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 대반열반경, 초기불전 시리즈 003
각묵 엮음 / 초기불전연구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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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와의 노동 분쟁 속에서 하루하루 인간관계 속에 드러나는 밑바닥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말은 장황해지고, 뜻은 허깨비와 같고, 사람이 한 낱 도구에 지나지 않음에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100일 정진을 마쳤지만 겨우 마음 줄을 놓치지 않고 있음에 그나마 다행이라 느꼈다.

어제 알라딘 이웃님의 격려를 들었는데 아침에 문득 2년 전 오늘 남겼던 글이 다시 눈에 띄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글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제 관계의 정리가 아니라 안의 스승을 다시 찾아야 하는 시기가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승을 찾는다는 것은 오늘의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과거의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올려보기로 했다.


< 부처님 오신날이다.
올해(2024년)는 스승의 날과 친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에서는 스승 본뜻이  '스님' 에서 다고 했다.
스님이 부처가 되는것. 그것이야 말로 스승의 최고의 단계라고했다.
부처님은  그대로 최고의 스승이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삼계도사사생자부(三界導師四生慈父)' 라 부른다.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이며  존재하는 모든 차원 , 온 우주를 뜻한다.
도사(導師) 이끌어 주는 스승이시다.
사생(四生) 난생: 알로 낳고, 태생: 어미 태에서 낳고, 습생: 습한곳에서 낳고, 화생: 화하여 낳는 4가지 형태로 생명이 태어나는걸 말한다.
자부(慈父) 자비로운 어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불문에 삼계도사사생자부 석가모니불 이라 독송한다.
부처님은  우주  스승이시며, 모든 생명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것이다.


불교는 서원(誓願) 종교이기도 하다.

서원은 원을 세운다는 뜻이, 불자들은 법회 때마다 사홍서원, 네가지 큰 서원을 외운다.
중생을 건지오리다. 번뇌를 녹이오리다. 법문을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비록 지금은 번뇌 많은 중생일지라도, 끝내는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부처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구원이 인간의 목표라면, 불교에서의 목표는 부처를 이루는 데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부처님은 단지 위대한 성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이미 그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러 오셨다.

다만 스스로 닦지 않으면 절대 없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수행하라고 간곡히 권하셨다.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대반열반경>> 을 바탕으로, 부처님께서 열반(涅槃)  사바세계를 떠나기 전후의 행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책이다.

방대한 불경 가운데에서도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가장 인간적으로, 또 가장 장엄하게 드러내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오래전  한마음선원 본원 법회에서 있었던  장면을 다시 회상했다.


아마도 2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진주에서 올라오신  보살님이 법회중에 경전의 대목을 인용하며 큰스님께 질문을 드리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장면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것이 바로 대반열반경의  대목임을 알게 되었다.

장면은 이렇다.


부처님께서는 본래 무량겁,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머무르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라 , 마왕 파순이 나타나서 

이미 이룰 것을 루셨 제자들도 많이 길러 놓으셨으니 이제 그만 열반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여러번을 한다.
그때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파순의 제안을 고려해 보신다.

당시 부처님 곁에는 언제나 제자 아난이 있었다

아난은 부처님 제자들중 가장 총명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기억한 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당시에 아난이  순간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더라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지 말고  세상에  머물러 법을 설해 달라고 청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의 우리의 마음에 남았던 것은 ()함의 중요성이었다.


깨달은 이는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논어 술이편 '불분불계(不憤不啓) 처럼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는 것이.

물어야 답을 얻고, 찾아야 길을 만나며, 두드려야 문은 열린다.

그러나 순간 아난은 미처 청하지 못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차례 아난에게 당신이 남아있기를 요청하라고 힌트를 주셨다.

그러나 아난은 끝내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국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놓아버리시고 열반에 드시기로 결심하신다. (당시 아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부처님 열반  모이는 집회에 초청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스스로 놓아버리자 하늘과 땅이 진동한다.
놀란 아난이  까닭을 ,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한 설명 주시고서 그는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게 된다.


