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영화 <강철비>를 보면서 나는 순간 놀라운 것을 보았다. 작품 내 새로운 대통령이 1권의 책을 들고 있었다. 분명 제목은 영어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저자의 이름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자의 이름은 브루스 커밍스 교수, 미국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최근에 현실문화연구 출판사에서 나온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어보았다. 책을 보면 아주 복잡다양한 한국전쟁에 대해 소개했다. 한국전쟁은 미소냉전의 이데올로기의 격돌로 이루어진 전쟁이기도 하나, 그 전쟁의 뿌리에는 깊은 원망과 증오가 숨어있었다.

 

전쟁의 역사는 단순히 타국과의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서 발현된 갈등이다. 한국전쟁은 두고 남침 내지 북침이라는 다양한 표현도 있지만,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시 생각해보면, 매우 비극적인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20세기 최고의 내전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두고 광복후에도 전쟁에서 보여준 참혹한 복수극 내지 학살은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광복절 이후 미군정은 친일세력을 정부세력을 편입하고, 이들은 역사의 청산 대신 권력의 총을 받았다. 독립군들은 대부분 미군정보단 자치적으로 활동하거나 혹은 중국 내지 소비에트와 연계했다.

 

독립군 대부분이 대종교 신자인 점에서 민족주의자 내지 사회주의 또는 무정부주의자도 많았다. 일본 패망 전에는 미군의 입장에서 공동전선을 이끌 군세이나, 일본이 물러간 한반도에서 보자면 앞으로 신탁통치에 방해될 존재이다. 그런 갈등에서 친일의 잔재는 우리 사회에 그렇게 흘러갔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을 두고 냉전을 넘어 민족 내부에서 보여준 증오와 공포에서 학살극이 이어졌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친일파에 대한 조선 민중의 증오, 그런 민중으로부터 공포를 느끼는 친일세력의 대립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2. 내전, 끝나지 않은 비극

친일과 군부의 정권장악, 영화 <강철비>에서 곽철우는 북에서 내려온 엄철우에게 자신의 정치철학관을 말해준다.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분단으로 인한 고통보단 그 분단된 것을 이용하는 자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고 말이다. 에릭 홉스봄이란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는 19세기를 두고 혁명의 시대라 말하며, 그에 따라 넘어가면서 자본과 폭력의 시대로 연계된다. 혁명의 시기에서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을 필두로 유럽은 노동문제와 인권문제로 혁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민중들이 권력에 의해 압박당한다. 그리고 20세기 민주주의가 도래해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주도적으로 움직인 민주주의이다. 20세기는 전쟁의 시기이고, 전쟁은 자본의 경쟁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민족 내부 갈등과 더불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일어난 전쟁이기도 하다. 대부분 식민지 시절 친일세력은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장악하고, 억압받은 민중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착복을 당했다. 그런 와중 북한에서 소련의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가 전시공산주의로 변모되었고, 한국은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도래되었다.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는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와 상관성을 가지지만, 결코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자본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만, 자본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것은 분명 자유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북한과 남한의 차이점은 자유라는 슬로건은 모두 내걸지만, 한 쪽은 자본을 국가권력에 의해 장악하고, 다른 한쪽은 국가권력과 유착하여 장악했다.

 

위쪽은 정치권력이 없으면 피지배계급이고, 아래쪽은 경제력이 없으면 피지배계급이 되었다. 21세기에 도래하면서 역사와 경제학적 구조에 의해 전시공산주의보단 자본주의가 더 효율적인 정치경제구조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영화리뷰 하면서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영화 <강철비>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맥락과 정치, 사회, 경제적 흐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강철비>는 상당히 어려운 영화이다. 기존 한국의 블록버스터 체계에서 상당한 도전을 보여준 작품이다. <쉬리><공동경비구역 JSA> 등 북한과의 갈등을 빚는 영화에서 북한의 어느 개인은 인간적이지 모르나, 북한이란 정치적 체계 그 자체에 대해 악의 축이란 이미지를 강하게 부여했다.

 

물론 폭력국가 내지 테러리즘이 강한 곳이 북한인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는 상당한 딜레마로 작용한다. 어느 정권이든지 통일이란 주제에 항상 눈여겨보고, 북한과의 외교안보전략이 정권에서 제일 큰 과제이기도 하다. 보수정권조차 북한과의 외교정책을 중요하게 여기고, 한편으로 북한과의 외교적 갈등을 군사적 대응체계로 보여주기도 한다.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실패한 나라이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도 북한이란 정치적 체계는 붕괴하지 않았고, 붕괴의 위험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붕괴보단 숙청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정치와 군사세력이 일치하면 그 국가는 군사력을 통솔할 수 있는 장성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나, 한편으로 가장 먼저 죽어줘야 하는 대상이 된다.

 

3. 차가운 머리를 가진 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는 매우 담담한 영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로 꺼내기 힘든 부분을 있는 그 자체의 사실을 영화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외교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항상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가로부터 간섭을 받는다. 사람들은 한국의 최고 우방국을 생각하면 미국을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은 최고의 우방국을 한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이 여기는 우방국은 일본이다. 일본과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데, 주한미군보다 주일미군의 세력이 더 강대하다. 오키나와에 미공군 내지 미해군이 대기중이고, 그 외로 괌에 위치한 기지에도 주둔한다.

 

일본 훗카이도에 미공군기지 역시 주요 군사력 중에 하나이다. 아마 올해 들어 한국의 밀리터리마니아에게 가장 인상적인 영화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이 영화라고 볼 것이다. 물론 미국에 비하면 비교하기 힘들지만, 군사작전과 전략, 무기체계와 첩보전은 상당히 잘 짜여진 연출이었다. 감독 양우석이 <변호인>으로 흥행할 때, 그에게 무기는 오로지 송강호 씨의 흡입력이었다. 송강호 씨가 보여준 <변호인>에서 그가 차지한 비중이 너무 거대했다. 그러나 송강호 씨는 그 거대한 모습을 감춘 듯 작품 속을 유영했다. 그렇기에 송강호 씨의 연기는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강철비>에서 주인공인 곽도원 씨와 정우성 씨의 연기배분을 잘 정리했다.

