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범아일여(梵我 一如), 그대의 영혼이 온 세상이니라.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에도 나오는 말이다.

 

그간 내가 책을 통해서, 유튜브를 통해서, 한마음 선원에서도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아니타 무르자니, 그녀가 똑같이 하고 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말까지!!

범아일여까지!!

그녀의 경험이 나를 휩싸고 되고,

그녀의 경험이 내겐 어느것보다 논리적으로 들리며,

그간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까지 모두 해결해 주어서 참 고맙다.

그녀의 논리가 내 삶의 목적이어야 할 것 같다.

가장 확실해서 거부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것, 세상의 진실!!

 

한마음 선원에서는 예불 마지막에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서로를 향해

"성불하십시요!"라는 말을 한다.

감히 성불을? 이라는 마음이 가로막고 있어서 나는 여태 이 말을 뱉어내지를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불하십시요!"

 

큰 스님들은 이 진리를 수행을 통해서 알게 되고,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알게 되며,

저자는 임사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면

나는 무엇을 통해 이 세상의 진실을 경험하게 될까...

 

양지와 음지가 같이 있듯,

죽음이라는 고통과 그 후의 평안이 함께임을 알겠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어야 나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나의 생각은 망상임을 알겠다.

분별은 나를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겠다.

한마음 선원 법당에 걸려 있는,

<나 하나를 버린다면 모든 것이 잠자고 쉬게 되니 삼세에 걸림 없는 자유인이 된다>는

이 말의 의미를 아니타 무르자니는 임사체험으로 경험했고, 그녀의 글을 읽어보니

나도 이제는 짐작은 됨직하다.

 

천지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요, 태양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라 하고선, 나를 버리라 한다.

나를 버리면 나를 찾는다 한다. 내가 없어야 나를 볼 수 있다 한다.

눈물과 기쁨이 둘이 아니라 한다.

법을 설했는데, 법을 설한 바가 없다고 한다.

함(do)이 없는 함이라야 진정한 함이라 한다.

색즉시공공즉시색이라 한다.

진공묘유有라니,

제행무상常이라니 ......

내 보기에 이것이 불교의 묘미이자 백미이며, 나는 이것을 알고 싶다.

 

법상스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인연따라 이 책은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참 잘 왔다.

고마운 책이다. 감사한 책이다.

 

 

 

 

 

 

*비록 육신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나는 시시각각으로 주변은 물론 멀리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하나하나 젛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 인지 능력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내가 의식 상태에서 신체감각을 사용할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그냥 느껴지고 이해되는 듯했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까지도 파악되었다.

 

*나는 더이상 오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인식 능력은 제한이 없었다. 마치 우리가 갖고 있는 보통의 감각보다 훨씬 고양된 새로운 감각이 생겨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360도 시야각으로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모든 말이 놀랍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오히려 몸 안에 있는 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저 장엄할 뿐이라는 앎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나는 또 예전에 믿었던 것처럼 암(cancer)이 내 잘못에 대한 처벌도 아니요, 내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로 암이라는 악업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순간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 있고, 시간의 한 지점이란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결정과 선택, 생각 들의 정점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 수많은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엄청난 힘이 바로 이 병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확장되는 느낌, 명징함,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됨의 느낌 등을 이야기했다. 아무런 판단도 받지 않는, 지극히 크고 조건없는 사랑만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희생자는 물론 모든 범죄자와 테러범에게도 연민 이외에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들 안에 혼란과 좌절, 고통과 자기 증오가 가득 차 있기 때문임을 난생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충분히 누리고 행복해하는 사람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즐겁고 남들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줄 뿐이다.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병들어(감정적으로) 있어야만 했다. 사실 이는 암에 걸린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 이 모든 것은 내가 더 이상 세상을 '우리'와 '그들'의 관점으로, 즉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으로 불 수 없게 되었음을 뜻했다. '그들'은 없었다. 오직 '우리'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이며, 우리 스스로가 창조한 산물이자,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과 믿음의 산물이었다. 가해자들조차도 그들 자신의 자기 증오와 고통의 희생자들이었다.

 

