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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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가장 아이러니하면서 단순명료한 것이 인생이란 것이다. 내가 그 누구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지금 그 어떤 것을 하고 있는가? 구체적인 활동으로 본다면 학생이라면 공부를, 직장인이라면 일을, 백수라면 직장인이 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이 우리는 항시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놓여 있고, 그 위치에 있으면 다시 새로운 목표가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나, 그 목표의 굴레 안에서 계속 회전하고 만다. 우리의 인생은 빌딩 건물 안에 들어갈 때 자동문으로 들어갈 수 없거나 혹은 손잡이가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기 어렵다.

 

360도로 회전하는 회전문 안에서 투명유리로 너머 보이는 출입구 안만 보다가 다시 계속 돌고 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위에서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면,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요소로 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기 쉬워도 그 정의에 대한 과정과 흐름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즉 결과로서 보여주는 것을 생각해도 그 결과 안에서 진행된 프로세스나 구조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최근 내 친구와 통화하면서 있은 일이다. 내 친구는 자영업자이고, 나는 월급쟁이다. 내 친구는 요새 경기가 어려워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하고, 나는 그 원인을 두고 과소소비에 대하여, 물가의 증가에 대한 인플레이션, 그 원인은 화폐의 유통이 지나치고, 특히 부동산이 근본적으로 심하다고 했다.

 

지대가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세를 들어가는 사람들은 지대의 상승만큼 이익을 내야하며, 그 이익이 결국 소비자로부터 나오나, 지금 경기가 좋지 못함이 연쇄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런 나의 분석에 너무 그런 쪽으로 가지 않고, 복합적이지 않느냐에 물론 그것을 염두하다고 있다고 했으나, 적어도 내가 주장하는 논리는 너무 협소하고,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복합적으로 다양한데, 그것을 어떻게 명료하게 나올지에 대해 혹은 그런 거시적인 요소에 눈을 두는 것보다 미시적인 게 옳지 않느냐고 이야기 들었다. 거기에 대하여 내 친구도 알겠지만, 개인이 사회를 바꾸지 못하나, 사회는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여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점과 이렇게 구조적인 분석을 들어가면 이해하기 어렵고,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조건을 생각하면 사실이고, 한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전체의지가 하나의 당위성을 만들어내지만, 사회적인 재화와 화폐에 대한 수요자로서 찾아가는 사람은 결국 한정적으로 될 뿐이다. 국가의 운영에서 세금의 부족에 따른 세수의 증가, 소비세 증가에 따른 부가가치세 증가,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기업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현실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가?

 

우리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요약하여 말하자면 소비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우리가 소비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바라는 만족을 위해서다. 그 만족감에서 누군가 이런 곳에 가고, 이런 상품을 사고, 이런 것을 보지만, 이에 달리 다른 자는 그렇지 못한다면 그로 인한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새로운 상품과 기호의 소비는 언젠가는 자신의 경제력과 시간조차 갉아먹는 해충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게 바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때까지 경제학적인 고찰과 사회구조적인 요소, 더 나아가 친구와 있었던 일과 개인에 대한 생활과 삶에 대한 인생고민, 전혀 고리가 이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어져있으며, 충분히 우리는 조금 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학생이 공부하는데 왜 공부하는지 물어보면, “좋은 대학교 가려고요”, 좋은 대학가면 무엇이 좋은데 물어보면, “좋은 기업에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그 돈을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 돈으로 친구와 재밌게 놀거나 여행하거나 사고 싶은 것을 사려고요.”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 중에 결혼이나 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목적들이 있을 것이나, 결국 우리는 즐거움 인생을 위해 일을 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시간만큼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그 죽음이 없다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종언의 종착점이 있기에 우리는 시작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의 연속에서 우리 시간은 매일 24시간이란 물리적으로 공통된 조건이 부여된다. 그런다고 모든 사람이 그 24시간이 같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아침 일찍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하는 사람과 밤늦게까지 커피숍에 일하는 사람, 심지어 술집아가씨조차도 다 24시간을 주어져도 전부 다른 24시간을 살아간다.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 각각 다르기에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거기에 따른 자신의 삶을 꾸며가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지? 아니라면 만족하지 않고 불행한지 물어본다면 과연 어떨까? 나는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자연주의자에 가까운 인간이라 지금의 삶이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행복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밥을 굶는 사람, 전쟁에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해 나와 비교하면 참 어리석을 것이다. 사람의 행복의 기준을 그렇게 극단적인 요소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극단적 요소를 보여주는 것이고, 비교한다면 대기업 총수 2세 내지 3세 역시 비교한다면 그럴 말을 하는 사람도 기가 찰 것이다. 누구나 자시만의 논리가 있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논리로서 다가가면 납득을 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내가 한국 경제문제, 그리고 해외 정치현황을 논해도 사람들에겐 그렇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단지 자기 입맛에 맞는 이야기다. 물론 나도 그럴 것이나, 적어도 그 입맛 맞는 이야기에 대한 근본을 찾아가기 않는다.

 

그래서 강신준 교수는 한국은 포스트모던이란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그 과정이 되어야할 모던의 시대는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모던적인 요소, 즉 계몽주의에 대한 한국의 접촉 기회는 없다. 계몽주의 정신은 지식인으로 한정되고, 그 지식이 뿌리 내려 퍼지기 전에 이미 모든 주관이 객관이 되는 포스트모던이 되었다. 극우성향이 비윤리적 사이트조차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하나의 당위성을 외치는 이유 없이 그런 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에서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는가? 인간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소유자나, 혹은 나처럼 다소 부정적이고 불만의 눈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삶에 항상 휘둘리며 살아간다. 학생은 정해진 시간 안에 교실에서 억지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고, 공장노동자는 딱딱한 자세로 계속 동일한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 같은 자세로 같은 일을 계속 하면 인간은 기계를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 조작되는 인간이 된다. 시간관념이 무척이나 지루해지고, 더 심해지면 시간관념조차 없어져 버린다. 어째보면 공장노동자가 아니지만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다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맞이하는 나 역시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제1의 지루함, 즉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시간을 그저 소모해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시간적 존재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성에서 하나의 상황을 부여한다. 지루함이 느끼는 인간은 소외의식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넘어 육체적으로 부담이 온다. 지루한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오는 증세는 신경쇠약증세 내지 노이로제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 술과 담배에 깊이 빠져든다. 자신의 무력함을 순간적 자극으로 그 간극을 채우려는 것이다.

