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6일차
<違順相爭 /위순상쟁/어긋나고 따름이 서로 다투면,
是爲心病/시위심병/ 이는 곧 마음의 병이 되나니>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고 했던 남악 회양(南岳懷讓, 677-744) 스님은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부처라고 했다.
좌선에만 집착하는 도일(道一)을 깨우치기 위해 스승 회양은 달구지를 칠 것인가, 소를 칠 것이냐고 물었다.
이 말에 도일은 ‘좌선이란 몸을 바르게 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님’ 을 깨달았다.
결국 도일은 마조(馬祖)라는 법명을 받고 선사(禪師)가 되었다.
이후 *마조(馬祖)라는 이름대로 자신의 말의 발굽 아래 수 많은 제자들을 짓 밟기 시작한다.
그에 발에 밟힌 제자들은 일어나 모두 자신만의 말을 타고 길을 달린다.
마조는 일갈(一喝)했다.
즉심즉불(卽心卽佛), 즉 마음이 바로 곧 부처다.
‘즉심즉불’ 한 마디에 그의 제자 법상(法常, 752~839)은 깨달음을 얻고 자신은 대매(大梅)산으로 들어가 숨어 버린다.
시간이 흘러 마조는 이제는 더 이상 ‘즉심즉불’ 이라고 하질 않는다.
‘비심비불(非心非佛)’, 즉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라고 한다.
이에 대중들은 혼란을 겪는다.
전에는 마음이 곧 부처라 했는데 왜 이제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하는가?
바로 여기서 또 하나의 화두가 생긴다.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부처인가?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던 마조는 왜 비심비불,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했는가?
앞의 구절 욕득현전(欲得現前), 즉 바로 눈 앞에 도가 나타나 보이길 바란다면
막존순역(莫存順逆) 따르고 거스리는 것에 걸리지 말라고 했다.
오늘은 여기에 다시 부연 설명이 추가된다.
위순상쟁(違順相爭) 어긋나고 따름이 서로 다툰다면,
시위심병(是爲心病) 이는 곧 마음의 병이 된다.
우리의 마음은 늘 다툼의 연속이다. 마음은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함에 늘 반응하여 따르거나 거스른다.
편안함을 추구하거나 , 꺼리는 마음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바로 다툼이며, 곧 마음은 병을 얻게 된다.
승찬 스님은 우리의 마음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즉 마음은 편향적이다. 하지만 그 편향된 마음에 고정되는 되는 것은 병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마조가 비심비불이라고 한 뜻은 바로 여기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다.
대매산으로 들어간 제자 법상을 시험하기 위해 마조는 자신의 또 다른 제자를 보내 법상을 찾아 물어보라고 전했다.
스승께서는 이제 ‘즉심즉불’이라 하지 않으시고 ‘비심비불’ 이라 하십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인가? 아니면 비심비불(非心非佛)인가?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거슬릴 것인가?
주:違順: 어길 위, 따를 순: 어기고 따름이
相爭: 서로 상, 다툴 쟁:서로 다툰다면
是爲: 바를 시, 할 위: 是는 중국어에서 ~이다 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하다, ~되다’의 뜻이 쓰였다.
心病:마음 심, 병 병: 마음의 병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6조 혜능에게서 이어지는 남악회양의 제자로 이미 혜능은 회양의 제자 중에 말 한마리가 나타나 천하를 짓 밟는 다고 예언한 바가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예언 대로 마조의 문하에서 임제를 비롯한 깨달은 이가 수 없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