이 아닐까요?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가 뭘까요? ^^
죽은 부처를 태워 산 부처를 먹여 살리고 있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