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물고기
백진순 지음 / 모과나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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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일.

시기 나는 중국 상해에서 직장인 완구 회사를 다녔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악한 근무 조건의 공장에서 직원들과 밤 낮으로 일을 했다. 업무는 힘들었고 더구나 사스(SARS) 라는 전염병이 도시 전체를 눌러 앉힌 듯한 분위기 속에서 우울했다.

그러던 장국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난 만우절 농담으로 여겼다. 하지만 밤 늦게 퇴근 후 티비를 틀어보니 사실이었다.

 

2009년 6월 25일.

시기 나는 가정도 꾸렸고 어느 중국 생활에 적응이 되었지만 여전히 회사는 바빴다.

정신없이 바쁜 업무와 가정 생활 중에 돌연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마이클 잭슨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장국영과 마이클 잭슨의 죽음.

누군가에는 홍콩과 미국을 대표하는 연예인의 죽음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그들은 단순한 대중 스타의 죽음이 아니다.

그때까지 안의 중요한 축을 차지했던 시대의 감수성이란 기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친구들과 비디오로 홍콩 영화를 보면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그때 나는 홍콩말이 중국어인 알았다. 당시 영웅본색으로 인기를 끌었던 주윤발과 장국영 그리고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TV에는 CF 광고까지 나왔다.

당시 우리 세대에게 홍콩 스타는 지금 세계 문화의 중심인 한류 스타들과 비견될 정도 였다.

시절, 나는 장국영의 음반 레코드를 샀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를 꿈꾸었다. 침사추이의 화려한 네온 사인, 고층 건물 그리고 그 건물에 가려진 좁은 골목에서의 외로움 같은 것이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후 내가 대학 진학을 중문과로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초등 4학년인 나는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 카세트 테잎을 샀다. 테입이 늘어질 때 까지 듣고 또 들었다. 공책에다가 테잎 속에 들리는 가사를 그대로 적어 외워 부르고 마이클 잭슨의 춤을 흉내 내고 연습했다. 급기야 소풍 날, 울기 등대 잔디 밭에서 반 대표 장기자랑을 나가 빌리진을 부르고 춤을 췄다. 빌리진~ 낫 마 러버~ 열창하며 워크 걷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열광했고, 이후 전학 가기 전 까지 학교에서 내 별명은 마이클 잭슨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창피하고 우습지만, 나에게 장국영과 마이클 잭슨은 단순한 스타가 아닌 하나의 체험이었다. 80년대 팝의 황제와 90년대 홍콩의 스타는 대중들에게 열광의 대상이었지만 홍콩은 반환되었고 스캔들은 황제를 가만히두질 않았다.

결국 이들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어서 더욱 안타깝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슈퍼스타에서 어떻게 충격적인 생을 마감한 스타가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비참한 슈퍼스타 중의 한 명에 불과 하겠지만 나에게 그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나를 성장 시킨 문화적 스승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나의 마음 쪽을 차지 했던 기둥은 무너진 같았으나, 그들에게 느꼈던 설레임과 위안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들의 육신은 사라졌으나 그들의 남겨 놓은 유산은 아직 남겨진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그들에 대한 회상을 최근에 읽은 <거울 속의 물고기>이란 책을 통해서 유식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식(唯識)이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 통해 경험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는 감각 기관을 통해 얻는 경험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밤에 잠을 자며 꾸는 꿈은 현실은 아니지만 꿈을 꾸는 당사자인 나는 꿈속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낀다.

도망치며 공포를 느끼고, 슬프거나, 웃는 상황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꿈을 꾸는 당시엔 그것은 현실이지만 깨는 순간,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유식은 묻는다.

지금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는 무엇인가? 꿈과 무엇이 다른가?

 

장국영은 사춘기 시절의 중국이었고, 마이클은 내 유년시절 동경이었다. 

그들은 단순 외부 인물이 아니라 나의 식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린 존재와 다름 없었다.

유식에서는 이를 종자(種子)라고 부른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식의 깊은 층에 씨앗처럼 남기 때문이다.

