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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 혐오에서 연대로
오세라비 지음 / 좁쌀한알 / 2018년 7월
평점 :
2년 전부터 나는 계속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해 비판적으로 글을 적어왔고, 게다가 박가분 씨의 책을 읽으면서 서평을 작성하여 그들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런 나에게 좋지 않은 덧글들이 달려왔으며, 그 중에 작성리뷰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덧글을 작성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대한 반론적 덧글이 논리적이지 못했다. 문맥과 어울리지 않았고, 무조건적인 이분법적 시선을 가졌다. 예스24에서 박가분씨의 <포비아 페미니즘>을 서평을 작성할 때 현대한국의 페미니즘 논리는 빈곤하거나 진실로 어려운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엘리트 내지 거기에 매몰된 자 중에서 일부만 혜택이 있을 것이라 했다.
왜냐하면 일부 페미니즘 단체에서 권력과 지위가 있는 여성이 독신보단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과 그들의 남편의 지위 역시 높다. 결국 권력자들의 이권으로 이어지고, 그들은 자신의 이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지 세력을 모우는 방안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라 적었다. 그것에 대한 반론 덧글을 작성한 사람이 있었다. 본문과 전혀 전후맥락이 맞지 않은 논리로 들이대는 것도 문제지만, 제일 웃긴 사실은 나보고 엘리트여성에 대한 열등감이 있냐는 식으로 적은 것이다. 최근 어느 정도 변화할 것처럼 보이나, 남성이 지위와 재력이 있으면 여성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도 가정을 이루지만, 역으로 여성이 지위와 재력이 있으면 보통남성과 가정을 이루는 경우는 많지 않은 점이다.
이를 두고 열등감이란 표현에서 열등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이런 논조를 말하는 본인은 가장 큰 실수를 범했다. 그것은 내가 적은 글대로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남성과 상대할 때 남성의 권력과 지위를 제일 중요시하고, 그것이 없는 남성을 하대하는 점을 말이다. 결국 사람의 판단기준을 그렇게 인정했다면, 역으로 현재의 남성의 권력에 의지하는 여성의 심리가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열등감은 누구나 있을 수도 있고, 느끼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내가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페미니즘 진영논리의 이중성을 드러났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권력과 지위가 높으면, 여성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악적인 존재고, 반대로 남성이 지위가 미천하고 가난하며, 멸시와 조롱으로 무시당해야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결국 강자에 대해 자신들은 약자이니 거기에 대항한다고 하고, 반대로 약자인 경우 상당히 깔보는 것이다. 이중적 잣대논리는 바로 오늘날의 현실에서 사회적 문제에도 드러난다. 몰래카메라를 촬영해서 안 되고, 어떤 개인적 의도를 가진 고의적으로 보는 것도 안 된다. 이번 몰래카메라와 관련된 이슈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물품과 방법으로 몰래카메라를 촬영한 사실을 말이다. 그런다고 내가 몰래카메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고 범죄에 가담하고 공모했거나,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화장실에 용변을 보는 장면을 몰래 촬영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며, 게다가 그런 위생적이지 못한 장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엽기이다. 성폭행범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여기며, 특히나 아동과 청소년 상대로 저지르는 자들은 죽어도 싸다고 여길 정도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런 문제를 알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좋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러면 법적인 방법으로 그런 사람들을 처벌하고 단속하고, 시스템적으로 예방하는 게 맞다. 거기에 대한 대응이 당장 되지 않아 범죄와 무관한 사람을 몰래 촬영하여 피해를 줄 자격은 그 누구도 없다. 여성이 사회적 역사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 당사자도 아니고, 그런 잔재가 남으면 조금씩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피해의식이 남아있다고 여기는 부류가 많다. 물론 잘못된 인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은 그 피해로 인한 정신적 상처로 평생 고통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제3자가 나서서 거기에 대한 복수이란 명제로 남을 피해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지금 페미니즘의 문제는 바로 이런 이중적 요소이다. 진짜 살인을 하려거나 의도를 가지려면 여성을 폭행하거나 또는 성범죄를 저지른 특수한 사례가 있는 자라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전혀 무관한 길가의 행인이나 버스의 승객, 하다못해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 피해의 범주에 들어가면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은 다르다. 2018년 8월, 여성우월주의 집단사이트 워마드의 운영자가 경찰의 체포영장에 의해 출두해야 하는데, 정작 5월에 경찰쪽에서 알아볼 게 있어서 출두요구를 무시하고 해외로 갔고, 이제 범죄적 수사망으로 좁혀오자 자신은 피해자란 글을 남겼다.
