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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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아일여(梵我 一如), 그대의 영혼이 온 세상이니라.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에도 나오는 말이다.

 

그간 내가 책을 통해서, 유튜브를 통해서, 한마음 선원에서도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아니타 무르자니, 그녀가 똑같이 하고 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말까지!!

범아일여까지!!

그녀의 경험이 나를 휩싸고 되고,

그녀의 경험이 내겐 어느것보다 논리적으로 들리며,

그간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까지 모두 해결해 주어서 참 고맙다.

그녀의 논리가 내 삶의 목적이어야 할 것 같다.

가장 확실해서 거부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것, 세상의 진실!!

 

한마음 선원에서는 예불 마지막에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서로를 향해

"성불하십시요!"라는 말을 한다.

감히 성불을? 이라는 마음이 가로막고 있어서 나는 여태 이 말을 뱉어내지를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불하십시요!"

 

큰 스님들은 이 진리를 수행을 통해서 알게 되고,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알게 되며,

저자는 임사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면

나는 무엇을 통해 이 세상의 진실을 경험하게 될까...

 

양지와 음지가 같이 있듯,

죽음이라는 고통과 그 후의 평안이 함께임을 알겠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어야 나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나의 생각은 망상임을 알겠다.

분별은 나를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겠다.

한마음 선원 법당에 걸려 있는,

<나 하나를 버린다면 모든 것이 잠자고 쉬게 되니 삼세에 걸림 없는 자유인이 된다>는

이 말의 의미를 아니타 무르자니는 임사체험으로 경험했고, 그녀의 글을 읽어보니

나도 이제는 짐작은 됨직하다.

 

천지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요, 태양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라 하고선, 나를 버리라 한다.

나를 버리면 나를 찾는다 한다. 내가 없어야 나를 볼 수 있다 한다.

눈물과 기쁨이 둘이 아니라 한다.

법을 설했는데, 법을 설한 바가 없다고 한다.

함(do)이 없는 함이라야 진정한 함이라 한다.

색즉시공공즉시색이라 한다.

진공묘유有라니,

제행무상常이라니 ......

내 보기에 이것이 불교의 묘미이자 백미이며, 나는 이것을 알고 싶다.

 

법상스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인연따라 이 책은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참 잘 왔다.

고마운 책이다. 감사한 책이다.

 

 

 

 

 

 

*비록 육신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나는 시시각각으로 주변은 물론 멀리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하나하나 젛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 인지 능력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내가 의식 상태에서 신체감각을 사용할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그냥 느껴지고 이해되는 듯했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까지도 파악되었다.

 

*나는 더이상 오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인식 능력은 제한이 없었다. 마치 우리가 갖고 있는 보통의 감각보다 훨씬 고양된 새로운 감각이 생겨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360도 시야각으로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모든 말이 놀랍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오히려 몸 안에 있는 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저 장엄할 뿐이라는 앎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나는 또 예전에 믿었던 것처럼 암(cancer)이 내 잘못에 대한 처벌도 아니요, 내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로 암이라는 악업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순간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 있고, 시간의 한 지점이란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결정과 선택, 생각 들의 정점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 수많은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엄청난 힘이 바로 이 병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확장되는 느낌, 명징함,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됨의 느낌 등을 이야기했다. 아무런 판단도 받지 않는, 지극히 크고 조건없는 사랑만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희생자는 물론 모든 범죄자와 테러범에게도 연민 이외에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들 안에 혼란과 좌절, 고통과 자기 증오가 가득 차 있기 때문임을 난생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충분히 누리고 행복해하는 사람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즐겁고 남들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줄 뿐이다.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병들어(감정적으로) 있어야만 했다. 사실 이는 암에 걸린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 이 모든 것은 내가 더 이상 세상을 '우리'와 '그들'의 관점으로, 즉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으로 불 수 없게 되었음을 뜻했다. '그들'은 없었다. 오직 '우리'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이며, 우리 스스로가 창조한 산물이자,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과 믿음의 산물이었다. 가해자들조차도 그들 자신의 자기 증오와 고통의 희생자들이었다.