 

인간은 사고하고 생각하는 것에서 이성의 존재로 되겠지만, 이들에게 이성이란 그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정도만 볼 것이다. 감성이 메말라져 가기에 늘 머릿속은 흥분상태이며, 다른 누군가와 충돌이 일어나면 과격한 행동을 보여준다.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기에 잠재적인 공격성향을 가지게 된다. 인간은 지나친 피로와 무기력감은 죽음에 대한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은 루소가 말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자연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문명의 사회에 살게 되면서 자연적 조건을 상실했다. 루소가 인간에게 자연적 존재로 되길 바라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사회계약론>의 저술동기도 그렇고, <에밀>에서 에밀조차 자신의 판단력으로 사물을 판단하나 사회 안에서의 인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회 안에서 자신의 삶은 자기 스스로의 자연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인간이 자연에 의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왜 필요한가? 더 나아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통해 생각해보자, 마르크스는 노동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그 자체의 지나친 시간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어차피 물질로 가득한 문명사회에서 기술의 유지와 혜택이 없다면 인간은 1분 1초로 제대로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지 그 노동시간을 줄여 자기만의 삶을 살자는 것이다. 그것은 미술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가 영화에 대한 글을 적는 것이라, 누구나 그것이 하고 싶다면 하는 것이다. 바로 여가시간의 활용이고, 그 여가시간으로 통해 인간이 즐기고 싶은 취미와 취향,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먹고 자고 더 나아가 성욕을 지나,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점이다.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 본능 이외의 그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의 문화여가생활을 향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여가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면, 바로 인간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령 당신이 집안 내지 회사일로 장거리 출장을 가는데, 그 시간은 출장으로서 일을 하고 있으나, 그 시간 동안 상당히 지루할 것이다. 운전대만 붙잡고 몇 시간 동안 운전하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러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은 옆 자라에 대화상대를 나두거나 혹은 음악을 듣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눈은 운전에 집중하더라도 그 지루함은 이길 수 없다. 귀로 통해 전달되는 신호가 결국 지루함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 음악도 계속 듣고, 이야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결국 다시 지루해진다. 인간은 본능적인 생존조건과 싸우는 시간을 지나 이제 지루함이란 시간을 싸우는 것이다. 반복하여 강조하나, 그 투쟁이 되는 지루함이란 시간은 매일 24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도 없이 계속 싸워야 한다. 그 종지부는 인간의 죽음 외에는 없다. 인간의 죽음은 무엇이든지 굴레를 해방할 수 있을 것이라 개인은 여기나, 안타깝게도 그 개인의 주변은 계속 이어갈 뿐이다. 그렇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것은 죽음이고, 죽음과 같은 취침 역시 한계가 있다.

 

취침시간이 길어지면 그 역시 지루함의 연속으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조건이 되는 것은 작가의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도 바라자! 삶은 장미로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빵이란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이고, 장미는 생존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즐거움이 되는 대상이다. 인간은 더 이상 삶에서 즐거움을 빼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처음부터 어느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비교하여 행복을 논하기가 비논리적인 이유는 행복은 잘 먹고 안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자기에게 그게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늘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원한다. 단지 자기가 원하는 것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늘 새로운 기호만 소비할 뿐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바라는 삶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작가는 소비가 아니라 낭비를 하는 삶이 되라고 한다. 소비는 계속 소모하지만, 낭비는 어느 일정 순간이 되면 더 이상 소모하지 못한다.

 

우리 앞에 천해진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결국 접시 몇 개 안에 질리고 만다. 그러나 소비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것을 계속 찾아가고 구매한다. 어느 방송에 나온 구경거리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소원해진다.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열렬하게 소비의 사회에 추종하는 이야 말로 가장 소외된 존재다. 그것은 자신이 그것이 아니고선 그 어떤 것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찾아가는 여정을 주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 사회는 인간을 계속 기계처럼 예속화하고, 지루함을 선사한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시간적 절약을 선사해도, 시간적 만족을 빼앗아 버렸다. 아프리카 원주민 부시맨은 하루 몇 시간 일하고 일주일동안 일도 하지 않고 자기 여가시간에 즐긴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반나절 일하고도 가난에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여기저기 본다. 그들이 즐기고 싶은 여가생활에선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도대체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지루함과 피곤함만 넘쳐 얼굴에 깊은 주름만 새겨져 갈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나와 조금 비슷한 생각을 하던 자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혁명을 일으키자고 한다면 분명 국가에 의해 체포되겠지만, 그 혁명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이런 부분은 중요하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이 18세기와 20세기를 흔들고 오늘 우리 현대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혁명 그 자체를 성사해도, 혁명은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만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하다. 현재 상황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현재 상황을 바꾸고 난 후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주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것에 대한 답으로서 인간은 고민이란 것을 다시 찾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고민하는 삶을 살기보단 쉬운 답을 찾고, 간단히 지나가는 지름길을 찾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항상 우리는 같은 굴레에 빠져 회전문 유리너머로 보이는 출입구 안을 계속 들여다볼 뿐이다. 때로는 회전문에 의해 안이 보이고, 밖이 보일 것이다. 유리문 너머의 밖이 우리 현실인데,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래서 계속 돌고 도는 매일 24시간의 지옥에 살아간다. 인간에게 24시간은 평등하게 주어지겠지만, 그런다고 그 24시간이 주어지는 횟수는 균등하지 않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지금에 와서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나, 언제나 우리는 지루함에 의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은 과연 몇 %인가? 그 일조차 하는 사람도 그 일에 의해 지루함을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상태에 계속 몸을 맡기는 매너리즘으로 무장하기보단 더 깊이 자신의 세계를 파고들거나 그 옆으로 퍼져가는 것이 즐거운 인생이 될 것이라 여긴다. 그렇다면 빵을 먹은 후에 장미로 가득해질 인생이 될 것이고, 그 장미가 잘 자라면 자신에게 새로운 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길 역시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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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볼리바르 -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 서해역사책방 17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조재선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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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라고 하는 나라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남미에 위치한 나라, 이름은 분명 어디서 들었지만 잘 알 수 없는 나라, 혹은 조금 더 잘 알 수 있다면 1960년대 아주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마지막으로 발을 들였던 곳으로 알 수 있다. 체 게바라는 혁명을 위한 투쟁 중에 볼리비아 산중에서 총에 맞고 죽는다. 그의 한 손을 잘린 채 그의 시체는 볼리비아에 묻힌 셈이다. 체 게바라가 활동하던 그 냉전시기 이전에 아주 명망 있는 혁명가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몬 볼리바르, 볼리비아라는 국가이름이 된 이유는 볼리바르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이름으로 통해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볼리바르의 이름과 얼굴은 남미 세계에서 상당히 많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위대한 혁명가였다. 남미의 혁명은 서유럽과 북미대륙과 다르게 조금 뒤에 일어난 혁명이다. 그 혁명의 발원지는 서구사회도 아니고, 게다가 백인종이 주류가 된 국가도 아니다. 오히려 백인들이 와서 인디오나 인디언을 무참히 학살하고 나서 노예로 만든 비참하고 슬픈 역사가 숨은 나라들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서 남미국가가 보인 지난날의 상처들을 보여준 편이 있었다.

 

자신들의 문화가 소멸하고, 억지로 터전을 잃은 가난한 원주민들의 이야기에서 남미는 그야말로 한이 서린 국가라고 볼 수 있다. 북미에 아메리카가 건설되는 것과 달리 남미에서는 처음부터 식민지로 되었기 때문에 독립국가 도래는 상당히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북미의 독립과 남미의 독립은 개념이 달랐다. 북미의 경우는 기존 아파치를 비롯한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을 내몰고 독립 국가를 세웠다는 점이고, 남미의 경우는 원래 원주민들이 다시 자신의 국가를 되찾으러 간 것이다. 자신들의 낙원을 찾기 위해 타인의 낙원을 파괴한 역사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세계역사는 서구중심사회이므로 유럽의 혁명은 매우 대단하게 다룬다. 물론 프랑스대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조차 만든 거대한 사건이나, 사람들은 그것 외에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는 점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왕정시대의 막을 내리게 했다면, 남미의 혁명은 식민지의 억압으로부터 탈피했다는 점이다. 혁명이란 기존의 체계를 전복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프랑스대혁명은 프랑스 공화국 이전의 왕정을 국민들이 무너뜨린 것이기에 프랑스 그 자체의 주인만 바뀌었다면, 남미의 혁명은 식민지에서 노예로 살아야했던 원주민들이 이루었기에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혁명의 시대를 만든 사람이 바로 시몬 볼리바르라는 인물이다. 19세기 후반혁명과 18세기 후반의 혁명에서 사상적 근본에서 19세기부터 카를 마르크스가 주도했다면, 그 이전에는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이 주도했다.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 발견자, 루소>를 읽다보면 마르크스조차 루소의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루소의 사상이 남미까지 흘러오게 된 동기는 이 책의 저자인 핸드릭 빌렘 반 룬이 밝힌 것처럼 루소의 <emile>을 시작하여 <사회계약론>, 그밖에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철학을 남미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구체제의 낡은 사상은 시대적 흐름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사상들이 계속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변화하려 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을 했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철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틀렸고, 무엇이 문제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예근성이 생기는 이유는 타성에 길들여진 이유도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고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배받는 것을 하나의 정당성으로 여기게 만드는 사회에서 어떻게 피지배계급이 그 문제를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