유식에서는 이러한 기억과 경험의 씨앗이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 저장된 다고 본다.

멜로디 소절, 희미한 리듬과 춤 그리고 빛바랜 화면 속에 실루엣은 다시 선명하게 살아난다.

 

인간은 어쩌면 현재를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억과 업 그리고 감정이 만든 꿈 속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유식은 여기서 걸음 나간다.

꿈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마치 불교의 공이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 같은 허무함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은 뜻으로 말한다.

속의 눈물은 진짜였고 아픔도 진짜였다. 그리고 사랑조차도 진짜였다. 다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세상은 허무한 같으면서도 경험의 감각 만큼은 너무나 선명하다.

우리는 모두 자기 식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생생히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책의 저자 백진순님은 동국대에서 교수이며 책은 유식학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이라는 유식경전에 주석을 달은 신라 시대의 원측(圓測)스님은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지었다. 바로 해심밀경소에 대한 번역을 한 저자는 고리타분한 옛 경전에 갇혀 있던 내용들을 지금 시대의 숨결로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 준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래전 존재했던 누군가가 자신의 못다 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 혹은 영감을 불어 넣기 위해 후대 사람의 무뎌진 정신 속에 갑자기 끼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P. 141

 

경전 번역이라는 어려워 보이는 문헌 해석을 저자 특유의 발랄한 상상과 결합이 되어 천년 봉인 되었던 유식이라는 난해한 경전을 쉽게 여겨지도록 해준 것이다.

 

군복무 시절, 난 김포 공항 경찰대에서 경비 임무를 맡았다.

1996년 가을, 공항 출국장에서 나와 동료들은 스크럼을 짜고 공항에서 출국하는 인물의 안전을 위해 경호 라인에 섰다.

천천히 팔을 흔들며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경호를 서는 우리 모두에게 인사와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마이클 잭슨은 내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슈퍼스타를 꿈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만난 순간이 되었다.

그의 아주 선한 눈빛은 주위의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빛으로 바꾸는 것처럼 비현실적 이었다.

내가 있던 공항 출국장의 모든 장면은 무대 세트와 같았고 마치 슬로 비디오처럼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내 앞을 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이 내게는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듯한 감각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어쩌면 다른 속의 일부였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에서 주인공 스파이크가 이런 대사를 친다.

나는 어쩌면 깨어나지 못한 꿈을 보고 있는 같다.

 

1997년 홍콩은 중국에 반환 되었고, 홍콩의 감성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2003년 장국영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홍콩이란 낭만도 영면을 취한 것 같다.

1980년대와 1990년대 MTV 시대를 열고 팝의 황제가 되었던 마이클 잭슨은 2009년 영면을 취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여년이 지나 이제 세상은 SNS, 유튜브, 넷플릭스 그리고 AI 시대로 연결 되었다.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의 시초였던 장국영과  20세기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유산은 이제 한류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K-POP, K-드라마, 영화, 문화가 이제는 세계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을 보고 품었던 꿈은 이제 내가 아닌 우리나라가 꾸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끝없이 꿈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유식의 경전 속에 등장하는 거울 속에 비춰진 물고기가 아직도 헤엄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By Dharma & Maheal                                                

겁초의 사람은 희열만 먹고 살다가 누군가 우연히 땅에서 나는 지미를 찍어 먹게 되었다. 그러고는 맛있다고 서로 앞다투어 먹었다.... 중략... 그러자 몸의 광명이 사라지고 어둡고 미운 빛깔을 띠었으며, 신통을 잃어 날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중략.... 이런 업이 무르익어 남자.여자의 성기가 생겼났고, 마침내 사람이 사람을 낳게 되었다. - P48

그러니까 죽음의 심연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쨌든 의식이 일어나야 한다.
죽음이란 본래 몸이 죽는 것이라기보다는 의식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 P81

마치 찰나마다 직전의 유사한 세계 전체의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는 고독한 창조자이자, 찰나마다 명멸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무심히 지켜보는 고독한 관객과 같다고나 할까. - P164

