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붓다
엔조 도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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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만일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무척 흥미롭네요. 사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자각을 할 수가 없는 존재인데 소설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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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를 했다.

11년을 살았던 이곳 북경의 왕징 아파트에서 근처 외곽의 작은 아파트로 옮겨갔다.

, 이삿 짐을 꾸리던 중에 아주 오래 전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부모님의 이사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집은 참 이사를 많이 했다.

기억 속으로 울산으로 때가 내가 6살때인데  지금 까지 약 30년을 넘게 울산에서만  살았는데 그 시간 동안 이사를 간 게 20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을 했었는데 이제는 가물 가물 해진다.

 방어진부터 시작 해서 주로 동구를 왔다 갔다 했지만  구(區)를 넘나들어 중구(성안동) 에서도 산적이 있다.

너무 이사를 자주 해서 한번 씩 떠나 있을 때 마다 집이 바뀌어져 있다

군대 (대송동)과 휴가 나올 때(전하동 아파트)와 제대 할 때(서부동)가 다 틀리다.

중국 갔다 올 때도 마찬가지, 유학 하러 갈 때(서부동)와 들어오니 집(2층 상가 주택)이 틀리고, 결혼 하기 전(성안동)과 결혼 후(방어동) 들어오니 집이 이사를 했다.

전에는 이런 것들에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부모님 나이를 점점 드시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고 사시는가.

나도 한국에 없고 동생도 결혼 했고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데도 이사를 다니실까?

 

이사 한번 보면 알겠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거의 연례 행사 맞이 하듯이 자주 하시니 이삿짐 싸시는 데는 도통 하신 걸까?

이제는 제발 그만 이사를... 

오늘도 아버지와 통화하다가 올해 어쩌면 남창으로 이사 하실 수도 있다고 하길래

속에서 울컥 하고 올라 온다.

..  도대체 왜 ?

우리 집은 집이 없는 걸까? 왜 이사를 해야 하는 걸까? 오늘 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부모님께 원망스런 마음이 올라 오길래 잠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부모님 이사 하시는데 내가 도움 준 것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이삿 짐 싼 적이 없으니...

고생은 부모님만 하시는 거였다.

내가 불편 하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나는 거였다.

사실 사시는 부모님이 불편하시지 만 그걸 감수 하면서 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텐 데 나는 입장에서만 생각했었다.

 

마음속에 놓고 간절히 고한다.

이제는 부모님께서 안정 되고 편안하게 살게 해야지.

행복 하게 살게 하셔야지.

 

아예 이왕 이사 하시는 것 차라리 근처로 이사 있도록 마음 내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마음을 닦으시면서 여생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는 중국에서 비교적 이사 없이 오래 사는 편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중국에서 이사 횟수를 잠시 계산 해봤다.

중국에서  13년째 생활 하고 있는데 지금 사는 집에 오기까지 이사를 5번을 했었다.

회사 숙소 때문에 나만 매년 마다 계약 된 숙소를 옮기느라 이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사는 우리 가문의 숙명일까? 업 일까?

정말 업 이라면 녹이고 싶다. > 2012 년 9월 12일 일기 중에서....

 

이번에 내가 11년만에 이사를 하게 이유가 있다.

아들이 모두 한국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아내와 나,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줄여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13년 전, 부모님의 이사를 보며 '이사라는 업'을 끊겠다 던 나는 결국 한 곳에서 11년을 버텼으니, 나름의 정박(碇泊)에는 성공한 셈이다.

 

오늘 이사를 보니…. 

역시 이사는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힘든 일을 연래 행사로 하셨었다니…. 

이제 내가 당신들 부모님 나이가 되어가니 이제는 이사하게 되는 심정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어진다.

누군가 말하길 방황은 아름답다  했다 지만 부모님의 수많은 이사 또한 방황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방황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당신들의 현재의 힘든 삶을 담보로 미래에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자리를 찾기 위한 치열한 삶의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을 건사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해야 했던 고단한 방황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1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같다.

결국 부모님의 방황은 아름답진 않지만 아련해진다.

 

이사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기분도 우울한 점도 있고 무엇보다 새로 머물 곳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내 맘에 드는 곳을 찾는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즐비 하게 서 있지만 그 곳 어느 한 곳도 내가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게 참 신기하다.

 

오늘 이삿짐은 새집에 부려 놓았지만, 계약 해지를 앞두고 마지막 추억을 정리하러 다시 비어버린 옛 집으로 돌아왔다.

이사는 공간의 이동이다

이제 다시 이곳에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 본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이 공간과는 영영 이별이다.

좋은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이 공간은 이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공간을 다시 만나게 모르겠다

고마운 곳이었다.

이사, 몸은 떠나도 마음은 남는다.

이제 이상 나는 이사를 '업' 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그저 삶의 여정이었다.

13년전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제 이 일기는 앞으로 몇 년 뒤에 다시 읽히게 될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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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1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그러는데요...중국에서 이사 견적비는 어느정도 나오나요? 저기 위 사진의 차1대 분량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정도 되는지요?