그날 법회에서 보살님은 떨리는 음성 속에 결의에 마음으로 말씀하셨다.

2600년  부처님 당시의 이와 같은 열반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세의 우리들, 즉 큰스님 직계 제자, 재가제자 모든 분들이 열심히 수행하여 아난의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하셨다.

말씀은 당시 모여 있던  모든 사부대중에게  울림을 주었다.

 역시 그날의 장면은 오래 잊지 못했다. 아니 잊지 못할 것이다.

책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 살려 주었다.

그리고 대반열방경 속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많은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불경 대개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 여시아문)' 라는 아난의 말로 시작한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여정 속에서도 여러 나라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법을 설하신다.
마가다 국왕이 왓지국을 어떻게 정벌 해야 하는지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는 장면도 나오고, 수행에  가르침과 공동체 질서에 관한 말씀도 이어진다.
가는곳 마다  사람들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을 올리며 법문을 청하고 듣는다.

그러는 가운데 파왕 마순의 열반에 대한 종용과 열반 암시 이어지지만, 부처님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 길을 향해 걸어 가신다.


열반에 들기 직전, 대장장이 아들 쭌다의 공양을 드신  부처님께서는 병환을 얻으신다.

그로 인해 쭌다가 스스로를 탓할까를 염려하여,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그 공양을 탄하며 마음의 을 덜어 주신다.

 장면에서는 스승의 자비가 무엇인지 강하게 닿는다.

당신 자신의 고통보다,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제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면에서 진정한 스승의 마음 보여주셨다.

아난을 대하는 모습 또한 깊은 울림을 준다.


열반에 이르게 직접적 계기와 관련해 아난의 책임을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부처님은 대중 앞에서 질책보다 격려를 택하신다. 또한 마지막 제자 수밧다를 받아들이시는 장면에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을 위해 문을 닫지 않으시는 자비를 보여 주신다.


마지막 유훈 역시 분명하셨다.

방일 (放逸: 나태, 게으름) 하지말고 정진하라.

부처님께서는 열반 직전까지 수행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신의 육신은 어떻게 화장(火葬)하고 사리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까지 세세히 일러 주신다.

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은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챙기셨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  유훈대로 장작에 불을 붙이려하지만 불이 붙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붙지 않는 불이  대제자 마하가섭이 도착하자마자 비로소 붙는 장면은 삼처전심(三處傳心:세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의 상징이 되었다.

스승의 법맥과 마음이 누구에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뛰어난 작가나 영화감독이 다면, 부처님 열반  상황 며칠 과정을 담담히 소설이나 영화로 그려낼  있지 않을까.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모습이 니라, 인간의 몸으로  땅에 걸어와 인간으로 고통을 겪고, 인간으로서 떠나간 마지막 여정을 말이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것인가?

번역자 각묵 스님의 서두 결국 질문으로 귀착된다.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의 찬란함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다시 죽음의 찬란함은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은 우리 또한 부처  있음 리기 위함이었, 부처님의 열반은 우리에게 윤회 사슬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  사건이다.

처음과 마지막, 탄생과 열반.
바탕은 몸이라고 큰스님은 설하셨다.
2600년전과 지금, 아득한 과거와 아주  미래도 한마음에 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귀의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각묵 스님의 질문이 다시금 안의 스승을 다시 놓치지 말라는 청함()으로 들린다.


By Dharma & Maheal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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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러셀 로버츠 지음, 이지연 옮김 / 세계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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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며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남기고, 따개비를 8년 연구하고, 지렁이를 29년 실험한 사람이다.

그는 진화론으로 서구 세계의 신념 체계를 뒤흔든 인물이며 오늘날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상징적 존재이다.

그런 다윈에게도 한때 아주 인간적인 질문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다윈은 노트에 결혼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적어 내려갔다.

외롭지 않을 , 대화 상대가 생길 것, 노후에 돌봄을 받을 수도 있을 것.

