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베이비
김의경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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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베이비
김의경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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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국가의 난임병원. 아이없이 살고싶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아기를 낳으려는 절박함과 진심이 닿아있는 곳이 난임병원이다. 난임이라는 아픔을 함께하는 그들의 단톡방 이름은 "헬로베이비"다.
시험관 시술 전문인 ‘아기천사병원’을 배경으로, 변호사일로 출산이 늦어진 마흔의 혜경, 프리랜서로 일하며 경제적 문제로 뒤늦게 출산을 생각하는 기자 문정, 미혼으로 난자 냉동을 시작한 수의사 소라, 무정자증 남편의 문제와 경제적 여견에도 시험관을 시도하는 지은. 남부러울 것 없는 풍족한 삶에 난임으로 고통받는 46살의 정효. 이들의 단톡방은 시험관 출산과 임신에 대한 이야기로 쉴새없다. 너무나 생생한 현실수다지만 각자 아픔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픔을 공유한 이들의 정서적 연대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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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인물이 다양해지면 실제 살아가는 누군가는 목소리를 얻는 셈이다. 난임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고민과 심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난임여성에 대해 심도있게 그려지도 동시에 그들이 구축하는 세계 역시 역동적이다. 이전에 콜센터에서 봤던 대로 인물 한명에 집중하여 진행되고 이를 번갈아가며 서사가 확장되는데 뒤로 갈수록 그 전개가 긴박하게 진행되어 몰입감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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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에세이 생활이라는 계절을 읽었는데 작가님도 난임시술을 받으시는 것을 솔직히 써준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말 마지막에서 미래에 만날 아기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떠올리면 작가님의 진심이 소설로 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중 문정의 대목에서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말하는데 아마도 작가님의 글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표현이 아닐까 싶다. 진정성이라는 면에서 이를 감히 평가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삶을 대면하고 이를 소설로 그려낼 수 있는 용기와 능력에 감탄하게 한다. 사실상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동시대 작가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는 듯하다. 이 책 또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깊은 시선으로 다루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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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꿈 트리플 16
양선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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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꿈
양선형
자음과모음
트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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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묘사하는 문장에서 시공간의 층위를 포착한다.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들의 목적은 서사의 전달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꿈과 망상으로 이탈하고 제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작가의 문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지점에서 빛이 난다. 하지만 독자는 문장에 몰입하다가도 서사에서 길을 잃는다. 스스로 불친절한 소설가라고 언급했다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친절한 안내자는 분명 아니지만 소설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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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는 머릿속을 떠다니던 어슴푸레한 환영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조각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비로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녀석의 이미지는 그의 기억 한가운데 새겨진 공백의 모양에 들어맞는 마지막 퍼즐 조각, 그가 망각으로부터 돌려받은 아주 각별한 퍼즐 조각이 되었다.<말과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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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주인공은 말을 찾는다. 꿈에서 만난 말 혹은 꿈에서 찾는 말. 그래서 제목이 말과 꿈이겠지만, 정작 내용은 명료한 서사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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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는 말을 타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말의 잔등 위가 소설 자체의 영원한 목적지가 되는
바로 그런 소설을 쓰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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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매혹에 사로잡힐 만큼 문장은 정제된 모호함을 자극하고 새로운 서사가 독서를 가로막더라도 꾸준히 책장이 넘어가는 힘이 있다
전작 감상소설, 클로이의 무지개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일까, 이번작품만은 주저하게 되지만....오독은 재독을 부른다.

#필사하기좋은책
#선물하기좋은책
#어른을위한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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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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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별의시간
클라리시리스펙토르
암실문고
을유문화사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문학