마힐 2025-12-18 22:14   좋아요 1 | URL
사진으로 보는 차의 길이가 4.5미터 크기로 차량 크기와 이사 거리에 따라 가격이 책정 된답니다. 저희는 짐이 많아 1차로 다 못 실어서 3.8미터 짜리 1대 추가로 했어요. 거리가 5키로 남짓 되는 곳인데 짐꾼 3명 포함해서 모두 900위안화 (한화 약 18만원) 들었어요. 이사 업체마다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완전 포장 이사는 저희 가격의 4~5배는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의 물류 운송업체도 경쟁이 심해 예전에 비해 바가지 쓰는 일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ㅎㅎ

yamoo 2025-12-19 11:40   좋아요 1 | URL
와~~싸네요...근데 포장이사는 우리나라 보다 조금 싼 느낌?! 중국의 대도시는 이제 한국과 물가나 경제력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보입니다요..ㅎㅎ

잉크냄새 2025-12-18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것은 전설의 군대 악몽 <휴가 나왔더니 집이 없어졌어요> 시리즈군요.
또한 아들 피해 다닌 부모님을 끈질기게 추적한 추격자 스토리 아닙니꽈!!!!

마힐 2025-12-18 22: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ㅎㅎ 입대해서 휴가 나올 때 마다 집을 찾아 다녀야 했어요. 그래서 인지 어른이 된 지금은 집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대신 어릴 때 살았던 곳들이 오히려 더 기억이 남아 있네요.
 

4일차: 정치의 시작과 끝, 왜 무의식인가?

 

사람들은 정치를 이성의 영역이며 공학적인 설계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법과 제도, 정책과 숫자, 명분과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현실은 늘 이 믿음을 배반해 왔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분노, 합리로는 납득 되지 않는 선택, 결과를 알면서도 늘 반복되는 충돌로 끝나고 만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는가.

나는 이유를 정치가 이성의 게임이기 전에, 집단 무의식의 반사 작용이라고 본다.

 

정치는 언제나 표면에서 싸운다. 그러나 진짜 충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 해결되지 않은 기억, 역사 속에서 봉합 되지 못한 상처들이 세대를 건너 축적된다.

동학 이후 땅에는 하나의 질문은 여전히 봉인 되지 못하고 남았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시대, 다른 이름을 달고 되돌아왔을 뿐이다.

 

해방 이후, 전쟁 이후, 산업화 이후, 민주화 이후에도 이 질문에 답을 명쾌하게 내 놓을 수 있는가?

그래서 한국 정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갈등’ 을 겪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다시 재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도, 국가에도 무의식은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억압 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한 번 실패한 해방은 다른 방식으로 재등장한다.

이때 이성은 뒤늦게 명분을 만들어 따라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많은 정치적 선택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보다 ‘왜 그런 감정에 반응 했는지’ 를 물어야 이해된다.

 

정치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서로를 이해 불가한 집단으로만 규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해할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서 “정치는 피곤하다.” “정치는 더럽다.”

그래서 “정치는 관심 두지 않겠다.” 고도 말한다.

현대 한국 정치는 불안한 무언가에 잠식되어 있다.

의식이 빠진 자리에 불안한 무의식이 채웠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원초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 감정에는 공포, 분노, 복수, 보상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감정들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언어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낳는다.

그래서 무의식을 다루지 않는 정치는 결국 균열과 파열의 형태로 돌아온다.

관계의 파괴는 물리적, 사회적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특정 진영을 옹호하려는 것도, 어떤 결론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단지 정치를 무의식으로 보지 않으면, 우리는 선택하는 시민이 아니라, 반응하는 군중으로 남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오래된 감정에 끌려 다닐 뿐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왜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지, 무엇이 날 흔들어 이끄는지에 대한 책임을 되찾는 일이다.

질문에 대한 책임을 있게 정치는 비로소 소음이 아닌 성찰의 언어가 된다.

 

우리는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무의식이었다.

우리가 무의식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미래는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 이미 겪은 과거의 업을 되 풀이 하게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진행 중이다.

그래서 지금, 정치는 내 진영이 옳다는 신념을 내세우기 전에, 나와 상대 진영의 신념 뒤에 감추어진 집단 무의식의 흐름을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작은 사유의 여정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지점이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이다.

우리의 무의식, 이제는 한번 쯤, 조용히 되돌아볼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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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정치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직업이 되면 이렇게 엉터리 사이비 집단으로 변하기 쉽지요. 그 철밥통이 과연 밥그릇을 포기할까요?ㅠㅠ

마힐 2025-12-16 00:07   좋아요 0 | URL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함께 생각해볼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잉크냄새 2025-12-1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뿐이겠습니까.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드리워진 그늘이겠지요. 주제가 무거워 댓글을 달지 못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이었습니다.

마힐 2025-12-18 22: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무거운 주제라 저도 쓰면서 멈칫 했어요. 많은 생각을 하셨다면, 그걸로 이 글의 역할은 충분히 다 한 것 같네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3일차: 밖을 부르는 무의식

 

한국 정치는 무의식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결론을 내지 못할 , 우리는 항상 밖(외세)을 불러왔다.

