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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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든 소설이든 기대하게 하는 작가 임경선의 신작이다. 
사전서평단의 기회로 먼저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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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사랑
서로에 대한 마음을 설계하고 관계를 구축하는 것, 마치 감정의 내진설계를 하듯 안전하게 마음의 평온을 점검한다. 굳건히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확인하며 마치 다리를 놓듯이 서로를 받아들인다. 
주인공 수진은 서른여섯의 독신여성으로 유능한 건축가다. 그녀는 직장상사이자 건축가인 혁범과 연인 관계다. 그는 유명 여배우와 이혼했으며 한명의 딸이 있다. 그들은 고요 속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연인으로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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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사의 사랑.
건물을 지었다면 그 공간이 환경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조경이 필요하다. 일상의 아름다움, 그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순간의 행복을 구상하는 것이 조경사의 일이다.
건축가인 수진에게 여덟살 연하의 젊은 조경사의 한솔이 다가온다. 사랑을 숨길 수 없는 투명한 청년은 수진의 일상에 꽃처럼 피어난다. 사려깊지만   진심을 전하는 힘은 거절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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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소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은 어른의 사랑이야기다.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독자로서 읽으며 행복했다. 사실 사랑이야기는 너무나 흔한 서사가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랑의 강도와 순수성을 생각한다면모든 사랑이야기는 새롭다. 독자가 느끼는 설렘과  기쁨 그리고 슬픔의 감정들을 새롭게 만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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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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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한없이 밝거나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이기 전에 매력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웠을 텐데, 수진에겐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만큼의 차분한 어둠과, 손쉬운 자기연민으로부터 자유로울 만큼의 힘찬 밝음이 함께 머물렀다.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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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럴 때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일들은 알아서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어.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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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럽지 않아도 좋아요.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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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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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비투스

이 책의 서문에서 '아비투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폭로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나는 '폭로'보다는 '자각'이라는 차원이서 받아들인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찾아 무언가를 성취하는데 첫번째 시도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를 안다는 것에 있어서 대단히 주관적이거나 확증편향에 의존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이 나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의미는 있지만) 객관적 성취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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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을 쓴 이우성 시인은 "이 책을 읽을 당신은 운이 좋다"고 말한다. 동감한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자신에 대한 확실한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자신의 아비투스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심리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마치 만족과 결핍에 있어서 자신의 성적표를 받는 기분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인생을 긍정하는 실천적인 힘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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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위대한 경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특별한 재능을 실현하거나 성과를 더 많이 인정받고 싶든, 고급 아비투스는 당신의 목표 달성을 도울 것이다. 그리고 시야를 넓히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당신의 위치를 새롭게 설정할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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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쪽. 최정상 리그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새로운 트렌드를 사회학자들이 정리했다. 첫째, 조용한 부. 둘째, 눈에 띄지 않는 소비. 셋째, 애써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하기. 이 세 가지를 지키는 사람은 빛나지 않음으로써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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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쪽.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뇌뿐 아니라 주름, 몸짓, 말투, 억양, 발음, 버릇 등 우리를 나타내는 모든 것에 기록된 몸의 역사”라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회적 지위는 우리의 몸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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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쪽. 큰 야망은 아비투스의 명확한 변화를 요구한다. 정신, 문화, 지식, 돈, 신체, 언어, 관계,일곱가지 자본을 더 많이 가질수록 큰 야망을 실현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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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삶의 근본적인 변혁을 이끄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단순히 당위적 표현만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보편타당한 성공의 조언들이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각각의 자본들이 서로 연관되어 성장과 발전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부디, 지금부터라도 나의 아비투스를 통해 자신을 알고 자본을 활용하는 지혜로운 삶으로 이끌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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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 테마소설 1990 플레이리스트
조우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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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랑은처음이라서
1990 플레이리스트
테마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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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서 
언제든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나에게도 그렇다.
지금 음악을 듣고 있지만 
음악은 과거의 추억을 담아 그때로 돌아간다.
음악은 마음속에서 시공간의 자유를 허락한다.
1990년대. 요즘들어 자주 소환되는 시기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노래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여성가수들의 음악들이다.
물론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있었던 노래도 있다.
음악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작가들의 서사에 귀기울이다보면 나의 이야기도 함께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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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의 ‘눈동자’,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자우림의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 박지윤의 ‘Steal Away(주인공)’, S.E.S.의 ‘I’m Your Girl’, 한스밴드의 ‘오락실’, 보아의 ‘먼 훗날 우리’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음악들이다. 이 소설은 90년대 가요를 작가가 하나씩 선정에 그와 어울리는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그러면 이 노래를 알고 있던 독자는 자기 나름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에게도 노래와 관련된 추억이 있고 또한 기대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과 독자의 이야기 중간에 노래가 있고 그 거리가 좁기도 했고 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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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던 작품은 조시현의 <에코체임버>였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의 일상이 무척 선명해 공감을 받았고 또한 한스밴드 오락실의 가사 중 "승부의 세계는 너무너무 냉정해"를 과거와 현재의 상황에서 주인공에게 연상되며 여운을 남겼다. 한스밴드의 가사 속 서사가 짐작되는 지점이나 실패와 후회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했다. 아마 가요를 적절히 연상시키면서도 소설 안에서 가요를 주되게 형상화하여 읽는 내내 재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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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권민경 시인의 발문은 어쩌면 소설보다 더욱 공감을 자극해 여러번 다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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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들은 분명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고, 또 어느 정도 사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공감의 이야기이다. 2020년 현재까지 이어질 만한 강력한 공감.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읽혀온 문학 작품, 불려온 노래들처럼, 이 책의 소설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되길 원하며 독자를 바라보고 있다.”
- 권민경(시인), ‘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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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감이 넘치는 표지 속에 노란 원피스의 소녀는 헤드폰을 끼고 돌아본다. 그녀는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까. 나와 같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어폰을 나눠끼고 음악을 듣던 그 시절의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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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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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삼대

