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 유학인가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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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문화 내지 고유의 사상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한국은 고조선 즉 단군조선에서 시작된 문화에서 단군조선을 계승한 태조 이성계가 수립한 조선까지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조선 시대를 생각하면 너무 아득하지 않을까 하나, 사실 한국의 전통문화 중 하나인 농업은 단군조선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우사, 운사, 풍백을 데리고 신시를 건국했다는 점에서, 이미 기상학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그 인식은 바로 농업에 필요한 비와 관련된 것이다. 농업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물은 벼이다. 벼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은 논이고, 논은 언제나 물이 필요하다.

 

물의 이용에서 농업문화가 시작되는 것이고, 벼 외에도 밀이나 각종 곡식도 물하고 관계성이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이민족 내지 사냥수렵보다는 농업문화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농업문화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는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일제강점기 시절, 고종황제가 폐위되면서 조선왕조는 끝이 났다. 게다가 고종의 마지막 종손이 작고하면서 황실 적계는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대한민국의 전신인 대한제국의 역사는 그렇게 사라졌던 것이다.

 

고조선의 시작에서 마지막 조선까지 한국역사의 여정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도래는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고수하기보단 해체하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강만길 교수 외 여러 학자들이 저술한 <일본과 서구의 식민통치의 비교>를 읽으면,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 방법에서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은 조선왕조를 신봉하는 국민들의 의식이었다. 왕의 존재가 국가의 시작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이 국가라는 근대주의사상을 주입했다. 여기에 자유주의사항이 도입되고, 자유주의는 반봉건적인 형태로 갔지만, 한편으로 일제통치에 대한 반대여론을 형성했다. 자유란 개인의 권리는 개인에게 있지 조선의 국왕도 조선총독부 총독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개인주의적 성향인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 사상은 기존 조선이 가진 가치관을 해체하기 좋은 사상이고, 특히 유교문화 중심인 조선에서 가장 먼저 도입될 문화였다. 조선의 유학은 사대부 중심이기도 하나, 그 사대부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성립되기 위해선 조선은 농경문화가 계속 유지되어야 했다. 그래서 해방과 전쟁 이후에도 농경사회는 유지되고, 한국의 전통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경제화는 기존 사회를 다른 식으로 변경했다. 농업문화는 시골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그들 대부분은 가족 내지 일가 같은 씨족부락이 제법 많았다.

 

조선시대 유학은 사림의 승리로 끝이 나고, 사림들이 중앙정부를 점령해도, 그들의 기반은 여전히 사림, 농경사회 속에 있었다. 농업을 하는 것은 양민들이고(사대부 내지 일반농민), 그들은 대가족 중심으로 집단노동으로 생산품을 만들어내었다. 20세기 산업화에서 농업이 소나 인간의 노동력보단 기계로 대체하기 시작하고, 생산성 증가만큼 인력의 잉여로 남게 되고, 도심지 및 그 주변이 공업화 내지 도시화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농업이 중심인 조선은 공업이 중심인 한국으로 변했고, 이제는 공업에서 지식정보사회로 흘러가게 되었다.

 

21세기가 도래하면서 세계는 글로벌주의라는 통용을 중시하게 되고, 기존 산업체계에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 문화콘텐츠가 생산품으로 변모해갔다. 한국의 위기와 기회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1년 동안 판매한 승용차보단 미국 할리우드가 만든 <쥐라기공원>이 훨씬 높은 이익을 창출했다. 물리적 생산품보다 문화적 생산품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문화콘텐츠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했고, 여기에 수많은 서사들이 필요했다. 한국의 서사를 이루어줄 문화적 자본은 여기서 큰 위기를 봉착했다.

 

일제강점기시대와 산업화시대는 전통문화를 해체와 파괴를 기반으로 성립된 사회였고, 21세기에 와도 한국은 서구화가 되어, 기존 한국사회의 기반이 되는 서구화 논리로 문화적 상품을 내놓기에는 부적절했다. 한국에서 만든 문화콘텐츠는 검은머리 서양인들이 나와 서구애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내놓을 뿐이다. 대안은 무엇이고, 새로운 돌파구는 무엇인가? 결국 한국은 과거에 버린 조선의 역사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사극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제작도 어렵고, 연기수준도 높기에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

 

장소도 제한적이고, 의복 역시 그렇고, 대화체 내지 문화적 배경도 그렇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를 보면, 사극드라마가 정규TV만 아니라 인터넷방송에도 방영되고, 영화관에서 사극 중심소재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과거에 버린 이야기가 새로운 이야기로 등장했다. 웹툰 <신과 함께>는 사극중심보다 한국의 신화, 그중에 무속신화를 소개한 것이다. 현대사회에 등장한 무속신들을 이해하려면 다시 조선의 역사를 이해해야 했다. 저승사자 중 강림도령은 포도대장의 휘하 무관이었고, 또 다른 저승사자는 변방의 무관이었다.

 

이민족을 토벌하는 무관이나 혹은 관아에 등장하는 지방수령관의 벼슬은 조선시대의 산물이었다. 조선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의 문화조차 이해하기 조금 힘들지 못할 것이다. 제사문화가 있기에 설날과 추석이 늘 교통지옥이고, 조선시대 음식문화가 내려오기에 김치와 된장이 있다. 제사문화와 음식문화도 남아있는데 다른 문화가 남아있지 않을 리가 없다. 그 문화들이 다시 학문적 영역에서 떠오르고 있고, 일반 대중에게 영화와 드라마, 만화로 등장하고 있다.

 

전통의 단절은 왜 다시 21세기에 재연결로 이어진 것인가? 모더니즘을 지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산업화의 탈근대화 내지 제3국의 가치관을 내세우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학문 영역을 다양성을 연계하는데 일조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 만사는 아니나,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잊은 과거를 불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를 부른 이유는 획일화 정형화 규격화가 정답이 아니라 그 이상의 다양성을 내보이는 것으로 여러 가지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모두가 서구화가 된다면 언젠가 이들의 모습에서는 누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모두가 같은 색을 칠하면 나와 타인의 관계성에서 구분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한국의 서원이나 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한 유현들이 모셔져 있다. 이들의 위패 내지 관련 자료는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문물이다. 그런데 지난 중국의 마오쩌둥 시대에 과거의 산물을 모조리 파괴하고 부정하는 바람에 공자의 사상과 문물도 배척했다. 중국에서 한국의 향교에 와서 공자의 위패를 받아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국이 이런 모습을 보인 이유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난 중국은 근대화를 통한 과거의 단절에서 오히려 과거로 지향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여러 학자의 책을 보면 과거 유학을 버렸던 이들이 말년에는 오히려 유학으로 돌아서고 있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문화는 경제적 규모가 되고, 국민의 삶이 향상될수록 역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그건 자국의 위상을 올라가면 갈수록 자국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 즉 상징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을 보자. 20세기 한국의 뮤지컬에서 한국역사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만든 뮤지컬이 넘쳐나고, 이들은 국내만 아니라 세계 문화상영관에도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왜 조선유학인가>라는 책은 우리가 기존에 잊은 유학을 다시 집어 들어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지 설명한다. 유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것으로 본다. 원래 한국은 한글 훈민정음이 아니라 한자로 기록하고, 한자는 오직 사대부 양반과 일부 천민만 알고 있었다. 조선의 문자문화는 지배계급의 위상을 알리는 수단이다. 문자를 알면서 지식을 알고, 지식을 알면 지식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지배계급의 지식독점은 곧 모든 권력을 독점할 수 있다. 조선의 유학은 공맹의 유학보단 남송의 주자가 만든 성리학을 토대로 시행한다. 공자의 유학은 철학보단 정치학에 더 가까웠다. 정치학과 철학은 연결되어 있더라도 공자는 주자의 성리학과 비교하여 형이상학적이지 못했다. 주자의 성리학은 매우 형이상학적이다. 이해하기도 힘들지만, 이때까지 우리가 서양에서 받아들인 서양철학 내지 사상과 유사한 요소도 있었다.

 

이 책에서 중점으로 다룬 내용으로 실학이 있다. 실학은 조선의 지식인이 민중을 무시하고 뜬 구름만 잡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말놀이만 하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 도움이 되고 국력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성이 있었다. 문제는 그 실학을 연구하던 자들은 중앙정부에서 활약한 관리가 아니라 모두 거기서 떨어진 자들이다. 대표적인 자로 다산 정약용을 보자. 정약용은 1800년 정조가 붕어하자, 1801년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로 각종 수모를 당하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정약용만 아니라 박지원 내지 박제가, 홍대용 등 수많은 실학자는 현실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들이 평생 남긴 서적은 당시 현실을 개선하기보단 20세기 한국으로 넘어와 조선의 발견으로 대두되었다. 생각하면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국내 대통령만 아니라 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읽은 책이고, 하다못해 식민지시대 일본학자가 다산을 두고 조선의 영광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다산이 살던 조선은 다산이 박해받던 세상이다. 자신이 연구한 서적을 1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다산이 이제 20세기에는 조선의 대표학자가 되었고, 21세기에는 세계 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유학을 연구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구는 유학이 아닌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면 서구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가톨릭이 외국에서는 각종 박해와 전쟁 등 무력충돌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가톨릭에서 기독교의 메시아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종교가치관이 되었다고 하면, 조선의 가톨릭은 이와 다르다. 조선의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가톨릭이 유입되고, 학문으로써 가톨릭이 어느새 종교로 바뀌게 되었다. 가톨릭이 서구에서 피지배계급의 메시아주의 관념에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갔다면, 한국은 사대부 비주류권에서 학문의 영역에서 민중의 메시아주의 관념으로 변해갔다.

