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봄의불확실성 시그리드누네즈 소설 민승남 옮김 열린책들..불확실성. 확신이 없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자리에서 주저할 뿐이지만 그 고민이 주는 긴장감은 결국 어떤 대답에 도달하게 한다. 그해 봄, 저자인 시그리드누네즈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불확실성 속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스스로 단절의 시간을 가졌던 그 때, 코로나19의 시기. 전세계가 팬데믹의 시간 앞에 어쩔 줄 모르며 봉쇄로 시간을 버티었던 기억은 우리 누구에게나 있다. 불안한 고요, 불확실한 내일. 이제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랄까. 하지만 그런 안일한 마음이 앞설 수 없는 현실이다. ..일상의 평화와 자유가 불안과 고립감으로 뒤바뀐 시간. 분투는 우리만이 아닌 지구 반대편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작가인 주인공은 친구의 죽음 앞에서 기억들을 소환한다.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로 섬세한 문장들이 마음에 켜켜히 쌓이는 이유는 시그리드 누네즈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지인의 집에서 앵무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집에서 평화롭지만 적막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던 중 주인공보다 앞서 앵무새를 돌봤던 베치라는 청년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고 예상치 못하게 함께한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팬데믹의 시기에는 더한 불안과 불신으로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상을 어느정도 선에서 공유할 수밖에 없다. 베치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기에 주인공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어쩌면 지인의 애완동물을 통해 예상치못한 만남으로 한 집에서 거주하는 설정은 로맨스의 시작처럼 짐작할 수도 있지만 노인인 소설가와 예민하고 분노조절이 어려운 대학생의 만남에 심지어 팬데믹 시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물리적 봉쇄는 열 수 없는 시기라도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어가는 것은 희미하지만 평온의 "확실성"을 준다. 소설이지만 시그리드누네즈의 경험담처럼 느껴지는 것은 진실하고 울림이 깊은 문장에서 온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건너온 시기를 기록해주는 작가와 함께한다는 것에 감동을 느낀다.
금오신화김시습돌베게..금오신화를 처음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 예술사이자 학자로 여겨진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만나기도 했고 분량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꿈과 상상력,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절히 어울려져 매혹적인 스토리의 단편소설들이 실려있다. 이전에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지는 않지만 이번 돌베게의 금오신화는 원문에 충실한 부분과 삽입된 시의 문학성이 특히 돋보였다고 본다. 과거에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독서는 각각의 시에 깊게 이입하며 읽을 수 있는 좀더 풍요롭고 입체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금오신화의 단편은 다음과 같다. 1.만복사저포기만복사에서 저포로 내기를 하다2.이생규장전 이생이 담장을 넘어가다3.취유부벽정기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놀다4.남염부주지 남염부주에 가다5.용궁부연록 용궁의 잔치에 초대받다마지막으로 갑집 뒤에 쓰다라는 짧은 글이 실려있다. ..돌베게에거 출간된 금오신화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작품해설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대해서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소설이랄지, 금오신화가 받은 사상적 영향이랄지, 이전에 신비한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부분이 해설을 통해 좀더 깊이있는 읽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작품해설에서 이 책에 대한 해설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금오신화』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서 김시습 자신이 취한 행로(行路)와 실존적 태도의 미학적 육화(肉化)다. 이 점에서 그것은 김시습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더없이 잘 보여 주는 일종의 ‘자화상’이라 이를 만하다."..금오신화는 고전 중에 고전이다.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작가인 김시습이 이 소설을 쓴 시대적, 사상적 배경을 통한 깊이 있는 이해에 다다르면 갖는 위상을 더욱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각각의 이야기에 빠지고 아름다운 시 한수가 기억에 남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김시습의 삶과 아픔이 담겨 있는 작품들을 오래 생각하게 되도록 여운이 남았다.