생각과 문장의 접점은 어디쯤에서 형성되는 것일까.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막연히라도 고민해봤을 것이다. 자유연상에 의거해 생각나는 대로 쓰는 문장일수도 있고 정제된 생각을 직조한 것처럼 구성된 문장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생각은 문장을 이끌고 동시에 문장은 생각을 포함한다. 생각과 문장의 관계가 밀접할수록 가독성이 높고 의미있는 서사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의 언어는 해체되어 문장은 파편처럼 여겨진다. 그럼에도 서사를 향해 희미하게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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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그래'로 시작되었다. 한 분자가 다른 분자에게 '그래'라고 말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하지만 선사 이전에는 선사의 선사가 있었고 '아니'와 '그래'가 있었다. 늘 그랬다. 어쩌다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주가 시작된 적이 없음을 안다. 정말이지,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단순함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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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은 작가의 헌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작중 작가인 의해 한 여성이 설명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림으로 친다면 스케치에 해당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한 방식은 이미 채색까지 한 완성작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방법은 다르다. 스케치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엇나간 부분은 지우고 다시 선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언어는 의미를 의도하지 않고 생성한다. 인물은 서사를 통해 구현되지 않는다. 어렵고도 새로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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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작가로 설정된 작가 호드리구와 그가 창조한 ‘가난한 여성’ 마카베아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주로 마카베아의 비극적으로 처참한 배경과 가난하고 무지한 그녀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호드리구의 적극적인 설명이 주를 이룬다. 마카베아의 삶은 처절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은 비극성이 아니다. 그녀는 철저히 홀로 고립되어 괴로운 삶을 살고 교류했던 남자마저 그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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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길을 건널 무렵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미래를 잉태한 사람. 그녀는 이제껏 느껴 본 그 어떤 절망보다 더 격렬한 희망에 차 있었다. 그녀가 이제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게 된다면, 그건 이득이 되는 상실이었다.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듯 점쟁이로부터 삶의 선고를 받았다. 갑자기 모든 게 너무너무 많고 커서 그녀는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죽어 가는 태양처럼 빛났다.(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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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작중 작가와 인물 마카베아의 구도는 클라리시리스펙토르에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 작중 작가의 목소리는 인물로 향하는 듯하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는 모호한 상황이 이어진다. 이러한 설정에서 정작 클라리시리스펙토르는 어디에 있을까. 강렬한 문장은 쉼없이 이어지고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특별함이 농도 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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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1 조선 천재 3부작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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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한승원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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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하면 우리는 명필을 떠올린다. 붓의 움직임은 힘있고 아름답게 글씨를 써내려갈 것이다. 추사체라고 불리는 그의 글씨가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추사에 대한 장편소설이 두권이나 되는 분량이라고 했을 때, 과연 무슨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인가 궁금했다. 그의 글씨에는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단지 명필이라는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천재적 경지와 역사의 격랑에 흔들리지 않았던 올곶은 성품, 그리고 학문에 대한 성찰과 사유의 깊이가 놀라웠다. 그의 일생을 소설가 한승원은 아름답고 섬세한 묘사와 깊이있는 역사적 시선으로 그려낸다. 긴 분량에도 조선의 천재인 김정희와 이를 탁월하게 담아내는 소설가 한승원의 문장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영특하고 지혜로운 신동 원춘(김정희). 채제공에 따르면 아이는 '하늘과 땅을 놀라게할 시, 서, 화의 씨앗들이 무진장 들어있다'고 한다. 그의 짐작대로 추사 김정희는 예술과 학문에 있어서 천쟁 경지에서 조선의 역사에 기록된다.

, 그리고 필생의 작품을 위해 혼을 다하는 추사로 그의 삶의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고 일관되게 그려진다. 이처럼 시간의 연속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추사의 유년, 청년, 장년, 노년이 엇갈려 등장하지만 인물의 묘사가 생생하고 소설 속 장면이 마치 아름다운 동양화처럼 그려져 어떤 대목에서든 빠져들게 된다.
또한 조선후기의 역사적 풍랑에 휩쓸리고 또 살아남는 모습에서 소설적 재미와 인물에 대한 안타까움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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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인전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추사가 쓴 현판에서 빛이 나는 대목이나 선재소년이 물로 붓글씨를 쓰는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글씨를 쓸 때나, 그의.일상에서나 작가에 의해 탄생되는 그의 모습은 미문을 통해 빛난다. 한국소설의 정수와도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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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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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이민진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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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역사가 기록하는 사람들 그러나 기록되지 않았으나 역사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이 기억되지 않더라도 살아온 삶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숨결을 이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평탄치 않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흔들리지만 스러지지 않는 사람들.
난세를 탓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역사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막연한 생각이 선명해질 때 떠오르는 건 바로 "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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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그리고 동명의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의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거의 백년의 시간울 아우리며 일본과 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파란만장한 역사의 장면에서 현실의 인물들이 갈등하고 회복하는 모습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4세대에 걸쳐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고 또한 이끌어주는 모습을 통해 큰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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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100년에 가까운 긴 시기를 담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굉장히 파란만장한 시기이며 공간적으로도 한 일을 오고가며 재일교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흡입력이 대단하여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가독성이 상당하다. 그런데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아픈 이야긴데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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