 

조선의 학문은 한자를 이해해야 했고, 조선에 없던 천주교를 이해하려면 맨 처음 성호 이익의<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을 읽었고, 그 뒤로 북경에 오가면서 얻은 책으로 연구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광암 이벽이나 만천 이승훈은 신부가 없던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한국천주교회를 만들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발적으로 가톨릭이 열린 곳은 없었다. 하지만 마테오 리치는 가톨릭의 God을 동양사상의 하느님인 옥황상제 내지 천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가톨릭을 전파했다.

 

가톨릭의 전파는 서구종교이고, 동양문화인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새로운 문물의 유입이다. 여기서 뜨거운 감자로 오른 인물은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책에서 거론한 것처럼 한국 최초 순교자 윤지충의 외사촌이었고, 정약종의 친동생이었다. 윤지충과 그의 동생 윤지헌, 정약종과 그의 딸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천주교 성인들이다. 21세기에 와도 정약용이 천주교를 배교했는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마음에 두고 그것을 속였는지에 대한 문제점이 남아있다. 우연히 알게 된 천주교 쪽 사람과 책에서는 다산은 배교한척만 했다고 하고, 강진 다산초당을 천주교회사에서 유적지로 삼았다.

 

한국의 유교에서 다산 정약용은 성리학자이면서도 성리학 이외에 실학을 토대로 공맹의 원시유학을 넘어가고, 민중의 문화에 관심을 두었고, 서양과학 및 문물을 위해 서학을 배운 사람이다. 다산 정약용은 현대 한국 지식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가 천주교를 배교하지 않았다면 천주교회사는 엄청난 성과로 볼 수 있고, 서양의 유학연구자들은 한국의 전통사상종착지인 다산이 결국 유학이 아닌 서구의 학문으로 종점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조선의 유학에서 이 논쟁은 아직 그치지 않은 모양이다. 이 이야기들은 외국 유학 세미나에서 나온 논쟁이라 하니 말이다. 조선은 사대부의 국가였고, 사대부에 의해 망한 국가였다. 사대부 중에 비주류가 가려졌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학문적 성과이다. 그 성과가 이제 한국역사 교육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주류이다. 200년 전 정조가 죽을 때 순조의 외척인 김조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에 의해 그나마 정약용 일파마저 숙청되었다. 특히 정순왕후는 천주교회사에서 지울 수 없는 신유사옥을 일으킨 공작정치가이다.

 

신유사옥은 천주교를 이용하여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정치라도, 천주교 입장에서는 신앙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 살아남은 정약용의 철학을 연구하면서 왜 남인이 천주교가 많은지 그들의 학문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왜 조선유학인가>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천주교에 대한 최초 연구는 성호 이익이 했다. 성호 이익은 남인의 정신적 지주이며, 성호 이익은 다산 정약용의 외가 조상과 친우 관계를 수 백 년 넘게 유지했다. 이익 선생이 천주교에 대한 연구를 다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익의 후예 사대부들이 그것을 토대로 천주교회사를 만들었다.

 

서학이 남인 지식인들이 만든 실학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나, 그 모든 것은 아니다. 정약용이 천주교를 끝까지 믿었다면 그의 모든 성과는 천주교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학의 관점과 천주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탐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산이 유배를 갔던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 일원에 사는 주민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다산에 대해 연구한 다양한 도서에 당시 교황청은 다른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고유문화를 존중했으나, 교황의 교체 및 정치적 성향이 개편되면서 동양의 국가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다.

 

진산사건은 윤지충이란 선비가 어머니의 신주를 불살랐고,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촌과 더불어 참수되었다. 피로 얼룩진 천주교회사고, 그의 선혈은 전주에 위치한 전동성당의 터가 되었다. 지금의 전동성당을 가면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순교자의 한이 어느새 한국의 대표관광지로 바뀐 것이다. 성리학과 천주교의 마찰에서 근대문물의 유입과 전통의 갈등에서 전통의 승리로 끝나고, 조선의 멸망과 산업화로 전통이 패배했다.

 

이제는 다시 전통의 세계가 문화콘텐츠와 관광사업이 되었다. 전주에 가면 오래된 향교에서 전통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있다. 향교와 전통혼례는 유교문화의 흔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양한 관광 상품이 되었다. 게다가 진동성당 근처에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곳이다. 조선의 역사가 담긴 곳 역시 유교문화이나, 또 다른 관광장소이다. 전주한옥과 전주한복이 유명을 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복을 개량하여 입고 다니는 젊은 여성분들도 많다. 한복은 유교문화의 복식이다. 물론 100% 복원한 것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전통문화 그것도 유교문화가 다시 회귀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유교 그중에 성리학이 가진 문제는 심각했다. 공자는 사대부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나, 그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문제없이 살 수 있도록 행정적인 제도를 개선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 주류세력은 재산을 늘리기 위해 백성의 농지 수탈하고, 군역을 빠졌으며, 세금조차 내지 않았다. 성리학은 공자의 유학을 보강했지만, 공자의 유학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저자도 주자의 성리학에 대한 경구 하나에 이론을 다르게 봐도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은 백호 윤휴의 이름을 거론했다.

 

유학이란 인간을 위해, 그리고 그것은 학문의 완성을 통해 이루어져 할 가치이다. 학문은 다양한 가치와 사람과 소통해야 하나, 조선의 성리학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 왜곡되어 갔다. 지배주류세력을 위한 맞춤형 유교가 된 것이다. 흔히 붕당정치하면 자주 등장하는 세력이 노론과 남인, 소론, 북인 등이다. 천주교가 남인과 같이 어울리게 된 동기는 남인의 학문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 주리론, 즉 이()에 중점을 두었다. 노론은 기()에 중점을 둔 점에서 다르게 간 것도 있지만, 남인의 주리론은 기에 의해 이는 변동되어 나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완비 내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즉 인간은 절대적 가치인 이에 대하여 지켜야 하나, 기에 의해 변동되어 그게 왜곡될 수 있으니 언제나 마음을 수양하고 몸은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원죄의식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아니나, 원죄의식을 가진 기독교사상에서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점에서 유사하다. 서학과 유학은 다르지만, 동서에 살고 있는 많은 인간들이 가진 다양한 가치관 중에 서로 일치하거나 맥락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리학이 어렵지만, 현대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서양철학 내지 사상과 비교하여 큰 벽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석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받아들이기가 다소 어려울지 몰라도, 거기에서 주장하는 세상의 이치나, 삶의 자세에서는 비슷한 맥락이 존재했다.

 

조선건국 초기 성리학이 지배되던 유교국가에서 처음에 여성에 대한 정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다. 재산분배가 공평되게 아들과 딸에게 갔고, 재혼도 되었던 모양이다. 전쟁을 걸치며 열녀문이 새기야 가정의 영광이 되었고, 청나라에 끌려간 환향녀가 지금의 화냥년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열녀문이 세워지려면 청산과부가 자살을 해야 하고, 환향녀들은 억울하게 청나라에 끌려가 겨우 고향에 돌아온 여성이다. 이들이 겪은 고통은 이뤄 말할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여성관 그리고 주자의 성리학에 토씨 하나 달지 못하는 학문의 자율성이 없어지면서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 성리학이 조선의 성리학으로 종점부를 찍은 것이다. 그러면 누가 봐도 유학인 성리학을 좋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위대한 유학자인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의 호를 딴 연구소들이 대학에 설립될 정도로 업적을 유지된다. 유학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유학자들의 연구하는 학문기관은 여기저기 있다. 유학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돌려 다르게 볼 것인가? 한국인 정체성은 위협받지 않을 시기가 없었다. 조선 개국부터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침략,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 거대한 조류에서 한국인은 오늘을 살고 있다.

 

내가 다시 찾아보는 유학은 예절을 중요했지만, 예절을 떠나 서로간의 의견을 존중하고 학문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율곡 이이는 자신보다 대선배인 퇴계 이황과 편지로 논쟁을 했고, 고전을 읽고 거기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학문을 발달해왔다. 유교경전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고, 어떻게 내가 살아가면 좋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유교경전은 과거시험을 볼 때 필요한 문제지 수준을 변한 것이다. 현대사회에도 학문은 다양한 관점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논지는 500년 한국 성리학이 최고인 시기와 비교해도 그 시선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끔 보면 이 못난 성리학의 폐단은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유학자들은 본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학문은 다양성을 연구하고, 상대방에 대한 소통이 되어야 새로운 학문을 열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보다 처지가 아래인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조한다. 밑에 있거나 혹은 다른 생각이 가진 사람이 말을 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바른 말을 하든 혹은 그렇지 않은 말을 하든지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돌아오는 말은 항상 같다. “어린놈이 버릇없네.”

