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를 받아 쓰는 존재의 진정성

          장혜령의 진주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록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존재하는 아버지 앞에서도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곳, 진주 정확히는 진주 교도소를 떠올리며 성인이 되어 작가는 다시 진주로 떠난다. 여행의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작가는 그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장혜령의 소설 진주는 해야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음의 불가피의 기록이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는 작가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으로 주체는 대상을 분석하지 않는다. 애초에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 근원인 아버지에 대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운동가로서의 삶이 우선했기 때문에 딸은 시대에 대해 사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자신이 낼 수 있는 다수의 목소리를 불러내게 한다. 결국 이 소설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가장 강렬한 진정성을 획득한다


이 소설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아버지에 대한 딸의 서사라는 점에서 후일담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다. 하지만 후일담이라는 말은 서사의 당사자들에게는 잔인한 표현이다. 듣거나 보는 이들은 사건의 기승전결에 대해 무의식적 요청을 한다. 그러나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삶에 극적 구획을 나눌 수 없는 일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딸은 결말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 지금까지 결말을 강요했던 무책임한 독자는 이 작품의 윤리적인 자세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버지의 삶을 응시하며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탐색하는 시도는 치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절하다. 어쩌면 작가는 운명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장르의 구속을 벗어나 용감하고 아름다운 기록을 남긴다. 자신의 이야기지만 에세이를 초과하며 소설이지만 허구의 설정에 숨지 않는다. 일기를 비롯한 자료들은 작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증거이며 작가의 시에서는 그리운 기억과 아픔이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작가는 이 소설 이전부터 이 사건의 외부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소녀일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쓰기를 통해 존재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조서를 받아적어야 했다. 그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그는 딸로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적는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의에 의해 시작했겠지만 어쩌면 그의 글쓰기도 순수하게 자신의 의도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글쓰기에 쉽게 마침표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록은 단순히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업이 아니다. 현실을 고발한다거나, 부녀 간의 감동을 전하는 목적에 의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소환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함으로 시대의 야만과 부정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소설인 이유는 기록의 모든 경로와 결과를 하나로 함축하기 위함이다. , 에세이, 논픽션 등의 구획에 이 작품을 밀어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운동가 아버지를 그리고 시대를 섬세하게 혹은 서글프게 바라봤고 그대로를 기록했다. 이제 독자의 차례다. 과연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답하려는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그 태도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작가가 보여준 진정성의 정도와 무게에 대한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진시절
금희
창비 소설Q

과거를 추억이라고 부른 후에
자신의 내밀한 곳까지 응시해보면
나를 닮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천진시절.
중국의 지역인 천진에서 살던 시절이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진했던 청춘의 시절로 마음에 닿는다.

주인공 상아가 동생 금성의 결혼식을 계기로
우연히 과거 천진에서 함게했던 정숙을 만나고
자신의 과거 연인이었던 무군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함께 일했던 공간과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작가의 문장은 투명하고 선명하게 담아낸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명의 남자와 단 한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32)

확실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은 마치 그녀를 시계추처럼 오고가고 만든다. 그녀는 불만과 죄책감의 경계에서 서서 자신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본다.

나는 생각했다. 항상 그게 문제지.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변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155)

어떤 미사여구없이
해석을 가장한 합리화없이
자신과 그 시절을 진심으로 응시하는 것이
얼마나 윤리적인 시도인지를 읽는 내내 느꼈다.
이 책, 그리고 작가는 너무나 귀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동피아노

"나는 지금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지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장 아메리 『자유죽음』

자동으로 기계적인 연주를 하는 자동피아노처럼
의도를 넘어서 의식을 지배하는 독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 정제되기 이전의 언어와 구상을 생략하는 전개는 소설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독자에게 불친절할 수 있다. 작가는 어느 지점에서 소설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진정성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언어실험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과 마음으로 오고가는 위태롭지만 진실된 기록이다.

단서를 찾으며 추리할 필요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방식은 낭독이 된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그 울림을 느껴본다. 그 발화의 이면에 가까이 도달하면 그의 목소리와 나의 그림자가 닮아있음에 놀랄 수 밖에 없다. 불안과 공포를 함께 유영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독법이다.

27
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죽이겠다. 나는 나를 죽이지 않겠다. 나는 죽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두렵다. 나는 두렵지 않다. 

긍정과 부정은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함께 무너지는 편을 택한다. 선택할 수 없는 혼돈 속에 강렬한 느낌만이 남는다. 부정의 소거법을 활용한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의 반복은 답이 아닌 어떤 태도를 남긴다.

70
어쩌면 오늘, 아니면 내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욕망하는 일. 내 욕망이 머뭇거림 속에서 실패에 이르는 일. 내가 욕망하는 것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만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쓸 수 없다. 오늘은 아니어야 하는데. 어제도 그랬듯이. 아직은, 나는 아직. 무슨 말로 항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달아난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소설의 지독한 난해를 한번에 끌어안게 한다. 위로나 공감이 아닌 이 위태로운 상태가 나에게도 그림자처럼 남아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시도는 옳을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왕업

아름답고 사나운 칼이라는 부재가 제왕업의 1부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 칼의 휘두름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주인공 왕현은 최고 문벌세가의 딸로 보살핌 속에서 귀하고 아름답게 성장하여 모든 이들의 흠모를 받았다. 뿐만아니라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궁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황제와 황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했다. 그러나 사랑도 인생도 그녀의 의도대로 되지않는다. 그녀는 단지 권력을 위한 도구였음뿐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녀는 패업을 위해 새로운 꿈을 꾼다.
.
.
중국소설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역사소설과 무협소설은 처음 읽어본 것이나 다름없다. 압도적인 분량에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왕현이라는 주인공 캐릭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영웅의 모습과 절정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돋보였다.
.
.
“이런 장수의 재목을 썩혀야 하다니, 당신이 여인인 것이 애석할 따름이오.”
“만약 여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당신과 만날 수 있었겠어요?” 나는 뒤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당신이 이처럼 허장성세를 꾸미는데 당연히 미심쩍겠지요. 건녕왕이 신중하게 우리 군을 정탐한 지 여러 날이 지났으니 이제 곧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거예요."
.
.
나도 무척 사랑한 사람이 있었단다. 한때 그는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또 슬픔이었지. 그 기쁨과 슬픔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그것을 얻든 잃든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단다. 그러나 또 다른 얻음과 잃음은 나 혼자만의 기쁨과 슬픔보다 훨씬 깊고 중하며, 살아 있는 한 거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었지. 그것은 바로 가문의 영예와 책임이었어.”
.
.
왕현의 인물설정 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설정이 읽는 속도를 더한다.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웹소설이며 장쯔이 주연의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기대를 모을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까지 공유하는 셰어하우스

"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법."
첫 문장에 시선이 이끌린채로 빠르게 읽어나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

셰어하우스.
공간을 공유한다지만
시간과 기억과 결국 마음을 나누게 된다.
셰어하우스는 집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 제안은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면 인정할만 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것은 공간만이 아니었다.
시간을 그리고 사건을 결국에는 마음을 공유한다.

런던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티피는 집을 구하고
야간 간호사 리언은 근무 시간 동안
자신의 아파트에 머물 사람을 구한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지만
연인이 아닌 남녀의 동거는 특별한 상황을 만든다.

이 책은 설정이 주는 즐거움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유쾌한 매력이 있다.
마치 시나리오처럼 웹소설처럼
빠른 전개와 가독성은 이 책의 미덕이다.
작가 베스올리리의 감각적인 구성력과 필력이 돋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