 

작품에서 샷과 샷의 전환에서 치밀한 상황을 아주 명쾌하게 전환해 나갔다. 첩보전이나 심리적인 요소에서 시간을 끌기보단 그런 요소들을 빠르게 진행하여 작품의 긴장감을 더욱 상승시켰다. 작품 중간의 격투나 전투장면은 억지로 길게 끌지 않았고, 특히나 <군함도>처럼 영웅 캐릭터가 잘 죽지도 않고, 다쳐도 금방 회복되는 무리한 연출을 넣기보단 오히려 첩보전에 어울리는 장면으로 위기를 넘긴 게 좋았다(북한군 특수부대원이 넘버1을 암살하려 할 때 시신과 넘버1를 바꿔치기한 장면).

 

4. 영화 시작점인 쿠데타 요소는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에서 정권이 바뀌면 그전에 승승장구하던 자를 숙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북한정권에서도 자신의 형제나 숙부조차 처형하고, 많은 군부세력이 바뀌는 일이 뉴스지면에 나온다. 어제까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웃었던 자들이 어느 순간 어둠으로 사라진다. 영원할 것 같은 권력의 좌, 하지만 눈 밖에 나는 순간 차가운 감옥에 갇히거나 고통스러운 고문과 죽음이 기다린다. 그들이 죽음에서 무슨 죄를 지었는가? 라는 의문보다 무엇을 위해 사라져 가는가? 라는 권력의 관계성을 봐야 한다.

 

영화를 보면 이중교란이 나온다. 반역자를 제거하라고 말한 자가 반역을 저지른다. 그가 반역을 저지른 이유를 본다면, 계속되는 군부와 당 내 권력자의 숙청, 그동안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과 국가 자체의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현실과 이상, 그리고 권력과 미래의 관계성에서 극단적 선택을 택한 것이다. 단지 영화에서 본다면 북한군이 쉽게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설정은 무리수이기도 하나, 영화는 하나의 설정이란 조건에서 본다면, 그들이 처음부터 노린 전차의 탈취, 군병원의 습격은 첩보전의 긴박함을 보여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아니라면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이상에 갇혀 몰락할 때, 권력이란 이름은 그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문제는 권력은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나, 그 권력의 중심부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주변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문제는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후복구비만 아니라 많은 인명이 손실되고, 특히나 남북 간의 화해는 전혀 진정될 수 없다. 하지만 이대로 장기전이 되면 국가 내부적으로 큰 소란이 일어나고, 전쟁에 따른 인명과 재산손실 역시 만만치 않다.

 

5. 역사는 현실과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의지에 따라 전쟁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미국에 의한 작전통제권이 이루어지고, 더 크나큰 위협으로 중국과 일본이 크게 관여한다는 점이다. 20세기 한국전쟁에서 모택동은 17세기 병자호란 때 개망나니 같은 명나라 장수 모문룡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를 가진 자가 결국 조선에 침입한 적을 막아내었다는 논리다. 모씨의 역사는 350년 차이가 나는데, 아직 중국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두고 우리는 왜놈의 난을 부린 최악의 상황이라면, 중국은 항왜원조(抗倭援朝)라 부른다. 왜국에 저항하여 조선을 돕는다. 201712월 중반에 한국대통령은 중국에 방문했다.

 

이때 중국 주석은 난징대학살 기념행사에 갔다. 난징대학살 정도의 사건이라면, 일본에서는 자위적인 행위인 원폭투하 희생자를 기리는 날이고,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과 맞먹는다. 그 나라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날에 타국의 대통령이 방문을 하자, 중국 주석은 바로 만나지 않고, 행사 후 만났다. 만일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의 행사장에 갔다면 일본은 항의했을 것이고, 자국에서는 중국에 너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이다. 반대로 주석을 바로 만나지 못해 외교적으로 무시당하지 않았냐는 말을 나오기도 한다.

 

한국전쟁 기념일에 대통령이 UN묘지에 참석하지 않고, 외국정상이 왔다고 그들을 만나러 갔다면 그것이 더욱 문제가 아닌가? 정상은 자국민과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역사란 계속 되풀이 되고 비극은 제2 내지 제3의 배우에게 시련을 안겨주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영화 <강철비>에서 잘 나오는 게 바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서 미국의 입장이다. 영화가 그렇다고 하나, 사실 말을 하지 않아도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의 편을 들어준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 권력가들이 지금 노리는 것을 일본헌법 개정이다. 일본의 군사력은 자위대라 하지만, 자위대는 군사조직이 아니다. 군사조직이 일본에 생기면 그들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전쟁이 다시 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에 전시상황 무력개입이 가능하다. 한국전쟁으로 일본에 난민이 오면 인도적인 대우보단 사살 내지 감금이란 비인도적 행위를 할 것이란 기사를 보았다. 미국이 우리의 절대우방이라면 일본에 간 우리 한국인 전쟁난민이 인권유린당해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나, 사실 주한미군조차 우리나라 법규자체에 상당히 큰 면책권을 가지고 있다.

 

6.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미국이 우방이라 하나,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미국과 동맹을 맺고 교역을 하는 것이다. 영화리뷰를 쓰면서 미국경제학자 책이 생각난다. 미국의 재정은 감축되고, 국민 대다수는 빈곤계층으로 몰려간다. 부익부 빈익빈이 미국을 병들게 한다. 문제는 부자들의 증세 아닌 감세는 국고를 비게 하고, 그 국고는 간접세로 빈곤한 자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직업이 1개 아니라 2~3개 가지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미국인들의 현실에서 암울한 이유는 미군의 군비는 엄청나다는 점이다.