반대로 자유를 잃을 , 시간을 빼앗길 것, 책임이 늘어날 것.

지금의 눈으로 보면 웃음이 나올 만큼 계산적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는 “위대한 업적 위해서는 독신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윈은 결국 이렇게 적었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증명 끝.”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연구자 다윈을 무너뜨리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시켰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이처럼 답이 없는 문제 앞에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결혼을 것인가 것인가,

직장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지금의 삶을 유지할 것인가, 다른 길로 갈 것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서 망설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정답을 찾으려 든다.

하지만 러셀 로버츠는 말한다.

 

“답이 없는 문제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일 수 있다.”

그는 비용과 효용, 합리성과 계산의 언어로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최선의 반대말은 최악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 이다.

삶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하며 알아가는 여정이다.

인생은 당신이 쓰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권의 책이다."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지금 다시 읽으며 좀 더 깊게 각인 되어진다.

 

책을 지금 다시 꺼내 이유는 단순한 재독이 아니다.

요즘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조직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앞에 있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 기록을 남기지 말자는 권유, 의리와 감정의 언어가 오가는 가운데

나는 자꾸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선택은 옳은가?”

그러나 책을 다시 읽으며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러셀 로버츠는 말한다.

"어떤 결정이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드러낸다면 대가는 고려하지 말라.

손익이 아니라 자아감을 지키는 선택을 하라" 

 

삶은 객관식 문제가 아니고, 인생의 문제집에는 정답지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순간 한 걸음을 내딛으며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한다.

 

책은 안전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내려 놓음' 의 태도를 제안한다.

삶을 계산하지 .

통제하려 들지 .

대신 경험할 , 관계 맺을 것,

그리고 선택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

놀랍게도 ()의 방하착 (放下着)과 무척 닮았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다.

가다 막히고, 돌아가고, 순조로운 알았다가 다시 멈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멈춰 있는 시간조차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방황도 훗날 결국 소요유(逍遙遊) 였음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결심이 필요한 순간’ 앞에 서 있는가?

정답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by Dharma & Maheal 

어디 사느냐는 내가 무얼 경험하게 되느냐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어느 의사 결정이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보여준다면 대가는 고려하지 말라. 자아감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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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2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를 약간 변형해 보자면 ˝당신이 어디를 방황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마힐 2026-02-03 09:01   좋아요 1 | URL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시겠다면 저는 요, 어제는 돈까스와 치킨을 먹었고요. 중국 생활 9525일 째를 하고 있지만, 북경에서도, 서울에서도, 울산에서도 늘 집 없이 방황하고 있어요. 전 어떤 사람인가요? ㅎㅎ
 
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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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나는 누구인가? 영원한 질문을 만나다.

 

2년 전, 켄 윌버의 <무경계(No Boundary)> 를 만났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펼쳐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은, 동시에 분명히 달라 보였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신심명>과 <증도가>를 붙들고 보냈다.

그래서 이번에 그때 <무경계> 글을 다시 한번 <신심명>과 <증도가>로 확장하여 사유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몇 회에 걸쳐 사유가 이어질 것 같다.

글은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나누는 사유의 대화이기도 하다.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델포이 신전에 새겨졌다는 문장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들은 이는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질문은 동양의 선방에서도 거의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이 뭐꼬?(是甚麼: 시심마)”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작용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이끌고,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

 

서양의 철학적 물음과 동양의 선적 화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지만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질문에 대해 철학은 존재와 실존으로 답했고, 종교는 나와 신성의 관계로 설명했으며, 과학은 생명의 기원과 유전자로 접근해 왔다.

각자의 언어는 정교했고, 각자의 지도는 나름 완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을 설명하는   넘쳐 났지만 지금 길을 걷는   대한 대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구에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80억 개의 답이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년 전의 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공부의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답을 향해 나아가야 질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질문은 어딘가에 있는 정답을 찾기 위한 물음이라기보다 질문을 품고 있는 마음 자체를 비추는 질문에 가깝다.