 

세계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문명을 들여다보면 온갖 착취와 폭력 그리고 억압으로 가득 찬 사슬의 세계이다. 그 사슬로 묶인 공간에서 오로지 사슬을 풀려고 한 사람들은 피지배계급들이나 그들을 항상 앞에서 이끈 자들은 지식인 내지 권력을 충분히 가졌던 사람이다. 그들은 사고를 통해 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었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에 대한 윤리적 의식이 있었기에 혁명이 가능했다. 사상적 중심과 행동하기 위한 냉철한 이성이 갖추지 못하면 그저 민중의 봉기는 단순한 난으로 끝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인의 양심과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이유는 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안다는 점이고, 어떻게 하면 하나하나씩 실타래를 풀어 문제를 정리해 나갈 수 있는가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항상 좌절과 시련 그리고 비참한 운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당통도 그러하고 로베스피에르도 그러하다. 마르크스는 가난과 질병, 가족을 잃은 고통에서 먼 이국에서 죽었으며, 수많은 혁명가들이 그런 운명으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비극과 고통에 후회보다는 늘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힘들게 걸어간다. 시몬 볼리바르 역시 그러하다. 아주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부유한 스페인 후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과 달리 똑똑했으며, 학교선생이나 가정교사에 대해 항상 골려주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삼촌인 시몬 로드리게스라는 친척은 볼리바르에게 새로운 바람이었다.

 

자연인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로드리게스는 루소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자신이 배운 지식을 볼리바르에게 전해준다. 루소의 사상에서 자연주의적인 철학은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자유로우며, 그 누구에게 속박 받아서는 아니 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상은 볼리바르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볼리바르는 우연히 만난 혁명가 미란다를 만나 혁명군 장교로 시작하여 계속 베네수엘라를 시작하여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의 나라를 해방한다.

 

그 해방을 위해 자신은 귀족 집안인데도 또한 거대한 재산이 있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이성으로 입각하여 평생을 헌신했다. 많은 나라를 해방했으나, 같은 편에서 벌어진 배신과 소중한 친구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병들게 했다. 최초의 남미 대통령이면서도 가장 가난하게 죽은 대통령, 그가 죽을 때 깨끗한 셔츠조차 없다는 말에 혁명가는 평범한 죽음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한다. 그가 죽기 전에 한 말인 “꺼져가는 생명이여, 이제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는 죽음뿐이구나.”라는 것은 볼리바르가 그동안 해놓은 일들이 거품처럼 사라진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는 해방된 남미가 다시 분쟁으로 가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이 세상 모든 것과 화해하기로 한다. 즉 죽음의 안식을 기다린 것이었다. 볼리바르의 죽음은 매우 애석한 영웅의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오면서 남미 역시 자유와 평등의 물결이 일어나고, 국민들은 항상 억압받는 자에서 자신의 인간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걸음마이나, 그런 기반에 시몬 볼리바르의 영혼이 숨어있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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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미학 - 묘사 기법과 예술 표현
김용훈 지음 / 일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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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미학>을 읽게 된 동기는 사진을 잘 찍고 싶어서 읽은 것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에 담겨진 이미지를 읽기 위해서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앞으로 우리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면 문맹인이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많은 정보와 지식은 글자라는 텍스트보단 영상과 그 영상에 어울려진 소리로서 접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접하는 것은 책 속에 있는 글자일까? 아니면 TV, PC,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들인가? 부모의 선택에 의한 교육방법에 따라 책을 먼저 읽을 수 있겠지만, 인간이 처음부터 문자를 읽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책을 주어도 그저 미로와 퍼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진 책이나 또는 영상은 다르다. 하다못해 어린아이들은 글자를 읽지 못해도 자기 동공에 맺혀진 상이 이미지로서 받아들인다. 2D의 영상이 아니라 3D의 공간조차도 사실 이미지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현실에서 3D이나, 사실 우리 눈이 원근감을 인지하고 있기에 3D로 보일 것이다. 3D로 보이는 세계를 화폭에 옮기면 원근법과 명암에 따라 멀고 가까움의 차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인간의 눈은 모든 정보를 공간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에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눈이 인간의 정보력 습득에서 약 87%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을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 답답할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더 답답할 것이다. 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고, 귀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결국 소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눈은 자신이 선택하여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귀는 그렇지 못하다. 귀를 막고 눈을 감긴 채 있을 경우 사람은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게다가 귀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듣는 소리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

 

선택과 판단 사이에 시각은 선택과 판단이 가능해도 소리는 선택의 방법이 없다. 자신이 듣기 위한 대화내용도 주변 소음에 의해 그대로 묻히기 때문이다. 시각의 정보는 빛의 반사에 의해 좌우되나 소음은 움직임이 있는 모든 생명과 사물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눈이 보는 어느 대상이 단지 보는 사람의 눈에 의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사진이란 정보적으로 혹은 기록적인 기능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에 모든 정보는 글과 그림으로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매체에 의한 정보에서 인간의 기억력은 정확하지 않다. 인간의 눈에 맺혀진 상은 어느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신의 뇌로부터 소거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눈에 비추어진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손을 이용하여 그림으로 남긴다. 그림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의 관점, 그리는 시간과 위치 그리고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나마 우리가 옛날 사람들의 의복과 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이유 역시 그림에 의해서다. 그림으로 기록된 점에서 글로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것보다 이미지라는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더욱 정확하게 정보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런 저장과 기록을 유지하던 매체인 회화가 이제는 카메라 등장에 의해 그 기능을 잃고 만다. 몇 시간 동안 어느 인물의 모습을 그리는 것보다 단지 카메라 1대가 사진을 촬영하는 게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효과적이다. 게다가 더 정확하고 보관도 용이하다. 불과 몇 십 년 전에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이용할 시기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로서 모든 사물을 담을 수 있다. 사진파일을 jpg, bmp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장할 수 있고, 또한 복사와 수정까지 가능하다. 얼마든지 원본의 사진이 이제는 사본으로 제작되고, 그 사본조차 하나의 원본으로 가능하다. 사본이 원본이 되고, 원본 그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그 순간 simulacre의 세계에서 현실이 아닌 새로운 가상적인 현실, 파생실재를 만들어낸다.