 

군비의 확장은 단순히 평화유지만이 아니라 방위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상당한 액수의 무기를 구매한다. 무기체계는 독점적 구조이기에 독점시장이 형성되고, 그 세금은 미국 국민 대다수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이윤은 상위계층에게 몰린다. 전쟁의 경제학이란 말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하고 난 뒤 이라크를 경비를 보던 군사세력은 미군이 아니라 블랙워터라는 군수경비업체였다. 이들을 고용한 미국은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이 이라크를 지킨다는 방식으로 움직이나, 군방산업체와의 계약은 결국 독점으로 이어진다.

 

이라크전쟁은 테러국가 내지 불량국가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뒤에 에너지 자원, 경제 등의 효과가 동원되는 전쟁이다. 기업의 이윤인지 국가의 이윤인지 몰라도, 결국 누군가 이익을 보고, 단지 그 이익을 더 많이 보는 기업이 속한 국가는 이익을 볼 수 있는 게 정치적인 전략이 될 수 있었다. 전쟁나면 가장 이익 보는 것은 2종류이다. 그 나라에서 이데올로기로 정치적인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사람, 전쟁무역으로 매출을 올리는 무기상인이다. 하지만 그런 이익은 강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조건이다.

 

7. 약자에게 선택은 없다.

중국이 임진왜란을 두고 항왜원조(抗倭援朝)라고 부르면, 위에서 언급한 모택동이란 인물은 한국전쟁을 무엇이라 불렀는가?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불렀다. 영화 <강철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수뇌부가 중국 외교군사라인과 연락을 취할 때, 그가 이렇게 말한다. 중국과 조선은 형제의 나라라고 말이다. 중국과 조선이 형제의 나라로 불린 것은 조선이 홍타이지에 의해 침략당한 정묘호란 시기이다.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낸 후 이괄의 난을 겪은 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서인정권은 17세기 명·청 교체시기에 전략을 잘못 세워 결국 정묘호란을 맞이하고 후에 병자호란으로 이어진다.

 

명나라와 조선은 군신의 관계 내지 아버지와 아들이라 한다면, 청나라는 조선에게 형제의 나라가 될 것을 종용했다. 물론 조선의 아버지가 사라진 후 청나라는 조선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그 이후에 조선은 청나라를 엄청 무시하고, 명나라 만력제 이후 자신에게 벼슬의 칭호는 필요 없다는 선비들이 많으나, 그들은 배고픔과 가난으로 죽어가는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다. 명이 중원 누비든 청이 누비든 조선의 백성이 가장 소중한 게 당연한 일이나, 그렇지 않았다. 지나간 명분에 사로잡힌 채 망령의 굴레에 계속 집착했다.

 

영화 <강철비>는 선조-광해군-인조로 넘어가는 조선의 모습이 생각난다. 북한은 중국, 한국은 미국을 의지하나, 결국 마무리는 우리의 몫이다. 핵무기 여파가 일본 이지스함에게 미치자, 미국은 한국정부 편에서 벗어나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다. 미국CIA 한국지사장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일본에서 대기를 한다. 한국정세를 보고 일본과 같이 처리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방침이란 점을 보여준다. 정말 그럴까? 아닐까? 하지만 어느 정도 현대사회에 국내 정치를 넘어 외교, 안보, 군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간 의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강철비>에서 그 요소를 너무 대놓고 밝힌 것이 묘미이다.

 

한반도의 상황이 너무 위급해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딜레마, 전쟁의 집중화이냐 아니면 조금 더 대화를 나눌 것인가? 정권의 대변자 내지 권력자 중에 현재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변화를 주는가에서 새로운 상황이 도출된다. <강철비>에서 곽철우는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한다. 한반도에 강력한 핵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국가는 강대국으로 한정되어 있고, 한국은 가질 수 없는 나라로 되어 있다. 핵무기를 가진다는 점은 최악의 상황에서 국토를 유린하면 상대편을 모조리 말살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진 것이다.

 

영화에서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북한은 20년 전에 밟아야 했다고 말이다. 핵무기가 나오기 전에 모조리 섬멸했다면, 지금 북한은 핵무기체계를 완비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핵무기의 위력은 같은 무게라도 1945년 일본 본토를 강타한 2개의 핵폭탄보다 더 강력하고 위험하다. 게다가 핵폭탄이 터지면 화염, 폭풍, 방사능만 문제가 아니다. 폭발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폭발물 내지 인화물 역시 타격을 입어 연쇄반응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서울 경기권에 대다수 국민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과 인프라가 밀집하고, 후방인 전남과 경남지역에는 핵발전소가 포진한다.

 

핵무기가 한반도 아무 곳이나 타격해도 무사할 수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 외교안보 군사력이 중요하나, 영화에서는 그 이상의 군사력을 원한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우방으로 미국이 가장 중요한 위치이나, 한편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무시를 못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한국과 비교하여 더 중요한 국가이다. 일본 자체가 극동아시아에서 소비에트연방과 중공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써 성장했고, 그것을 토대로 일본은 산업경제를 발달시켰다. 일본 극우는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을 부정하면서도 받아들인다.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은 미국의 핵투하 이후 국제재판 이후 사형당하고, 거기에 봉인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야스쿠니에 가서 전범을 기리고, 미국의 편을 들어 일본헌법을 개정하려 한다.

 

영화 <강철비>에서 이런 국제 정서속에 2명의 철우가 나온다. 우리는 영화에서 2철우의 한자이름에서 북한의 鐵友는 강한 친구이고, 한국의 哲宇는 생각하는 공간으로 나온다. 정말 2명의 철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이 힘든 국제세계에서 강한 힘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정말 어렵다고 말한다. 북한의 철우는 가족과 같이 살지만, 한국의 철우는 가족과 떨어져 산다.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 한국의 철우조차 자기 가족과 다시 결합하지 못한다.

