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마음공부
법상 지음 / 무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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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放下着)!

 

어떻게?

 

그냥!

 

......

 

 

 

 

 

 

*한 사람을 죽이면 그는 살인자이다. 수백만 명을 죽이면 그는 정복자이다. 모든 사람을 죽이면 그는 신이다.(로스탕의 명상록 중)

 

*복잡한 정보로 짜 맞추는 해답보다 고요하고 텅 빈 가운데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참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턱 놓고 가면 맑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우리의 의식은 가장 맑게 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것, 내 가족, 내 돈, 내 생각, 내 가치관 등등 '나'라는 의식으로 인해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가지고 붙들려는 삶'을 '놓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커다란 의식의 전한이 필요합니다. 붙들었을 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놓았을 때 진정 잘 되어 나가는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 말입니다. (...) 일체를 놓는 것,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방하착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생각으로 이것과 저것을 갈라놓고, 나와 남을 갈라놓으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이것은 저것이 바탕 되어 일어나며, 나는 남을 의지하여, 남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변해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내 것이다"하는 물질적 소유관념과 '내가 옳다'라는 의식적인 고정관념을 비워버리는 삶으로의 대전환인 것입니다 놓았을 때 일체를 소유할 수 있으며, 비워버렸을 때 일체가 꽉 차서 摩訶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한 티끌 속에도 十方을 머금을 수 있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 十方)'의 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일체를 놓아버려야 한다는 '방하착(放下着)'이야말로 모든 실천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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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 전생에서 열반까지, 옛 그림으로 만나는 부처 옛 그림으로 배우는 불교이야기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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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과 석가모니의 일생, 거기에 본인의 이야기가 적절히 가미되어서 자칫 관련없어 보일 것 같은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석가모니, 옛 그림, 나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엮는 것은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말미에는 들었다.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을 읽은 이후로 옛 그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 관심이 흥미가 되더니, 그 흥미가 옛 그림에 대한 애정으로 변하여 이 책도 선뜻 잡아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것>이 주는 편안함을 무슨 말로 나타낼 수 있을까?

<우리 것>이라는 말에서 물씬 풍기는 애국, 애족의 느낌만으로도 만족할 만은 한 것 같다만!

 

우리의 옛 그림들을 보노라면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금강산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신령스럽고 성스럽게 여겼다. 금강산에는 부처가 산다고 믿었다. 누군가는 신선들이 노닌다고 믿었다. 부처가 살고 있는 금강산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어 금강산을 유람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서로가 서로를 인자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혼인이다. (...) 禮는 두 사람이 仁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

 

*공자는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과 "배워서 아는 사람" 그리고 "곤란을 겪고 나서 아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가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깨우칠 때까지 계속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똑같은 문제로 거듭 넘어지는 이유다.

 

*번뇌를 없애고 검소한 생활을 택한 두타제일의 꽃 마하가섭, 부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한 다문제일의 꽃 아난존자, 지혜가 가장 뛰어난 지혜제일의 꽃 사리불존자, 공의이치를 가장 정확히 분별한 해공제일의 꽃 수보리존자, 부처의 법을 가장 조리 있게 가르쳐 준 설법제일의

꽃 부루나존자, 신통력이 뛰어난 신통제일의 꽃 목련존가, 교의에 대한 논의가 가장 뛰어난 논의제일의 꽃 가전련존자,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마음의 눈이 열려 천상 세계를 잘 본 천안제일의 꽃 아나율존자, 계율을 지키는 데 타의 모범이 된 지계제일의 꽃 우바리존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배운 바를 실천한 밀행제일의 꽃 라훌라존자, 이 열 송이의 꽃을 부처의 10대 제자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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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삶의 나침반이 있다
법상 지음, 용정운 그림 / 아름다운인연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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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분이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대한 영화 <위대한 침묵>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절이다.

<내가 '깨달음'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바로 깨달음이다. p300> 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결국 내 안의 진실한 <나>를 만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진리인 것일까?

하느님, 하나님, 예수님, 불성, 우주, 이 모든 것은 결국 같은 것을 이르는 말일까? -  바로 <나>!

 

kbs 다큐 <세상 끝의 집>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그런 봉쇄수도원에서 침묵과 묵상으로 神<나>을 찾고,  어떤 이들은 산사에서, 어떤 이들은 임사체험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자연 등등에서 각자의 신<나>을 찾고 있는, 또는 찾은 것인가 싶다.