 

*나는 또 내가 그다지 영적이지 못하며, 따라서 그 방면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믿든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바로 영적인 존재, 그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상황을 물리적으로 바꾸려 하는 대신 내 내면 세계를 들여다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거나 불만스럽거나 할 때면 나는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 느낌을 먼저 들여다 본다. 그리고 혼자 앉아 있는다든지, 자연 속을 걷는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면서 고요하고 차분한 중심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할 때 외부 세계 또한 바뀐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실제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장애물들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는 분리하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행복과 슬픔이 빛과 어둠처럼, 음과 양처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한갓 이원성(duality)이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원성의 환상 때문에 일견 분리되어 보이는 것들이 하나임(oneness)을 보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중심에 닿아 있다는 것은 이를 꿰뚫어본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만유의 중심', 바로 '하나의 중심'에 있는 우리의 무한한 자리를 다시 한 번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친구가 몇 명 생기기는 했지만-특히 내 경험을 나 스스로 이해해고 소화하도옥 크게 도와준 친구들-옛날 친구들 대부분과는 다시 가까워지기가 힘들 것 같다. 옛날처럼 사교적으로 되지도 않거니와 전에 했던 일들도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내 인생이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부유하고 있는 듯한 순간에도 나는 인도를 받으며 이끌려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임사 체험 동안 내가 느낀 것을 여전히 신뢰했고, 만사가 순조롭게, 되어야 할 바대로 되어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벌주는 이는 따로 없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였음을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나를 판단한 사람, 내가 저버린 사람,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다른 누구와도 관계가 없었다. 내가 마치 우주의 아름다운 아이처럼 보였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이 사랑을 받기 위해 내가 뭔가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도 간청도 그 밖에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모종의 방식으로 '믿으면' 질병을 없앨 수 있다거나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때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주장일 수 있다. 그것보다 나는 자기 자각(self awarenss)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 자각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아무런 판단 없이 그저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가능한지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알아차리는 데에는 방어가 필요하지 않다. 알아차림 상태는 점점 더 커나갈 수 있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으며, 그 결과 우리를 하나임의 상태에 더 가까워지게 해준다. 바로 여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면 믿음이란 우리가 믿는 것만을 허용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제외해 버린다. 분명히 말하건대 내 병을 맛게 한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었다. 임사 체험은 순수한 알아치림의 상태였고, 전에 가졌던 모든 주의와 신조가 완전히 중지된 상태였다. 바로 이 상태가 내 몸을 스스로 '제건'하게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낫기 위해서는 믿음을 완전히 버려야 했다.

 

*나는 임사체험 상태에 있을 때 온 우주는 조건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는 그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가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 대신 그저 자신에게 진실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 에너지의 도구가 되며, 그렇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임사 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우주 에너지 전체와 하나였기 때문에 나의 거대한 앎(awareness)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전체를 다 망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했고 모든 것이 다 파악되었다. 나는 모든 것이 된 것 같았고, 내가 모든 것 안에 존재했다.

 

*사실 자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인 사랑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동시성에 의해 자기에게 딱 맞는 선생이나, 책, 영적인 사상을 끌어당기게 된다. 아주 딱 맞는 때에 말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그 지점에서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중심에 더 연결되어 있다거나 혹은 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 있는 그 무한한 공간을 알아보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기도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음악이나 미술일 수도 있다. 혹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심지어는 지식이나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그런 것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장엄함을 더욱 잘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기도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부의 자기만의 열정에 연결되고, 선적禪的인 상태가 되며, 삶에 의미와 합일의 느낌을 주는 쪽으로 살기를 선택할 때 우리는 자신의 장엄함을 느낄 수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것을 끌어온다'와 같은 말은 포괄적이긴 하지만 늘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말은 힘든 기시를 지나고 있는 이들한테는 더욱 힘든 말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것들을 더 많이 끌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또 단순히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아니다. 이는 정말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텐데,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실제로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긍정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 나는 그 느낌을 그대로 허용한다. 감정을 꼭꼭 담아두는 것보다는 그런 감정을 생생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내 느낌에 저항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냥 '허용'한다는 말이다. 판단 없이 허락하는 바로 이 행위가 자기 사랑의 행위다. 이처럼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행위가 거짓을 긍정적인 척하는 것보다 삶을 훨씬 더 즐겁게 해준다.