법적인 투쟁을 위해 변호사 모금비까지 구하는 이 마당에 만일 이때까지 그들이 행하던 일을 본다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용납이 될까? 일베의 유일한 대항한 세력이라 했는데, 일베는 여성만 아니라 노인, 어린아이, 외국인, 지역적 차별과 온갖 패륜을 일삼았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악의적 루머와 조롱은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투쟁하고 있을 때 그 앞에서 폭식투쟁을 했다. 일베는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조작된 여론세력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면 일베의 유일한 대항자라면 그런 국가권력을 대해 저항하는 것이 올바르고, 거기에 피해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답이다.
전혀 그런 것들은 없었고, 오히려 죄가 있든 없든 남자면 뭐든지 욕을 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나쁘다고 여긴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후 파면 당하자, 여자라서 대통령에서 쫓겨났다고 여기는 것이다. 박근혜가 갓근혜고, 최순실은 여사님이다. 탄핵정국에 청와대로 전화하여 박근혜에게 힘을 내라는 응원성 발언을 한 인간들을 보면서 그들이 일베의 유일한 대항자일까? 2가지는 이미 이룬 셈이다. 일베와 유일하게 가장 패륜적인 행위를 한 점, 일베랑 같이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점이다. 모두 그럴 것이라 여기지 않으나, 그것을 말리거나 정지하지 않았다. 계엄령을 내려 특수부대와 장갑차, 탱크를 내세워 군인들로 하여금 시민에게 총격을 하려고 했던 군부 쿠데타계획을 세우던 인간들이 박근혜의 주변인물이다.
그런 자가 대통령이란 사실이 끔찍한데,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하여 활동하는 사상이라 하는데, YH무역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시위할 때 살인적 진압으로 한 여성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억지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여공들의 피와 눈물을 뽑아 이속을 채운 한국의 권력자들이 계속 그런 악마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군부독재의 지원적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터부시되는 것은 박근혜와 연결이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노동자의 죽음과 고통을 안겨준 당사자에 대한 비판하지 않은 점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그런 논리와 무관하게 여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뭐든지 그들의 입장을 봐야 하지만, 현실은 약자가 약자일 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혹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 많은 여성들이 핍박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민중 안의 피지배계층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욕만 채우려는 양반에 의해 목숨도 잃고, 종이 되며, 수탈은 일상이었다. 군역은 60까지고, 군납을 내지 못하면 집이 무너졌다. 군역에 복무하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환경이 좋지 않아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군역과 관련한 지금 매년 수백명의 군인들이 자살, 사고, 의문사로 생명을 잃는다. 이런 생명들이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페미니즘 전사들은 매우 좋아한다. 공장과 공사장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남성, 구의역 지하철역에서 사고로 죽은 젊은 청년의 죽음은 슬픔과 애도의 대상이지 조롱거리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베나 워마드는 그들을 조롱했다. 내가 열 받는 것은 그들의 비정상적 행위도 있지만, 그보다 심한 것은 지식인 내지 엘리트, 진보인사들이 워마드의 행위를 두고 억지로 쉴드를 치는 행위다. 한남패치나 강남패치나 아무 죄 없는 남녀들이 신상정보가 까발려졌을 때, 그리고 그 행위를 한 인간이 워마드인데도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남성을 공격한다는 부류가 여성도 공격한다. 이른바 흉자, 또는 명예자지는 여성이 여성의 편이 아닌 남성을 지지한 이유로 공격당하는 것이다. 진보 엘리트 내지 진영에서는 이런 일에 모른척하거나 아니면 여자가 했으니 먼저 검거를 당했다는 점이다. 최근 경찰청 발표에서 실제 범죄와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의 검거비율을 보니 남성이 월등히 높았다. 물론 남성이 저지르고 있는 문제들이 많지만, 그런다고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당했다는 심리만 표출했다.