 

곽철우의 막내아들이 말한다. 아빠 엄마하고 다시 살면 안 되냐고 말이다. 우리 한국 사회조차 곽철우의 모습처럼 살아가는데, 그 이상의 길을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곽철우와 성형외과 의사는 부부였으나, 그들은 이혼했다. 부부는 헤어져도 그들의 자식, 즉 우리의 미래는 그들이 다시 결합하는 것을 원한다. 어느 누군가를 적으로 보거나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으면 그들과 다시 결합할 수 없고, 미래의 우리들은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영원한 아픔을 가지고 가야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무뚝뚝한 엄철우 역시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버지란 점이다. 2명의 철우가 만나 그들이 하고자 하는 사명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2명의 철우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자녀,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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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2-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언론에선가 <강철비>가 <JSA> 이후의 남북관계를
그린 최고의 영화라고 하던 차에, 궁금증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멋진 리뷰로 만나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적대적 공생이 일상화된 시절을 뒤로 하고 함께 하게
될 날이 과연 올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2-19 09:38   좋아요 0 | URL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 상태가 그 당시와 유사사례로 이어진 점, 그리고 외교적 군사적 파워게임에서 여전히 밀리고 있는 점에서 이 리뷰의 기초단서가 되었습니다.
어느 글을 보니 이때까지 북한이란 적으로 나오거나 암묵적으로 적이라 규정하나, 여기서는 무조건적 적이기보단 그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 점에서 기존 북한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에 비해 더 나은 길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 과거의 영웅을 말한다면 대부분 이순신 장군을 말할 것이다. 성군(聖君)인 세종과 성웅(聖雄) 이순신, 세종대왕은 조선의 문()을 열었다면, 이순신 그 자체로 무()의 완성이다. 일전에 이순신 장군의 일대를 방영한 <불멸의 이순신>이란 작품이 있었다. 거기서 보인 이순신의 모습은 보통 인간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헤치고 나간 불굴의 무관(武官)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이 상대로 하던 적은 과연 왜적이었을까?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면 참으로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임진왜란이 7갑자 즉 420년 전에 계속 우리 조선 한국 땅을 고난의 세계로 만들었다.

 

게다가 정확히 420년 전은 1597년 정유재난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임진왜란이 1592년에 발발한 원인을 보고, 정유재란이 일어난 배경도 봐도 참으로 문제가 많았다. 단순히 이것은 이순신 한명으로 모든 적을 섬멸한 것이 아니라, 전 방위적으로 관찰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접한 임진왜란은 단행본 연구서적 내지 드라마에 더 심한 편중을 둘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이나 <징비록>을 보자면, 전자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후자는 유성룡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2사람 모두 임진왜란 당시 없었다면 조선의 앞날이 없었다는 점이다.

 

문제점은 드라마가 작가의 상상력이나 허구적인 요소를 다소 집어넣어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내나, 대하드라마 사극의 경우 기본적으로 기초 사료와 어느 정도 부합되어야 한다. <불멸의 이순신>은 소설도 있었으나 더 중요한 것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였다. 칼의 노래를 예전에 약간 읽은 기억이 있다. 문체가 매우 비장하고 엄중했다. 이순신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말 그대로 칼을 마음에 품고, 자신은 언제나 칼 위에 걷고 있는 칼집 같은 모습이었다. 칼을 가지고 있기에 그 자신조차 벨 수 있다는 각오에서 더 이상 무슨 수식어를 붙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임진왜란을 말하기 전에 이순신이란 한 인간을 말할 수 없겠지만, 임진왜란이란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성인(聖人)이란 단어처럼 일반사람에게 식견으로 묻자면, 성인이란 의미는 석가나 그리스도 같은 신과 같은 존재, 혹은 신의 권위를 가진 자로 본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성인이란 단어는 동양에도 있었다. 한국은 이미 서구화되어 기존 동양적 정신이 많이 파괴되었다. 역사학(歷史學)이란 학문이 동양의 영역이 아닌 서구의 관점이 되어 있기에 우리의 문화와 사적(史的) 영역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을 알기 위해 고대 그리스로 넘어가자면 유명한 철학자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과거의 철학자는 형이상학자이나, 한편으로 수학자 내지 의학도이기도 했다. 때로는 정치가와 철학자를 병행하기도 하나, 서구의 역사에서 정치, 철학, 군사, 의학 등의 분야가 서로 관계성을 유지하기보단 각자의 학문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반해 동양의 학문은 다르다. 동양의 학문은 철인(哲人) 군주 밑에 다른 철인들이 정사를 돌보는 구조였다. 그것은 바로 유학자(儒學者)들이고, 조선에서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이다.

 

이들이 관점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예를 들어 우리가 좋아하는 소설, 게임, 콘텐츠로 삼국지(三國志)가 있다. 삼국지에서 유명한 장수로 유비와 조조, 관우와 제갈량 같은 불세출의 인물이 모여 있다. 이들은 황건적 당시 의병을 일으키고, 동탁의 난을 잠재우며, 천하삼분지계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그러나 막상 소설을 보고, 게임을 하는 도중 뭔가 느끼는 바가 있다. 단순 롤플레잉게임(RPG)이라면 몰라도 정식적인 삼국지 시리즈에서 군주의 역할은 전쟁을 하는 것도 중요하나, 전쟁과 더불어 내정을 관리해야 하고, 외교와 인사문제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經營)이란 관리체계가 어느 정도 지켜지지 않으면 전쟁에서 무조건 패배란 점이다.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에서 그의 무술능력과 더불어 지장으로 보여주는 책략가란 점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그가 뛰어난 지략무장만 생각하지, 그가 그 이전에 준비해둔 작업과 계획, 군영을 다스리는 태도와 피난민의 대책, 군량미 보급과 지원에 대한 관리는 잘 몰랐다. 유명한 대첩에서 많은 왜적을 쳐부순 것만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가 처해진 모함에서 이 문제가 어떤 전후맥락이 있는 것인지 생각할 점이 많다.

 

임진왜란은 이미 경고된 전쟁이었다. 임진왜란 이전 전남 남해안에 왜적이 노략질을 하고, 담당관아 무관과 병사를 참살했다. 사실 이것만은 전부가 아니다. 1555년 을묘왜변이 전남지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왜적은 남원과 전주까지 올라올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만일 그때 왜적을 맞지 못하였다면 최초로 몽진을 한 군주 선조가 아니라 명종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오늘 지금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들을 다시 보고, 지금 현재 처해진 우리 모습을 반성하고 거기에 대한 채비를 하는 것이다.