 

그 파생실재를 만들어내는 카메라는 그 모든 것을 담아둔다. 시간의 흐름으로 따라 그 사진에 찍힌 대상 자체가 지금 현재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 기록을 유지함으로 우리는 과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사진에서 보여주는 사실성과 우연성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여 미쳐 우리가 볼 수 없었거나 모르던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서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이란 것은 사실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서 승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사진이 많다. 네이팜탄 소녀라는 것으로 베트남전쟁에서 어린 소녀가 나체로 길가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 소녀가 옷을 다 벗은 이유는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는데, 네이팜탄이 옷에 붙었고, 그 네이팜탄은 계속 옷이나 사람의 살에 붙어 연소를 한다. 따라서 네이팜탄에 맞은 사람은 심한 화상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심각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 네이팜탄을 맞아 옷을 다 벗은 채 대피하는 소녀의 모습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종식을 요구했다. 이런 사진들은 많이 존재한다. 특히 종군기자에 의해 찍혀진 사진들은 죽음의 순간을 항상 그리고 있으며, 이런 사실과 우연을 사진가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그들이 곧 세계 모든 사람들의 눈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을 입각하여 공정한 것이어야 말로 진실을 담은 것처럼 카메라의 시선은 결국 관점과 입장을 달리한다. 따라서 <사진의 미학>을 읽는 것은 그 사진이란 매체로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사진가들의 작가의식 내지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작가 본인조차도 사진작가로서 예술을 논하며, 또는 저널리즘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이야기한다. 단지 조금 난해한 요소는 그는 이 나라의 아픔과 고통을 알고 있다는 점이고, 그것은 화해하기보단 어긋난 모순처럼 뒤섞여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 받는 조선인을 위해 또는 가혹한 착취에 고통 받는 노동자를 위해 사진은 참혹한 있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술이 되기도 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어렵다. 서적을 저술한 김용훈 사진작가는 약간 모더니스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2010년에 제작된 책으로 현재 이미지를 사진으로 촬영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없는 존재를 컴퓨터로서 만들어낸다. 사진가의 손에서 세상의 이미지가 탄생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가상에 존재하던 것이 현실에 있는 것처럼 증강하거나 또는 현실을 침범하고 있다. <사진의 미학>은 리얼리티 이미지를 예술로서 승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시대는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작가의 눈에 시대의 흐름은 숨길 수 없었다.

 

5․16을 두고 쿠데타와 혁명의 갈림길에서 혁명이라 했지만, 5․18 당시 사진과 국민의 정부 시절 북한과의 수교를 하던 대통령의 모습을 걸어놓은 점에서 시대의 모순과 아픔이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 본인이 625전쟁 중에 위협에 처해있었고, B29 폭격기의 폭격에 죽음의 손결을 피했고, 빨치산의 총알에 상이군경이 되었다. 오히려 동족상잔의 비극과 아픔을 논하던 그의 문장에서 진실한 사진작가란 곧 시대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게 결국 예술이 되는 것 같았다. 예술은 현실을 광학적으로 본다고 했다.

 

회화를 그리던 화가들도 화폭에 담긴 인물과 사물은 있는 그대로인 정물화로만 그리지 않는다. 인상주의자나 초현실주의자의 그림을 보면 전혀 우리는 그것이 바로 그 사물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을 준다. 그렇지만 예술이란 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혹은 있는 그 자체의 사실성과 우연성에 의지하기도 한다. 예술이란 전달력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리고 그것으로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전쟁이란 이름은 이미 그로테스크로 가득하다. 과거의 신화나 역사에선 전쟁에 나가는 장군과 영웅 그리고 전사에게 영광의 이름으로 가득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시로서 전해온다. 그중 비극시라는 것은 그리스의 대표적인 예술문화로 내려온다. 그렇지만 거기에 동원된 병사와 도중에 피해를 본 민중들의 삶은? 예술이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게 하고, 때에 따라서 충격을 주어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뜨게 해준다. 인간의 자기기만적인 요소가 강하기에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돌아볼 수 있는 판단력도 가지고 있다.

 

바로 사진의 힘이란 그런 리얼리티 속에 존재하던 가려진 일상 내지 사건을 예술 내지 저널리즘으로 승화되게 해준다. 작가정신으로 왜 교양과 철학, 그리고 신념이 필요한 이유는 사진은 보는 이의 눈이고, 보는 이의 생각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의 미학>은 내가 원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분명히 말하는 것은 이 책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하나의 정신적 수련이 되는 책이지, 사진으로 통해 세상과 현실을 읽어내기 위한 비평적인 도서가 아니다. 미학에서 철학이란 칼로 예술을 가른다는 것처럼 어째보면 예술 자체가 진실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그저 그런 무관심으로 지나가나, 그 무관심이던 대상이 하나의 예술이 되는 순간 우리 삶과 밀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자신의 옆에 있더라도 그 자체를 각인하고 인지하고 보여주고 싶다는 순간적인 포착은 사진기를 잡고 있는 자의 몫이다. 물론 이 책에서 작가나 그 작가 주변 사람들은 현재 사진기를 들고 폼만 재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다. 카메라는 기계적인 조건에서 물질적으로 기계의 성능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개인적 자본력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사진의 가치는 카메라의 자본력이 아니라 그 자본력조차 올릴 수 없는 내용의 가치이다. 사진기로 비추어 촬영된 이미지는 곧 그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 그 자체다. 그 시선은 의식적으로 드러나거나 또는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그 사진으로서 사진 찍는 사람이 그 사진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진에 대하여 생각하면 왠지 형식에 의해 좌우되는 사진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물론 단순히 깔끔히 예쁘게 재단된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은 사진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나 미적인 가치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사진의 미학>을 저술한 김용훈 교수는 제법 연로하신 사진예술가이나, 예술의 혈기에서 나이보다는 그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그냥 디카 수준만 들고 있는 나에게 <사진의 미학>에서 요구하는 카메라는 무리다. 난 말 그대로 사진미학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기를 사랑하고, 사진에 대한 뭔가 유달리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카메라의 기초이론부터 시작하여 카메라 촬영으로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계속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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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화사 1 - Novel Engine POP
정연 지음, R.알니람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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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아니면 인연인지 모르지만, 내가 읽어본 <유랑화사>를 읽는 순간, 이 책을 읽기 전에 읽고 있던 책과 뭔가 연계성이 있어서 놀라웠다. 그 책은 제임스 프레이저 경의 <황금가지>라는 책이다. <황금가지>는 네미(Nemi)라고 하는 숲 속에 호수가 있는 곳으로 아주 황홀한 풍경을 내뿜는 전설 같은 장소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 어느 미친 남자가 칼을 들고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외치고 있다. 왕인 그는 신이면서도 또한 희생양이기도 하다. <황금가지>라는 책을 반 정도 읽을 쯤에 인류의 문화에 대해 조금씩 맛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황금가지>와 <유랑화사>를 같이 나는 다루는가?


기본적으로 <황금가지>는 인류학 관련도서이고, <유랑화사>는 노블엔진에서 만든 pop으로 만든 라이트노벨이다. 하지만 라이트노벨로만 보기에 어려운 이유는 pop이란 것은 popular, 즉 대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 <유랑화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컬러 이미지는 표지 일러스트와 책갈피 정도였다. 겉은 환상 세계를 안내하는 라이트노벨인 것처럼 보여도 속은 완전히 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반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소설로 말이다. 내가 소설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소설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문자서사로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나, 그 이야기가 전혀 색 다른 세계가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를 말하는 것과 같다.