<신심명>은 “군불견(君不見) , 그대 보이지 않는가” 라고 묻고,

<증도가>는 “수무념수무생(誰無念誰無生) , 누가 무념하고 무생하는가” 라고 되묻는다.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다시 돌려준다.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는 그 마음을 보라” 고 말할 뿐이다.

 

신심명이 말하는 ‘일종평회(一種平懷)’, 한 가지 평등한 마음이란 어쩌면 우리가 붙 고 있는 모든 ‘나는 ○○ 이다’라는 정의 이전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이다, 나는 아버지이다, 나는 부장이다, 나는 승객이다.

나는 이러하다, 저러하다' 등등. 상황과 조건에 따라  라는 정의는 달라진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며, 나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어느 회사의 부장이 되며, 나는 어느 식당의 손님이 되기도 한다. 아들, 아버지, 친구, 손님 이란 모습으로 나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어느 것이 진짜  인가?

그럼 손님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고 , 아버지이기도 한 나는 가짜  말인가?

아니다.

나는 고정되지 않았다.  라는 것은 고정 되지 않는다. 고정 될 수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이것’이라고 규정하고, ‘저것’과 구분하려 하는가?

경계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다음 사유는 윌버가 말한 “피부 경계선”이라는 개념을 통해 ‘나/나 아님’의 구조를 살펴보려 한다.

그가 말한 경계는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고, 또 어떻게 허물어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영원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 이제 출발한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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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붓다
엔조 도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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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만일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무척 흥미롭네요. 사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자각을 할 수가 없는 존재인데 소설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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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를 했다.

11년을 살았던 이곳 북경의 왕징 아파트에서 근처 외곽의 작은 아파트로 옮겨갔다.

, 이삿 짐을 꾸리던 중에 아주 오래 전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부모님의 이사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집은 참 이사를 많이 했다.

기억 속으로 울산으로 때가 내가 6살때인데  지금 까지 약 30년을 넘게 울산에서만  살았는데 그 시간 동안 이사를 간 게 20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을 했었는데 이제는 가물 가물 해진다.

 방어진부터 시작 해서 주로 동구를 왔다 갔다 했지만  구(區)를 넘나들어 중구(성안동) 에서도 산적이 있다.

너무 이사를 자주 해서 한번 씩 떠나 있을 때 마다 집이 바뀌어져 있다

군대 (대송동)과 휴가 나올 때(전하동 아파트)와 제대 할 때(서부동)가 다 틀리다.

중국 갔다 올 때도 마찬가지, 유학 하러 갈 때(서부동)와 들어오니 집(2층 상가 주택)이 틀리고, 결혼 하기 전(성안동)과 결혼 후(방어동) 들어오니 집이 이사를 했다.

전에는 이런 것들에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부모님 나이를 점점 드시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고 사시는가.

나도 한국에 없고 동생도 결혼 했고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데도 이사를 다니실까?

 

이사 한번 보면 알겠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거의 연례 행사 맞이 하듯이 자주 하시니 이삿짐 싸시는 데는 도통 하신 걸까?

이제는 제발 그만 이사를... 

오늘도 아버지와 통화하다가 올해 어쩌면 남창으로 이사 하실 수도 있다고 하길래

속에서 울컥 하고 올라 온다.

..  도대체 왜 ?

우리 집은 집이 없는 걸까? 왜 이사를 해야 하는 걸까? 오늘 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부모님께 원망스런 마음이 올라 오길래 잠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부모님 이사 하시는데 내가 도움 준 것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이삿 짐 싼 적이 없으니...

고생은 부모님만 하시는 거였다.

내가 불편 하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나는 거였다.

사실 사시는 부모님이 불편하시지 만 그걸 감수 하면서 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텐 데 나는 입장에서만 생각했었다.

 

마음속에 놓고 간절히 고한다.

이제는 부모님께서 안정 되고 편안하게 살게 해야지.

행복 하게 살게 하셔야지.