진보지식인들의 발언에서 가장 한심한 것은 어느 교수가 일베가 전국에 600만명이라 한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 5천만에서 남자가 2500만이고, 이중 인터넷이 가능한 인구는 1500만이다. 그런 인터넷 남성인구의 40%라면, 총선과 대선에서 어떻게 진보인사가 선출되겠는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보수세력은 거의 망했다고 볼 정도로 참패했다. 그러면 일베가 600만명이라고 한다면 자유한국당 외 모든 진보계열을 가진 정당을 빨갱이로 보는 사람들인데, 그 발언이 논리가 있다고 본인조차 의심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참 걱정이 되었다.
페미니즘 진영은 진보세력과 결탁되어 있는데, 진보세력이 진보적인 발언을 하는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발언에 취중하고, 어느 정확한 근거와 사실성을 두고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데, 이상한 논리나 집계가 정규화되지 않은 통계, 사실을 통해 자신의 논리가 먹히지 않으면 그저 감정적으로 잘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니냐는 말을 한다. 여자니깐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잘해줘야 한다는 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이다. 사회성에서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사회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원인과 대안을 제시해야할 명문대 교수는 어느새 가부장제 타파보단 가부장적 제도의 잔재를 이용하여 말하고 있었다.
그런 교수들은 최근에 페미니즘 도서를 계속 내며 수익원을 내거나 인지도를 올린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을 보면 논리성이 없다. 단순 편집성의 말만 아니라 전후맥락으로 봐도 맞지 않는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고칠 것은 고칠 것이다. 2010년 전후로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고 공부할 때 내가 보던 책은 지금의 페미니즘과 전혀 달랐다. 미국 저명한 여성학자 메릴린 옐롬의 서적을 읽어보면서 그분은 남여간의 적대성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로 이어진 역사적 사회적 검토하여 새로운 길을 찾자는 것이다. 결혼하여 자녀도 서너명 정도 가진 한 사람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원저가 된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읽어도 남성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가 될 자이고, 서로 대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린 남자아이를 유린하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애초에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여자주인공이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자신의 어린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어린아이를 두고 한남유충이란 표현과 어린아이 성기를 노출하는 사진을 올리고 조롱하고, 심지어 그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계획하려는 인간이 정상인인가? 그런데도 현실의 진보엘리트들은 자신이 머문 이데올로기의 틀에 파묻혀 있다.
이런 시기에 오세라비의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는 상당한 반항성을 주는 책이다. 알라딘에서 이 책이 나올 때 반응이 참으로 우스웠다. 오세라비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덧글이 있었다. 안티페미니즘과 이퀄리즘이란 단체가 있는데, 나도 그들의 글을 보면 나름 논조가 있다고 봤지만, 뒤에 가서 점차 보수의 논리를 내세운 부분이 있었고, 오세라비 작가의 본명인 이영희 선생은 그런 부류와 다른 길을 걸었고, 전혀 상관도 없다. 그런데 읽지 않았는데, 안티페미니즘과 이퀄리즘이란 글을 적은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의 블로그 글을 보니 여성향 BL에 대한 글이 있었다.
