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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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미술에세이, 이 말에서 그림이 70%쯤은 되고 에세이가 나머지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반대였다. 대부분은 작가의 이야기들이다.

 

이만하면 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고, 이만하면 내 자식들도 괜찮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행복하고, 이만하면 삶에서의 내 위치는 공고하다고, 나처럼 한번 해보라고, 나는 잘해왔다고 은근 자랑같은 뿌듯함을 보이고 싶어하는 자신의 이야기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더라. 나는 그렇더라.

 

내가 읽은 최고의 자신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장승수)>가 될 것 같다. 내 보기에 그는 적어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 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도 했으니 여러분도 해보라는 강한 권유만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의 책이 좋았고 멋졌고 감동적이었다.

 

작가의 삶이 괜찮고 괜찮지 않고는 작가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이 없이 하는 함이야말로 감동이지 감동을 주기 위한 감동에는 감동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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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윽한 마음을 내라 - 대행 스님 법어집
한마음선원 출판부 엮음 / 한마음선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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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 근본이요

태양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 근본이라

어찌 모든 세상 두루 살피지를 못하리오

 

*한 생각에 지옥을 만들고 한 생각에 극락을 이룬다

그 한 생각을 잘 다스려라

 

*나 하나를 버린다면 모든 것이 다 잠자고 쉬게 되니

삼세에 걸림없는 자유인이 된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침내 온 우주와 함께하는 한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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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마음공부
법상 지음 / 무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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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放下着)!

 

어떻게?

 

그냥!

 

......

 

 

 

 

 

 

*한 사람을 죽이면 그는 살인자이다. 수백만 명을 죽이면 그는 정복자이다. 모든 사람을 죽이면 그는 신이다.(로스탕의 명상록 중)

 

*복잡한 정보로 짜 맞추는 해답보다 고요하고 텅 빈 가운데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참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턱 놓고 가면 맑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우리의 의식은 가장 맑게 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것, 내 가족, 내 돈, 내 생각, 내 가치관 등등 '나'라는 의식으로 인해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가지고 붙들려는 삶'을 '놓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커다란 의식의 전한이 필요합니다. 붙들었을 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놓았을 때 진정 잘 되어 나가는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 말입니다. (...) 일체를 놓는 것,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방하착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생각으로 이것과 저것을 갈라놓고, 나와 남을 갈라놓으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이것은 저것이 바탕 되어 일어나며, 나는 남을 의지하여, 남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변해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내 것이다"하는 물질적 소유관념과 '내가 옳다'라는 의식적인 고정관념을 비워버리는 삶으로의 대전환인 것입니다 놓았을 때 일체를 소유할 수 있으며, 비워버렸을 때 일체가 꽉 차서 摩訶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한 티끌 속에도 十方을 머금을 수 있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 十方)'의 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일체를 놓아버려야 한다는 '방하착(放下着)'이야말로 모든 실천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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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 전생에서 열반까지, 옛 그림으로 만나는 부처 옛 그림으로 배우는 불교이야기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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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과 석가모니의 일생, 거기에 본인의 이야기가 적절히 가미되어서 자칫 관련없어 보일 것 같은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석가모니, 옛 그림, 나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엮는 것은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말미에는 들었다.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을 읽은 이후로 옛 그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 관심이 흥미가 되더니, 그 흥미가 옛 그림에 대한 애정으로 변하여 이 책도 선뜻 잡아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것>이 주는 편안함을 무슨 말로 나타낼 수 있을까?

<우리 것>이라는 말에서 물씬 풍기는 애국, 애족의 느낌만으로도 만족할 만은 한 것 같다만!

 

우리의 옛 그림들을 보노라면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금강산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신령스럽고 성스럽게 여겼다. 금강산에는 부처가 산다고 믿었다. 누군가는 신선들이 노닌다고 믿었다. 부처가 살고 있는 금강산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어 금강산을 유람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서로가 서로를 인자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혼인이다. (...) 禮는 두 사람이 仁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

 

*공자는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과 "배워서 아는 사람" 그리고 "곤란을 겪고 나서 아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가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깨우칠 때까지 계속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똑같은 문제로 거듭 넘어지는 이유다.

 

*번뇌를 없애고 검소한 생활을 택한 두타제일의 꽃 마하가섭, 부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한 다문제일의 꽃 아난존자, 지혜가 가장 뛰어난 지혜제일의 꽃 사리불존자, 공의이치를 가장 정확히 분별한 해공제일의 꽃 수보리존자, 부처의 법을 가장 조리 있게 가르쳐 준 설법제일의

꽃 부루나존자, 신통력이 뛰어난 신통제일의 꽃 목련존가, 교의에 대한 논의가 가장 뛰어난 논의제일의 꽃 가전련존자,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마음의 눈이 열려 천상 세계를 잘 본 천안제일의 꽃 아나율존자, 계율을 지키는 데 타의 모범이 된 지계제일의 꽃 우바리존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배운 바를 실천한 밀행제일의 꽃 라훌라존자, 이 열 송이의 꽃을 부처의 10대 제자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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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삶의 나침반이 있다
법상 지음, 용정운 그림 / 아름다운인연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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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분이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대한 영화 <위대한 침묵>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절이다.