 

서애 유성룡이 피눈물을 머금고 작성한 <징비록>은 그야말로 우리가 놓치고 놓친 지난날의 과오를 드러내던 책이다. 이 책을 제대로 보고 반성했다면 정묘·병자호란, 일제의 침탈에 대비했을 것이다.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읽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일들은 다시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란 인물은 성웅으로 우리에게 그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어온 인물이나, 막상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은 점이 많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은 왕으로부터 면사(免死)라고 적인 첩을 받는다. 하지만 정사 선조실록에서는 선조가 아닌 명나라 왕에게 하사받았던 것이다.

 

면사권한을 내린 자가 선조가 아닌 명나라 왕이라면 말이 상당히 달라진다. 조선의 성리학에 너무 치중하여 자국의 안위를 파괴했다. 성리학의 시작은 남송에서 시작되어 한족(漢族) 중국인들에 의해 조선까지 넘어왔다. 조선은 명나라와 인접한 국가고, 태조 이성계는 원나라를 섬기는 고려보다 새롭게 떠오르는 명나라에게 자신의 대의를 내보냈고, 그것은 성공했다. 즉 정치적 이념과 통치방법론에서 불교와 유교 사이의 고려보다 유교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이 되게 한 과정인 셈이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호령해도 조선은 여전히 성리학에 빠져있었고,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큰 독이 되었다. 이순신은 성리학을 잘 아는 무관이었다. 그러나 성리학 안에 빠져있지 않았다. 성리학의 문제와 더 나아가 심각한 폐단은 현장중심의 경영체계가 아니라 시문놀이 하는 맹한 성향이다. 임진왜란 발발 이전 조선에 심각한 사건으로 기축옥사를 생각할 수 있다. 옥사에서 형사업무 최고책임자로 송강 정철이 있었고,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인 세력을 숙청한다.

 

그 뒤 왕의 후사문제를 잘못 언급하여 귀양 가게 되고, 귀양지에서 전쟁의 소식을 들은 다시 선조 곁으로 오라는 명령을 듣는다. 문제는 전시상황은 모든 업무가 비상이기에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송강 정철이 보여주던 일은 참으로 한심했다. 최고 권력자리에 있다가 귀양을 간 것이 마음에 큰 상처였는지 그는 수 일 안에 올 수 있는 거리를 2주에 거쳐 왔고, 중간에 들린 관아숙소에서 기생을 불러 술자리를 만든 후 시조나 읊어주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문학을 만든 자이나, 전쟁에서 보인 행동은 최악이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정철만이 아니다. 이순신이 수군삼도통제사에서 억울하게 물러난 후 원균이 통제사로 부임하자, 수사(水使)들의 능력도 의심스러웠다. 배설이란 장수는 원균 아래에서 도망쳐 배를 보존케 한 것은 큰 공이나, 그는 이순신 막하로 오고 나서 큰 전쟁이 두려워 병영을 탈영한다. 전시 병영을 탈영하면 참형에 다스린다. 목을 벤 후 군문 높이 목을 효시하여 진중의 소란을 잡는다. 배설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보인 장수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이 작동해서 온 것이다.

 

이순신의 할아버지는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 역시 세상의 큰 뜻을 품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이순신은 사림정치세력이었고, 그는 율곡 이이 선생과 같은 덕수이씨 문중이나. 어릴 적 서애 유성룡과 친한 이유로 남인과 같은 영역으로 몰렸다. 유성룡은 이순신에게 늘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였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도 이순신의 활약을 전하고, 이순신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끝이 나자 북인 이산해에 의해 탄핵되어 정승의 자리에서 파직된다.

 

전시행정의 도체찰사로 활약한 그로써 이순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그가 백의종군할 때도 항상 위로해주었다. 백의종군은 이순신의 무장으로서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치권력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선조의 아들 광해군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 않으나, 책 전반적인 관점을 보면 광해군의 정치적 업적을 인정한다(책에서 광해군이 아닌 광해임금이라 한다, 이 부분은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관점과 유사하다). 그 이유는 광해군은 정치적 행위를 실제 현장중심과 연계된 점이고, 실사구시를 통해 시문놀이 하는 정치적 행태와 반대로 갔기 때문이다.

 

선조와 호종신하들은 전장의 다급함과 전략적 관점을 잘 알지 못했다. 전술의 기초도 모르고, 적을 이기기 위한 작전문서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시문놀이에 젖어 말만 앞세우고, 선조는 작전을 내리려면 적과 가까운 곳으로 정부를 옮겨야 하나, 계속 북쪽에 머물면서 몸을 사리기만 바빴다. 선조의 문제는 그가 몽진을 한 것이 아니다. 몽진을 한 후 보여준 대응방법이었다. 변방의 장수가 전쟁을 할 때 군주는 절대 그의 지휘권을 간섭하면 안되나, 선조는 늘 그렇게 해왔고, 그런 실수가 패배를 불러왔다.

 

선조와 서인세력은평양성전투나 벽제관전투에서 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무기는 화포를 중심으로 반격했으면 싸울 만 했으나, 오로지 기병을 통한 돌격이나 내세웠다. 왜군의 조총사격술에 신립이 탄금대전투에서 패배했다. 자신들이 왜 패배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명나라가 와서 현실을 말해줘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단 명분만 길게 늘여놓았다. 명나라 장수는 명분을 앞세우고 실리를 추구했다. 조선이 망하는 것은 명나라에게 중요하지 않으나, 조선이 망한 후 왜적이 넘어오는 것은 문제다. 그들은 항왜원조(抗倭援朝)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조선을 다시 세우게 한 재조지은(再造之恩)이란 단어를 남발했다.

