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볼리바르 -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 서해역사책방 17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조재선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볼리비아라고 하는 나라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남미에 위치한 나라, 이름은 분명 어디서 들었지만 잘 알 수 없는 나라, 혹은 조금 더 잘 알 수 있다면 1960년대 아주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마지막으로 발을 들였던 곳으로 알 수 있다. 체 게바라는 혁명을 위한 투쟁 중에 볼리비아 산중에서 총에 맞고 죽는다. 그의 한 손을 잘린 채 그의 시체는 볼리비아에 묻힌 셈이다. 체 게바라가 활동하던 그 냉전시기 이전에 아주 명망 있는 혁명가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몬 볼리바르, 볼리비아라는 국가이름이 된 이유는 볼리바르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이름으로 통해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볼리바르의 이름과 얼굴은 남미 세계에서 상당히 많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위대한 혁명가였다. 남미의 혁명은 서유럽과 북미대륙과 다르게 조금 뒤에 일어난 혁명이다. 그 혁명의 발원지는 서구사회도 아니고, 게다가 백인종이 주류가 된 국가도 아니다. 오히려 백인들이 와서 인디오나 인디언을 무참히 학살하고 나서 노예로 만든 비참하고 슬픈 역사가 숨은 나라들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서 남미국가가 보인 지난날의 상처들을 보여준 편이 있었다.

 

자신들의 문화가 소멸하고, 억지로 터전을 잃은 가난한 원주민들의 이야기에서 남미는 그야말로 한이 서린 국가라고 볼 수 있다. 북미에 아메리카가 건설되는 것과 달리 남미에서는 처음부터 식민지로 되었기 때문에 독립국가 도래는 상당히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북미의 독립과 남미의 독립은 개념이 달랐다. 북미의 경우는 기존 아파치를 비롯한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을 내몰고 독립 국가를 세웠다는 점이고, 남미의 경우는 원래 원주민들이 다시 자신의 국가를 되찾으러 간 것이다. 자신들의 낙원을 찾기 위해 타인의 낙원을 파괴한 역사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세계역사는 서구중심사회이므로 유럽의 혁명은 매우 대단하게 다룬다. 물론 프랑스대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조차 만든 거대한 사건이나, 사람들은 그것 외에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는 점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왕정시대의 막을 내리게 했다면, 남미의 혁명은 식민지의 억압으로부터 탈피했다는 점이다. 혁명이란 기존의 체계를 전복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프랑스대혁명은 프랑스 공화국 이전의 왕정을 국민들이 무너뜨린 것이기에 프랑스 그 자체의 주인만 바뀌었다면, 남미의 혁명은 식민지에서 노예로 살아야했던 원주민들이 이루었기에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혁명의 시대를 만든 사람이 바로 시몬 볼리바르라는 인물이다. 19세기 후반혁명과 18세기 후반의 혁명에서 사상적 근본에서 19세기부터 카를 마르크스가 주도했다면, 그 이전에는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이 주도했다.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 발견자, 루소>를 읽다보면 마르크스조차 루소의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루소의 사상이 남미까지 흘러오게 된 동기는 이 책의 저자인 핸드릭 빌렘 반 룬이 밝힌 것처럼 루소의 <emile>을 시작하여 <사회계약론>, 그밖에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철학을 남미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구체제의 낡은 사상은 시대적 흐름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사상들이 계속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변화하려 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을 했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철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틀렸고, 무엇이 문제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예근성이 생기는 이유는 타성에 길들여진 이유도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고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배받는 것을 하나의 정당성으로 여기게 만드는 사회에서 어떻게 피지배계급이 그 문제를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

 

세계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문명을 들여다보면 온갖 착취와 폭력 그리고 억압으로 가득 찬 사슬의 세계이다. 그 사슬로 묶인 공간에서 오로지 사슬을 풀려고 한 사람들은 피지배계급들이나 그들을 항상 앞에서 이끈 자들은 지식인 내지 권력을 충분히 가졌던 사람이다. 그들은 사고를 통해 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었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에 대한 윤리적 의식이 있었기에 혁명이 가능했다. 사상적 중심과 행동하기 위한 냉철한 이성이 갖추지 못하면 그저 민중의 봉기는 단순한 난으로 끝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인의 양심과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이유는 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안다는 점이고, 어떻게 하면 하나하나씩 실타래를 풀어 문제를 정리해 나갈 수 있는가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항상 좌절과 시련 그리고 비참한 운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당통도 그러하고 로베스피에르도 그러하다. 마르크스는 가난과 질병, 가족을 잃은 고통에서 먼 이국에서 죽었으며, 수많은 혁명가들이 그런 운명으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비극과 고통에 후회보다는 늘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힘들게 걸어간다. 시몬 볼리바르 역시 그러하다. 아주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부유한 스페인 후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과 달리 똑똑했으며, 학교선생이나 가정교사에 대해 항상 골려주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삼촌인 시몬 로드리게스라는 친척은 볼리바르에게 새로운 바람이었다.

 

자연인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로드리게스는 루소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자신이 배운 지식을 볼리바르에게 전해준다. 루소의 사상에서 자연주의적인 철학은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자유로우며, 그 누구에게 속박 받아서는 아니 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상은 볼리바르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볼리바르는 우연히 만난 혁명가 미란다를 만나 혁명군 장교로 시작하여 계속 베네수엘라를 시작하여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의 나라를 해방한다.

 

그 해방을 위해 자신은 귀족 집안인데도 또한 거대한 재산이 있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이성으로 입각하여 평생을 헌신했다. 많은 나라를 해방했으나, 같은 편에서 벌어진 배신과 소중한 친구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병들게 했다. 최초의 남미 대통령이면서도 가장 가난하게 죽은 대통령, 그가 죽을 때 깨끗한 셔츠조차 없다는 말에 혁명가는 평범한 죽음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한다. 그가 죽기 전에 한 말인 “꺼져가는 생명이여, 이제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는 죽음뿐이구나.”라는 것은 볼리바르가 그동안 해놓은 일들이 거품처럼 사라진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는 해방된 남미가 다시 분쟁으로 가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이 세상 모든 것과 화해하기로 한다. 즉 죽음의 안식을 기다린 것이었다. 볼리바르의 죽음은 매우 애석한 영웅의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오면서 남미 역시 자유와 평등의 물결이 일어나고, 국민들은 항상 억압받는 자에서 자신의 인간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걸음마이나, 그런 기반에 시몬 볼리바르의 영혼이 숨어있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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