내가 요즘 며칠 동안 받은 인상 중에서 가장 생생한 것은 베란다에 만개한 제라늄들이다. 얼마 전까지도 없었던 이 많은 잎사귀와 꽃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텅 빈 허공 속에서 튀어나와 점차 그 허공을 잠식해가고 있는 그것들은 혹시 허공 꽃과 같은 환영이 아닐까. - P222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이 현현해낸 것이라면, 죽음 또한 하나의 꿈이 아닐까. 꿈속에서 나와 또 다른 꿈속으로 들어가는 꿈 말이다. 이런 곳에서 죽음이 곧 깨어남이다. 그러니 아무도 죽지 않는다. 결국 모든 죽음은 죽지 않는 자의 죽음이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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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5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25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6-05-25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이클 잭슨은 아마 지금쯤 달을 걷고 있을 겁니다.

마힐 2026-05-26 09:42   좋아요 1 | URL
마이클 형님의 문워크는 당시엔 충격이었어요. 분명히 앞으로 걷는 것 같은데 뒤로 가는 거라 너무 신기했고 어릴 때 교실 복도에서 친구들과 따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실제 달에서는 방방 뛰게 되지 않을까요? ㅎㅎ
그렇다면 우리 마이클 형님은 새로운 안무를 달에서 짤 것 같네요. ^^

yamoo 2026-05-26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식...하니까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논쟁이 생각납니다. 특히 유식학파의 유식삼성설은 참으로 인상깊은 인신론의 하나로 봤습니다. 변계소집성이 의타기에 의해 원성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일반 인식론으로도 탁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마힐 님의 페이어페엇 유식의 이론을 볼 줄은 몰랐네요..ㅎㅎ

마힐 2026-05-26 09:36   좋아요 0 | URL
앗, 야무님 반갑습니다. ㅎㅎ
돌아보니 어린 시절 제가 붙잡았던 홍콩과 마이클은 변계소집의 세계였고, 시간이 흐르며 그것이 기억과 시대, 감정과 문화가 인연 따라 얽혀 만들어진 의타기의 세계였음을 조금씩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기한 건 국영이 형님과 마이클 형님을 잊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식 속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중관의 공도, 유식의 식도 서로 다른 이름 같지만 인간이 왜 이 세계를 이토록 생생히 경험하는가를 향해 가는 길 같아요.
야무님의 멋진 댓글 감사드립니다. ^^
오늘도 뜻하시는 모든 일 다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_()_

2026-06-08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십에 읽는 주역 - 팔자, 운세, 인생을 바꾸는 3,000년의 지혜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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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시절,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은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과도 같았다.

환율은 급속도로 오르고 회사는 줄줄이 문을 닫거나, 직원들은 해고가 되었다.

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가 있다.


<오락실>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장난이 아닌 최고 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시험을 망친 딸아이가 오락실에 갔는데 아빠를 것이다.

처음에 아이는 아빠가 회사에 가기 싫어서 하루 일탈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뉴스에 IMF시대에 실직한 아빠들이 갈 데가 없어 오락실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아빠는 아이 눈치만 보는 가사 속에서 당시의 힘겨워 했던 아빠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당시 대학생이었고 그런 시대상보다 노래 가사 중의 코믹한 부분.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재미있어, 항상 누군가를 보면서 놀릴 때 부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 오십이 넘어 대머리 아저씨 처지가 바로 내가 어찌 알았으랴.


<돌아보면 이 십대는 미숙했고 삼사십 대의 삶은 너무 치열했다. ..중략..

그렇게 젊은 날의 열병이 여러 겹의 나이테를 남기고 지나갔을 비로소 오십이라는 원숙기에 이른다..중략..

그런데 정작 황금기에 이른 오십 대가 잘못된 관점 때문에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략...

이유는 나이 오십에 이르면 이상 인력으로 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글머리에 중에서.


그렇다.  20대의 나는 철이 없었다. 곧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단 한번의 업무 경력 단절도 없이 26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일했다. 그 과정 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나름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심을 가졌었다.