알지도 못하고 적어내린 것이다. 그밖에 깎아내린 글이 있었다. 어느 분은 이분이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의 구분을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미 시몬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고 그것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적은 내용도 있다. 어려운 책이라 나도 읽지 못했는데, 그 책을 그런 글을 적은 분이 적었을까? 그렇다면 <제2의 성>에 대한 소견을 말하고 지적했을 것이다. 어느 사람은 이 사람이 뭐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 사람 역시 책을 읽지 않았다. 사회연대노동포럼에서 활동하던 이영희 선생은 민주노총과 관련된 인물이었다.
민주노총, 진보세력과 노동운동을 하던 쪽이 아닌가? 이영희 선생은 여성운동과 관련하여 열린우리당 창시 당시 여성운동 관련 강의도 했고, 노동운동도 관련하여 활동했다. 사회연대노동포럼과 관련하여 사회주의자 사이트(http://socialist.kr/)에서 종종 소개된다. 그러면 이분이 진보성향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여성의 날 행사에 여성단체와 민주노총 같은 노동운동단체도 행사했을 때, 그분은 민주노총 쪽으로 참석했다. 그때 여성단체의 주요인사는 여성정치인 내지 거물급 인사였다.
보통의 여성이 아니라 권력자인 여성이었다. 비정규직이나 힘든 여건에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재력과 권력을 가진 여성단체가 여성의 발언이라고 말한다. 여성신문의 관련인사 중에 박근혜정부 당시 권력을 누린 자도 있고, 위안부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돈 100억에 넘기려 했던 사람도 있다. 여성단체가 과연 여성을 위한 존재인지 아닌지 의문이 간다. 오세라비 작가는 이런 문제도 지적했고, 내가 가장 절실히 마음을 느낀 것은 빈곤여성과 노인여성 그리고 미혼모였다. 미혼모들은 어려운 선택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모자라고 홀로 외롭게 아이를 위해 살아간다.
미혼모센터는 너무 열악하고, 제원을 한정적이며, 노숙인 여성들은 질병과 범죄에 노출되어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빈곤여성은 주로 노인들이며, 이들은 질병과 외로움 속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왜 이들에 대한 애민을 없는 것일까? 내가 처음 페미니즘 도서를 접할 때와 우연히 학부시절 여성학을 들었을 때, 내가 아는 여성학은 여성만이 아니라 빈곤과 어려움을 가진 가난한 사람, 노인, 어린이, 외국인,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어려운 모든 이들을 돌봐야 한다. 그런 사람 중에 50대 남성도 있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 중에 50대 남성이 제일 많다. 혼자 외롭게 차가운 방에서 절망아래 운명을 달리하는 그들은 얼마나 슬픈가?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세 모녀의 죽음은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아픔을 보여줬는가?
만일 여성이 더 많은 어려움 겪는다면 국가적으로 혹은 사회구성원 입장에서 그들을 위한 정책이나 방향을 옳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사람을 외면한 채 이분법적 시선으로 피해자는 뭐든지 불만을 말하고 무슨 일을 해도 된다는 언더 도그마적인 가치관은 우리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진정한 사회적 약자마저 거론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어느 글을 남긴 사람은 이래 말했다.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을 구분하냐고 말이다. 이영희 선생은 자기 자시을 두고 페미니즘이 아니라 하지만, 다소 사회주의 내지 마르크스주의와 연계성이 강하다.
노동운동과 관련하여 그렇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하면 남성들은 임금을 더 받을지 모르지만, 과중하고 위험한 노동으로 산업재해를 당할 확률이 높고, 매년 산업재해 피해가 95% 이상이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위험요소는 적으나 임금이 적고, 비정규직 처우가 매우 부당하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성적인 불평등도 당한다. 특히 마트나 식당에서 부조리한 일을 당하는 그분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반인 점에서 안타깝다. <4천원인생>이란 책에서 식당 이모의 삶을 보며,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을 존중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여겼다. 이들이 식당에서 일하는 이유는 여성이란 이유보단 경제적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상황이 되지 않았기에 일을 한다. 재벌의 가문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구의역의 청년노동자의 죽음이나 쇳물에 영혼조차 태워져버린 젊은 노동자의 죽음 역시 그렇다. 사회를 볼 때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을 두고 봐야지 연대를 이르며 진정한 불평등을 이길 수 있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불평등에 남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남성을 200충이라며 조롱한다. 이영희 선생이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거론하다.