 

그렇다면 세상의 진실은 바로 <나>인 것일까!!

 

 

 

 

 

 

*완벽하지 않은 당신, 그래서 다행이다.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대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그들이 바뀌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살피라. 그들은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가 나를 찾아온 사명이 있기때문이다. 사실은 내 안에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삶의 지혜를 주기 위해 그들은 나를 찾아온 것이며, 근원에서는 내 안의 어떤 문제들이 그들을 내 삶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이 내게 온 이유는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들은 내가 변화됨으로써 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혹은 지혜를 얻고 성장할 때까지 그들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그 부분이야말로 내가 그를 통해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힌트다.

 

*모든 괴로움은 언제나 깨달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찾아 온다. 또한 당신을 돕기 위해 찾아온다. 당신이 죄 지은 것이 많아서 그 죄를 응징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자비), 당신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지혜) 오는 것이다. 즉 모든 괴로움은 곧 '지혜'와 '자비'를 품고 온다.

 

*사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어떤 것이 좋을 때 '나는 그것이 좋아'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좋아'라고 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것이 아닌 것들을 좋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둘로 나누어 차별하는 분별심이 작동하는 것이다. 분별심은 우리를 중도의 지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는 생각이야말로 정확히 틀렸다는 것을 기억하라.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바로 그 일이 안 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 부정적인 생각 없이,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근원에서 턱 내맡기고 저질러 보라. 결과는 아예 생각지도 말고 다만 행하라. 잘되고 안 되고는 우주의 뜻이라 생각하고 내맡기면 오로지 힘을 한 방향으로 쓰게 된다. 그때 우주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다. 결과는 시작하는 마음 안에 이미 담겨 있다. 첫 마음이 전부다.

 

*육식보다는 채식을, 대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때에 맞춰 먹고, 조금씩 먹으며, 천천히 먹으라.

 

*'주는 마음'을 연습하면, 계속해서 더 줄 수 있는 상황, 즉 부와 풍요가 넘쳐나게 된다. 계속 줄 수 있는 현실이 창조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상대방에게 주라. 성공하고 싶다면 남의 성공을 도와주라. 진급하고 싶다면 남의 진급을 도와주라.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를 사랑하라.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베풀어 주라. '주는 것'은 곧 '받는 것'이다. 상대방은 곧 나 자신이다. 근원적으로 너와 나라는 분별은 없다. 그렇기에, 너에게 주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만약 붙잡고 있는 것이나 사로잡혀 있는 것이 있다면, 대상을 실체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 어떤 대상도 실체는 없다. (...) 그저 오고 가는 모든 것을 붙잡아 집착하지 말고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것이 '놓아버림'이다. 버리려고 애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붙잡지만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삶 자체에 전부 '내맡겨' 보라. 우주법계의 큰 질서에 완전히 내맡겨 보라. 내맡기고 가볍게 살아가라. '내가' 잘 살아 보려고 애쓰는 것은 아상에 휩쓸린 어리석은 삶일 뿐이다. 나는 없다. 내가 있다고 여기면서 내가 어떻게 해 보려는 마음이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나에게 삶을 맡기지 말고 그저 삶 그 자체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마음 편히 살라.

 

 

 

*지금 이대로의 현실이 바로 진실이요 진리다. (...) 그런데 이처럼 이대로가 바로 진리라면 왜 내 인생은 괴로운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분별심 때문이다. 분별심이란 지금 이대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하면서 좋다거나 나쁘다는 등으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면 그 반대편도 상승한다. (...) 참된 자비는 둘 중 어느 하나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뉘지 않은 전부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둘로 나누지 않는 不二의 방식이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 방식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과 '알아차림'이라는 놀라운 연금술이다.

 

*不二法, 나와 둘로 나뉜 존재는 없다.

 

*삶을 앗아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안의 생각과 판단들이다. 생각이라는 허망한 환상 속 세상에서 사느라, 생생한 현실을 죽이지 마라. 매 순간을 생생히 경험하고 누리고 느끼며 온전히 살아 내라.