 

*임사체험에서의 깨달음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 것,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안전하다는, 나는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받고 또 맏아들여진다는 말이 내 안에서 들려올 때, 나는 이 에너지를 바깥으로 퍼뜨리게 되고 그에 따라 내 주변의 세계도 바뀌게 된다.

 

*임사체험하는 동안 나는 내 몸이 물질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나는 그저 순수한 에너지였지요. 아마도 이것을 영혼(soul)아나 영(spirit)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죠. 그것은 몸보다 훨씬 컸고, 그래서 내가 '장엄하다'는 표현을 쓰는 거지요. 그 상태에서 내가 정말 그렇게 느꼈거든요. 물질적인 자아가 있다는 건 꼭 나중에 덧붙인 생각인 것만 같았어요. 이 무한한 에너지 덩어리가 진짜 나였고, 몸은 그저 이 생명력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들어오는지' 혹은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에 지나지 않았지요. 마치 3차원 세상은 다른 차원의 것이고, 내 에너지 덩어리가 실재라고 느껴졌어요.

 

*만일 어떤 종교가 자신들이 받드는 신보다 당신이 더 작은 존재라고 느끼게 만든다면, 그것 둘 중 하나에요. 당신이 그 종교를 잘못 해석한 것이거나, 그 종교가 당신에게 진실을 잘못 가르친 것이거나. 또 어떤 스승이나 현자가 당신이 '아직' 깨어나지 못했으며, 깨어나려면 '배우고' '버리고' '내려놓아야'할 게 더 남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면, 그들 또한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거에요. 아니면 당신이 그들의 말을 잘못 해석했거나.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 당신은 이미 당신이 찾는 '바로 그것'이라는 겁니다. 당신만의 독특함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맘껏이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지금 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유이고, 여기 이 물질 세상에 와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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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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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러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어울리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것이 많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줄 많은 협력자와 한곳에 모여 사는데, 이렇게 모여 사는 곳에 우리는 국가라는 이름을 붙였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진실로 훌륭한 수호자가 될 사람은 천성적으로 지혜를 사랑하고, 기개가 높고, 민첩하고, 강할 것이네.

 

*가장 유능한 의사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의술을 습득해야 할뿐더러 중병에 걸린 사람을 되도록 많이 접촉해봐야 하며, 자신도 건강한 체질을 타고나지 못해 온갖 병에 걸려봐야 하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의사는 남의 몸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건강이 나쁘거나 나빠지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되겠지-자신의 혼으로 치료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병들었거나 병들어 있는 혼이 무엇을 잘 보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네. 반면, 여보게, 재판관은 자신의 혼으로 남의 혼을 다스리네. 그래서 혼에세는 어릴 때부터 사악한 혼과 한데 어우러져 자라거나, 마치 의사가 자기 경험을 토대로 남의 몸을 치료하듯, 자신의 경험으로 남의 범죄 행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스스로 온갖 범죄를 섭렵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네. 오히려 혼이 아름답고 훌륭하여 옳고 그름을 건전하게 판단하려면 어린 시절에 사악한 성격을 경험하거나 접촉하지 말아야 하네.

 

*사악함은 자기 자신도 미덕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덕은 타고난 본성에 교육이 더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자신도 사악함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착한 사람은 현명해질 수 있어도 사악한 사람은 현명해질 수 없는 것 같네.

 

*우리가 앞서 요구한 것은 이보다 더 쉬운 일이네. 앞서 우리는 수호자들에게서 못난 자식이 태어나면 다른 계급으로 강등해야 하고, 다른 계급에서 탁월한 자식이 태어나면 수호자 계급으로 승진시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말을 한 의도는 다른 시민들이 모두 자기 적성에 맞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해야만 개인은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되고, 나라는 여러 나라가 아닌 한 나라가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네.

 

*젊은이는 어른 면전에서 적절한 침묵을 지키고 자리를 양보하고 어른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든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것 말일세. 그 밖에도 두발, 복장, 신발, 몸가짐 일반등에 관한 것 말일세. (...) 어떤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교육받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 같네. (...) 아마도 교육의 최종 결과물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의 완전하고 강력한 전체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걸세.

 

*또한 우리는 정의란 제 할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많은 사람한테서 들었고... (...) 이처럼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정의인 것 같네.