예전에 김용석 교수의 <서사철학>을 읽으면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에서 서사의 가장 머리는 신화(神話)다. 신화는 신의 이야기라고 하나, 신은 정말 종교학이나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신이란 존재보단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에서 드러난 인간의 집단무의식이다. 신화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으로 통해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로서 나오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일상이나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볼 수 있다. “있잖아! 이것 비밀인데, 이 이야기는 내 친구의 친구의 이야기야. 그래서 이 친구에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신화의 이야기는 바로 저렇게 인간이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자신이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도 있으며, 그 사회의 사람들이 모두 생각하는 이야기도 드러낸다. 신화라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보단 왜곡되거나 은폐되거나 새로이 탄생하기도 한다. 신화라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지금도 신화는 이루어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가진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따라간다. 그런 점에서 <황금가지>라는 아주 무서운 살인 이야기가 실린 인류학 도서를 꺼내는 이유는 <황금가지>는 인류학이란 영역이 결국 신화와 경계로 마주보고 있다는 점이다.


신화는 미신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인류학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풀어간다. <황금가지>를 읽은 상태에서 <유랑화사>에 대해 딱하고 느낌이 오는 것은 바로 주술이란 점이다. 인간의 언어에 대해 논하자면, 인간의 언어는 주술성을 가지고 있고, 언어로서 나오는 글과 말은 상당한 힘이 있다는 점이다. 아니 과학적으로 내가 어느 사람에 대해 “재수 없으니 제발 없어주면 좋겠어!”라고 외쳐도 실제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위해는 없다. 하지만 <유랑화사>에서는 그런 일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로 지어내어 있고, <황금가지>에서도 그런 내용이 드러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런 주술이,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행위가 실제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가령 어느 부족에서 터부(금지)되는 행위 중에서 사람이 걸어간 자리에 새겨진 발자국에 칼을 찌르거나 혹은 불길한 주술을 외치면 정말 그 사람에게 불길한 일이 닥치고, 어느 부족에서 터부시 되는 일을 겪으면 실제 그 터부에 접촉된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유랑화사> 1권에 제4회에 해당되는 목각인형은 완벽한 주술의 세계였다. 그래서 <황금가지>를 읽는 동안, 그런 인류의 역사 중에서 미신에 대해 집착하는 인간은 비단 그 시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다.


왜냐하면 당시는 주문과 같은 주술이라면 지금은 유희적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유희적인 주문이라도 아직도 그것은 주술적인 힘을 발휘한다. 작가의 글에서는 전통문화 요소를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 살아있는 그 모든 것 혹은 살아있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신성성, 다소 애니미즘(Animism)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애니미즘은 눈앞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대해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원시종교 형태다. 애니미즘이 아주 원시적이고 미개하다면 곤란하다.


애니메이션 즉, Animation이란 단어에서 Anima는 영혼, Animate는 영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살아있지 않은 것에 대해 살아있는 것은 결국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믿음이고, 그것은 환상이란 영역으로 이어진다. 환상이 비현실적이지만, 결코 비현실이 아닌 이유는 환상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평소 드러나지 않은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시나 문학, 그림조차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집단적인 심리나 혹은 개인적으로 억압된 심리조차 드러난다.

<유랑화사>는 그런 환상 내지 미궁 속에 가려진 왜곡된 진실은 그림으로 통해 그것도 환상의 세계로 통해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 존재하지 않은 자, 신령과 도깨비, 어떤 사건을 마치 조감도를 보듯이 그려내기도 한다. 공중에서 항공기나 인공위성도 없는데, 어떻게 그 상황을 정확하게 찾아날까? 인간의 내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그림으로 환상적 공간을 연출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인간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며 이야기할 때 인간은 그 이야기를 미리 생각하여 만드는 것보다 이야기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유랑화사>에서 보이는 이야기의 모티프는 바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생각한 게 아니라 후기를 보듯이 작가가 이야기를 보거나 들을 것을 자신이 이야기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소재 자체가 우리 전래동화(전설 속의 신화나 민담이 변형된 경우가 대부분)나 전설 속에 찾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인간이 아닌 여우가 인간으로 둔갑하는 것이나, 처녀귀신이 가진 잊을 수 없는 사랑이야기, 남을 위해를 가하는 인간, 심지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까지도 말이다. 물론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문화는 인류학에서 그렇게 낯선 일도 아니고, 20세기까지 있었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유랑화사>는 이미 오랜 전부터 있던 이야기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다시 그 시대의 배경을 맞추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서 대감이나 진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며,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무당이나 무당을 사투리로 말하는 당골네가 등장한 것처럼, 문장에서 단어의 선택에서 한글의 고유명사를 등장시킬 정도 민담과 무속문화에 대해 깊이 보여주었다. 굿을 하는 무당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무속신앙에서 무(巫)라는 단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그 중간 매개체에 인간이 있다. 즉 무당이란 존재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세상을 연결지어주는 매개체다.


위에서 말하던 <황금가지>에서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무참히 칼에 찔려 죽어야 하는 어느 늙은 남자의 행보는 바로 무속(巫俗) 문화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신은 눈앞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들은 존재한다고 여기고, 눈에 보이지 신의 존재를 있다고 만들기 위해서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인간을 내세운다. 인간에게 신과 사제 그리고 왕이란 이름을 내리면서 중요한 특성은 농경문화다. 봄이 되면 푸른 새싹이 돋고, 여름에 무성한 숲을 이루어 가을에는 수확을 하나, 겨울에는 모든 것이 죽음에 이른다.


겨울에 이르는 죽음은 결국 우리 모두의 죽음이고, 신은 영원불멸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여 새롭게 태어나기에 그 죽음을 대체하기 위해 인간의 살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니라면 왜 단군신화에서 왜 단군은 하늘의 자손이고, 그는 단군왕검으로 불려야 하는 것인가? 단군왕검은 결국 제사장과 군주의 2가지를 합한 것이다. 고대국가는 왕이 곧 신인 것이다. 왕과 제사장이 분리되면서 제사장의 역할을 무당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무당의 업무는 <유랑화사>에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 한다.


그 말은 인간은 누군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망자 내지 혹은 보통 인간들 안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구할 수 없다. 오로지 가능한 것은 광인만이 새로운 이야기나 혹은 세계의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독일 철학가인 니체는 현대철학에 매우 중요한 철학가이나, 그는 기본적으로 광인이었고, 광인이었기에 그런 저서를 남겼다. <황금가지>를 읽은 후에 <비극의 탄생>을 읽어본다면 느낄 수 있다. 위대하고 자애로운 디오니소스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진 신이고, 포도주는 인간을 기쁘게 만들지만 인간을 미치게 만든다.


<비극의 탄생>처럼 고대 그리스는 거의 모든 인간이 시인이고 광인의 기질이 있었다면 이제 그 광인은 현대에 오면서 없어지게 된다. 즉 광인들이란 새로운 이야기와 혹은 기존 우리가 보지 못한 세상을 노래한다. <유랑화사>를 보면 세상을 이리저리 왕래하는 화사는 겉으로 보면 세상의 이치를 원래로 복구해주는 존재이나, 그를 두고 정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를 광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작가는 화사로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나, 화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해준다.