 

*직관력은 삶에서 힘을 빼고, 유연해져서 그 모든 것이 들어오도록 자신을 활짝 열어 자연스러운 삶에 자신을 내맡길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된 고요함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난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인이 되어 생각을 필요할 때만 쓰라.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을 뿐이지 불완전한 사람은 없다. 불행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뿐 불행한 삶은 없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부족은 없다.

 

*어떤가? 분별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공연히 힘들여 분별해 놓은 그 환상에 빠져 제 혼자 허우적거리고 살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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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수업 - 삶을 창조하는 법상 스님의 마음학교 1
법상 글.그림 / 무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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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쪽에 온 자연이, 정성이 다 담겨있음을 알았다.

그런 사과가 내게로 왔다.

감사합니다, 스님!

 

 

 

 

 

 

*이것!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이 자리에 깨어 있을 수 있는 것, 이 자리로 가져다 주는 것! 그것만이 실재입니다. 내가 온전히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때 모든 걸 포용하게 되고, 내가 완전히 觀하고 있을 때 모든 것을 허용하게 됩니다. (...) 내 인생에서 뭔가 껄끄러운 평상심에서 벗어나는 무언가의 경계가 나타난다면 '아, 이게 바로 나를 붙잡는 방어벽이구나. 이게 바로 나의 행복과 자유로움과 깨달음을 방해하는 방어벽이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리고 그것을 포용하길 바랍니다. 나한테 오는 모든 것을 완전히 포용하기 바랍니다. 허용하고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진리는 나에게 엄청난 파동으로 파도쳐 들어올 것입니다. 그 파도쳐 들어오는 것을 내가 막지만 않으면 된다는 겁니다.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해 보았고, 전혀 새롭지 않으며 다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이 매 공양 시간을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전혀 새로운 일을 할 때나 전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때는 어때요? 온 감각이 다 깨어나고, 집중하게 됩니다. 그것처럼 밥 먹을 때도 밥 먹는데 온전히 집중하게 되면서 깨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밥 먹을 때 오직 밥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파장을 담고 있는 얼음판 조각 하나에서 조약돌 3개의 입체상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조각과 파장 하나에서 전체를 볼 수 있듯이, 나라는 존재 속에서 이 우주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뿐만아니라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그 어떤 물질이든, 사람이든, 생명이든, 공간이든 그 모든 것은 다양한 형식의 파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온 우주의 모든 전체 정보를 다 볼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이다.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근본적인 차원의 에너지 장을 영점장(zero-point energy) 혹은 정보장(field of information)이라고 말합니다. 영점장이란 양자물리학의 주요개념으로 허공이 텅 비어 있어서 아무것도 없느 ㄴ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국소성을 가능하게 하는 온갖 정보와 능력, 특성을 다 갖추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장일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일체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단고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이 영덤장, 정보장을 불교식대로 표현하자면 연기법이라는 상의상관성, 업보, 인과응보가 펼쳐지는 장인 법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켜보는 것이 바로 나의 본체이고 당체입니다 그래서 '관찰하라' '깨어 있으라' '어떤 놈이 관하고 있는가 그것을 돌이켜 보아라' '보는 놈을 돌이켜 보아라' 하는 얘기가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본다는 것, 주시한다는 것, 분별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그 상황을 지켜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순간순간 부처로 만들어 준다 이 말입니다.

 

*현실을 창조하려면 마음이 맑게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맑고 깨끗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깨끗하고 텅 비어 있을 때 어떤 한 가지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강력한 에너지를,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항상 혼란스럽고 망상이 들끌고 온갖 생각들이 죽 끓듯이 왔다갔다 오락가락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도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니 한 가지 원하는 것에 힘이 집중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잘하는 말로 몰입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흐트러져 우리 마음에너지를 강력하게 쓸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명상과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명상과 기도 끝에 하는 발원이 힘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창조해 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원하던 모든 것이었음을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깨달을음 얻고자 하는 모든 목적이 자비와 사랑에 있다면, 사실 내가 수행을 해 나가면서, 마음공부를 해 나아가면서 또 절에 다니면서, 내가 어느 정도 마음공부가 되었느냐, 내가 어느정도 영적으로 성숙되었느냐, 나의 삶에 어떤 진보가 있었느냐, 내가 조금 더 깨달음에 가까워졌느냐, 이것을 살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얼마만큼 자비로워지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절에 다니기 전보다 절에 다니면서 조금 더 자비로워졌느냐, 무자비하고 악의에 찬 화와 증오에 물든 행동을 얼마만큼 더 줄여 나아가고 있느냐, 내가 많은 사람들을 볼 때 얼마만큼 더 사랑이 깊어지고 있느냐, 내 마음이 사랑과 자비로 넘쳐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얼마만큼 수행이 되어가고 있고, 얼마만큼 삶을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을 판가름해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잣대가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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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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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차에서 벌써 압도 되었다.