 

최근 유행하는 단어 중에 답정너라는 것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 권위의식적인 가치관은 이미 조선 성리학의 모순에서 시작된 병폐이다. 조선의 유학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의 시작점까지 찾아간다. 조선유학이 답인 것도 아니고,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다시 화두로 올라오는 전통문화 담론에서 조선유학을 반드시 우리가 생각해야할 문화적 유산이다. 유산은 좋은 것만 오는 게 아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빚도 찾아온다.

 

현대는 과거로부터 쌓여진 시간의 축척물이다. 조선의 유학이 그 축척물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이다. 대한민국 역사는 상해임시정부를 기준으로 100년이 되어가지만, 조선왕조는 이미 600년을 가졌다. 600년이 가진 역사가 현대사회 한국인에게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겉모습은 바뀌어도 심연의 세계에는 여전히 조선시대의 산물이 남아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이 한글로 되어 있어도 한자어로 되어 있고, 그 이름이 조선시대 사람들과 비교해도 비슷하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살아가도 과거에 존재한 조선이란 존재에서 강제로 벗어날 수 없다. 책제목처럼 <왜 조선유학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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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1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역사에서 벼농사는 석탈해 집단이 대두하면서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벼농사 기술이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단군신화에서 벼농사에 대한 해석은 개인적으로 처음 봅니다만..

석탈해 집단은 동남아 이주민으로 보는 설이 국사학계의 다수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음....한형조 교수가 쓰신 책이군요. 이 분이 쓰신 책들은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죠. 밀도 높은 리뷰 잘봤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6-11 22:39   좋아요 0 | URL
단군신화와 관련된 논문에서 곰족은 수렵부족이고, 그리고 마늘은 항생제 및 살균작용이 있어 야생에서 수렵한 곰족에게 소화기관 및 각종 내성을 키우는 능력이고, 쑥은 부인병에 좋은 약초이죠.
단군신화에서 환웅의 신화가 곧 농경문화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저는 봅니다. 단지 벼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바는. 제가 2년 전에 815 광복절날에 서울에 있었습니다. 서울에 단군성전이 있는 곳에 갔습니다(규모가 너무 적어서 참으로 슬픈).
거기 가니 관리인이 책을 주는데, 떡국을 먹는 풍습과 각종 전통문화가 단군조선 때부터 시작했다는 글을 보았죠.
그 유입물은 4년 전 개천절 행사 유입물이었던 것이죠. 떡을 만드는데 곡식이 필요하나 주재료는 쌀인 점과

신문기사에서 이미 5천년 전 고양 일원에서 쌀농사가 있었다는 기사도 있네요.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294

이게 다 고고학에 대한 분석기술이 늘어남에 따른 고증이 아닌가 합니다. 한형조 교수님의 동서를 막론한 지식과 역사적 관점 그리고 엄청난 분석력에 깜놀했습니다. 대신 뒤부분에 신해사옥이 1791년인데 1795년 오타가 보여, 문학동네에 인터넷메일로 제보했으나 모르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오래된 생각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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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관인 윤태영 씨가 저술한 소설이다읽는 내내 이것은 소설이란 가상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라 하나거의 50% 이상은 사실에 가깝다소설을 읽는 감상을 보면 뭔가 강렬한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적은 책이 아니다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모습에 아주 충실했다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금 다르나그 등장하는 인물들의 원래 캐릭터는 그대로를 반영했다윤태영 작가는 노무현대통령을 보좌한 인물이기도 하나국회의원 노무현을 보좌한 경력도 있고학생운동을 한 실적도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이것은 윤태영의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놓고 있으며또한 노무현과 함께 한 시간을 적고 있다읽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노무현이란 인물을 우리가 아는 범위는 TV, 라디오신문 등과 같은 언론매체이다그러나 막상 그의 진짜 모습은 주변인들이 잘 알 것이다윤태영 작가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진익훈으로 등장한다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이고어릴 때 친구들이 어느새 적이 되어 마주한다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무엇인가책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나과거에 조우한 시간보다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이념이 더 소중하다.

 

익훈은 소꿉친구 인수와 희연을 2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 사이다그러나 익훈은 학생운동을 한 그 몇 년이 자신의 운명이 되었다가난에 힘겹게 살던 익훈그에 반해 건설업체 사장 아들인 인수유명내과 의원 딸인 희연, 3친구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멀어져 가는 운명이었다책을 읽으면 아주 씁쓸하다인수가 가입한 어떤 비밀조직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나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은 이 소설 또 다른 주인공인 임진혁의 친구이다소설 속의 임진혁의 친구는 현실에서 대통령이 되자 국방무기체계 문제로 국방부와 마찰을 일으켰다그 문제의 발단에 깊은 원흉은 국방부 내 육군사관학교 내 친목단체가 있다는 것이다육군사관학교는 공군이나 해군사관학교와 다르게 군 장성들이 많고국방부를 주름잡는 곳이다국방부를 국방업무를 보는 기관이나 한편으로 육방부라고 부른다육군 장성들이 모두 군사 권력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영삼 시절 절제되었다고 하나그 이전에 하나회 같은 경우 5공화국의 권력 핵심부였다하나회는 군사독재시대의 권력중추였다이런 일들이 있는데군사조직 내 권력유지를 위한 친목관계만 아니라 그들과 연계된 다른 권력이 없을 수 없다언론검찰경찰경제 인사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카르텔을 형성되어 있었다우리나라의 카르텔은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왕조부터 시작되었다임진혁이 소설이 아닌 역사의 인물로 나올 때 600년 동안 약자들은 계속 핍박받고거기에 대항하던 자들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보복을 당했다.

 

그 시대를 저항하던 임진혁은 결국 자신이 근절하고자 하던 세력에 의해 역사의 한축이 되었다임진혁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같이 지낸 진익훈생각하면 소설은 분명 맞으나 사실을 그대로를 편집한 것이다편집을 다소 유리한 상황에 맞추는 것보다 전후사정이 담겨진 채로 말이다내가 알던 제17대 대통령시절엔 재미있는 단어가 생겼다한국에서 좌파와 우파에 대한 논쟁이 참으로 바보 같다사실 좌파가 생긴 것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산악파가 반대편 지롱드당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국민공회 의원자리에서 좌측에 앉았다.

 

이에 반해 지롱드당은 왕당파라 하여 오른쪽에 앉아 우파가 되었다만일 지금 자신이 아주 똑똑한 것처럼 말하면서 좌파를 민주주의 내지 자유주의를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지 멍청한 녀석일 것이다. 17대 대통령과 좌우파 내용에서 어떻게 연계되었는가그것은 좌파신자유주의자 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보수세력은 좌파대통령으로 불렸고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신자유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조금 더 시장만능주의로 만든 사상이다.

 

하이에크가 만든 신자유주의사상은 20세기 초반 케인즈학파와 연속하여 대립되는 경제사상이다세계의 경제구조는 무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만과거의 거래방식은 화폐를 직접 주거나 또는 어음그 금액에 할당하는 금과 은으로 지불했다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전자거래가 이루어지고금융경제가 모든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외국의 주식을 국내에서 살 수 있고국내의 주식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세계의 흐름은 이런 금융자본주의와 더불어 노동유연화가 유입되기 시작한다.

 

노동문제는 단순히 노동자만이 아니라 국가전체의 문제에 해당된다국민 대부분이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나본인이 그런 처지라는 점을 망각하거나설사 알고 있어도 현실의 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국가라는 체계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대통령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부수장이기도 하나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관리자이기도 하다그 조율자가 현실의 벽에 맞히는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이미 자신의 당에서 외면 받으며과거 같이 투쟁하던 동지들도 그를 외면했다.

 

상고출신 고등학교 졸업장을 평생 그를 괴롭혔다하다못해 명예졸업장까지 챙기지 않은 대통령힘이 없기에 언제나 정치권과 언론에 터지는 대통령소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 10년 전의 한국이 생각난다그가 정말 뛰어나고 탁월한 능력을 갖춘 대통령이어도그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나는 군복무를 노무현대통령 집권 하던 시기에 했다하사로 임관하여 하사로 전역했다내가 훈련소에서 한참 군사교육을 받을 때 탄핵을 당했다나는 훈련으로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자대에 가서 안 것은 대통령이 이동할 때 항공기가와 헬기를 자주 이용했다는 점이다.

 

헬기를 이동하면 공중에서 인원을 수송하므로육로보단 빠르나 그 자리가 불편하다항공기 소음은 민간항공기가 아닌 군용항공기의 경우 소음진동이 그대로 사람에게 온다좋은 차에 육로로 가면 편하나대신 교통통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소설에서 헬기이동 장면은 군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공군하사로 복무했기에 전시작전권 관련 업무도 맡았다당시에 비밀이나지금은 비밀이 아닌 것으로 공군 피스아이 사업을 할 때항공기 도입을 위한 시설사업을 계속 맡아왔다.