 

동학의 불길이 휩쓸 , 청과 일본이 들어왔고, 조선의 자주권은 외부의 힘 아래 흔들렸다. 그것은 단순한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결핍이 외부를 호출한 사건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그랬다. 명의 군대는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조선 내부질서가 이미 붕괴 국면에 들어간 순간에 그 진공을 메우기 위해 들어온 존재였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지금에 와서 “외세 개입”이라 말하지만, 그 분열이 벌어진 순간, 내부의 합의 불능이 외부의 힘을 초대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6·25전쟁. 그 전쟁은 남과 북만의 내전이 아니었다. 이 또한 내부의 균열이 외부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미·중·소를 넘어 연합군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내부의 불화가 외부세력의 개입을 불러온 사건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다. 우리의 무의식은 반복해서 같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싸움, 우리는 끝내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합의를 만들 수 없다.”

무력감이 바로 외부를 향한 부름이 시작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도, 민주화 시대에도, 한국 사회는 내부 갈등의 순간마다 외부의 기준을 들여다보았다.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중국과는 어떻게 상대 해야 할까?”,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이건 외교 정책적 질문이 아니다. 내부의 불안을 외부의 힘으로 잠재우려는 무의식의 호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외부를 침략자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외부를 구원자로 기대해왔다.

 

외세가 우리 진영의 “패배를 막아줄 존재”라는 기대와 외부가 우리의 “승리를 보증해줄 존재”라는 환상을 꿈꾼다.

모두는 내가 스스로 결론을 없다는 무의식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단지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국익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무의식의 흔적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내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레버리지를 끌어왔다.

레버리지는 때로는 군사적 힘이었고, 때로는 경제적 연대였고, 때로는 국제 여론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외부가 우리의 결정을 대신해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외부는 우리의 내부를 해석해주지 않는다.

외부를 부를수록 우리의 분열은 깊어진다.

밖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내부의 결단을 포기한 것이 된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누군가는 외부를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는 혼자 끝낼 수 없다.” 라는 무의식의 재현이다.

이것이 오늘의 외세 논쟁의 본질이다.

외부는 해답이 아니다. 외부는 우리 무의식적의 반복되는 역사의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일은 외부와의 전략적 관계 구축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을 직면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영향력이라는 깃발 아래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의지다.

그리고 의지는 외부의 기대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에 의해 더 이상 우리가 조종되지 않겠다는 자기결단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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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내전, 금기일까? 동력일까?

 

내전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와 다름 없다.

입에 올리는 순간,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위험 인물로 분류된다.

내전은 악이며, 절대 다시는 언급되어서는 안 될 재앙이라는 합의가 이미 굳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역사를 거칠게 훑어보면, 한 사회가 완전히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내부의 균열, 폭력적인 충돌, 그리고 질서의 붕괴다. 그것은 미화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현실을 재편하는 동력이었다.

 

일본을 보자.

세키가하라 전투는 내전이었다. 그 결과 도쿠가와 막부가 탄생했고, 일본은 260년의 안정된 통치 구조를 얻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세이난 전쟁이라는 내전이 있었다. 마지막 사무라이들이 몰락한 그 전쟁은 일본을 근대 국가로 밀어 올리는 결정적 계기였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 남북전쟁은 단순한 지역 갈등이 아니었다.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내전이었다. 그 전쟁을 통해 연방은 강화되었고, 노예제는 역사에서 퇴출되었다. 오늘날의 미국은 그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산물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내전을 이미 겪었다. 6.25는 외세가 개입한 국제전이었지만, 동시에 명백한 내전이었다. 그 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국가 중심의 질서, 산업화, 강력한 통제와 동원 체제가 그 후유증 속에서 만들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국 사회는 내전을 “끝난 사건”으로만 기억하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전은 끝났어도, 내전을 만들어낸 무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억눌린 채 다른 형태로 변주되며 살아남았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전쟁의 언어를 사용한다.

상대는 경쟁자가 아니라 적이다.

타협은 배신이고, 중간은 기회주의다.

정치는 협상이 아니라 섬멸전이 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는 여전히 “한 번 더 뒤집어야 끝난다”는 감각이 남아 있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내전의 기억이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전을 무조건 악으로만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전 자체가 아니라 내전을 직시하지 못하는 태도가 더 위험하다고 본다.

 

폭발은 억눌린 것의 언어다.

내전은 사회가 스스로를 속여온 대가다.

균열을 관리하지 못하면, 균열은 언젠가 폭력으로 폭발한다.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인의 자질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미뤄온 질문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

질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성장은 누구를 살렸고, 누구를 버렸는가?

 

질문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 정치는 계속 전쟁을 흉내 낼 것이다.

실제 총칼이 오가지 않을 , 심리적 내전은 이미 진행 중이다.

 

나는 글이 불편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불편하지 않다면, 무의식에 닿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전은 다시 오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내전이 남긴 질문에 답하지 않는 국가는 위험해진다.

우리는 지금, 총 없는 내전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것은 어떤 계엄이나 탄핵의 문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도록 누적되어 온 무의식의 분열이다.


피 흘리는 내전 과연 동력이었을까?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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