<내가 '깨달음'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바로 깨달음이다. p300> 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결국 내 안의 진실한 <나>를 만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진리인 것일까?

하느님, 하나님, 예수님, 불성, 우주, 이 모든 것은 결국 같은 것을 이르는 말일까? -  바로 <나>!

 

kbs 다큐 <세상 끝의 집>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그런 봉쇄수도원에서 침묵과 묵상으로 神<나>을 찾고,  어떤 이들은 산사에서, 어떤 이들은 임사체험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자연 등등에서 각자의 신<나>을 찾고 있는, 또는 찾은 것인가 싶다.

 

그렇다면 세상의 진실은 바로 <나>인 것일까!!

 

 

 

 

 

 

*완벽하지 않은 당신, 그래서 다행이다.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대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그들이 바뀌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살피라. 그들은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가 나를 찾아온 사명이 있기때문이다. 사실은 내 안에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삶의 지혜를 주기 위해 그들은 나를 찾아온 것이며, 근원에서는 내 안의 어떤 문제들이 그들을 내 삶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이 내게 온 이유는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들은 내가 변화됨으로써 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혹은 지혜를 얻고 성장할 때까지 그들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그 부분이야말로 내가 그를 통해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힌트다.

 

*모든 괴로움은 언제나 깨달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찾아 온다. 또한 당신을 돕기 위해 찾아온다. 당신이 죄 지은 것이 많아서 그 죄를 응징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자비), 당신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지혜) 오는 것이다. 즉 모든 괴로움은 곧 '지혜'와 '자비'를 품고 온다.

 

*사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어떤 것이 좋을 때 '나는 그것이 좋아'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좋아'라고 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것이 아닌 것들을 좋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둘로 나누어 차별하는 분별심이 작동하는 것이다. 분별심은 우리를 중도의 지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는 생각이야말로 정확히 틀렸다는 것을 기억하라.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바로 그 일이 안 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 부정적인 생각 없이,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근원에서 턱 내맡기고 저질러 보라. 결과는 아예 생각지도 말고 다만 행하라. 잘되고 안 되고는 우주의 뜻이라 생각하고 내맡기면 오로지 힘을 한 방향으로 쓰게 된다. 그때 우주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다. 결과는 시작하는 마음 안에 이미 담겨 있다. 첫 마음이 전부다.

 

*육식보다는 채식을, 대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때에 맞춰 먹고, 조금씩 먹으며, 천천히 먹으라.

 

*'주는 마음'을 연습하면, 계속해서 더 줄 수 있는 상황, 즉 부와 풍요가 넘쳐나게 된다. 계속 줄 수 있는 현실이 창조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상대방에게 주라. 성공하고 싶다면 남의 성공을 도와주라. 진급하고 싶다면 남의 진급을 도와주라.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를 사랑하라.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베풀어 주라. '주는 것'은 곧 '받는 것'이다. 상대방은 곧 나 자신이다. 근원적으로 너와 나라는 분별은 없다. 그렇기에, 너에게 주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만약 붙잡고 있는 것이나 사로잡혀 있는 것이 있다면, 대상을 실체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 어떤 대상도 실체는 없다. (...) 그저 오고 가는 모든 것을 붙잡아 집착하지 말고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것이 '놓아버림'이다. 버리려고 애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붙잡지만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삶 자체에 전부 '내맡겨' 보라. 우주법계의 큰 질서에 완전히 내맡겨 보라. 내맡기고 가볍게 살아가라. '내가' 잘 살아 보려고 애쓰는 것은 아상에 휩쓸린 어리석은 삶일 뿐이다. 나는 없다. 내가 있다고 여기면서 내가 어떻게 해 보려는 마음이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나에게 삶을 맡기지 말고 그저 삶 그 자체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마음 편히 살라.

 

 

 

*지금 이대로의 현실이 바로 진실이요 진리다. (...) 그런데 이처럼 이대로가 바로 진리라면 왜 내 인생은 괴로운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분별심 때문이다. 분별심이란 지금 이대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하면서 좋다거나 나쁘다는 등으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면 그 반대편도 상승한다. (...) 참된 자비는 둘 중 어느 하나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뉘지 않은 전부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둘로 나누지 않는 不二의 방식이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 방식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과 '알아차림'이라는 놀라운 연금술이다.

 

*不二法, 나와 둘로 나뉜 존재는 없다.

 

*삶을 앗아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안의 생각과 판단들이다. 생각이라는 허망한 환상 속 세상에서 사느라, 생생한 현실을 죽이지 마라. 매 순간을 생생히 경험하고 누리고 느끼며 온전히 살아 내라.

 

*직관력은 삶에서 힘을 빼고, 유연해져서 그 모든 것이 들어오도록 자신을 활짝 열어 자연스러운 삶에 자신을 내맡길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된 고요함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난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인이 되어 생각을 필요할 때만 쓰라.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을 뿐이지 불완전한 사람은 없다. 불행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뿐 불행한 삶은 없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부족은 없다.

 

*어떤가? 분별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공연히 힘들여 분별해 놓은 그 환상에 빠져 제 혼자 허우적거리고 살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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