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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3 - 자기 앞의 생, 2021.4.5.6
차경희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epic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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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이라는 제호로 새로운 내러티브의 표방을 시도하는 epic 을 만났다. 픽션과 논픽션이 만나는 곳에서 새롭게 태어난 잡지, 에픽. 기대하는 책이었다. 문예지라거나 잡지라는 영역을 넘어서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기대처럼 필진들의 놀라운 라인업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원고 하나하나 진심이 닿은 것처럼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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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i+i에서는 배우 이나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차경희의 목소리를 통해 두 사람의 존재감이 선명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나리 배우의 진심과 긍정이 강하기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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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논픽션에서 서효인 시인의 그림책 이야기는 특히 시선을 끌었다. 아이와의 일상에 깊이 스며든 그림책들은 단순히 감상 이상의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도 그림책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글에서 만난 책들의 목록을 적어두었다. 고마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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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다 비슷하다. ‘너처럼’이라고 말할 대상은 언제나 곁에 있다. 너처럼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너처럼 안고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고, 너처럼 비는 피하고 싶고, 너처럼 가끔 엉뚱한 장난도 치고 싶고, 너처럼 절대로 아프고 싶지는 않으며, 너처럼 캄캄하고 혼자일 때는 무섭고, 너처럼 하늘을 날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 이렇듯 너와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공유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_서효인, 「그림책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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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김지연의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청년이라기엔 '늙은' 30대 중반의 남녀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현실적인 설정이 재미를 주며 가독성을 이끌었고 문장마다 인물의 심리에 깊이 이입되어 여운이 남았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경쾌한 리듬으로 그러나 삶의 무게를 잃지 않고 포착한 좋은 단편소설이었다. 앞으로 김지연 소설가의 작품들이 굉장히 기대된다. 이전에 읽은 단편도 좋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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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반찬으로 내놓은 김치를 다 먹고는 더 달라고 말하는 대신 젓가락으로 빈 반찬그릇을 세게 탁탁 쳤고, 계산을 하면서는 이를 쑤시며 이쑤시개에 걸린 뭔가를 공중에다 퉤 뱉었다. 자판기 커피도 없냐고 구시렁대며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뒤통수에다 대고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또 오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가 다시 왔으면 했다. 그를 닮았을 친구들을 아주 많이 데리고 왔으면 했다.
_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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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3호를 읽고 일상의 충만함을 느낀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애정을 갖고 읽게되는 매거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