 

*정의의 진정한 관심사는 어떤 사람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의 내적인 행위, 그의 진정한 자아, 그의 진정한 기능일세.

 

*그러니 우리 여자 수호자들도 체력단련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하네. 그들은 옷 대신 미덕을 입게 될 테니까. 그들은 전쟁과 그 밖의 다은 수호자 업무에서 제구실을 하되, 오지 거기에만 전념해야 하네. 그러나 그들은 연약한 여성인 만큼 그들에게는 남자보다 더 가벼운 업무가 부여되어야 하네. 따라서 최선을 추구하기 위해 옷을 벗고 체력단련을 하는 여자를 보고 웃는 남자는 '우스꽝스런 지혜의 설익은 열매를 따는 것이라네. 그는 자기가 무엇을 보고 웃는지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네.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추한 것이라는 말은 지금도 명언이지만, 앞으로도 명언으로 남을 테니 말일세.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은, 우리가 앞서 치자를 선발할 때는 연장자를 선발했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네. 사람은 늙어가면서 ㅁ낳은 것을 배운다는 솔론의 말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네. 사람은 늙어갈수록 달리기보다 배우기가 더 어려우니 말일세. 오히려 큰 노고와 많은 노고는 모두 젊은이의 몫이라네.

 

*자유민은 어떤 교과목도 노예 같은 방법으로 배워서는 안 되기 때문일세. 육체적 노고는 강제로 수행된다 해도 몸을 전혀 해치지 않지만, 혼의 경우 강제로 배운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네.

 

*그러나 그들이 50세가 되면 모든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으며 실무와 학문에서 아느 모로 보나 가장 우수한 것으로 판명된 자들을 최종 목적지로 인도해서는 그들로 하여금 혼의 찬란한 광채를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 만물에 빛을 가져다주는 것을 직접 바라보게 해야 하네. 그리하여 그들이 善 자체를 봤다면, 그것을 본보기 삼아 국가와 개인과 자신을 차례차례 정돈하며 여생을 보내게 해야 하네. 물온 대부분의 시간은 철학으로 보내게 하되 자기 차례가 되면 저마다 나랏일을 위해 노력하고 국가를 위해 치자가 되게 해야 하네. 그러나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일을 하는 것처럼 하게 해야 하네. 그리하여 다은 사람들을 그들 자신과 똑같은 자들로 꾸준히 교육하여 자기들 대신 국가의 수호자들로 남겨 둔 뒤 '축복받은 자들의 섬들'에 갓 살게 해야 하네. 또한 국가가 그들을 위해 기념비와 제물을 공적으로 바치게 하되, 예언녀  퓌티아가 승낙한다면 그들을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하고, 승낙하지 않으면 행복하고 신과 같은 자들로 받들어 모시세 해야 하네. (...) 진정한 철학들이 여러 명이든 한 명이든 국가의 권력을 장악해야 하네. 그러면 그들은 오늘날 명예로 간주되는 것들을 비천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경멸하는 반면, 올바른 것과 올바른 것에서 비롯되는 명예를 가장 높이 평가할 것이네. 그리하여 그들은 정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길라잡이로 삼아 정의에 봉사하고 정의를 증진시키면서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아갈 것이네.

 

*그렇다면 글라우콘, 완벽하게 통치될 국가에서는 치자를 공유해야 하며 모든 교육은 물론이고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업무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왕은 철학과 전쟁에서 가장 우수한 자여야 한다는 점에 우리는 의견이 일치했네. (...) 또한 일단 치자들이 임명되면, 앞서 말했듯이 전사들을 사유재산을 갖지 않을 처소에 거주하게 한다는 점에도 우리는 의견이 일피했네. 자네도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처소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재산을 그들에게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오늘날 일반 시민들이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되고, 진정한 전사로서 그리고 수호자로서 자신들이 행한 봉사의 대가로 그 봉사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만 해마다 다른 시민들한테 받되 그 대가로 자신과 국가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지요.

 

*인간이 선량해지느냐 사악해지느냐 하는 것은 중대한 싸움이며 보기보다 휠씬 중대하네. 따라서 우리는 명예나 돈이나 권력이나 무엇보다 시에 홀려 정의나 그 밖의 다른 미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네. 