 

전시작전권 환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적의 정보를 파악하여 조기대응을 하는 것이다조기경보통제기를 도입하여 적의 동향을 파악하여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휘 타격 임무완료 시스템은 국방군사시설의 현대화를 일구었다공군작전시설 및 첨단장비도 이때 가장 많이 도입되었다그러나 현실은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경포대란 말로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 불렀다. DJ국정과 참여정부를 두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이라 하나지금을 보면 그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10년이 더 좋았던 시간이란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당시 많은 사람들과 언론에 서운해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한편으로 거대한 권력을 잡은 자들은 무엇을 해도 적당히 넘어가도권력이 없는 자는 꼬투리만 잡혀도 목숨이 위태롭고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여기저기서 공격한다가끔 생각한다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도 해명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당해야 하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말이다몸부림조차 냉소의 조롱거리로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오래된 생각>은 제목처럼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생각하는 축에서 오래된 과거이지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거라는 시간이 축척되어 만들어진 결정덩어리이다작가 윤태영은 이 책에서 그동안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소설처럼 만든다하다못해 나 같은 일반인도 바보처럼 그 시대를 보냈는데윤태영 같은 보좌관들은 오죽할까? <오래된 생각>은 노무현대통령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책이 아니다노무현대통령이 나오는 순간 추모의 시간은 잠시 스쳐가겠지만정작 중요한 그가 처한 현실이란 점이다.

 

책을 보면서 섬뜩한 모습이 나온다인수는 익훈의 친구에서 완벽한 적으로 변한다그가 검사가 되고국회의원이 되어 자신의 당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할 때그는 자신의 이익과 성공이 이 나라의 성공과 미래라고 여기는 것이다어느 사회이든 엘리트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거기서 정책과 각종 입안을 올려 현실에서 실행될 경우 국가의 운명은 제대로 돌아갈리 없다. <오래된 생각>을 보면 익훈은 자신의 이상과 이념을 위해 친구와의 관계를 끊고가족까지 민폐를 끼친다.

 

그의 선택은 대의적으로 옳을지 모르나그의 인생에서 많은 마찰음을 내었다자신을 사랑해준 희연을 인수에게 가버렸다공안사범으로 수송될 때 책을 읽는 도중책에 적힌 구멍 뚫린 글을 읽는다희연이 익훈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다소설에서 반 이하는 허구로 구성되어 있으나임진혁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비리 경제인을 청문회를 할 때 증인이 위증을 하자위증을 잡기 위해 익훈의 증언을 통해 어느 기업의 거물을 구속시킨다그런데 그 거물은 인수의 아버지였다인수는 검사지만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했다대의와 목적그리고 사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원한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지식인의 역할은 군중 내지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그러나 막상 현실의 지식인은 없고 엘리트만 존재한다엘리트들은 좋은 대학교를 나오고그 전에 유명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엘리트들은 고등학교까지 친구지만대학에 가면서 서로 갈라지게 되고어느 순간 적으로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저번 정권의 총리와 진보정당의 한 위원은 고등학교 동기지만대학교 졸업 후 공안검사와 노동운동 현행범으로 만나기도 했다.

 

인생은 자신의 뜻처럼 되지 않는다과거 같이 고생하던 친구조차도 현재에 오니 오히려 비난하는 입장이 된다현실의 벽을 돌파하고 싶지만그것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은 더 높기만 하다이런 일을 겪은 작가 아니라면 그것을 같이 바라본 독자에게 책제목이 말한 것처럼 <오래된 생각>이라 말할 수 있을까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은 과거가 아니라오랫동안 계속 생각한 과거라고 말한다면 어떨까항상 잊을 수 없지만언제나 표현할 수 없던 자신 안의 검열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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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0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설도 있었군요! 한국 소설 읽지 않은 지가 넘 오래 되서뤼..^^;;

만화애니비평 2017-06-09 08:53   좋아요 0 | URL
소설이라 하나, 소설같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모로
 


조선시대 임금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나는 행복한 임금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나라는 왕조국가이나, 왕조라는 이름으로 거행되지 못했다. 물론 임금은 백성을 위해 모든 열정을 투자해야 하나 조선이란 국가는 쉽게 되지 못했다. 분명 태조 이성계는 국가이념을 단군조선(檀君朝鮮)에서 찾았다. 고려라는 나라를 포함하여 그 이전에 존재한 삼국시대와 발해라는 국가조차 모두 조선이란 이름 아래 하나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조선이란 국가이름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조선에 사는 백성은 모두가 하나이고, 귀천이 있을망정 그들이 살아가는 생업이나 인륜의 본분까지 파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씩 뒤틀어져갔다. 조선은 서양의 봉건국가와 조금 뭔가 다르다. 봉건귀족은 기사단 내지 영주가 국왕에게 충성하나, 정치권은 지방자치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은 중앙집권적인 정치체계이나, 지방은 군주에게 위임받은 목민관에 의해 통치된다. 목민관은 문과 내지 무과에 급제된 관료에 임명된다. 조선의 무인들은 모두 무식한 자들이 아니다. 훈련원의 봉사 내지 사정 등은 군사업무에 옳고 그릇된 점을 바로잡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문서를 작성해야 했다. 조선의 사대부는 양반이라 하듯이 무반과 문반의 균형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던 때는 아마 임진왜란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양반 중 무관이 가장 빛을 발휘할 시기는 임진왜란이고, 곧 그것은 무반의 멸종이었다. 조선사대부는 임금과 동급은 아니지만, 임금에 버금가는 직급이다. 왕족 중 임금이 되지 못한 자는 처음에 왕족의 직분을 받아 벼슬을 나가나, 어느 순간 일반 양반자제로 살아간다. 그들도 양반이 되어 과거를 봐야하고, 때로는 후예들의 제사자리에서 학생부군(學生府君)으로 모신다. 그래서 임금이란 자는 왕으로서 절대적이야 하는지 아니면 조선 제1의 사대부인지 알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만일 조선 제1의 사대부가 아닌 그저 왕이란 직분이 절대적이라면 조선군주들은 그토록 출생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왕비는 양반규수에서 선택되고, 그들은 정식으로 왕족의 황후 내지 대비가 되어 정사는 개입하지 못해도 차기 왕을 간택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현재 왕이 급사할 경우 다음 왕좌는 대비전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문제이다. 왕이 살아있고, 그 왕이 현명해도 몰라도 어리석으면 크게 그르칠 수 있다.

 

조선의 왕조사회와 봉건적제도, 그리고 왕권과 신권을 제대로 알아야 전후맥락을 알 수 있다. 역사드라마 내지 그것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가끔 보면 뭔가 수가 틀리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다 그런 것이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부터 고종 황제(아무리 조선이 망한 국가이고, 그 마지막은 임금이라도 존칭을 붙이는 게 한국인의 도리이다)까지 왕권과 신권의 대결이다. 그리고 왕권을 위해서 그 왕과 주변 가족과 친척, 또는 그 왕을 돕는 신화와 반대되는 신하, 신하끼리 대립되는 신권까지 주어져 있다.

 

이번에 나온 영화 <대립군>은 바로 이점을 알지 못하면 전후맥락을 살피기 어렵다. 광해군의 어머니는 왕실의 정실왕후가 아닌 무수리의 자식이고, 그 형인 임해군과 더불어 왕자이면서도 신하들의 견책을 받는다. 나중에 선조가 영창대군을 얻은 후 사망할 때, 영창대군은 형 광해군과 나이가 너무 차이가 났으며, 정사에 참여하기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많은 고위대관은 광해보단 영창대군의 집권을 바라고 있었다. 왕권에 왜 신하가 관여하는가? 왕권은 왕의 이름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신하의 간택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용군(庸君), 어리석은 왕인 중종은 바로 그런 신하에 의해 옹립된 왕이다. 적어도 수양대군은 세조로 오르기 전에 본인이 직접 칼을 잡고 다녔지만, 중종은 칼들의 소용돌이에서 오른 왕이다. 이런 문제는 명종에서 문제가 발생되고, 선조가 임금으로 책봉되기 전에 붕당의 영향으로 문제가 있었다. 이때 국상 이준경이 재치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왕으로 오르지 못했다. 만일 선조가 기축옥사와 임진왜란을 지혜롭게 처리했다면 그는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이산해, 류성룡, 이덕형 등과 같은 명관들이 있었고, 선조는 대유학자인 퇴계 이황을 매우 존경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의 순간이 없었을 때이다. 인간의 진가는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다. 그 위기는 바로 전쟁이다. 영화 <대립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은 왜군이 오자 선조는 도망치고, 광해는 남아 의병을 소집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난다. 이때 서인과 남인의 갈등이 나온다. 남인과 북인은 원래 동인에서 시작했으나, 기축옥사로 인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졌으나, 남인은 선조를 호군하던 류성룡 일파, 수군에서 활약하던 이순신과 이억기 같은 무관, 그밖에 의병이 있었지만, 조식 남명 제자인 북인들은 전형적으로 의병으로 활약했다.

 

선조는 평양에서 명나라로 도망치기 바빴지만, 의식이 있는 문무 대신들은 변방에서 목숨 걸고 적과 싸웠다. 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복수나 분노만으로 시작할 수 없었다. 그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동기가 필요했다. 왕조국가에서 왕이란 존재는 모두의 어버이였고, 왕이란 존재는 감히 드러내기가 황공한 존재였다. 조선이 망했다 해도, 일제강점기시대 조선이란 이름이 없어져도 여전히 식민지의 백성에게 주인은 조선총독부 총리가 아니라 고종이었다. 고종이 죽을 때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 통곡했다. 왕이란 그런 존재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백성들은 왜군의 칼에 죽는 것도 두렵지만, 더 두려운 것은 조선의 군주가 백성을 버린다는 사실이다. 왕이 없는 나라에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 이런 배경에는 외교와 내정, 경제, 권력다툼이란 다양한 고리들이 살아있던 것이다. <대립군>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한다. 왜 광해가 남아있을까? 광해군은 참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광해군은 연산군 다음으로 폭군으로 남아있고, 종이나 조 대신 군으로 왕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연산군처럼 암살되지 않았다. 오리영감 이원익 정승의 도움으로 천수를 누리며 생을 마감했다.