 

재조지은의 문제점은 선조와 호종대신들의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 숨어있다. 사실 전쟁이 나면 제일 공을 세우는 자는 왜적을 무찌르고 몰아내는 자이다. 변방의 장수들은 목숨을 내걸고 하루 24시간이 죽음과 같이 숨을 쉰다. 그러나 선조는 호종한 대신에게 많은 공을 전해주었고, 그 이유는 자신이 의주로 가면서 명나라 왕에게 요청하여 명나라 군대를 파병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자신들의 손이 아닌 타국의 힘을 빌린 점에서 이미 병자호란의 그늘이 조선을 삼키고 있었다. 선조는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에게 변변치 않게 대하다, 전쟁 중 분조지휘를 마치고 돌아오자 매우 따듯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차갑게 대하고, 광해군이 분조활동과 무군사 책임자로 큰 활약을 해도 공신의 축에 넣지 않았다.

 

왕의 가족에게 공신은 어림이 없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자신의 피난길에 동행한 다른 왕자에게 호종공신으로 책봉하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조선의 모든 백성은 알고 있다. 조선의 위기를 탈출하게 한 인물은 이순신과 수군, 그리고 의병이나, 그들을 치켜세우는 것은 선조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고, 그런 선조와 함께한 간신배 세력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만일 이순신이 살아남아 전쟁이 정리된다면 선조와 서인세력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면사 첩은 선조가 아닌 명나라 왕이 하사하고, 하다못해 명나라 왕은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명나라의 수군 제독자리를 수여한다.

 

조선장수가 명나라 최고 지휘관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다. 이순신을 두고 당시 참전한 명나라 장수는 그를 제갈량과 동급으로 보았다. 제갈량은 창과 활을 못 다루나, 창과 활을 다루는 자들을 다루어 적을 섬멸했다. 이순신은 조선수군 몇 십 배나 되는 왜적을 격파했다. 명량해전의 기적적 승리는 하늘이 준 행운이 아니었다. 단지 조선과 명나라에게 이순신이란 인물이 있었던 그자체가 행운이었다. 이순신은 조류와 암초 그리고 지형 등을 고려하여 작전을 개시했고, 그의 전략은 상대 총지휘관의 목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 이순신이 다시 온다면 선조나 서인세력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며, 전시 국방부장관을 맡은 유성룡과 이원익의 경우 그 공이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 이순신이 선조에 의해 잡혀갈 때 유성룡은 제대로 돕고 싶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이원익은 목숨을 걸고 이순신을 변호했고, 병조판서를 맡은 정탁 역시 이순신의 업적을 고려하여 그의 안위를 보존해 달라고 했다.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은 이미 선조실록이나 많은 기록에 남아있다. 이순신이 다른 무관과 다른 점은 학문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하고 그리고 후에 망한 이유는 무관을 천시한 문치의 맹점이었다.

 

현장을 잘 아는 자가 대비하기보단 문관이 더 높은 자리에서 명령을 하고, 문관이 만호, 첨사, 부사 등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문제였다. 동래부사 송상현을 두고 부산시민들은 영웅으로 생각하고, 동래충렬사에 그를 모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송상현이란 인물은 시문놀이만 빠진 문관에 불과했다. 정발장군은 부산진성을 수호하다 순국했다. 현재 지역적으로 부산광역시는 조선시대 이름이 부산이 아니다. 부산이란 말은 부산진성(釜山鎭城)이 있었고, 원래 부산의 지역명은 동래부였다. 동래부라고 하면 동래읍성이 총지휘부고 동래부사 송상현은 부산지역 전체 수비를 담당하는 최고지휘관이다. 그러나 그 성은 4시간 안에 무너지고, 그는 죽음을 당했다.

 

이때 송상현이 화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무관이었다면 쉽게 성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많은 조선인들은 죽임을 당했다. 단지 일본 왜군에게 살해당한 이유로 충신의 반열에 올랐지만(아니라면 후에 예송논쟁의 주인이 그와 동본이라 더 올라갈 수 있다), 송상현의 죽음이나 평양성전투를 본다면 당시 무관을 대하는 조선의 수준을 알 수 있었고, 전시행정을 보면 전투능력을 알 수 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력과 병력이나, 그와 더불어 보급이다. 군량미가 없으면 싸울 수가 없고, 물이 없다면 그 진중은 이미 패배선언이다.

 

병사의 손에 제대로 된 활이 없고, 옷을 제대로 구비되지 않으면 전투 그 자체가 무리고, 수군에서 대포사격을 위한 화약이 없다면 역시 싸울 수 없다. 이순신의 경영관리는 보급의 체계화이다. 더 나아가 피난민을 수용하여 관리하여 그들에게 농지를 제공하고, 상업적 교류를 도모하여 전시 중에도 경제활동이 되도록 유도했다. 생선을 잡고 소금을 구워 팔며, 식량이 남으면 조정에 바치기도 했다. 전시 군량미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으면 군령에 의해 참형에 처해진다.

 

이순신의 승리는 모든 게 요행이 아니라 체계화된 시스템이었다. 병사 하나의 공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병사의 죽음을 두고 기록에 남긴다. 장계에 자신보다 부하의 덕을 칭송하니 감히 누가 따르지 않을까? 그런 면이 있었기에 언제나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이순신의 죽음을 두고 설전이 많다. 자살이었는지 아니면 속임수였는지 말이다. 진린의 기록이나 이순신의 아들과 조카의 기록을 보면 그의 죽음은 순수하게 교전 중에 벌여진 사태이다. 그런데도 승리로 이끈 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지휘통제력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대전은 양상이 다르지만, 과거 전쟁은 총지휘관이 죽으면 그 사단은 모든 행동을 정지된다.