 

*자네는 우리의 혼이 불사불멸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소멸하게 하고 파멸하게 하는 것은 모두 나쁜 것이고, 보전하게 하고 유익한 것은 좋은 것이라 게 내 의견일세.

 

*그렇다면 우리는 올바른 사람이 가난하게 살든 병에 걸렸든 그 밖에 불행으로 여겨지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 이런 불행이 살아생전에 또는 죽은 뒤에 결국은 좋게 끝날 것이라고 봐야 할 걸세.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미덕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 최대한 신을 닮으려고 애쓰는 자가 신에게 홀대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네.

 

*내가 충고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혼이 불멸하며 어떤 악도 어떤 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향상의 길로 나아가며 가능한 방법을 다해 지혜와 더불어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래야만 우리는 이승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경기의 우승자들이 상을 타듯 우리가 나중에 정의의 상을 탈 때도, 우리 자신이나 신들과 친구가 될 것이네. 또한 우리는 이승에서도, 앞서 우리가 이야기한 천년의 여로에서도 행복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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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강현정.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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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강현정만으로 해야 좋았을 것 같다.

오로지 그녀의 주관으로 가득한 책이거늘

저자에 전성은을 함께 첨부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거창고등학교의 전영창 초대교장선생님이 무척 존경스러웠다.

김형석교수가 오버랩되었다.

내가 알지못했던 지성인들은 이 나라를 위해 그렇게들 애쓰고 계셨구나 싶으니

숙연해지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런 지성인들의 말씀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이라도, 지금부터라도 이런 훌륭한 분들이 내 삶의 본보기가 되어서 나는 다만

나아가면 될 것 같다.

 

- 직업선택의 십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 기회가 거의 업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처음에 이 십계를 읽었을 때는 무심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인터넷에 떠도는

그런 것들 중의 하나겠거니 하다가 이 책을 읽고 보니 전영창 교장선생님의 일생이

이러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 십계가 모두 가슴으로 들어왔다.

 

 

 

 

 

 

*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아!

 

* 무슨 일이든 극복함으로써만 이길 수 있다.

 

*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아도 괜찮아.

 

*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 아이들을 망치고 싶은가? 부부 싸움을 해라.

아이들을 더 망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로를 비하하라. 무조건 아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려라. 부모는 그저 이 아이를 열심히 도와주라고 위탁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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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동시집
김용택 동시집, 이혜란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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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그 초등학교가 평생 나의 직장이었던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

<김용택>은 그런 사람이다.

 

 

 

 

- 철

봄에 먹을 딸기를

한겨울에 먹지요.

여름에 먹을 수박을 봄에 먹지요.

여름에 따 먹을 오이를

봄여름가을겨울에 먹지요.

사람들은 철없어요.

 

 

 

- 사람

고추에서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배추에서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사과에서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쌀에서도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도망갈 곳 없는 사람들이

그걸 먹고 살지요.

 

 

 

 

- 숙제 안 해 온 날

수수 모가지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음부터는 숙제 꼭 해 올게요.

학교 뒷밭

수수 모가지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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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양장) 까칠한 재석이
고정욱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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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가 성실아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는 사실 무척 식상하다.

거기에 키다리 아저씨까지 등장하면 더욱 식상해서 더 재미없어진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이다.

엄마와 둘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재석이는 불량써클에 가입한 싸움 잘 하는 학생이다.

주인공이 싸움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싸움조차도 잘 못하고 비겁한 아이라면

주인공이 될 자격은 없는 것일까?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Holes)>에서 스탠리는 이 책의 재석과 같은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뚱뚱하고 무기력하기도 한, 그런 학생이 스탠리였으며,

소년원같은 캠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 그를 성장하게 만든다.

적어도 성장소설이라면 싸움 잘하는 불량써클의 일인자보다는, 그 아래에 있는

소심하고, 용기없고, 정의감에 불타고 싶지만 베짱없이 비겁해지는 수 많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이런 류의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책들을 볼 때 마다 가지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문제아가 성실아로 바뀔 수 있는 모티브는

결국 예쁜 여학생과 키다리 아저씨까지 가세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예쁘고 바른, 공부 잘하는 보담이보다는,

부라퀴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다.

 

 

부라퀴의 정신력은 어쩌면 작가의 정신력이지 않을까 싶어서 상당히 가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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