 

광해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으나 임금이 되었고, 임금이 된 이후로 보여준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과연 그가 폭군인가? <대립군>은 그가 조선의 왕세자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들, 실제 광해군은 아주 명석했고 인간성이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신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왕이다. 영화에서 조선의 왕을 노리는 자는 왜군이 아니라 조선의 민중이었다. 선조가 한양에서 나오자,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은 왕궁 문서고가 파괴되었다. 노비문서 내지 국가에서 빌린 부채 등을 삭제한 것이다. 왜군이 오자 길을 안내하고, 어느 이는 왜군의 부하가 되었다.

 

이들이 된 동기는 군왕은 백성의 통곡을 무시하고, 자신의 안위와 권력만 찾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권력을 가진 신하와 연합하고 왕후까지 간택한다. 선조는 광해를 왕으로 삼을 생각을 없다. 단지 조선에 왕이 없다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할 때 구색이 갖출 수 없고, 의병조차 통솔할 수 없다. 누군가 남아 자신을 대신해야 한다. 대신한다는 의미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필요 없는 자를 남긴 것이다. 광해는 그런 아들이다. 2번째 아들이나 임해군과 더불어 무수리의 아들이고, 선조 역시 무수리의 아들이다. 정실 사대부의 규수를 맞아 대군을 원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임금의 뒤틀린 신분의 콤플렉스는 경종과 영조에 가면 비극에 이른다. 영조 역시 무수리의 아들이고, 연잉군 시대 경종과 소론에 목숨이 위험했다. 노론과 연합하여 권력을 잡자 그가 행하던 짓은 소론을 부수고, 경종의 흔적을 지우고,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였다. 왕의 권력은 그런 것이다. 선조는 광해에게 세자를 줄 생각이 없었고, 그를 살려둘 생각도 없었다. 왜군이 전국을 모두 점령할 때 명나라에 그를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의병을 구하기 위해 군사진영에 보낼 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점은 광해를 지지하지 않은 신하들도 알았다. 광해를 암살하려 자들은 처음에 왜군이 아니라 암살단이었다. 암살단은 왜군의 조총 대신 강력한 활을 사용했고, 그 중심에 염탐꾼을 심어놓았다. 광해군이 죽어도 상관없는 형태였다. 이때 광해만큼 암울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립군(代立軍)이다. 이들은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나, 집안이 가난하여 병역을 서야 하는 자들은 대신하여 군복무를 하는 자이다. 평화가 지속되면 모르나 변방에 여진족과 왜구가 나오면 대신 가서 싸워야 한다. 대립군은 정군(正軍)으로 복무해야할 양인들 대신 군복무를 하니, 그 수가 일대일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호패를 몇 개나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죽게 되면 병역을 대신하지 못해 가족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 조선시대 군역은 정군과 보인(保人)이 나누어져 있다. 보인들은 정군들이 군역을 하면서 필요한 생계수단을 지원한다. 집안족보를 보니 임진왜란 시기 나의 할아버지는 보인을 맡았지만(우리집안은 남인이고 당시 할아버지 친척들은 전쟁 중에 많이 죽었다), 한편으로 무관으로 임용되었다. 그 동생은 만호(萬戶)라는 무관자리를 맡았다. 본래 무관을 맡은 자나 정군을 이행하면 몰라도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대립군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타인의 이름으로 군역을 했다. 죽음이 오고가는 전장터, 그러나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굶어죽는다. 이런 대립군을 광해군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광해군의 역사는 정사일수 있으나, 대립군은 실존해도 광해군과의 관계성은 허구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 그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광해군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다음으로 전쟁을 직접 수행한 임금이다. 임진왜란에는 3인의 영웅이 있다. 무의 완결자인 이순신, 전시행정의 완결자인 류성룡, 전시상황의 바람인 광해군이다. 그래서 선조는 3사람을 미워하거나 견제했다.

 

3사람 모두 선조를 대신하여 조선을 구한 사람이나, 왜 미워하는가? 백성들은 모두 광해의 분조를 알았다. 선조가 머문 성은 파괴되었으나. 광해군이 머문 자리는 오히려 건재했다. 영화에서 광해는 백성들의 고통 받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괴로움에 눈물을 흐른다. 굶주림에 밥을 얻어먹을 때 대립군 하나가 노래를 부르자, 그 장단에 따라 춤을 춘다.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자세로 백성을 대한다. 그를 보자 백성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을 흐른다. 가토의 군사가 광해군과 대립군이 피한 성에 침공하자, 광해는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의 국기, 왕을 상징하는 어기를 올려 작은 성이 조선의 정부라고 선언한다. 거기서 조선의 백성에게 자신의 왕이란 사실을 밝힌다.

 

영화에서 고위관료가 경연을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은 유학이나 그것은 공맹의 유학보단 주자의 성리학으로 흘러가던 시기이다. 주자의 성리학으로 조선은 망했다. 공맹의 유학에서 맹자는 모든 만물의 근원은 백성이라 했다.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고, 백성의 고통을 담아듣지 않은 군주는 자격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에 광해에게 도망을 권한 고위대신은 오히려 광해에게 꾸짖음을 듣는다. 위기의 순간, 생사의 길로, 광해는 왜군의 앞에 공포를 떠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기 때신 손에 활시위를 들기를 선택한다.

 

광해에게 국가의 주인은 바로 배고픔에 고통 받고, 왜구 앞에 죽음을 당하고, 임금에게 배신당한 채 절망하던 백성이다. 임진왜란으로 최근에 만든 <명량>은 그저 이순신이 성웅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순신이 성웅으로 인정받은 시기는 아주 뒤에다. 그가 영웅인 것을 아는 사람은 친구인 류성룡이다. <징비록>에 순신에 대한 애절함이 깊이 드러난다. 감정을 드러나기를 조심하던 조선시대 사대부, 그것도 영의정 대유학자 류성룡은 친구의 죽음에 비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순신과 인척이던 백호 윤휴는 남인의 논객으로 사형을 당했다.

 

남인이던 이순신은 정조에 이르러 겨우 성과를 인정받았다. 남인, 그리고 남인과 북인의 원류인 동인이 그토록 가려진 것은 노론의 사대주의와 권력지향에 대한 욕망이다. 광해의 가치가 절하된 이유는 그가 서인에게 반대되는 세력이고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다. 인조반정은 서인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남인 이원익이 광해군을 보호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남인 이원익은 임진왜란에도 국정을 안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이다. 선조와 서인에게 임진왜란은 지울 수 없는 실정이다.

 

의병과 전란 중 성과를 올린 자는 대부분 동인계열이다. 남명 조식의 제자들은 의병장으로 활약했고, 이순신의 역할을 말할 필요도 없다. 원균은 서인의 장수였지만, 결국 실패로 인해 전장에서 사망한다. 그래도 선조는 그에게 높은 공훈을 치하한다. 선조는 조선의 승리를 의병장과 이순신·류성룡의 세력보다 중국의 진린 세력을 옹호했다. 명나라에 구원 간 자신이 천국의 나라의 구원군을 데리고 와서 적인 왜구를 격퇴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선조의 왕권은 그대로이나, 민심은 그렇지 못했다.

 

이순신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나, 류성룡이 북인에게 탄핵이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거나, 광해군이 선조가 죽기 전에 머리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선조에게 당해야 했던 이유도 모두 임진왜란의 비극이다. 만일 류성룡이 현명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이 장군도를잡고 지휘하지 않았다면, 광해군이 노숙과 암살의 위기를 지나지 않았다면 조선은 없다. 그리고 그들 옆에서 목숨을 걸고 도와준 이름 없는 백성 역시 없었다면 마찬가지이다. 광해군이 조선군영에 도착하자 무관을 비롯한 백성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사기가 충만해지는 모습이 나온다.

 

광해군 손에 들려진 날카로운 칼, 그 칼을 아주 강하게 잡고자 하는 의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백성을 이 나라에 살리기 위한 의지이다. 대립군은 자신의 이름 없이 살아간 자들이다. 곽재우나 정인홍 같은 유학자들은 양반의 이름으로 의병장을 맡아 조선을 살렸다. 하지만 이들은 혼자서 싸운 게 아니라 그 뒤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다. 단지 그들의 의기가 충만한 것은 조선의 땅에 조선의 임금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광해군에 자신이 직접 글을 적어 격문을 돌리자 전국에 의병이 활약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어기에 담겨진 2마리의 용은 하나는 임금이고, 하나는 백성이란 말을 토우가 한다. 사실 조선왕조가 왕이 주인이라 하나, 유학에서 진정한 주인은 백성이다. 20세기부터 조선의 위대한 철학자 정약용 선생의 가치가 다시 살아난다. 다산의 철학이 조선시대 왕조국가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진정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다. 임금과 목민관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라 백성의 생업을 유지하고, 그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이 민주주의에서 자유와 삶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정부, 국회, 법원의 삼권분립이 완성된다.