실력인지 운인지는 없으나 해야 것과 이루어야 것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점차 세월이 수록 내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들로 인해 난관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점점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50을 겨우 넘겼는데, 지금껏 살아왔던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 나는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때마침 펼쳐든 <오십에 읽는 주역>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침서로 읽혀졌다.

순간, 바로 역경 속에 담긴 지혜를 한번 살펴 봐야할 시기인 것이다.

주역(周易) 원래 점술을 치고 운명을 예측하는 책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주역은 사주팔자,토정비결이나 점성술, 타로 카드처럼 우리의 운명을 점치는 미신 행위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주역은 단순히 운명을 점치는 행위를 넘어선 인생에 대한 처세와 통찰이 담겨 있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경(易經)이란 뜻으로 원래 주나라 이전 은나라 (기원전 1600년~ 기원전 1046년 경) 의 점인들이 정립한 점술 책이다.

은나라 사람들은 갑골문을 통해 하늘의 뜻을 계시라 여기고 그것이 맞는지를 확인하며 자료를 쌓아갔다.

자료는 1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를 이어가며 쌓였고 그것을 주나라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주역이라 불렀다고 한다. 결국 주역 즉 <<역경>>은 유교의 삼경 이라 불리는 <<시경>>, <<서경>>, <<역경>>의 하나가 될 만큼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과거 고대인들이 천년이 넘는 경험치를 축적한 막대한 데이터베이스 창고와도 같다고 있다.


저자 강기진님은 주역을 두고 사람이 책이 아닌 하늘이 내린 계시라고 보았다.

주역에서 뜻하는 내용은 인간의 삶은 하늘이 내린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 설파한다.

책의 특징을 꼽자면 저자는 책을 통해 주역의 64괘를 모두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역경의 핵심인 괘에 대한 설명과 오십대에 이른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괘를 선택해 설명한다.

저자는 그러한 의미에서 오십에 이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시기이며, 이때에 역경의 지혜를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이십 대에서 부터 사십 대까지 쌓아온 인생의 축적을 오십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관망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이십 대가 배우는 시기라면, 삼사십 대는 고군분투하며 자기 인생의 항로를 개척하는 시기다.

저자는 시기를 용이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삶에 비유했다.

오십 대에 이르러서야 용이 드디어 땅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여 날아다니는 시기로 보았다.

그래서 오십은 자신의 과거를 바로 세우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인생의 황금 시기의 시작으로 여겼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뉜다.

1장은 천명(天命) 대해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결국 이루고야 마는 힘이 바로 ()이라고 한다.

그러한 운은 사실 내가 가진 천명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바로 천명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죽을 때까지 탐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역의 64괘에 담겨 있으며, 역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공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주역의 64괘란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경험하는 64가지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 조언한다.


2장은 불변은 만변에 응한다는 의미를 다룬다.(不變應萬變불변응만변)

역경의 (易)이란 글자의 원형적 의미는 달빛의 비춤 이라고 하는데 달빛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처럼 역은 비춰지고 바꿔지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불변 변하지 않는 가치는 만변 변하는 가치를 조화롭게 응할 있음을 뜻한다.


3장은 처신을 다루는데 여기서 비인(匪人)이란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수양에 따라 성인, 군자, 대인, 소인으로 나뉘지만 여기에 비인이 하나 추가된다.

비인은 그대로 사람이 아닌 사람이다. 즉, 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짐승과도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사람인 것이다.

역경에선 아예 사람 아닌 사람과는 자체를 섞지 말라고 한다. 비인에게는 말을 섞어 봐야 오히려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 더불어 말을 나눌 사람인데 더불어 말을 나누지 않으면 사람을 잃게 되고, 더불어 말을 나눌 만하지 않은 사람인데 더불어 말을 섞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可与言而不与之言 失人 不可与言而与之言 失言>  논어 위공령 7장 1절


4장은 믿음에 대한 글이다. 오십에 이르러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그 믿음의 근원을 파헤친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이성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을 발전 시켜온 원동력은 이성이 아닌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지상정임을 밝힌다.