 

-내가 되다

-우리가 되다

-그 이상이 되다

 

이보다 더 멋진 목차를 본 적이 없었을 것 같은 강렬함이 밀려들었다.

나는 내가 된 적이 있었지 싶다.

나는 우리가 된 적도 있었지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이 된적은 있었을까?... 아니, 그 이상이 되고자 한적은 있었을까?...

 

오프라 윈프리 책들을 읽을 때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짐작했던 것 같다.

백인우월주의 속에서 성공한 오프라가 그래서 더 대단하고 위대해 보였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이 말만으로도 그의 위대함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것도 재선까지라니!!  책을 읽는 내내 이 부부의 위대함을 경탄해마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보았다.

 

미셸 부부를 보면 머리 좋은 사람이 정말로 부러워진다.

 

번역에 대해 내가 뭘 알겠냐마는 간혹 어떤 책은 번역이 더 매끄럽게 잘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싶은 책이 있더라. 그러나 이 책의 번역은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서 번역한 책이란 느낌이 전혀 없이 수려했다. 번역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내가 읽는 내내, 이 책은 번역을 정말 잘했네 라는 감탄을 수 번 했으니, 번역 <김명남>, 이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남들이 자신을 낮잡아 본다거나 어른들이 자신의 공부를 돕는데 열의가 없으면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그래서 쌓인 분노를 막된 행동으로 표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나쁜 애들'이 아니다. 나쁜 환경을 견디려고 애쓰는 것뿐이다. (...) 평소 무덤덤하고 과묵하지만 어느 집단에서든 가장 직설적인 편인 우리 어머니는 그때 2학년 선생님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최대한 상냥한 표현을 동원하여 당신에게는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으니 차라리 슈퍼마켓 계산원 일이 어울릴 거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은 우리가 정중하게 대하기만 한다면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가설을 지지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사람들한테 호통 좀 치지 마세요, 할아버지." 혹은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한테 못되게 좀 굴지 마세요." 가끔은 이 말도 덧붙였다. "대체 무슨 일에 그렇게 화가 나시는 건데요?"

 

*그것은 곧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좀 내달라고 부탁하거나, 변변찮은 수입에서 한 푼이나마 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싫다"라는 대답을 수십 수백 가지 방식으로 듣다가 마침내 "좋다"라는 대답을 한 번 듣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버락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가 말하는 희망은 내 희망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개천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의지할 것은 전화였다. 1989년은 전화기가 주머니에 쏙 들어가던 시절이 아니었다. 문자메시지란 것도, 키스를 대신할 이모티콘도 없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잠재적 배우자를 겉에서부터 판단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선 외모와 경제적 저망을 따졌다. 그렇게 고른 상대가 설령 말이 안 통하거나 자신의 약한 면을 내보이기를 꺼리는 사람이더라도, 시간이나 결혼 서약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버락은 완전히 성숙한 인간으로서 내 인생에 들어왔다. 처음 대화를 나눌 때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나약함을 드러내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진실함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일터에서의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더 큰 목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흔쾌히 희생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이, 결국에는 인식의 문제였다. 우리가 눈앞의 풍경을 어떻게 보기로 결정하는가에 달린 문제였다.

 

*낯선 사람이 어머니에게 미셸 오바마의 어머니 아니냐고 물으면,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러게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하고 대꾸한 뒤 보던 용무를 마저 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우리 모두 서로를 초대하여 받아들이자는 것, 그러면 아마 우리는 덜 두려워할 수 있을 테고, 덜 속단할 수 있을 테고, 쓸데없이 우리를 갈라놓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완벽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목표를 정해두고 그곳에 다다라야만 한다는 말도 아니다. 우리가 자신을 남들에게 알리고 들려주는 것,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는 것,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그리고 기꺼이 남들을 알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무언가가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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