 

광해군이 폭군이라 하나, 막상 광해군이 만들어놓은 과업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비교하여 훨씬 우월하다. 허균의 발탁이나 정치나 외교의 업적은 인조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왜곡된 이유는 서인들에 의해서이다. 서인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다소 반대지점이 필요했다. 개혁을 원한 군주나 세자들은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왕조사회에서 권력의 다툼이나 암살 등은 흔한 일이다. 백성들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개혁을 통한 모순의 해결을 원했다. 개혁은 권력을 가진 고위대관에게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조선시대 민중의 분노와 울분을 외면한 이들이 가장 신봉한 것은 성리학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한 사람의 말만 찾는 바보들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했다. 그 바보들은 위기의 순간에 백성을 버렸고, 광해가 백성과 함께 하는데, 왕의 자리를 위해서 벗어나는 것부터 권했다. 조선시대 권력에서 왕조국가에 숨은 그늘의 권력이란 늘 이런 것이었다. 이런 모순에서 단지 가난이란 이름아래 군역을 대신한 대립군, 그들은 대립군역이 끝나도 마지막은 의병이 되어 죽음을 선택한다. 의병이 되어 죽는다면 광해군은 살아 전국의 의병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팔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 사실 영화는 조선이나 그 말에는 조선이 아니라 현대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그 당시의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시선과 감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콘텐츠이다. 게다가 역사물이나 과거와 현재와 대화하는 모습이 영화로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지난 정부에서 영화 <광해><변호인>을 만든 업체가 많은 제재를 받았다고 한다. 영화가 역사를 소재로 제작했다면 사극영화조차도 현대사회의 우리를 반증하는 스토리텔링이다.

 

<대립군>을 보면 참으로 암울한 시대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대신 병역을 살아간 백성들, 그들에게 이름은 있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것을 바꾸려 했던 자들이 있었다. 어둠과 절망만으로 가득해도 가늘고 약하지만 작은 빛이 어딘가에 분명 존재했다. 인간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하다. 인간은 생물인데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나, 살아갈 의미가 없다면 죽음의 욕망이 영혼을 지배한다. 그러나 대립군은 죽음의 욕망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게 아니라 삶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이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말이다. 대립군만 아니라 조선의 백성은 임금다운 임금을 원했다. 광해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으나, 백성의 고통을 같이 나누며 그들을 위로하면서 진정한 임금이 되었다. 조선의 임금을 조선의 땅에 있었고, 유교정치가 그대로 실현되었다. 죽을지 알아도 왕의 깃발이 보이자 100명의 의병과 승병들은 죽을지 알았지만, 사지를 향하여 뛰어간다. 유교사상은 백성을 잘 살기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나, 그 중심에 군주가 있어야 했다.

 

<대립군>에서 대립군만 아니라 분조의 왕조차 대립군처럼 되어야 했지만, 광해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왜군과 싸웠다. 나라의 지도자란 제일 낮은 곳을 찾기 위해 높은 곳에 존재한다. 같은 선상에 있으면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순신 역시 진중에서 회의할 때 참모만 모이는 게 아니라 가장 말단 병사까지 발언권을 주었다. 이순신이나 광해군이나 모두 가장 아래부터 먼저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이 수 백 년 뒤에 가서 알아준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그들 옆에서 생사를 같이한 자들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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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5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7-06-0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가 읽은 책이 3권이나 있네요! 반가워라~~

만화애니비평 2017-06-09 08:53   좋아요 0 | URL
아마 이덕일 씨가 저술한 게 많았나 봅니다.ㅎㅎ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전국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도서라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는 유대인이고, 저명한 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감명 깊게 읽은 후 이번 도서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보면 그가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적인 면모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백인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인데 유색인종은 후진국에 핍박을 받는 것인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리고 인류학적인 맥락에서 읽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모색 반성정신이 없다면 책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내포할 수 없다.

 

인류학에 대한 보고에서 기존에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연대><야생의 사고> 같은 서적을 읽으면 인류학의 관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물의 교환으로 기술력의 차이를 말할 수 있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문화수준이란 틀에서 우월한지 아닌지를 논하기란 어렵다. 그 책들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나는 단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그 책을 저술한 사람은 유럽 내지 미국 등과 같은 백인 중심문화권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게다가 유발 하라리 백인이 아니라도 백인 중심의 문화가 되는 기독교 발생지인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다.

 

어느 것이든 단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조건이다. 하지만 그 우발적인 우연은 그곳에서 태어난 인간에게 하나의 운명이 된다. 자연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를 읽으면 바로 이런 관점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사피엔스만 현재 인류를 대표하고 나머지 인류는 사라지고 없는가? 네르탈인이나 자비원인 등과 같은 사피엔스와 다른 인류가 과거에 존재했고, 어느 순간 그들은 사라졌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어떤 경로로 사라지고 없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과거 선사시대 이전에는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이 극히 제한적이다. 남은 것은 인류의 사체에서 뼈 조각 정도이다. 하라리가 사피엔스와 다른 종족은 병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사피엔스의 강력한 힘에 의해 소멸되었는지 알 수 없더라도 적어도 사피엔스가 과거에는 자연에서 매우 약한 동물에서 지금은 모든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화라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여 그 자리를 정복하여 만든 자리이다. 문화는 노동의 산물이나, 문화가 탄생한 시작은 농업시대이다. culture란 단어는 문화를 의미하기도 하나 프랑스어로는 농업이란 의미도 있다.

 

농업 이전에 인간은 많은 무리들이 소수 인원으로 구성되어 움직이면서 사냥과 채집하였다. 식단은 농업사회보다 훨씬 좋았고, 키도 신체조건도 훨씬 좋았다. 인류의 승리는 단순히 두뇌의 발달만 아니라 인류구성원 증감에도 큰 여파가 달려있다. 전 지구에서 어느 동물은 가지 못하는 곳은 인류는 모두 갔고, 심지어 달 표면까지 발자국을 남겼다. 모든 것을 확장시킴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간 인류, 하지만 이것은 좋은 효과도 있겠지만, 나쁜 효과도 많이 등장시켰다.

 

인류학 서적 특성에서 마지막은 인류의 과잉성장과 욕망에 의한 자연파괴, 환경오염, 경제적 빈곤문제가 늘 등장한다. 사피엔스는 그런 인류학 도서의 흐름에서 그저 흘러가는 1권의 책이라 생각한다. 단지 작가는 생각보다 마르크스주의를 묘하게 드러낸다. 유물론적인 가치에서 경제적, 물질적 하부구조가 되어야 상부구조로 이어지는 점이 말이다. 우리가 구축한 세상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사상에 대해 논하기를 인간이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상이라 이념이나 이상적 가치조차 물질적, 경제적 조건에서 시작되면 어떻게 보는 것이 답일까?

 

물질적 요건에서 인류의 시작은 물질 그자체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지금처럼 이성능력이 탁월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생존을 위해 활동했다. 생존의 조건은 식량의 비축이고, 식량을 섭취하면 그 다음은 종족의 번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에 비해 태어나는 아기들의 조건은 매우 불안하다. 동물은 태어나면서 이미 걷을 수 있고, 조금 시간만 지나도 사냥도 하고, 생식기능을 갖출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제대로 된 노동력(여기에는 2세를 만들 수 있는 생식기능까지 고려한다면)을 발휘하려면 14세 정도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14세는 아직 어린편이나, 과거 인간의 수명이 30~40살 정도라고 생각하면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매우 불리하다.

 

이게 인간의 두뇌가 발달된 이유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인간은 팔의 힘이나 다리의 속도나 이빨의 날카로움을 야생동물에게 이길 수 없다. 오직 두뇌의 발달, 사고력의 향상에서 태어난 창의력만이 생존의 방법이었다. 대신 인간은 두뇌와 손기술의 발달로 4족 보행에서 2족 보행으로 살아간다. 정교한 손작업에서 손은 땅을 지지하는 것보다 도구를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나, 직립보행을 하는 덕분에 인류 대부분은 요통을 가지게 되었다. 4발에서 2발로 몸을 지탱하므로 척추와 관절에 부담이 많이 가게 되었고, 다른 신체기관보다 대뇌로 혈액을 많이 보내야 하므로 운동능력이 다른 생물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피엔스 이외에 다른 인류는 사피엔스보다 더 좋은 신체조건과 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피엔스만 남아 인류의 역사가 되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시간을 계산할 수 있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에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위대한 영웅들의 작전은 바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사피엔스가 가진 힘이란 바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상력이었다.