정(情)이야 말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지닌 천명이라는 것이다.

정은 보여줄 있어야 하고,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은 정이 살아 있어야 정겨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에게 가장 공감이 갔던 장은 3장의 비인에 대한 개념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회사와의 분쟁 때문일 수도 있는데 회사의 책임자가 져야 의무는 무시하고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언행을 겪으며 확실히 비인은 존재함을 이제서야 알게 것이다.

그리고 64라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가 흥미로웠다.

주역의 64괘를 이루는 단위를 효라 부르는데 그것은 음과 양이다.

이는 0과 1로 대치가 되는 디지털 시대의 6비트 2진수,  DNA를 이루는 유전자 정보 구조인 코돈 64와 어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주역이 의미를 상징한다면, 디지털은 계산을, 유전자는 생명을 상징한다.

어쩌면 64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우주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오십은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천명을 아는 시기라고 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임은 아닐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이제서야 시기가 것이다.

나를 안다는 것과 하늘이 내린 명을 안다는 것은 둘이 아니다. 서로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동안 겪어왔던 모든 경험들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게 시기가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도 조금 견디고 힘을 내보자.

과거에서 내게 보내는 메세지인 오락실의 마지막 가사처럼.


“승부의 세계는 오~ 너무너무 냉정해

부녀간도 소용없는 오락 한판

아빠 힘내요 아빠를 믿어요

아빠 곁엔 제가 있어요

아빨 이해할 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By Dharma & Maheal



이처럼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운이 좋다, 나쁘다‘ 보다는 ‘운이 강하다, 약하다‘는 표현이 보다 부합한다. - P21

운명의 작용에는 오만한 자의 무릎을 꺾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세상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이지 ‘좋지 않은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신비를 마주했을 때라야 오만해지기 쉬운 인간의 마음이 하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 P43

팔자가 꼬이는 것은 스스로 팔자로부터 도망치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 P68

내가 맺은 연들은 각기 하늘의 대리자이므로 내 뜻대로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낙천해야 하고, 또 낙천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무언가 나의 이해를 넘어선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다. - P96

결국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오늘은 물론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 - P155

변화는 필요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한 것이다. - P171

결국 어떤 일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가 속할 공동체를 잘 선택하는 일이 먼저임을 명심해야 한다. - P189

비인이 섞여 있는 상경의 세계에서도 의리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큰 상처를 입는 것이다. ... 중략..
결국 진실된 마음은 그리 쉽게 쏟는 것이 아니며, 의리 역시 그리 쉽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오십이 놓인 세계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하경의 세계여야 한다. 그래야 나잇값을 하는 것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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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9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0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 대반열반경, 초기불전 시리즈 003
각묵 엮음 / 초기불전연구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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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와의 노동 분쟁 속에서 하루하루 인간관계 속에 드러나는 밑바닥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말은 장황해지고, 뜻은 허깨비와 같고, 사람이 한 낱 도구에 지나지 않음에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100일 정진을 마쳤지만 겨우 마음 줄을 놓치지 않고 있음에 그나마 다행이라 느꼈다.

어제 알라딘 이웃님의 격려를 들었는데 아침에 문득 2년 전 오늘 남겼던 글이 다시 눈에 띄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글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제 관계의 정리가 아니라 안의 스승을 다시 찾아야 하는 시기가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승을 찾는다는 것은 오늘의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과거의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올려보기로 했다.


< 부처님 오신날이다.
올해(2024년)는 스승의 날과 친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에서는 스승 본뜻이  '스님' 에서 다고 했다.
스님이 부처가 되는것. 그것이야 말로 스승의 최고의 단계라고했다.
부처님은  그대로 최고의 스승이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삼계도사사생자부(三界導師四生慈父)' 라 부른다.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이며  존재하는 모든 차원 , 온 우주를 뜻한다.
도사(導師) 이끌어 주는 스승이시다.
사생(四生) 난생: 알로 낳고, 태생: 어미 태에서 낳고, 습생: 습한곳에서 낳고, 화생: 화하여 낳는 4가지 형태로 생명이 태어나는걸 말한다.
자부(慈父) 자비로운 어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불문에 삼계도사사생자부 석가모니불 이라 독송한다.
부처님은  우주  스승이시며, 모든 생명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것이다.