 

적장을 잡는 순간 적의 병졸은 항복을 한다. 다른 지휘관이 비상사태를 인식하고 인계받으면 되지만, 그것이 되지 않으면 무력화된다. 자신의 죽음 곧 조선수군 지휘부의 붕괴이고, 그동안 자신이 보여 온 전술과 전략을 자신의 아들과 조카에게 요청한 것이다. 주도면밀한 이순신이 만일 다시 조정에 나온다면 영웅의 귀환을 두고 정치적 혼란은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조는 자신보다 이순신이 조선 그 자체라는 점을 알았다. 이순신과 더불어 죽음의 세계에서 나라를 구한 의병장을 소홀하게 대한 이유는 바로 정치적 입장이었다.

 

김덕령 의병장은 모함으로 장살을 당하고, 홍의장군 곽재우는 김덕령의 죽음과 이순신의 모함을 보고 산으로 숨어버렸다. 광해군은 선조에게 정치적으로 최악의 라이벌이고(이 책에서 <난중일기>의 내용이 나오는데, 광해군이 건강이 편찮아 하자, 이순신이 매우 걱정하는 글귀가 나온다), 전시 중에도 전쟁 후에도 왕위 전위 소동으로 정치적으로 큰 파란을 일으킨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왜 다시금 봐야 하는 것인가? 최근 일본이 헌법 개정을 하고 있다. 일본은 자위대가 군대가 아닌 자치대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 자체적으로 군대라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일본의 정치세력 대부분 대동아전쟁의 후손이고, 전범들의 악행을 반성하기보단 오히려 영웅으로 모신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과거의 일들을 지나쳐버리면 제2의 임진왜란이 오지 마란 법은 없다. 임진왜란 시기 명·청 교체시기이고, 지금 북한이란 폭력국가는 여전히 군사돌발을 일으키고 있다. 임진왜란에서 처음 풍신수길이 조선에게 요구한 것은 명나라 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한 것이다.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선이 교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동아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는 자들이 북한과의 군사적 무력충돌이 생기면 어떤 일이 있을까?

 

한국에서 전쟁이 나서 난민들이 일본에 가면 인도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망언에서 임진왜란이란 형태는 끝이 나도, 임진왜란이 가진 의미는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내용적으로 큰 결함이 없지만, 사실 이미 1권 서두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백선엽이란 육군 예비역장군은 한국전쟁의 영웅이라 하나, 그는 일제 만주군관으로 활약한 친일파이다. 항일애국투사를 죽이는데 혈안이 된 자가 이순신 장군을 운운하는 게 참으로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순신은 일제에 억압당한 민중의 빛이었다. 항일정신이 이순신에게 이어진 것이라면 백선엽 장군이 <이순신과 임진왜란>에서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모순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더 심한 모순은 이순신 장군이 다시 조명된 것은 정조대왕 시절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뒤 100년 정도 그의 기록은 삭제되거나 사라졌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싸운 장수이지만, 그를 지우고 싶은 이들은 전장이 아니라 선조 옆에서 호종하던 세력이다. 동인에서 남인영수(유성룡, 이원익, 이덕형)의 지지를 받은 장수이며, 더구나 남인과 서인이 제일 심각하게 대립하던 예송논쟁 시절, 남인의 논객 윤휴는 이순신과 인척관계였다.

 

윤휴의 서모(庶母)는 덕수이씨, 충무공 이순신의 첩의 딸이었다. 윤휴는 남원윤씨로 이순신 장군 밑에 활약한 무관이 많았던 집안이다. 한편으로 사돈관계이기도 했다. 윤휴는 오리 이원익과 인척관계고, 오리 이원의 손녀사위인 미수 허목과 사돈관계(친한 친구)였다. 임진왜란이 당연히 왜군과의 전쟁이었을까? 인조와 효종을 지나 숙종까지 이순신의 이름에 그늘은 있었다. 칠량해전에서 원균이 왜 통제사로 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를 다시 봐야하고, 그 역사를 서양의 눈이 아닌 조선의 눈으로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이순신과 임진왜란>에서 전하고 싶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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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3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1-30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속에서 대의를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일반적이기에, 대인 또는 성인의 모습이 더 위대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1-30 09:24   좋아요 1 | URL
대의를 위해 싸운 자를 외면하고
옆에서 아첨떠는 인간들이 승승장구하는
과거와 최근 이명박근혜 정부의 현실태를
보자면 작금의 역사는 과거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일이고,그곳에서 연꽃처럼 피운
분들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게
후세의 도리인 것 같습니다.
 


(1) 영화 <남한산성>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

 

문학가 김훈의 원작소설 <남한산성>이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극장에서 개봉했다. 사극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2007년 초반에 하던 <대립군>과 비교하여 흥행한 편이다. <대립군><남한산성>의 흥행도와 작품의 완성도에서 후자가 우월했다. 연기자들을 봐도 후자 쪽이 더 높은 수준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도 실력이 좋은 배우가 나온 것은 분명하나, 후자 쪽에 더 연기력과 수준이 높은 배우들을 중역으로 내세운 점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본다면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영웅을 이순신과 같은 장수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가난을 이기지 못해 군역을 대신 복무하는 민중이었다.

 

영웅주의를 소재로 한 서사에서 민중주의 서사로 넘어가는 점에서 영화의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무리한 소재나 상황연출이 한계로 나타났다. 그러나 2작품을 보면 확실히 생각해야 한다. 광해군이 분조를 지휘하던 왕세자로 활약한 시기는 임진왜란이고, 인조가 청국의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올릴 때는 병자호란이다.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적인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생각하나, 당시 조정에서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의병들, 그리고 분조를 맡으면 목숨을 내건 광해군보다 명나라 군대를 더 우대했다.

 

사당은 죽은 이를 기리는 주술적 공간이다. 명나라가 왜군을 치는데 도와준 이유로 그들의 장수를 기리는 생사당을 만든 지경이니 얼마나 한심한가? 선조는 알고 있었다. 도성을 떠난 자신보다 왜란의 위기를 모면하고 수습한 이순신과 광해군의 활약을 말이다. 선조는 백성에게 원망은 대상이나, 이순신과 광해군은 백성에게 큰 덕망을 보였다. 이게 화근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보는 게 참 위험한 이유는 바로 여기부터이다.