 

상상력의 완결은 사피엔스 인류에 대한 영속적 삶이 아니었다. 사피엔스 내부에서도 거대화로 이루어지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했다. 인류는 농경사회를 구축 전에 이동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거치고 나자 잉여가 발생되고, 잉여를 지키기 위해 혹은 약탈하기 위해 군대 내지 국가적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시스템 구축에서 통치 권력을 합법화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이념이 필요했고, 그것은 신화라는 매체로 통해 부족과 국가를 하나로 만들 수 있었다. 역사의 시작은 신화의 시작이라 나는 생각한다. 역사는 사실을 말하지만, 신화는 그 역사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지만, 기록은 있어도 타 종족에게 삼켜진 종족은 기록은 남아도 신화는 없다. 신화는 가장 먼저 파괴되고 삭제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잘 지적한 것은 서양국가가 아직 세계를 모르는 시기, 그 위험한 도전에 선원들이 배를 타고 항구를 떠난다. 다시 돌아올 시기가 1년일지 아니면 10년일지 혹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배에는 3가지 직업군이 항상 탄다. 하나는 군인, 둘째는 성직자, 세 번째는 상인이다.

 

침략의 조건은 무력으로 개방하여 피정복자들을 정치사회적으로 순화시키며, 이익창출을 위해 식민지로 삼는다. 하지만 상인이 가장 뒤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경제적인 이익이 가장 먼저이다. 전쟁 내지 침략의 조건은 자국의 생산력이나 거기서 발생된 잉여물들이 넘치고, 그것이 처분되지 못해 경제적인 위기가 된다. 현대인들이나 15세기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경제학적으로 자본가나 기업인들은 이익영업을 위해 상품 판매전략을 짠다. 그들은 모든 상품이 팔리지 않을 것을 전제로 마케팅을 구상한, 현대인들은 상품이 나오면 모조리 다 팔리는 경제구조로 바라본다.

 

상품이 남으면 판매되지 않은 물품은 창고나 혹은 재고처리가 되고, 이익을 창출하지 못해 기업은 망하고, 국가경제는 위축된다. 방법은 확장하는 방법 경제적 침투이다. 현대사회는 금융자본주의가 정착되었으나 불과 20세기 중반까지는 금융자본보단 상품판매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체계를 가지지 못했고, 자본주의 시장체계의 정치제도는 민주주의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조건이 부여되고, 그것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는 점이다.

 

국가가 시장과 정치를 독점하면 상품의 진입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이 저지른 최악의 악덕이 아편을 중국에 밀매한 것이다. 아편전쟁으로 승리한 영국은 아편을 마음대로 중국에 뿌렸고, 시장개방까지 얻었다. 시장을 침공당하면 자본력이 침식되어 다시 역전하기는 어렵다. 또한 금융자본주의 이전에 경제는 금은 같은 귀금속이 화폐적 가치가 높았다. 과거 미국달러는 은행에 저장된 금과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금의 보관이나 금의 가치적 문제로 미국은 달러를 금과 동일한 가치로 나두지 않았다.

 

화폐와 금의 등치관계에서 화폐 그 자체로 모든 가치를 척도를 두면서 자본주의시장에서 금융자본이 활성화와 연계된다. 경제적인 이익에서 국가는 전략을 바꾸고, 식민지 정책과 대외 외교정책을 수정한다. 게다가 외교정책에서 경제정책을 잘못 펼치면 망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대혁명이다. 로베스피에르를 필두로 한 산악파들은 민주주의 열성을 외쳤지만, 그 계기는 국가부도 사태이다. 루이16세 이전 루이14세는 대외외교정책과 식민지정책에서 경제적인 참패를 겪었고, 국가예산의 대부분을 빚의 이자를 갚는데 사용했다.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높이고, 중앙집권적 통치는 지방귀족들을 위축시켰고, 지방의 농민은 부조리한 경제적 모순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귀족과 성직자는 세금을 내지 않고 시민과 농민만 부담이 가중되자 결국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혁명의 에너지는 가스가 새고 있는 가스배관과 같았다. 단지 도화선을 붙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 셈이다. 변증법적으로 질량 변환법칙이 있다. 물이 100도를 넘으면 수증기가 되듯이 에너지가 일정수준 올라서면 바로 속성이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조차도 경제적 구조이기도 하나, 그 구조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문화유물론자들 주장하는 경제적, 물질적(문화유물론자는 환경적, 생태적 조건도 본다) 조건에 의해 사회적 변환이 일어난 셈이다. 인류의 혁명 내지 전쟁, 각종 사태는 이런 경제적, 물질적 조건이 따르게 되어 있다. 최근 한국 프로바둑선수인 이세돌 씨가 구글에서 만든 지능성 컴퓨터 알파고와 대국을 두어 14패를 기록했다. 컴퓨터는 단순히 계산만 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중심으로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예측은 인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나도 업무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마다, 모델링 자료를 확인한다. 대기가 확산 및 이동되면서 대기 중의 대기오염물질이 어떻게 퍼지고 농도는 얼마나 증감하는가를 말이다.

 

인간의 확장은 처음에 동물과 다른 인류는 이제는 인류 스스로에게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너무나도 흔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일원인 하버트 마르쿠제는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라고 했다. 자연이 파괴된 지 옛날이고, 인간은 인간 유전자 조작기술을 연구하고, 사이보그 연구를 한다. 과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활약한 <터미네이터>란 작품은 괜히 나온 것은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인류의 확장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그것에 따른 혜택을 보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30~40살이던 게 지금은 70~80살이다.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빈부격차로 나이가 너무 들면 국가적 재정문제만 아니라 노인에게 주어진 환경조차 가혹하다. 빈곤한 노인은 병원비를 제대로 내지 못해 아픈 몸을 시달리고, 길거리에 손수레를 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돌아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도 1960~1970년대 경제성장 주도라고 하나, 경제는 성장했지만, 성장한 것은 국민경제생활이 아니라 경제라는 공간이 팽창했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가 제대로 성장했다면, 지금 길거리에 손수레를 끌고 밤에 뺑소니로 운명하는 분들을 2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하라리도 잘 지적했지만,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이미 그 문제에 대한 의문을 잘 지적했다. 하루 8시간 노동시간이라 해도 출퇴근 1번에 1시간 넘는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 세탁기 및 청소기가 있어도 늘 생활은 빈곤하고 바쁘다. 여유가 있어야 하겠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진다. 부시맨 혹은 원시부족은 하루 3시간 일하고 며칠 동안 계속 놀거나 휴식을 취한다. 기술적 수준은 원시부족이 떨어져도 삶의 질은 그보다 못한 게 우리의 삶이다.

 

삶의 질을 본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기술의 발전은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인류를 바꾸고 그것은 정치와 사회적 틀로 변모한다. 외교와 전쟁관계에서도 결국 자국의 생산시스템이 확장되어 더 이상 한도를 지탱할 수 없기에 벌어지는 사태이다. 우리는 이런 욕망의 굴레에서 스스로 억제하기보단 언제나 그 굴레를 수레바퀴처럼 계속 돌린다. 수레바퀴는 그저 같은 반경으로 회전하나, 우리는 눈사태가 난 산처럼, 끝임 없이 눈덩이를 불리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문명의 혜택이고, 그 혜택은 당연히 빈부격차로 통해 구현된다.

 

세계 인구는 70억을 돌파하여 전 세계가 사피엔스로 가득하나, 한국은 오히려 역으로 인구가 축소되고 있다. 세계의 거대한 흐름이 우리 일상생활을 크게 뒤흔들지는 않으나, 작은 변화가 계속 누적되어 큰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게 옳은 것일까? 하라리는 인류는 계속 확장되고 있는 반면, 반드시 좋은 방향만 향해 가고 있다고 하지 않는다. 좋지 못한 방향도 있기에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유발 하라리의 책과 그 책을 읽는 나에겐 변증법적인 상황이 보이는 것 같다.

 

책을 처음부터 끝가지 읽으며, 거대한 이야기가 오는 것처럼 보이나, 막상 무엇이 인상 깊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크게 와 닿는 것은 없다. 이미 이런 맥락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오래전부터 내놓은 이야기이고, 유발 하라리는 단지 그 담론 속에서 최근 일어난 일들과 최근 기술로 밝혀낸 과거의 인류와 역사를 보충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물론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논하는 담론은 너무 익숙한 점이다. 문명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성에 대한 현상은 잘 말할 수 있어도 거기에서 오는 비정상적인 야만의 시간을 제대로 반성하기란 어렵다.