불교는 서원(誓願) 종교이기도 하다.

서원은 원을 세운다는 뜻이, 불자들은 법회 때마다 사홍서원, 네가지 큰 서원을 외운다.
중생을 건지오리다. 번뇌를 녹이오리다. 법문을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비록 지금은 번뇌 많은 중생일지라도, 끝내는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부처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구원이 인간의 목표라면, 불교에서의 목표는 부처를 이루는 데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부처님은 단지 위대한 성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이미 그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러 오셨다.

다만 스스로 닦지 않으면 절대 없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수행하라고 간곡히 권하셨다.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대반열반경>> 을 바탕으로, 부처님께서 열반(涅槃)  사바세계를 떠나기 전후의 행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책이다.

방대한 불경 가운데에서도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가장 인간적으로, 또 가장 장엄하게 드러내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오래전  한마음선원 본원 법회에서 있었던  장면을 다시 회상했다.


아마도 2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진주에서 올라오신  보살님이 법회중에 경전의 대목을 인용하며 큰스님께 질문을 드리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장면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것이 바로 대반열반경의  대목임을 알게 되었다.

장면은 이렇다.


부처님께서는 본래 무량겁,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머무르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라 , 마왕 파순이 나타나서 

이미 이룰 것을 루셨 제자들도 많이 길러 놓으셨으니 이제 그만 열반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여러번을 한다.
그때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파순의 제안을 고려해 보신다.

당시 부처님 곁에는 언제나 제자 아난이 있었다

아난은 부처님 제자들중 가장 총명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기억한 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당시에 아난이  순간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더라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지 말고  세상에  머물러 법을 설해 달라고 청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의 우리의 마음에 남았던 것은 ()함의 중요성이었다.


깨달은 이는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논어 술이편 '불분불계(不憤不啓) 처럼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는 것이.

물어야 답을 얻고, 찾아야 길을 만나며, 두드려야 문은 열린다.

그러나 순간 아난은 미처 청하지 못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차례 아난에게 당신이 남아있기를 요청하라고 힌트를 주셨다.

그러나 아난은 끝내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국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놓아버리시고 열반에 드시기로 결심하신다. (당시 아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부처님 열반  모이는 집회에 초청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스스로 놓아버리자 하늘과 땅이 진동한다.
놀란 아난이  까닭을 ,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한 설명 주시고서 그는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게 된다.


그날 법회에서 보살님은 떨리는 음성 속에 결의에 마음으로 말씀하셨다.

2600년  부처님 당시의 이와 같은 열반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세의 우리들, 즉 큰스님 직계 제자, 재가제자 모든 분들이 열심히 수행하여 아난의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하셨다.

말씀은 당시 모여 있던  모든 사부대중에게  울림을 주었다.

 역시 그날의 장면은 오래 잊지 못했다. 아니 잊지 못할 것이다.

책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 살려 주었다.

그리고 대반열방경 속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많은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불경 대개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 여시아문)' 라는 아난의 말로 시작한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여정 속에서도 여러 나라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법을 설하신다.
마가다 국왕이 왓지국을 어떻게 정벌 해야 하는지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는 장면도 나오고, 수행에  가르침과 공동체 질서에 관한 말씀도 이어진다.
가는곳 마다  사람들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을 올리며 법문을 청하고 듣는다.

그러는 가운데 파왕 마순의 열반에 대한 종용과 열반 암시 이어지지만, 부처님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 길을 향해 걸어 가신다.


열반에 들기 직전, 대장장이 아들 쭌다의 공양을 드신  부처님께서는 병환을 얻으신다.

그로 인해 쭌다가 스스로를 탓할까를 염려하여,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그 공양을 탄하며 마음의 을 덜어 주신다.