 

아예 이왕 이사 하시는 것 차라리 근처로 이사 있도록 마음 내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마음을 닦으시면서 여생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는 중국에서 비교적 이사 없이 오래 사는 편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중국에서 이사 횟수를 잠시 계산 해봤다.

중국에서  13년째 생활 하고 있는데 지금 사는 집에 오기까지 이사를 5번을 했었다.

회사 숙소 때문에 나만 매년 마다 계약 된 숙소를 옮기느라 이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사는 우리 가문의 숙명일까? 업 일까?

정말 업 이라면 녹이고 싶다. > 2012 년 9월 12일 일기 중에서....

 

이번에 내가 11년만에 이사를 하게 이유가 있다.

아들이 모두 한국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아내와 나,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줄여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13년 전, 부모님의 이사를 보며 '이사라는 업'을 끊겠다 던 나는 결국 한 곳에서 11년을 버텼으니, 나름의 정박(碇泊)에는 성공한 셈이다.

 

오늘 이사를 보니…. 

역시 이사는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힘든 일을 연래 행사로 하셨었다니…. 

이제 내가 당신들 부모님 나이가 되어가니 이제는 이사하게 되는 심정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어진다.

누군가 말하길 방황은 아름답다  했다 지만 부모님의 수많은 이사 또한 방황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방황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당신들의 현재의 힘든 삶을 담보로 미래에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자리를 찾기 위한 치열한 삶의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을 건사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해야 했던 고단한 방황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1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같다.

결국 부모님의 방황은 아름답진 않지만 아련해진다.

 

이사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기분도 우울한 점도 있고 무엇보다 새로 머물 곳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내 맘에 드는 곳을 찾는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즐비 하게 서 있지만 그 곳 어느 한 곳도 내가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게 참 신기하다.

 

오늘 이삿짐은 새집에 부려 놓았지만, 계약 해지를 앞두고 마지막 추억을 정리하러 다시 비어버린 옛 집으로 돌아왔다.

이사는 공간의 이동이다

이제 다시 이곳에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 본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이 공간과는 영영 이별이다.

좋은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이 공간은 이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공간을 다시 만나게 모르겠다

고마운 곳이었다.

이사, 몸은 떠나도 마음은 남는다.

이제 이상 나는 이사를 '업' 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그저 삶의 여정이었다.

13년전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제 이 일기는 앞으로 몇 년 뒤에 다시 읽히게 될 까?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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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1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그러는데요...중국에서 이사 견적비는 어느정도 나오나요? 저기 위 사진의 차1대 분량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정도 되는지요?

마힐 2025-12-18 22:14   좋아요 2 | URL
사진으로 보는 차의 길이가 4.5미터 크기로 차량 크기와 이사 거리에 따라 가격이 책정 된답니다. 저희는 짐이 많아 1차로 다 못 실어서 3.8미터 짜리 1대 추가로 했어요. 거리가 5키로 남짓 되는 곳인데 짐꾼 3명 포함해서 모두 900위안화 (한화 약 18만원) 들었어요. 이사 업체마다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완전 포장 이사는 저희 가격의 4~5배는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의 물류 운송업체도 경쟁이 심해 예전에 비해 바가지 쓰는 일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ㅎㅎ

yamoo 2025-12-19 11:40   좋아요 1 | URL
와~~싸네요...근데 포장이사는 우리나라 보다 조금 싼 느낌?! 중국의 대도시는 이제 한국과 물가나 경제력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보입니다요..ㅎㅎ

잉크냄새 2025-12-18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것은 전설의 군대 악몽 <휴가 나왔더니 집이 없어졌어요> 시리즈군요.
또한 아들 피해 다닌 부모님을 끈질기게 추적한 추격자 스토리 아닙니꽈!!!!

마힐 2025-12-18 22: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ㅎㅎ 입대해서 휴가 나올 때 마다 집을 찾아 다녀야 했어요. 그래서 인지 어른이 된 지금은 집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대신 어릴 때 살았던 곳들이 오히려 더 기억이 남아 있네요.

2025-12-3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