*나는 또 내가 그다지 영적이지 못하며, 따라서 그 방면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믿든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바로 영적인 존재, 그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상황을 물리적으로 바꾸려 하는 대신 내 내면 세계를 들여다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거나 불만스럽거나 할 때면 나는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 느낌을 먼저 들여다 본다. 그리고 혼자 앉아 있는다든지, 자연 속을 걷는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면서 고요하고 차분한 중심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할 때 외부 세계 또한 바뀐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실제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장애물들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는 분리하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행복과 슬픔이 빛과 어둠처럼, 음과 양처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한갓 이원성(duality)이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원성의 환상 때문에 일견 분리되어 보이는 것들이 하나임(oneness)을 보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중심에 닿아 있다는 것은 이를 꿰뚫어본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만유의 중심', 바로 '하나의 중심'에 있는 우리의 무한한 자리를 다시 한 번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친구가 몇 명 생기기는 했지만-특히 내 경험을 나 스스로 이해해고 소화하도옥 크게 도와준 친구들-옛날 친구들 대부분과는 다시 가까워지기가 힘들 것 같다. 옛날처럼 사교적으로 되지도 않거니와 전에 했던 일들도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내 인생이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부유하고 있는 듯한 순간에도 나는 인도를 받으며 이끌려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임사 체험 동안 내가 느낀 것을 여전히 신뢰했고, 만사가 순조롭게, 되어야 할 바대로 되어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벌주는 이는 따로 없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였음을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나를 판단한 사람, 내가 저버린 사람,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다른 누구와도 관계가 없었다. 내가 마치 우주의 아름다운 아이처럼 보였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이 사랑을 받기 위해 내가 뭔가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도 간청도 그 밖에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모종의 방식으로 '믿으면' 질병을 없앨 수 있다거나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때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주장일 수 있다. 그것보다 나는 자기 자각(self awarenss)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 자각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아무런 판단 없이 그저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가능한지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알아차리는 데에는 방어가 필요하지 않다. 알아차림 상태는 점점 더 커나갈 수 있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으며, 그 결과 우리를 하나임의 상태에 더 가까워지게 해준다. 바로 여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면 믿음이란 우리가 믿는 것만을 허용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제외해 버린다. 분명히 말하건대 내 병을 맛게 한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었다. 임사 체험은 순수한 알아치림의 상태였고, 전에 가졌던 모든 주의와 신조가 완전히 중지된 상태였다. 바로 이 상태가 내 몸을 스스로 '제건'하게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낫기 위해서는 믿음을 완전히 버려야 했다.

 

*나는 임사체험 상태에 있을 때 온 우주는 조건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는 그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가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 대신 그저 자신에게 진실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 에너지의 도구가 되며, 그렇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임사 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우주 에너지 전체와 하나였기 때문에 나의 거대한 앎(awareness)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전체를 다 망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했고 모든 것이 다 파악되었다. 나는 모든 것이 된 것 같았고, 내가 모든 것 안에 존재했다.

 

*사실 자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인 사랑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동시성에 의해 자기에게 딱 맞는 선생이나, 책, 영적인 사상을 끌어당기게 된다. 아주 딱 맞는 때에 말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그 지점에서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중심에 더 연결되어 있다거나 혹은 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 있는 그 무한한 공간을 알아보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기도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음악이나 미술일 수도 있다. 혹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심지어는 지식이나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그런 것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장엄함을 더욱 잘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기도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부의 자기만의 열정에 연결되고, 선적禪的인 상태가 되며, 삶에 의미와 합일의 느낌을 주는 쪽으로 살기를 선택할 때 우리는 자신의 장엄함을 느낄 수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것을 끌어온다'와 같은 말은 포괄적이긴 하지만 늘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말은 힘든 기시를 지나고 있는 이들한테는 더욱 힘든 말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것들을 더 많이 끌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또 단순히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아니다. 이는 정말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텐데,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실제로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긍정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 나는 그 느낌을 그대로 허용한다. 감정을 꼭꼭 담아두는 것보다는 그런 감정을 생생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내 느낌에 저항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냥 '허용'한다는 말이다. 판단 없이 허락하는 바로 이 행위가 자기 사랑의 행위다. 이처럼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행위가 거짓을 긍정적인 척하는 것보다 삶을 훨씬 더 즐겁게 해준다.

 

*임사체험에서의 깨달음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 것,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안전하다는, 나는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받고 또 맏아들여진다는 말이 내 안에서 들려올 때, 나는 이 에너지를 바깥으로 퍼뜨리게 되고 그에 따라 내 주변의 세계도 바뀌게 된다.

 

*임사체험하는 동안 나는 내 몸이 물질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나는 그저 순수한 에너지였지요. 아마도 이것을 영혼(soul)아나 영(spirit)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죠. 그것은 몸보다 훨씬 컸고, 그래서 내가 '장엄하다'는 표현을 쓰는 거지요. 그 상태에서 내가 정말 그렇게 느꼈거든요. 물질적인 자아가 있다는 건 꼭 나중에 덧붙인 생각인 것만 같았어요. 이 무한한 에너지 덩어리가 진짜 나였고, 몸은 그저 이 생명력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들어오는지' 혹은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에 지나지 않았지요. 마치 3차원 세상은 다른 차원의 것이고, 내 에너지 덩어리가 실재라고 느껴졌어요.

 

*만일 어떤 종교가 자신들이 받드는 신보다 당신이 더 작은 존재라고 느끼게 만든다면, 그것 둘 중 하나에요. 당신이 그 종교를 잘못 해석한 것이거나, 그 종교가 당신에게 진실을 잘못 가르친 것이거나. 또 어떤 스승이나 현자가 당신이 '아직' 깨어나지 못했으며, 깨어나려면 '배우고' '버리고' '내려놓아야'할 게 더 남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면, 그들 또한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거에요. 아니면 당신이 그들의 말을 잘못 해석했거나.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 당신은 이미 당신이 찾는 '바로 그것'이라는 겁니다. 당신만의 독특함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맘껏이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지금 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유이고, 여기 이 물질 세상에 와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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