 장면에서는 스승의 자비가 무엇인지 강하게 닿는다.

당신 자신의 고통보다,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제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면에서 진정한 스승의 마음 보여주셨다.

아난을 대하는 모습 또한 깊은 울림을 준다.


열반에 이르게 직접적 계기와 관련해 아난의 책임을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부처님은 대중 앞에서 질책보다 격려를 택하신다. 또한 마지막 제자 수밧다를 받아들이시는 장면에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을 위해 문을 닫지 않으시는 자비를 보여 주신다.


마지막 유훈 역시 분명하셨다.

방일 (放逸: 나태, 게으름) 하지말고 정진하라.

부처님께서는 열반 직전까지 수행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신의 육신은 어떻게 화장(火葬)하고 사리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까지 세세히 일러 주신다.

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은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챙기셨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  유훈대로 장작에 불을 붙이려하지만 불이 붙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붙지 않는 불이  대제자 마하가섭이 도착하자마자 비로소 붙는 장면은 삼처전심(三處傳心:세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의 상징이 되었다.

스승의 법맥과 마음이 누구에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뛰어난 작가나 영화감독이 다면, 부처님 열반  상황 며칠 과정을 담담히 소설이나 영화로 그려낼  있지 않을까.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모습이 니라, 인간의 몸으로  땅에 걸어와 인간으로 고통을 겪고, 인간으로서 떠나간 마지막 여정을 말이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것인가?

번역자 각묵 스님의 서두 결국 질문으로 귀착된다.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의 찬란함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다시 죽음의 찬란함은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은 우리 또한 부처  있음 리기 위함이었, 부처님의 열반은 우리에게 윤회 사슬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  사건이다.

처음과 마지막, 탄생과 열반.
바탕은 몸이라고 큰스님은 설하셨다.
2600년전과 지금, 아득한 과거와 아주  미래도 한마음에 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귀의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각묵 스님의 질문이 다시금 안의 스승을 다시 놓치지 말라는 청함()으로 들린다.


By Dharma & Maheal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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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9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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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9 1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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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러셀 로버츠 지음, 이지연 옮김 / 세계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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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며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남기고, 따개비를 8년 연구하고, 지렁이를 29년 실험한 사람이다.

그는 진화론으로 서구 세계의 신념 체계를 뒤흔든 인물이며 오늘날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상징적 존재이다.

그런 다윈에게도 한때 아주 인간적인 질문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다윈은 노트에 결혼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적어 내려갔다.

외롭지 않을 , 대화 상대가 생길 것, 노후에 돌봄을 받을 수도 있을 것.

반대로 자유를 잃을 , 시간을 빼앗길 것, 책임이 늘어날 것.

지금의 눈으로 보면 웃음이 나올 만큼 계산적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는 “위대한 업적 위해서는 독신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윈은 결국 이렇게 적었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증명 끝.”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연구자 다윈을 무너뜨리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시켰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이처럼 답이 없는 문제 앞에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결혼을 것인가 것인가,

직장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지금의 삶을 유지할 것인가, 다른 길로 갈 것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서 망설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정답을 찾으려 든다.

하지만 러셀 로버츠는 말한다.

 

“답이 없는 문제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일 수 있다.”

그는 비용과 효용, 합리성과 계산의 언어로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최선의 반대말은 최악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 이다.

삶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하며 알아가는 여정이다.

인생은 당신이 쓰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권의 책이다."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지금 다시 읽으며 좀 더 깊게 각인 되어진다.

 

책을 지금 다시 꺼내 이유는 단순한 재독이 아니다.

요즘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조직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앞에 있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 기록을 남기지 말자는 권유, 의리와 감정의 언어가 오가는 가운데

나는 자꾸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선택은 옳은가?”

그러나 책을 다시 읽으며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러셀 로버츠는 말한다.

"어떤 결정이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드러낸다면 대가는 고려하지 말라.

