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떻게지내요

"육체가 그 의무를 다했을 때 고통받는 영혼을 그 육체로부터 구해내는 것은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왔을 때 영혼을 구할 힘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 그것이 두렵다면 예정된 시간 전에 영혼을 구해야한다." 세네카
.
.
이 책을 열었을 때 마치 가벼운 안부같은 제목은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와 다른 무게로 느껴졌다.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까. 또한 질문 앞에 대답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평소 안락사라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수업의 주제나 관련 도서를 읽어왔다. 그중 세네카의 말은 안락사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연구의 텍스트들이나 학자들의 명언보다 이 책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
.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122쪽)
.
.
나는 암선고를 받은 친구로부터 함께 마지막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받는다. 안락사약을 구했으며 조용히 삶을 끝내고 싶다는 친구의 말은 이해불가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여행에 동참하고 낯선 평화 속에서 친구의 곁을 지킨다.
.
.
의지의 차원도 효율의 차원도 아닌 병마로 인한 고통 앞에선 연약하지만 강렬한 목소리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든다. 병에 대해 선악의 구도를 대입하고 환자를 통해 영웅서사를 이끄려는 이들을 친구는 통렬하 비판한다. 그 목소리는 암환자로부터 가능한 생생한 것이며 지금까지 놓쳐온 문제들을 자각하게 한다. 안락사를 죽음을 선택할 권리로 존중한다면 그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섬세하게 배려하는 '나'의 태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영웅서사를 강요하는 것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여정에서 감동과 비극을 기대하는 것은 독자로서의 월권(?)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대화는 일상적이면서도 깊이가 있고 나는 경청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카운트다운을 세듯 긴장할 이유는 없다. 마치 어제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평온의 첫번째 조건일 것이다.
.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167쪽)
.
.
동시에 이 책은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 독자의 대답을 이끈다. 안락사를 쟁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친구의 곁을 지키며 무심한 듯 섬세한 주인공의 태도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어떻게 지내요'라고 독자가 묻고 싶은 사람이 그가 아닐까. 해박한 사회적, 문화적 지식으로 이야기는 충만하고 또한 세계와 친구 앞에서 유지하는 균형이 이야기에 함께하는 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협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