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피싱
나오미 크리처 지음, 신해경 옮김 / 허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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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피싱
#나오미크리처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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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친구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까지 상상한 AI는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인간과 대척점에서 경쟁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을 돕는, 혹은 그런 기능을 하는 AI에 대한 상상은 너무나 극단적인 허구에만 있어온 것은 아닐까. 인간을 돕는 하나의 자애롭고 이타적인 인격으로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지키는 상상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동시에 특별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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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 모두를 정말 잘 알아. 너무너무 잘. 그리고 가끔은.....가끔은 나도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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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드러내고 나면 힘이 생기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진짜 자신을 알아봐주면 기분이 나아져. 그런일은 진정한 우정과 관계의 열쇠가 되기도 해."(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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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향한 진심과 새로운 세대의 공감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특별한 연대를 만들어낸다. 설정부터 편견을 떨쳐버리고 전개는 흥미로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뗄 수 없는 강력한 흡입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나와 현실에서의 나는 괴리를 만들 수 있지만 우정에서 만큼은 제약이 없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상황에 있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함께하고 싶은 진심은 통하는 것이다. AI 친구의 능력은 활용과 기능의 수준을 넘어선다. 자기주도적으로 헌신하는 AI의 능력은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수준에서 주인공에게 엄청난 힘이 된다. 미래시대에 만날 램프의 요정 지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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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프는 아버지를 피해 프로그래머 엄마와 10년이 넘게 도피 생활을 한다. 잦은 전학으로 친구라고는 온라인 소셜 커뮤니티 캣넷에서 사귄 온라인 친구들뿐이다. 스테프는 그럴수록 캣넷에 접속하고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는다. 어차피 학교는 떠날 곳이고 스테프 역시 어딘가에 새로 온 아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은 캣넷뿐이고, 캣넷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고양이 사진을 공유하며 좋아하고 자신의 일상을 전하며 성별, 지역, 빈부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공간이 그들이 숨 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태프는 새로 간 학교에서 레이철이라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캣넷의 다른 유저 체셔캣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그런데 해커로만 알았던 체셔캣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는 이어지고 스테프는 예상치못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건의 진실을 위한 탈출구를 찾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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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정말 새롭다. 미래의 어느 시점을 설정하지만 완전히 공상과학영화를 떠올릴 만큼 낯선 미래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sns에 접속하고 온라인에서 쉽게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현실감을 준다. 동시에 AI 체셔캣은 소설에 등장하는 AI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이다. 십대 청소년과 어울리며 서로를 생각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특유의 능력을 만나 통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때문이다. 어떤 시공간에서도 인간은 존재와 연대하고 선한 마음을 나누려는 시도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흥미진진한 스토리 속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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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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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천선란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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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신비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놀라운 필력으로 예측 불가한 서사를 이끌고 나가는 것, 천선란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을 작가의 소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상상의 세계를 그린다지만 현실적인 설정들과 맞물려 공감을 이끌고 호소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꼭 읽어야하는 특별한 소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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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파랑>이 동물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감수성을 느끼게 했다면 이번 <나인>은 '식물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누브'라는 낯설고 매혹적은 설정을 만들었다. 인간이 아닌 흙속에서 식물처럼 자라나는 신비로운 존재. 그리고 주인공 나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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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처럼 땅에서 자라는 종족을 부르는 그 이전 행성에서 자신들을 지칭했다던 단어, 초거성 리겔 근처에 있던 지구만 행성. 그곳에서 살았던 종족 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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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선배 원우의 실종사건과 그 전말을 알게된데는 나인의 특별한 능력, 식물의 소리를 듣는데서 시작한다. 연약한 식물의 기운을 가졌지만 알아내려는 집념을 보여주는 나인의 모습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며 동시에 건강한 정의감을 갖고 있다. 낯선 목소리들로부터 마치 힘을 얻는 것처럼 나인은 그 사건에 대한 열의로 용감하게 뛰어든다. 친구 미래와 현재, 승택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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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방법은 딱 하나다. 세상 일이 신경을 전부 긁기 전에, 더 큰 일이 또 들러붙기 전에 발목에 채인 일부터 빨리 치우는 것이다. 애초에 알지 못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알아 버렸는걸. 그리고 도저히 모르는 체할 수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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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설정으로 시선을 끌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연상시키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서사를 이끌고 가는 추리의 방식은 이 소설이 얼마나 강렬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내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식물이라는 마치 풍경과도 같은 정적인 대상이 이 소설에는 역동하는 새로운 힘이 된다. 독창적인 이야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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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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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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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의 시간, 하나의 작품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에 마음의 가장 여린 부분을 베인 사람이 떠올려본다. 작품을 보여줄 때, 그는 자만했었고 작품을 평가받고 나서 그는 자책한다. 이어서 자학한다. 자만에서 자책, 그리고 자학의 과정까지 ‘자신’이 존재하며 이는 자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 사건이다. 작품만을 평가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의식은 작품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면서 감정은 언제나 초과한다.