손익이 아니라 자아감을 지키는 선택을 하라" 

 

삶은 객관식 문제가 아니고, 인생의 문제집에는 정답지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순간 한 걸음을 내딛으며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한다.

 

책은 안전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내려 놓음' 의 태도를 제안한다.

삶을 계산하지 .

통제하려 들지 .

대신 경험할 , 관계 맺을 것,

그리고 선택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

놀랍게도 ()의 방하착 (放下着)과 무척 닮았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다.

가다 막히고, 돌아가고, 순조로운 알았다가 다시 멈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멈춰 있는 시간조차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방황도 훗날 결국 소요유(逍遙遊) 였음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결심이 필요한 순간’ 앞에 서 있는가?

정답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by Dharma & Maheal 

어디 사느냐는 내가 무얼 경험하게 되느냐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어느 의사 결정이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보여준다면 대가는 고려하지 말라. 자아감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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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2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를 약간 변형해 보자면 ˝당신이 어디를 방황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마힐 2026-02-03 09:01   좋아요 1 | URL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시겠다면 저는 요, 어제는 돈까스와 치킨을 먹었고요. 중국 생활 9525일 째를 하고 있지만, 북경에서도, 서울에서도, 울산에서도 늘 집 없이 방황하고 있어요. 전 어떤 사람인가요? ㅎㅎ
 
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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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나는 누구인가? 영원한 질문을 만나다.

 

2년 전, 켄 윌버의 <무경계(No Boundary)> 를 만났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펼쳐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은, 동시에 분명히 달라 보였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신심명>과 <증도가>를 붙들고 보냈다.

그래서 이번에 그때 <무경계> 글을 다시 한번 <신심명>과 <증도가>로 확장하여 사유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몇 회에 걸쳐 사유가 이어질 것 같다.

글은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나누는 사유의 대화이기도 하다.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델포이 신전에 새겨졌다는 문장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들은 이는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질문은 동양의 선방에서도 거의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이 뭐꼬?(是甚麼: 시심마)”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작용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이끌고,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

 

서양의 철학적 물음과 동양의 선적 화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지만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질문에 대해 철학은 존재와 실존으로 답했고, 종교는 나와 신성의 관계로 설명했으며, 과학은 생명의 기원과 유전자로 접근해 왔다.

각자의 언어는 정교했고, 각자의 지도는 나름 완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을 설명하는   넘쳐 났지만 지금 길을 걷는   대한 대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구에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80억 개의 답이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년 전의 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공부의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답을 향해 나아가야 질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질문은 어딘가에 있는 정답을 찾기 위한 물음이라기보다 질문을 품고 있는 마음 자체를 비추는 질문에 가깝다.

<신심명>은 “군불견(君不見) , 그대 보이지 않는가” 라고 묻고,

<증도가>는 “수무념수무생(誰無念誰無生) , 누가 무념하고 무생하는가” 라고 되묻는다.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다시 돌려준다.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는 그 마음을 보라” 고 말할 뿐이다.

 

신심명이 말하는 ‘일종평회(一種平懷)’, 한 가지 평등한 마음이란 어쩌면 우리가 붙 고 있는 모든 ‘나는 ○○ 이다’라는 정의 이전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이다, 나는 아버지이다, 나는 부장이다, 나는 승객이다.

나는 이러하다, 저러하다' 등등. 상황과 조건에 따라  라는 정의는 달라진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며, 나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어느 회사의 부장이 되며, 나는 어느 식당의 손님이 되기도 한다. 아들, 아버지, 친구, 손님 이란 모습으로 나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어느 것이 진짜  인가?

그럼 손님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고 , 아버지이기도 한 나는 가짜  말인가?

아니다.

나는 고정되지 않았다.  라는 것은 고정 되지 않는다. 고정 될 수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이것’이라고 규정하고, ‘저것’과 구분하려 하는가?

경계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다음 사유는 윌버가 말한 “피부 경계선”이라는 개념을 통해 ‘나/나 아님’의 구조를 살펴보려 한다.

그가 말한 경계는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고, 또 어떻게 허물어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영원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 이제 출발한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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