 

광인이기에 작품 내에서 무당들이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을 그는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지만, 소설이라도 한국의 구비문학 요소를 현대적으로 다시 되살린 작품이다. 인간인데 귀신이나 신의 이야기를 못 듣는 무당이란 점은, 신의 이야기란 결국 인간의 내면에 갇혀 있는 억압된 심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화사는 바로 인간이 드러내지 못한 이야기를 계속 찾아다닌다. 물론 시대배경이 조선시대고,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해도 그 이야기의 중심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다.

 

한국의 민담에는 치명적인 법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권선징악이란 단순한 진리이다. <유랑화사>에서는 재물에 대한 탐욕에 대해 4가지 이야기 중에 반을 차지하며, 그 모티프가 작용하여 배나무 꽃 같은 여우소녀가 화사와 여행하게 된 동기다. 여우소녀는 인간의 존재에서는 괴이한 존재다. 괴이한 존재가 괴이한 사건을 맞이하면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민담의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권선징악 이외에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찾아가기도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겨진 것이 있다. 바로 억압, 은폐, 왜곡이란 신화란 바로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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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푸른역사 학술총서 5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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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기 전에

한국의 역사는 침략을 하기보단 침략을 받은 역사이다. 단군조선부터 시작하여 후기 조선까지 이어져 항상 중원대륙의 한족(漢族)에 의해 국가의 위기를 맞이했다. 21세기인 지금에 중국에는 황제라는 사람이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란 국가는 항상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큰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리즘이란 이름 아래 중국 역시 관료주의적인 사회주의형태에서 국가 내부적인 정치성향은 관료주의는 택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자본주의국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VS 공산주의(국가자본주의 내지 관료주의국가) 대립구도는 해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아마 그 이전의 중국보다 더 강력하고 위기로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다고 중국을 과거 한국전쟁에서 이북 위로부터 넘어온 적대국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대외 무역에서 절대 제외할 수 없는 국가다. 특히 등소평의 개방정책은 중국의 상품이 외국으로 넘쳐흐르게 되면서 중국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적대국가가 아니라 한국 주변에 있는 무역국가 중에 하나다. 게다가 중국에서 매년 한국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한국 역시 중국으로 유학 내지 관광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 국제사회의 관계적인 요소에서 중국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을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우리가 수 십 년 내지 수 백 년 전의 일이라도 그것이 지금의 우리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되었다고 해도 대한민국 지도는 조선시대의 영역과 거의 흡사하다. 조선의 탄생이 결국 대한민국 영토의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 개국군주는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이다. 그들은 본래 고려의 신하였으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왕국을 멸망시키고, 조선이란 새로운 국가를 설립한다. 당시 원나라 이후 중원은 명나라라는 강력한 한족국가가 있었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대신 명나라라는 국가였다. 한족이란 국가체계는 뛰어난 문인들을 위주로 하였기에 제 아무리 무력이 강한 국가라도 해도, 그 지배논리 내지 국가운영체계에 한족의 문화적 기반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재 중국은 공산화된 국가라고 하나, 실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들어가자면 중국은 마르크스의 가르침에 전혀 따른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예전의 봉건사회에서 계급 대신 자본이나 권력의 소유에서 새로운 지배계층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은 세계 어디든 존재하는 국가에서 경제적인 조건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갈 수 있다. 그렇지만, 빈부격차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 전혀 빈부격차를 줄이지 못하는 지난 세기의 공산주의국가 진영의 모습에서 단순히 우리는 공산진영의 국가이던 중국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단지 공산주의라는 이름이 국가정치에서 겉으로 표방하지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은 아직까지 우리가 마지막 왕을 가진 조선이 있듯이 그들도 명나라와 청나라의 중국이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전쟁의 배경

전쟁이란 단순히 감정이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되는 게 아니라 단지 그 단순한 감정과 순간적인 판단이 촉발제가 될 뿐이다. 전쟁의 이유는 바로 국가 내부적으로 경제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이 중요하며, 특히나 청나라 이전의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전쟁이란 이름을 단순히 기마민족의 위상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계성에 의해 진행되었다. 우선 영토의 분류상 한국은 몬순기후로 쌀농사가 매우 적합한 국가이며, 중국은 다양한 기후가 섞여 있으나 대부분 농업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다르게 후금이던 청나라는 대부분 몽골이나 조선함경도 이북에 위치하고 있기에 농업이 매우 부적합하므로 식량문제가 항상 심각했다. 그들이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식량의 공급이다.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접 수력이나 채집으로 유지 하던가 혹은 농업이나 축산업을 일으키거나 또는 침략으로 통해 식량을 훔쳐오는 것이다. 후금 인근에 위치한 몽골을 비롯한 대부분 오랑캐부족들은 유목민족으로 일정한 터전도 없이 계속 이동을 하면서 가축을 키워 가축의 우유와 고기로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식량을 가져올 수 없기에 후금의 입장에서 조선이나 명나라의 식량무역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식량외교는 유리한 게 아니다. 물물교환 내지 상품을 화폐로 교환하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되는 가치로서 교환해야 한다.

 

문제는 화폐로서 사용되던 것은 지금과 같은 달러 내지 유로 같은 종이화폐가 아니라 금, 은, 보석 등과 같은 귀금속이다. 물물교환이 가능한 것은 가축, 식량, 약재, 무기 등과 같은 그 나라의 살림에 필요한 도구들이다. 화폐의 기준이 되는 척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상당량의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화폐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품 내지 귀금속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후금의 입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약탈에 의해 자행되는 물자의 귀속에서 물자를 약탈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새로운 물자가 필요하다. 전투에 필요한 물자만큼 그 전투에 참여한 장병과 가족까지 혜택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후금이 초반에 가난한 국가이고, 전투가 용이한 점은 그들이 문화적인 과잉이 정치적으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정묘호란과 달리 병자호란이 괴로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런 호족들이 가진 문화적인 역량이었다. 홍타이지를 살펴본 조선 사신들은 홍타이지가 매우 호탕하고 남성적이며, 밑의 부하들에게 엄하지만 백성들에겐 매우 관대하다고 한다. 그러나 병자호란 시기에는 후금이 아닌 몽골족의 용병술로 정묘호란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홍타이지는 초반에 조선을 침공할 때 거리의 양민들을 손대지 않도록 했지만, 병자호란 시기에는 몽골족들이 약탈과 살인을 즐겼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전쟁의 시초는 외교적인 갈등이 시작되나, 그 외교적 갈등에는 국가 내부나 혹은 국가이전의 부족에서 자원의 충당에서 시작된다. 물자부족에 대한 충당과 그 충당과정에서 보상이 일어나고, 그 보상 이후 새로운 인원과 물자를 보급하게 되면서 더 큰 물자와 보상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력은 확장되었고, 전쟁의 대상은 국가차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몽골족의 칭기스 칸의 경우 본래 몽골의 작은 부족에서 시작한 점에서 청국 황제인 홍타이지 역시 후금의 부족에서 하나의 족장에 불과했던 점이다. 전쟁의 원인은 결국 부족국가에서 물자의 보충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상대진영과 반목된 계기라고 볼 수 있었다.