 

그나마 유발 하라리가 다이아몬드보다 더 나은 점은 그는 문명과 역사과정에서 희생된 자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저녁에는 파티를 열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경건하게 찬송가를 부르는 많은 착한 시민들은 사실 인도에서 굶주리는 인도인과 아메리카에서 손발이 잘려나가는 인디오 주민들의 고통 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계는 자연의 파괴, 동물의 학대, 타인의 고통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착취수법이 나온다는 점이다. 사피엔스는 이미 지구를 점령했지만, 1가지 점령하지 못한 것은 타인에 대한 윤리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형태에서 사피엔스는 자기기만으로 세운 왕국에서 군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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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5-30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피엔스는 자기기만으로 세운 왕국에서 군림할 것이다˝란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그로 인해 곧 멸망할 것이란 저자 2부작 <호모 데우스>에서 중심 주제란 생각이 듭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7-05-30 22:41   좋아요 2 | URL
데우스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시계장치의 신이라 등장하는 것일까요?
도서관에 나오면 빌려 봐야겠습니다앙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2:54   좋아요 1 | URL
<호모 데우스>에서 기계 장치인 마키나가 원인이 된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호모 데우스>를 얼핏 읽으면 마키나가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전 다르게 읽었습니다. ㅎㅎ
그저 우리 문제, 우리 사고와 생각, 우리 기만의 문제였습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7-05-31 10:30   좋아요 0 | URL
결론은 저 책을 제가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군요..ㅎㅎ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참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를 나는 잊지를 못한다. 내가 살던 부산 영도에서 어느 한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 이름은 최강서 열사, 어느 누구에겐 열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아주 불편한 이름일 것이다. 그가 자살을 한 이유는 당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문재인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문재인 후보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이겼다면 그는 자살을 하지 않았고, 영도에서 중앙동으로 넘어가는 부산대교에서 그 긴 행렬의 장례행사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동자의 현실을 사람은 잘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체는 잘 모르겠다. 실로 노동자 본인조차 자신에게 가해진 현실에 대한 부조리에 무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매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친다. 만일 그 피해를 당한 사람이 본인의 가족과 친구가 된다면 세상에 대한 부조리에 깊이 좌절한다. 그 좌절의 맛을 본 사람은 세상에 대한 불만과 모순에 원망으로 매우 부정적인 삶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대통령이 바뀌어 당장 가난한 노동자의 삶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극단의 선택을 고르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만 구축할 뿐이다. 그 말은 무엇인가? 억울한 일이 있으면 말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전부 해결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에서 오늘 내가 본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노무현대통령은 부산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국회로 입성 후 청와대로 들어간 인물이다.

 

노무현은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이고, 가진 게 없는 서민이라도 서민의 편이 제대로 될 수는 없어도, 되고 싶어도 그에게 힘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들은 더 없었다. 지난 참여정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정부라고 한다. 그런데 정권에서 다른 대통령 2번을 거치고 오면서 이제는 그 말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영국정치가 및 역사학자인 E.H 카를 역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모르고, 혹은 긴 어둠의 터널을 헤쳐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역사에서 10년이란 시간은 정말 짧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매우 길고도 힘든 시간일 수 있다. 10년이란 시간을 두고 우리는 무엇이라 이야기를 해야 할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주장을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 했다고 말이다. 참여정부는 실패했는데 왜 노무현대통령이 1등이란 말인가? 그것은 지난 다른 대통령을 겪으면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림자들의 섬>에서 노동자들의 시선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탐욕스러운 자본가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자라면 퇴임 후에 화려한 생활도 하지 못한 채 1년 조금 뒤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내 가슴을 적시고 말았다.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는 노무현이란 인물을 과거의 인간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등장시켰다. 노무현이란 존재는 참으로 신화(神話)적인 존재이다. 신화란 인간이 아닌 신의 이야기라고 하나, 신은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대체해 놓은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을 신격화시킨 점에서 노무현은 생물학적으로 사망했지만, 사회적으로 다시 부활한 존재이다.

 

인간의 죽음을 두고 어느 누군가는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소거될 경우 사망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남겨놓은 많은 자료에서 노무현은 죽은 인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E.H 카가 말한 역사라는 존재는 과거와 현재가 영원히 멈추지 않고 대화하고 있다면 노무현이란 존재는 과거가 있는 자가 아니라 미래진행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은 그렇다 하더라도 제작사가 CGV(물론 아트하우스에서 지원했지만)라는 점이다. 대기업이 노무현대통령을 위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 그 시기가 전직 대통령이 탄핵 및 파면 전이란 점이다. 영화 개봉 시기는 525일이나 이미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되었다. 전에 내가 본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독립영화 또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던 규모가 상영관에서 볼 수 있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로 전인권의 노래인 걱정말아요가 상당히 흥행했다.

 

<노무현입니다><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비교하면 전편은 대통령 경선에 대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2000년 부산 북·강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이야기이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이 된다. 부산 북·강서에서 패배한 노무현은 원래 종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었다. 유리한 배경과 조건이 있는데도 반대당의 영역인 부산에 내려와 외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그 외로운 전쟁은 겨우 지지율 2%인 약소후보를 2002년 대통령선거후보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저 노무현대통령이 고졸 출신 변호사로 잘 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노무현대통령을 희화한 캐릭터이다. 고등학교도 경기고, 부산고 같은 명문 인문계열이 아니라 상고출신이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한 사람도 적은 시기지만, 상고출신 가방끈 짧은 변호사에게 세상은 참으로 야박했다. 노무현대통령도 만약 집에 여유가 있다면 부산에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서울에 있는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붙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의 자식은 학교에 다닐 입학금보다 오늘 당장 해결해야할 저녁밥이 걱정이다.

 

가난이란 것은 참으로 슬프고 원통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고 조롱을 받는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다. 그리고 더 서러운 것은 그 가난이 나의 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식과 후손에게 영원히 이어져 가는 것이다. 노무현은 가진 게 없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이다. 가난한 이유로 굶주리며 살아가야 했던 그에게 그 가난이 자신의 적이었다. 비주류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이었다. 가난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백도 만들지도 못한다. 가진 게 없기에 상대방과 싸울 때도 늘 밀린다.

 

노무현에게 가난과 그 가난으로 이어진 가방끈의 콤플렉스는 깊은 분노로 만들어진 슬픔이었다. 생각하면 그가 속한 당에 있던 사람은 과거에 야당만 해왔다고 해도, 김근태 의원은 학생운동의 대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을 하던 자들은 대부분 명문대학교 출신이 많았다. 엘리트 세계에 속한 자들이 가진 뛰어난 머리와 양심은 좋지만, 그 한계성이 있었다. 엘리트들은 가난한 사람이 힘들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그 힘든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힘들게 살아가는지는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과 드러나지 않은 심연의 고통은 다르다. 지금은 대학을 대부분 가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대학교보다 고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길가에 가는 어르신들은 초등학교만 나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가난 속에 숨겨진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우울은 아마 노무현대통령의 힘이었던 것 같았다. 노무현대통령 임기 5년은 나에게 군복무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200312월에 입대하여 20083월에 전역했다. 입대하기 전부터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던 나로선 전역 후 주변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괜한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군복무 중에도 그랬지만, 2008년 봄은 유독 심했다. 그런 분위기는 1년 뒤 2009년 늦은 봄 5월에 잊을 수 없는 비극으로 결말이 되었다. 그가 세상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나기 전에도 나도 외로웠다. TV와 신문에는 늘 노무현대통령만 때리는 기사만 나오고, 이른바 소위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도 숟가락을 올리며 더욱 심하게 때렸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세상이 허무한 공간이 되었다. 생각하면 진보정당이나 진보언론·지식인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심하다.

 

노무현이란 이름을 두고 계속 돌팔매를 날리다가 총선시기가 나오면 노무현의 이름을 우려먹는다. <노무현입니다>란 영화를 보면 한 측근이 나와 봉하마을의 장례행렬을 이야기해준다. 자신과 아무런 면식도 없고 아무런 득도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와 그 빗속에서 장시간 비를 맞으며 참배를 한 모습에서 진정 이것이 노무현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말이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을 소재로 한 도서와 영화 그 밖의 매체들은 노무현대통령을 누군지 알려주는 계기도 되지만 한편으로 그를 우려먹는 도구도 된다.

 

노무현대통령은 완전히 신화적인 존재라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고, 반영웅이 되었다가 다시 영웅으로 소환되었다. 그가 영웅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상고 출신 변호사가 노동인권운동을 위해 길 위에서 싸우고, 많은 권력자들에게 맞서서 싸웠다. 우리가 입에서 말하지 못한 것을 그가 대신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 그가 반영웅이 된 동기는 무엇인가? 혼자 들쑥날쑥 설치다 현실의 벽에 걸리거나 또는 그를 믿었는데 우리를 실망시켰다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그가 처한 입장이나 현실적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

 

그가 선택한 최후는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다. 지금 젊은이 사이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있기에 노무현대통령이란 인물이 누군지 궁금할 것이고, 극우사이트에 접한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 그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런데 정작 그가 누군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자신의 크고 작은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은 주변인들을 외면한다. 그러나 노무현은 끝가지 외면하지 않는다. 돈을 포기하지 못해도 사람은 쉽게 포기하는 세상, 노무현대통령을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영화 제목 <노무현입니다>는 과거 정철 카피라이터 책제목인 <노무현입니다>와 일치한다. 영화제목이 저렇게 만든 이유는 노무현후보는 길거리에 나가 길가의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고 말한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대통령정부기관이나,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국민이란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2% 만년 꼴찌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마지막에 취임식에 간다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은 신화가 된 것이다.

 

그의 시작은 서사의 발단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발단이며, 그가 임기 중과 퇴임 후는 위기였고, 그의 죽음 절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는 다시 서사의 발단으로 돌아갔다. 서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모든 것의 종료가 아니라 또 다른 서사의 시작이다. 생물학적 노무현은 이미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노무현이란 이름 세 글자는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다시 말한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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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5-2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j가 박근혜 정부에게 압박당하고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아부성 영화 제작도 했지만 민심을 읽는 마케팅은 정말 잘 아는 듯.
http://www.huffingtonpost.kr/2017/01/16/story_n_14192040.html

만화애니비평 2017-05-28 22:13   좋아요 0 | URL
변호인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탄핵정국이라도 이런 행동은 거의 모험이네요. 마케팅도 대단하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임원들의 판단도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