여성운동 : 여성들의 즉각적인 필요와 관련된 실질적인 여성의 관심사에 중점을 둔다. 기존의 젠더관계에 반발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운동 : 여성의 종속문제에 반발, 여성해방, 양성평등과 관련한 전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국가, 국가제도를 가부장적으로 분석하며,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캠페인을 주력한다.
가부장제도와 관련하여 남성 홀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세상은 거의 끝나가고, 그것이 가능한 남성은 소수 10% 이내도 안 된다. 대부분의 남성은 혼자 가정을 책임을 질 수 없고, 아내와 같이 의논한다. 집안의 살림과 운영방침도 아내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지금의 페미니즘 진영 논리 아니 메갈리아 워마드의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남충이란 불리는 남성이 여성의 적이면, 처음부터 결혼을 할 이유가 없고, 결혼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생활 전반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자신들이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은 동력을 얻어 가는가? 나는 워마드에 불만보단 진보지식인에 대한 불만이 높다. 이들은 겉으로 사회는 진보하고, 여성도 사회의 진보에 따라 권위를 상승해야 한다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이라면 모두 똑같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남성도 모두 다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더운 여름 일사병으로 쓰러질 정도인데도 힘겹게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비하하는 말로 암내충 냄져라고 한다. 내가 이런 말하는 부류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은 에어콘이 나오는 시원한 방에 차가운 물을 마실 것이다. 만일 전기와 수도가 터지면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자는 건설노동자이다.
암내나는 냄져 아저씨들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Girls can do anything"이라면 더운 날 옥상에서 수도관을 고치는 일은 왜 하지 않은가? 진보지식인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최근 기사에선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운동도 있는데, 여성들이 1일 비소비보단 남성 1일 비노동이 더 위험하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 비노동의 대상은 노동자들이고 각종 산업재해에 노출되고, 작업환경이 매우 최악이다. 냄져라고 불리며 멸시당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편들기가 진보운동이라 말하는 부류, 더 나아가 저명한 학자들의 생각은 이미 민중의 삶을 2번 짓밟는 것과 같다.
이영희 선생은 페미니스트 이전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성 이전에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이어야지 여성과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인간임을 포기하면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 그저 승냥이 같은 짐승일 뿐이다. 1990년대 말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페미니즘 연구가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부정하는 것도 안티페미니즘이라 지칭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 부정하는 게 메갈리아적인 페미니즘이 되었다. 예전부터 메갈리즘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했지만, 당시 페미니즘과 관련된 알라딘 블로거들은 그걸 부정했다. 나보고 오히려 자신이 메갈리아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어린 남자아이의 성기가 필터링 없이 인터넷에 오르고, 방에서 주무시는 아버지의 얼굴에 칼을 대며 죽이고 말하는 부류가 옳은가? 그런 말을 한 분은 자신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잘 때 칼을 직접 찌르면 죽이고 싶다는 사진을 올리면 좋겠다. 그래야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느 남성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분이 자신의 발언의 반성보단 오히려 누군가에게 욕을 했던 글을 캡쳐 후 거기에 대한 푸념하자, 편들어주는 식의 덧글보단 더 실천적이지 않은가 싶다.