 

문화가 물질에 의해 지배받은 것이 청국의 시작이라면 문화가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다. 조선의 경우 이성계 이후 명나라에 대한 사대사상에서 중화주의를 논하면서 소중화 국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이른바 사대부들은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주자학이 결국 한족의 유교문화였고, 자신들은 그 문화의 후계자란 사실을 토대로 주변에 있던 일본과 만주족 등을 우습게보았다. 문인들이 중심이 되던 조선사회에서 무인들의 위치는 문인보다 아래였으며, 도원수나 대장군이 위치해도 병조판서와 같은 문인 사대부들이 지금으로 따지면 국방부장관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소중화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버이국가 명나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기하여 할 것이며,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는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광해군의 경우 처음에 후금과의 관계성에서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기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이에서 중립외교로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적, 물질적, 환경적인 조건보다 문화적인 기반이 우위인 사대부에겐 큰 반발이 되었다. 강홍립이 후금과의 전쟁에서 고의적으로 싸우지 않고, 오히려 진형이 불리하여 투항한 것은 광해군은 정치의 우위는 문화보단 물질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조선의 팔도는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 와중에 우방국인 명나라는 도독 진린을 파병을 보내나, 그들은 왜와 진정으로 싸우려 하지 않았고, 뒤에서 왜와 교섭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명나라의 구원을 토대로 어버이국가에서 아들국가인 조선을 도왔다는 이유로 충성심을 표한다. 일본이 민가를 약탈하면 큰 빗 하나가 스쳐지나갔다고 하면, 명나라의 군사는 참빗 하나가 지나갔다고 한다. 빗의 날이 세세하고 미세한 참빗처럼 명나라가 조선에 기거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노략질과 병량미를 축내는 것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명나라에 대한 우방의식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정치적 무능력을 보여주며, 이와 더불어 그런 후금에 대한 견제성에서 군사력의 한계성과 반정공신들의 이익만 보다가 결국 호란을 당한 것이었다. 정묘호란이 일어난 1627년에 후금의 요구사항은 그래 과다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내쫓겨나도, 결국 후금은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전선에 눈치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운은 조선을 버리고 또 무시했다.

 

□ 외교적 상황

조선이란 국가의 한계성은 바로 실리외교를 무시한 것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아무런 방도도 세우지 못하고 당파싸움에 결국 부산 동래와 한양을 함락당한 선조는 아무리 유능한 신하를 두어도 당파논쟁 및 화이론(華夷論)에 지나친 몰입에 현실적 감각을 상실했다. 북인계통의 이순신 같은 무장이 전쟁을 승리를 이끌어도 반역자로 몰린 이유도 당파논쟁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인의 경우 이후 광해군 시대에 외교정책을 효율적으로 다루어 전쟁의 원인을 피하려고 했다. 처음부터 홍타이지도 조선에 대해 강압적인 침공을 하려던 것은 아니나, 결국 명분이란 것이 실리의 모든 것을 우월할 때 전쟁이란 극단적 상황이 도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광해군은 가도에 위치한 명나라 장수인 모문룡에 대해 견제를 했다는 점이다. 모문룡이 탐욕적이고 자국의 수도에서 멀리 있는 가도에서 변방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재력과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후금, 조선이 필요한 무역의 모든 이권을 챙긴 모문룡은 후금에게 큰 가시거리이고, 조선으로 본다면 막대한 예산을 요구하는 간신배였다. 모문룡에 대한 광해군의 정책은 모문룡을 견제하고 후금과의 중립노선을 지키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인조가 반정에 오르자, 모문룡의 세력에 속한 상관이 인조의 정치적 기반이 약한 점을 이용하여 명나라와 조선의 외교교섭을 강화했다.

 

인조는 본래 광해군의 조카이며, 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기에 명분이 필요했다. 명나라의 사록에서 인조는 정상적인 왕이 아니라 변란으로 왕이 된 사람이고, 그가 왕위의 안정성을 가지려면 명나라에 의해 책봉을 받아야 하는 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개 대군이란 점에서 명나라의 모문룡의 상관으로부터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왕으로 추숭되는 것을 성공한다. 덕분에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외교 사다리타기에서 명나라로 가면서 추후에 조선은 홍타이지의 침략을 받고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외교의 실리적인 부분에서 명분이란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아킬레스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명분 뒤로부터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외교정치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의 조선에서 외교정치를 잘 하는 것은 결국 자국을 보존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쇼군으로 되면서 일본 내의 모든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을 척결한다. 그 덕분에 일본 막부는 전쟁보단 에도 중심의 내정위주의 정치로 옮겼으며, 도쿠가와 막부와 더불어 조선의 교역과 외교회복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일본에는 아직까지 강력한 왜병이 있었고, 조총의 경우 살상력이 매우 높았으며, 항왜(降倭)와 같이 항복한 왜인들은 다른 조선병사와 달리 매우 강한 무술과 돌격능력을 갖추었다. 이런 상황에서 왜관을 동래에 설치하여 일본과 외교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로는 명과 후금 아래로는 왜국이 있었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침공해온다면 국가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기초는 광해군부터 닦아오고, 인조는 후금의 세력이 강하고, 혹시라도 있을 전쟁을 대비하여 왜국의 조총과 염료, 화약을 구입한 것이다.

 

모문룡 사망 이후, 명나라에서 후금에 대한 전반적인 전투태세에서 중간에서 눈치보단 조선이 명으로 붙은 조선에서 일본의 외교는 중요했으나, 문제는 명나라의 국가 존립을 유지할 수 없었다. 명나라는 외교적인 문제보단 자국 내의 정치적 세력의 분할로 인해 파가 갈리어 있었고, 그 이점을 노려 홍타이지는 자신에게 투항한 명나라 장수로서 이간질 작전을 세웠다. 덕분에 중요한 장수가 처형당하는 일을 당하자, 명나라의 군사력은 점차 약해져 갔고, 이 와중에 자국에서 보충 내지 합의에 대한 보완보단 그저 그대로 흘러가는 추세인 것이다.

 

□ 이신의 존재

이신이란 하나의 왕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왕을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 즉, 원래 명나라의 장수나 인물이었으나, 후금으로 투항하여 홍타이지를 보필한 자들이다. 명나라는 기본적으로 조선에 대한 정치적 상황이나 외교적 방술을 잘 알았으며, 전쟁은 반드시 무력으로 인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인들로 통해 정치외교적인 압박과 실리를 넘은 명분으로서 조선을 굴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실리가 중요해도 명분이 존재하지 않으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거나 혹은 압력을 주어도 한계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명분성에서 인조의 반정 역시 명분에 의해 명나라와 친교외교로 맺은 것처럼 후금에 투항한 명나라 장수들은 바로 그런 방법으로서 조선을 압박했다.

 

본래 인조가 병자호란 패배로 청국황제인 홍타이지에 삼배구고두례를 할 이유는 없었으나 이 모든 것이 명나라의 이신에 의해 조정되었으며, 조선과 후금의 전쟁에서 밀고 당기는 상황에서 조선에 대해 심한 압력을 주었다. 심지어 척화파에 대한 검색이나 투항 이전 명나라와 밀통하는 자까지 속아내는 효력을 발휘한다. 인조반정의 공신 중에 공신인 승상 최명길이 바로 명나라와 밀정을 나누다가 그 밀정을 나눈 명나라 장수가 청에 투항하는 바람에 실각하게 되는 사례를 알 수 있다.

