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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와이드판 27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9월
평점 :
3일차: 운명과 자유의지
나는 <이누야샤>의 일행처럼 나락의 분신을 쫓다가 또 다른 본체인 셋쇼마루를 만났다.
우리의 무의식에 투영된 나락과 셋쇼마루의 존재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날 끌고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생긴이래 이 질문만큼 오래된 질문이 또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난해하다. 어쩌면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답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인 스핑크스는 테베 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자는 모두 그 자리에서 잡아먹혔고, 테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도시는 서서히 마비되어 갔다.
그때 한 낯선 나그네가 테베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이 자란 코린토스의 왕이 친부가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진실을 묻기 위해 신탁을 찾아갔던 청년이었다. 그는 신탁이 전하는 소식에 놀랐다.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다.
그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운명을 피하려고 길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우연히 한 마차와 시비가 붙고, 분노에 휩싸인 그는 그 노인을 죽여 버린다. 그때까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인 노인이 바로 자신의 친부 라이어스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테베의 길목에서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내는 괴물 스핑크스를 만난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는 잠시 생각한 후 답한다.
“인간이다.”
스핑크스는 패배를 인정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사라진다.
테베는 해방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맞이했다.
도시를 구한 공로로 그는 테베의 왕이 되고, 전 왕의 미망인과 결혼한다.
그녀가 바로 자신의 친어머니라는 사실도 몰랐다.
훗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버린다.
결국 여기서 이상한 역설이 생긴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의 정답을 맞혔지만, 정작 자기 인생이라는 수수께끼 앞에서는 가장 무지했다.
운명을 피하려고 선택한 발걸음들이 도리어 운명을 완성하는 길이 되어 버렸다.
그가 푼 것은 스핑크스 문제 였지만 끝내 자기 삶의 문제는 풀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과 자유의지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곧 나락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
나락은 결핍이라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바깥을 더했지만, 그 모든 덧셈은 공허함이라는 운명을 향했다.
나락의 운명은 오이디푸스의 회피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셋쇼마루였다면 어떻게 운명을 대했을까?
셋쇼마루라면 운명을 피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운명 앞에서 집착을 내려놓는 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셋쇼마루의 방하착은 바로 삶의 태도이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자유의지는, 바로 그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의 운명은 문제지와 같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지, 어떤 시대를 통과하는지, 한국과 중국 어느 땅에서 몇 년을 살아왔는지, 이건 이미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하지만 그 문제지 위에 어떤 공식을 꺼내 쓰고, 어떤 순서로 풀고, 틀렸을 때 어떻게 다시적어 나가는지는 분명 나의 선택이다.
오늘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운명이라면, 짜장을 먹을지, 국밥을 먹을지, 아니면 아예 굶을지는 내 자유의지다. 결국 밥을 먹든 굶든 하루는 또 흘러가겠지만, 그 작은 선택들 안에서 나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인간”이라고 답했다.
인간은 태어나서는 기고, 성장하면 서고, 늙으면 다시 기대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에는 빠져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은 단지 네 발, 두 발, 세 발로 걷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을 바라보고 “이게 무엇이었는가?”라고 되묻는 존재라는 것이다.
내 운명을 사랑할 것인지, 저주할 것인지, 그냥 방치해 둘 것인지?
그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끝내지 않는 존재. 의미를 만드는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이다.
나락을 쫓다 어느새 오이디푸스와 마주했다.
내 안의 뒤틀린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운명은 무엇인가?”
운명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신이 혹은 우주 전체가 인류 전체를 향해 던져진 거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 문제 아래 여백에 각자 자기 답안을 써 내려가는 힘인지도 모른다.
정답이 애초에 정해져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답에 이르는 문장들은 서로 다르다.
나락을 쫓는다는 건, 늘 자신의 그림자를 밟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자의 끝에 서있다.
나락, 이제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By Dharma & Mahe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