삼대, 아들에서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까지의 일대기는 그들의 지위를 막론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하게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과 분단, 그리고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100년의 이야기다. 아울러 그들의 4대라고 할 수 있는 공장노동자의 농성투쟁은 현재의 삶에서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인내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철도가 조선 사람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 (p.83)

가제본이라 책 내용의 일부가 담겨 있었지만 위의 대사는 읽는 내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의 역사와 연대가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황석영작가님의 입담이 발휘되며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특히 말씀이 고모는 마치 이 소설안에서 비공식적인 소설가처럼 재미나게 이야기를 지어낸다. 노동자 집안의 치열한 삶과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유쾌하게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가족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크레인에서 불안한 농성을 하고 있는 4대 공장노동자인 이진오에게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의 험난한 삶이 이어질 것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남은 이야기도 궁금하다. 또한 책을 읽으며 독자로서 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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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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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메들린밀러
이봄 출판사

여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신비로움 혹은 아름다움 그리고 완벽함.
여신은 여성에 대한 가장 고결한 명사로 인식된다.
하지만 '하급'여신 키르케에게는 다르다.
위대한 능력을 자랑하는 신들인 가족 그리고 신들의 세계에서 멸시당하며 그들은 키르케의 존재를 하찮게 여긴다. 아버지인 티탄 신족 태양신인 헬리오스에게도 모진 말을 듣고 결국 추방당하지만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강해지기를 열망한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위축되며 그들의 잔인한 말을 내면화하기를 거부한다. 아마도 그녀를 감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존재일 것이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다르다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아주 다른 여신이 된다. 통념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여신이 아닌 인간과 어울리며 자신의 강인한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마녀"가 된다.

"마법은 만들고 작업하고 계획하고 모색하고 파헤치고 말리고 다지고 빻고 끓이고 그 위에 대고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걸 다 했어도 실패할 수 있다. 신들의 방식과 다른 점이다."(110p)

신들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서사적 즐거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들의 능력이 열광하기 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장치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능력이 이미 서사의 장치로 정해진 그들보다 키르케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성장의 서사에 더욱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소설은 키르케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키르케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지 그리고 그녀의 욕망과 희망이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 놀라웠다. 신화와 오디세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이야기라서 어느정도 구속이나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키르케가 포함된 티탄신족, 올림포스신들 등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강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조화롭다.

키르케는 비련의 여주인공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신들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냉대받고 결국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다가 추방당하며 애정을 가졌던 인간으로부터도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추방의 시간을 자유로 인식하고 자신의 발전을 꾸준히 애쓴다. 그리고 인간들과 어울리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키르케는 비극이 아닌 성장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갖는 매력과 그리고 작가의 놀라운 필력에 큰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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