정약용의 일생을 다룬 다산은시간 순으로 정방향이 아닌일생의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역사속 인물로 그 시작과 끝을 익히 알기에 이런 사건별로의 구성은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정약용을 교과서적 역사적 위인이상으로, 그의 일대기를 알 수 있게 된 점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의 삶은 학자이면서 삶을 그리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진심어린 대목들이 큰 감동을 주었다...2권에서는 소설적 재미를 마무리하며 그의 연보와 주요 등장인물들이 정리되어정약용이라는 인물을 기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산을 한승원 소설가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 기쁘다. 개정판을 많은 사람들이 만나주면 좋겠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물처럼 구름처럼 흘러간다. 흘러가면서 가뭇없이 사라지게 된다. 사라진다는 것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일단 마음에 걸린 것들을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그것들의 결과 무늬와 색깔을 속속들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산림의 선비는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살되 그 삶을 기록해야 한다.(211쪽)..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문장들도 삶에 큰 귀감이 될 듯하다.
앨리스와티타임정소연래빗홀..다세계.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 내가 없는,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찾아가는 일. 그곳의 정보를 수집하여 지금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 다중 우주의 가능성에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려는 욕심을 갖는다. 내가 몰랐던 세계에도 내가 있지만 이미 내가 아닌 존재. 어쩌면 이 세계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연. ..주인공 리즈는 다세계 연구소 연구원으로 74번째 세계를 출장으로 가게된다. 그는 거기서 평소 좋아했던 소설가 앨리스를 만나지만 그녀는 그 세계에서는 리즈처럼 공간이동을 하는 국방부 이계 정보수집원으로 살고 있다. 우연히 그녀와 티타임을 갖게 되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자신과 자신의 남편의 비극을 보게 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분투하지만, 사실상 그녀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세계는 또다른 결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시차처럼 세계는 예상할 수 없는 낙차를 갖고 있다. 평행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이지만 동시에 운명처럼 결정되어 있다. 인간의 의지로 안전하게 지나가려는 마음은 운명과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앨리스와 리즈의 티타임은 시공간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들의 후일담이라기 보다는 삶을,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의 진심으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밀레나에게쓴편지카프카솔출판사우주서평단..카프카적이다, 라는 말은 어떤 인상을 남기는가.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난해하고 불가해한 상황에서 낯선 기분에 사로잡힐 때, 카프카의 소설을 읽었을 때를 떠올린다. 길을 잃거나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을 망연자실 기다릴 때처럼. 어쩌면 그의 글은 수신자를 알 수 없는,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목적지를 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정확한 대상에게 그리운 마음과 애정을 다해서 편지를 쓴다면 어떨까. 밀레나에게 쓴 편지는 카프카가 죽기 3년전 사랑했던 여인 밀레나 폴락에게 남긴 편지글들을 묶은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은 문학적 서사가 아닌 카프카 연구 사료에 가까울 것이지만 이또한 문학적이다. 그리고 카프카적이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영토를 넓히고 그 경계를 다시 만들어낸다. 밀레나를 생각하는 마음, 그럼에도 어딘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모습을 편지글을 통해서 읽어내려갔다. 카프카의 편지만 이어지기 때문에 미치 대화를 궁금해하듯 밀레나의 답신이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카프카의 편지 내용이 대체로 구체적이라서 어느정도 그들의 감정선을 유추하며 읽을 수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며 동시에 조심스러운 카프카를 확인한다는 것은 또한 특별했다...그대가 오해하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소, 밀레나.첫째로, 내 병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오. 잠만 조금 자고 나면 메란에 있을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을 정도요. (145쪽)..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 각혈만 멈추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편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마도 밀레나 역시 그를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쾌유를 빌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그의 병환은 깊어지고 병의 습격으로 펜놀림하나 어려웠음를 고백한다. 그는 당신의 k라고 편지를 마무리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밀레나에게는 어떤 슬픔이 몰려왔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의 편지를 따라가면서 선명해진 밀레나가 과연 나의 상상대로인지도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카프카의 편지만큼 밀레나의 답신도 궁금했다. 나의 마음을 해소하듯 부록에서는 막스브로트에게 쓴 밀레나의 편지가 실렸다. 카프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확인하면서 이 책이 '편지' 이상임을 느께게 되었다.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