여성이 사회적 불평등한 일을 겪어서도 안 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러면 안 된다. 어느 날, 나는 저녁 후 와이프하고 같이 식탁에서 술을 마시며, 결혼생활은 평등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신 대등해야 하고, 공평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것은 1/n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과 상황 그리고 조건에 따라 맞추어 가는 것이 바르다고 했다. 내가 10㎏ 쌀 봉지를 들었으니 와이프에게 10㎏의 쌀 봉지를 들라고 하는 게 맞지 않다. 대신 다른 것으로 서로 보완해가는 것이 부부생활의 시작이라 했다. 결혼생활 4개월째, 모든 것이 서로 맞지는 않으나, 내 생각이 내 자신만 아니라 상대방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같을 수가 없고, 부족하고 어려운 것도 있다. 연대라는 개념은 바로 그런 것들을 채워가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그게 사라졌다. 여자면 뭐든지 그래야 한다는 것은 너무 편향적이고 일방적이다. 신문기사에서 <이등병의 엄마>라는 연극을 한다는 내용을 봤다. 자신의 아들이 군에 간 후 얼마 뒤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자신들이 아들을 낳은 죄인이라 했다. 이들의 고통 속에 그들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부류는 이들을 어떻게 여기는가? 이들은 여성이 아닌가? 어떤 여성만이 진정한 여성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진보라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두고 약자를 위해 계속 변혁해가는 운동이다. 이번 페미니즘 운동이라 말하는 워마드 사건과 관련하여 홍대몰카 사건에 대해 이들이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 희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홍대몰카 피해자의 사진을 올려 조롱하는 것도 모자라 사생대회도 열었다. 그리고 유포자가 잡혀가자 여성이라 잡혔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일 여성이라 잡혀가서 부당하다고 여길 때, 그러면 몰래카메라로 충격 받고 상처 입은 그 누드모델의 입장은 뭐가 되는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아래 어느 개인이 받은 상처와 피해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런 것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라고 말하면 이미 논리를 틀어졌다. 그래서 오세라비 작가의 서적 말처럼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어긋난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진보지식인과 진영의 생각은 민중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녹색당 정치인이 워마드의 농성에 동조하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조롱하는 것은 부당하다 했다. 그러면 이때까지 죄 없이 조롱당해야 했던 사람의 입장, 그리고 그 사람의 가족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의 논리로 진보진영에서 상당히 많은 입지를 굳히려 했지만, 이때까지의 사건과 그리고 노회찬 위원의 죽음으로 진보진영의 판세는 크게 바뀔 것이다. 아직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진보진영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받을 것이고, 여성운동을 오랫동안 한 분들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으로 권인숙 교수님이 임명되었다. 그분은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을 위해 투신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으로 불리는 그 피해자로, 당시 독재와 싸우고, 노동자를 위해 그리고 여성인권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런 분들까지 피해보는 게 아쉽다. 어느 여성운동가 분이 나에게 덧글을 남기기를 그동안 원로여성운동가들의 노고가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으로 모두 무너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노동운동과 관계있고, 독재에 저항했다. 대표적 여성정치인으로 한명숙 전 총리와 심상정 위원이 있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노동자의 죽음을 비웃고 조롱하는 세력에 동조하는 것은 그들이 쌓아올린 탑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워마드 운영자가 경찰에 의해 조서를 꾸미고, 법적 대응을 하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입장을 공지로 올렸다고 하는데, 그동안 아카이브 된 기록이 이미 인터넷 도처에 널려있기에 과연 그들의 논리가 법정에서 우세할까? 그들의 말처럼 법관이 여성이면 좋겠다. 판사가 여성이고, 그 판사가 판결을 내려야 납득할까? 윤리의식을 버리고 도덕적 선을 넘은 그들에게 무슨 비전이 있을까?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 흘러가면 진정 피해를 입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물론 이 책을 그들이 제대로 읽을 것이라 여기지 않으며, 내 글을 보며 생각을 고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세상은 별개로 돌아간다. 그때는 누가 과연 도태될 것인가? 아무도 모르나, 세상물정과 민중의 세상사는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