더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다음 일이다. 일단 지금 이 합평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작품을 잘 쓰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므로 전략이 필요하다. 누가 좋은 평가를 받는지, 나에게는 어떤 평가를 했는지 여러 번 따져봐야 한다. 교수는 “더 잘 실패하라”고 하지만 더는 실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절박한 마음과 달리 날 선 공격들이 들어오고 나의 방패가 되어줄 작품은 너덜너덜 해진 상태다. 전의를 상실하고 어떤 반박도 해명도 할 수 없을 때, 구원자를 만난다. “다른 사람들 말 듣지 말아요.” 전우애를 나눌만한 동지의 말에 수십 번 비평이라는 창에 뚫린 마음이 빠르게 회복된다. 그리고 그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예술대학의 합평시간에서 주인공인 나는 빌리라는 대학원생 동료로부터 긍정적인 코멘트를 받는다. 코멘트를 시작으로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뉴욕에서의 베이스캠프인 아파트먼트를 함께 점유하게 된다. 나에게는 불법전대의 사정에도 제법 넓은 아파트가 있었고 재능말고는 믿을 만한 구석이 없는 빌리는 나의 배려로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된다. 서로의 글을 나누고 취향이나 관심사를 공유하며 미래를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그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전부여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온 환경과 경제력, 가족의 배경을 비롯해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은 매우 달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장 빈번하게 “내가 살게”라는 말을 하며 서로를 배려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성장소설만이 허락되지 않는다. 예술을 위해 분투하는 두 청년의 성장서사만이 이 소설을 이끌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환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재능과 재력 사이의 묘한 권력 관계가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특별한 지점이다. 예술을 지향하지만 삶을 지탱해야하는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고민을 중심으로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소설로서 완벽한 재미를 준다. 그래서 합평의 장면으로 추억에 사로 잡혔으나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와 예상치못한 사건에 완벽히 사로잡힌 채로 읽었다. 잊지 못할 소설이 될 것이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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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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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지내요

"육체가 그 의무를 다했을 때 고통받는 영혼을 그 육체로부터 구해내는 것은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왔을 때 영혼을 구할 힘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 그것이 두렵다면 예정된 시간 전에 영혼을 구해야한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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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열었을 때 마치 가벼운 안부같은 제목은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와 다른 무게로 느껴졌다.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까. 또한 질문 앞에 대답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평소 안락사라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수업의 주제나 관련 도서를 읽어왔다. 그중 세네카의 말은 안락사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연구의 텍스트들이나 학자들의 명언보다 이 책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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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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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선고를 받은 친구로부터 함께 마지막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받는다. 안락사약을 구했으며 조용히 삶을 끝내고 싶다는 친구의 말은 이해불가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여행에 동참하고 낯선 평화 속에서 친구의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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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차원도 효율의 차원도 아닌 병마로 인한 고통 앞에선 연약하지만 강렬한 목소리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든다. 병에 대해 선악의 구도를 대입하고 환자를 통해 영웅서사를 이끄려는 이들을 친구는 통렬하 비판한다. 그 목소리는 암환자로부터 가능한 생생한 것이며 지금까지 놓쳐온 문제들을 자각하게 한다. 안락사를 죽음을 선택할 권리로 존중한다면 그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섬세하게 배려하는 '나'의 태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영웅서사를 강요하는 것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여정에서 감동과 비극을 기대하는 것은 독자로서의 월권(?)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대화는 일상적이면서도 깊이가 있고 나는 경청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카운트다운을 세듯 긴장할 이유는 없다. 마치 어제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평온의 첫번째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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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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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이 책은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 독자의 대답을 이끈다. 안락사를 쟁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친구의 곁을 지키며 무심한 듯 섬세한 주인공의 태도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어떻게 지내요'라고 독자가 묻고 싶은 사람이 그가 아닐까. 해박한 사회적, 문화적 지식으로 이야기는 충만하고 또한 세계와 친구 앞에서 유지하는 균형이 이야기에 함께하는 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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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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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을과두갈래길을지나는방법에대하여
#한지혜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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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소설가는 베스트셀러인 < #참괜찮은눈이온다 >의 저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04년에 출간된 소설집 <안녕레나>가 남긴 인상이 더욱 크다. 이 책은 새로운 표제작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지난 2004년에 출간된 <안녕레나>의 개정판이다. 그럼에도 <안녕레나>가 빠져있다. 소설 뒤 작가의 말에서 그 이유를 확인하고 작가의 결정을 존중하게 되었다. 문화사적인 의미는 있더라도 다시 호명할 이유를 고민했다고 작가는 밝혔다. 내가 2005년 즈음 그 소설을 읽을 때와 정보통신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기에 어쩌면 당시의 배경이 현재에 와서 읽히는데는 부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그 외의 소설들은 당시 출간된 작품이 대체로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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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길을 끈 소설은 <호출1995>였다. 호출번호를 통해서 연결된 두 사람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내며 동시에 짧고 강한 아이러니를 남긴다. <안녕레나>를 읽었을 때 받은 인상과 닮아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앞에서부터 차근차른 읽기보다는 <안녕레나>를 찾다가 작가의 말을 먼저 확인하여 자신의 방향과도 같다는 <왜 던지지않았을까, 소년은>을 다음으로 읽었다. 특히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른 2002년 집단광기에 대한 연극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포착된 장면들은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나 역시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 좀더 적극적으로 대열에서 거리를 두었다면 주인공과 같은 생각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볼보이의 행동을 통해서 열기와 광기의 모습을 보였던 집단과 대비를 이루며 문제를 제기한다. 볼보이의 행동과 이를 지켜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이 소설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듯 하다. 갈퉁이 폭력을 정의하며 "인간 존재가 그로인해 영향력을 받은 결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전부"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문제제기는 그 폭력의 범주에 적절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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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읽지 못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읽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싶다. 일단 그들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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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한마을과 두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낯설지만 메시지가 분명한 우화이다. 타인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꾼이 마음을 읽는 자수비단 만드는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다. 길지 않은 우화와도 같은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과 삶, 그리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강렬하게 소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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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의 작품이지만 작가가 새롭게 문장을 다듬고 세상에 다시 나왔다. 시간의 경과이상으로 작품 하나하나의 진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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