 

이신의 존재가 그토록 강한 이유는 조선이란 국가가 이때까지 소중화 이었기 때문에 문장력이 부족한 후금이 무력지배로 갈 수 있어도 문화지배가 어려운 부분을 이신들이 보완했고, 때에 따라서는 우수한 성과도 낳았다. 청나라로 연호가 시작되자말자 명나라 이신들은 청나라의 문화 및 정치권에 큰 역할을 맡으며, 홍타이지의 세력을 확장시킨다. 홍타이지 역시 본래 후금에서 버일러라는 한 부족장에 불과하며, 다른 부족장들을 통합하기에는 자신의 세력이 부족하므로 이신들의 존재로서 자신의 세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청나라가 일본에 의해 망할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청국에서 문인이 배출되고, 조선으로부터 아버지국가라는 역할을 하면서 특히 강희제 때에 이르러 더 이상 명나라에 의한 그늘에서 초조하게 굴지 않았다. 인조와 효종 시기에 이신들은 끊임없이 조선을 압박했고, 주변에 스파이를 배치하고, 사소한 문제로 시비를 걸었으며, 특히 남한산성 보수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 조선의 피해

개인적으로 조선시대에 북벌론이든 혹은 북학론이든 어느 하나라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효종이 북벌론을 내세우려다가 못한 것이나 혹은 인조 시대에 북학론을 하지 못한 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라 볼 수 있다. 인조반정은 결국 사대부들이 가진 성리학적인 중화주의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 시기에 인조반정 이후 후금을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병자호란으로 모조리 굴복하게 되면서 조선 사대부의 정점에 오른 임금이 오랑캐의 수장에게 머리를 숙인 사건을 충격을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 시대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여 명으로부터 인조반정을 인정받으면서도 한편으로 변란으로 간주된 것은 큰 오명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실리나 정도보단 이름이나 명분에 집착하던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의 패배와 명나라의 수복불가능에서 청국이 명국의 모든 것을 대체하면서 자기논리에 대해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 청을 부정했으나 청이 명을 흡수하여 명의 문화조차 가지면서 명나라의 소산이 청국에게 맡겨지면서 자신들이 청국을 견제하기 위한 행동이 결국 청국이 어버이국가로 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인조반정에 당위성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 날조로 광해군이 모문룡과 친하게 지냈다는 거짓말과 광해군이 실리외교를 추구한 것에 대한 문제점보단 폐비살제(廢妃殺弟)라는 명분만 내걸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일구어 놓은 결과에 대해 부정하면서 광해군이 이룩한 업적 자체가 있었기에 자신들이 무사한 것을 알게 된 지식인들 사이에선 광해군이란 존재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전쟁의 패배는 수십만 명의 조선 백성들이 후금으로 끌려가고, 가는 도중에 살해당하거나 추위나 배고픔에 죽고, 또는 가서도 병으로 죽게 된다. 도망치다 걸리면 잡혀 죽고, 혹은 도망쳐도 이른바 환향여(還鄕女)가 화냥년이란 이름으로 창녀취급 당하는 것이다.

 

억지로 간 것도 모자라 집안에서 파문당한 여성들을 본다면 피해의 양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컸다. 남성들은 그저 살해당하겠지만, 여성들은 강제로 겁탈당하거나 또는 후금에 끌려가서 장병들의 첩이 되어 고진 생활을 당하여야 했다. 원처가 있는 후금 집안에 갈 경우 원처가 조선여인에게 못된 짓을 하는데, 뜨거운 물을 얼굴에 뿌리는 행위 등 심하게 괴롭힌 점에서 홍타이지조차도 질투하는 아내에 대해서는 남편이 죽을 경우 같이 순장할 정도로 엄히 다루었다. 수십만 백성이 끌려가고, 그것도 모자라 왕의 아들부부 그리고 대신관료의 아들조차도 볼모로 끌려가면서 심한 고통을 겪는다.

 

명나라 토벌에서 조선인들을 징병할 때, 만약 전쟁의 결과가 용이하지 않으면 청국에 잡힌 세자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그런다고 청나라와 명나라 전쟁에서 조선병사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도정벌 시에 청국은 조선병사의 사격기술을 인정했는데, 명나라 장수는 자기가 패배한 이유는 후금이 아니라 조선의 조총병사라고 힐책했다. 가도의 명나라 관리들이 가도인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 대해 심하게 착취하여 이에 대한 불만이 전쟁에서 보이게 되었다. 물론 명나라와 전쟁 중에 아버지국가라는 사상이 백성에게 뿌리박혀 일부 포수는 허공에 사격하거나 혹은 공포탄을 발사하여, 후금의 감독관들은 이들을 적발하여 처형했다.

 

후금에 의해 임금은 욕보이고, 임금의 모습에 실망한 사대부들은 왕을 무시하는 경우가 늘었으며, 아들들을 볼모로 보내지 않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며, 인조는 반청을 고집하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다. 광해군에 대한 반발심에 의해 일어난 인종반정에서 인조의 행동과 인조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보낸 신료들을 보면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의 안정보다는 자신의 명분만 내세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집착의식은 후로 갈수록 강해지는데, 당시 광해군을 인정하지 못하는 명분은 영조시대까지 흘러가면서 인조반정이 변란이 아니라는 것으로 돌리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조선을 보면서 명나라에 대한 충성과 그것에 대한 집착성에서 강희제는 당근과 채찍에서 조선이란 국가가 의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 덕분에 조선은 19세기 일본이 침공하고, 서양이 다가오고 있을 때 청국과의 외교정책만을 고수하려 했다. 사실 처음부터 우방은 없었고, 단지 우방을 가장한 적군 내지 동맹국만이 존재한 것이다.

 

 

□ 독서 이후 감상평

어리석은 사대주의 사상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흘러올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 친미와 친일의 의미로서 외교적 방도라면 모르지만 친일파는 국가를 좀 먹게 하여 나라를 몰락하게 하였고, 친미파들은 본래 미국이 가진 정치적 가치보다는 그저 미국의 눈치만 보게 되었다. 외교에서 상대국과의 관계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 우선 한국은 전쟁무기를 만들기 위한 금속류의 광물이 없다는 점과 무기를 운영할 수 있는 석유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대에서 비상용 내지 전투용 보급물품들은 분명 비치하고 있겠지만, 항공기와 해상운송이 계속 유지되지 않으면 힘들다는 점이고, 최근 전쟁무기는 한 번의 공격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나게 되면 상대 국가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조차도 적대감을 가질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 대부분 남자들이 징병대상이므로 수많은 현역만이 아니라 예비역 내지 보충역, 민방위까지 전쟁의 희생양이 된다는 점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나 국가비상 시에 동원령이 반포되면 국민은 더 이상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국가조직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남자 대부분이 예비역으로 전쟁에 참전하면 대한민국 전체인구 1/4 이상 될 것이다. 결국 현재 안보상황이나 국가운영에서 외교적 실리를 명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논리다. 전쟁에서 이기면 본전이고, 패배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것이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에 북한 위의 중국은 우리의 무역 국가이면서도 한편으로 북한에 강한 압력을 불어넣는 국가이며, 일본은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자위대 군사력 합헌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미국과 서양국가의 우방적인 역할에서 무력충돌 내지 그 상황을 만드는 일은 오히려 우리에게 마이너스라는 점이다.

 

실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서 지금의 무력을 생각하면 양쪽 다 심한 피해를 받고, 어느 정부라도 그 명분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실각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서는 쿠데타 내지 혁명, 한국은 투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이란 책은 단순히 우리에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중원의 명과 청의 교체만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조선에서 어떤 외교정치를 보이고, 그 와중에 다른 국가와 어떤 외교행위를 했고, 그 다른 나라에서 어떤 상황이었냐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정치적인 결정이 국가 존망을 결정하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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