 

정묘호란 이후 병자호란이 발생된 시기는 인조가 군림할 때이고, 인조가 군림 전에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켰다. 광해군의 정책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관계성을 긴밀하게 유지하여 전쟁에 최대한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인조반정 명분이 폐모살제, 국정운영의 부패가 있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명나라의 사대정신이다. 광해군의 중요 집권세력은 북인이고, 그 중에서 대북이었다. 북인이 가장 광해군을 따르는 이유는 임진왜란의 활약이다. 북인의 이이첨은 임진왜란 때 임금의 어진(초상)을 수습한 덕분에 출세했으나, 북인의 학문적 정통성을 받은 정인홍은 경상도에서 곽재우와 함께 활약한 의병장이다.

 

남명 조식 아래 실천적 도학을 추구한 그들은 다른 사림세력과 달리 직접적으로 왜란을 억누르는데 활약했다. 북인과 남인이 분당 전, 동인이던 그들에게 조식의 영향은 막대했으며, 조식의 수제자 정인홍이 광해군 집권 시기 중요한 인물이었다. 선조가 북인 이산해를 이용하여 남인의 영수 류성룡을 탄핵시키고(이날 이순신 장군이 서거하심), 다시 북인과 서인이 조정을 움직이고 있으나, 북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광해군이 북인을 손잡은 것은 결국 명나라를 절대적 지존으로 보는 퇴행적 성리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주었다.

 

서인이 반정을 일으킨 이유는 광해군의 정책이 아니다. 그가 명나라를 섬기지 않은 이유고, 명나라를 섬기지 않은 이유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거부하는 것이다. 명나라가 왜란을 종식하는데 도움을 준 것도 맞으나, 한편으로 방해도 많이 했다. 이순신과 권율의 군사작전수행 과정에서 트러블이나, 민가의 약탈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서인이 재조지은을 노려야 하는 이유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명확성이다. 만일 임진왜란을 조선민중의 힘으로 했다면, 자신들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관계에서 트러블이 많았고, 명나라가 청나라를 공격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부분 역시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청나라는 조선이 하던 외교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나라는 이미 첩자를 풀어 조선의 현실부터 시작하여 내부 정치적 상황까지 모조리 알았다. 청나라가 조선을 집어삼키는 일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문제는 우리는 그 침략에 어떻게 대응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쟁의 깊은 상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남한산성>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인조를 중심으로 의견이 2가지로 나눈 최명길과 김상현이 같은 서인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인조방정을 통해 조정에 큰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고, 모두 서인이다. 서인이 분당한 것은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구분된다. 노론과 소론은 같은 서인의 뿌리지만, 숙종부터 시작하여 영조까지 피로 피를 씻는 붕당정치의 모순을 보여준다. 노론이 보수고, 소론이 진보라면 그럴 수 있다. 사도세자를 옹호한 소론이 시파계열이고, 사도세자를 부정한 노론이 벽파계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조는 오로지 서인만 존재했고, 고관대신이 인조를 두고 서인이 만든 임금이라 당당히 말한다. 보수라고 해도 국제정세가 어두운 법이 없고, 진보라고 하여 국제정세에 모두 밝은 것은 아니다. 정치적 권력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이 차이가 있고, 가치관이 다르다. 단지 <남한산성>2가지의 조류는 국제정세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현실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되어 파면될 때, 진보정당만 탄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보수에서도 탄핵을 추구했다. <남한산성>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다. 만일 우리나라가 전쟁 나서 불리한 상황이 온다면 끝까지 항쟁할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좋은 조건으로 협의할 것인지에 대한 차이점이다.

 

(2) <남한산성>, 국제 정세를 모르는 이들의 권력지향

<남한산성>은 소설이고, 다소의 실재 사료기록과 차이점이 있지만, 병자호란을 조금 더 자세히 알려면 한명기 교수의 서적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병자호란> 등을 말이다. 청나라가 조선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던 계기는 명나라의 장수들 덕분이다. 명나라는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빚었고, 무능한 임금에 부패한 신료들이 뇌물로서 정치를 움직이고 있었다. 명나라의 영웅에게 모반죄로 무고하여 죽게 만들고, 전방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장수를 없애려 했다. 자국의 주군에게 충성할 이유를 잃은 명나라 명장들은 청나라에 투항하여 이신(貳臣)으로 활동하여 명나라의 군사를 격파하는데 도움을 주고, 게다가 조선의 군사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청나라는 주로 기마부대를 운용하기에 수군은 매우 약했다. 조선은 수군이 강한 편이기에 인조와 조정대신을 그것만 믿다가 봉변을 당한다. 명나라 장수 중에 수군을 다룰 줄 아는 자가 있기에 강화도를 점령하고, 많은 문제를 이겨낼 수 있었다. 청나라는 모든 정보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능력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인재까지 포섭했다. 많은 조선인들이 청나라 군세에 붙은 점도 그렇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의병장이 사대부들이 차지했으나, 병자호란 시기 의병활동이 너무 잠잠했다. 명나라에 대한 무조건 충성심이 권력을 정당화의 수단이 되었지만, 권력의 몰락도 되었다.

 

하지만 웃긴 점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을 보이게 만든 것은 서인인데, 나중에 그 책임을 인조에게 미루고, 인조가 죽고 효종이 등극하자 효종조차 무시했다. 인조의 수치와 봉림대군 효종이 청국에 끌려간 이유가 서인의 무능함인데, 스스로의 문제를 왕에게 전가한 것이다. 효종이 서인도 한당보단 산당에 눈을 돌린 이유는 명나라 붕괴이후 조선이란 국가가 중화주의를 계승한 유일한 조정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나라를 욕하던 서인이나, 추후 서인들이 가장 청나라의 권력에 충성한다. 하지만 청나라로 유입되는 신문물을 제대로 찾지 않았다.

 

<남한산성>을 보면 최명길은 외로운 전쟁을 한다. 그의 목을 치라는 유생의 상소가 매일 어전에 올라오고, 내부 고관대신도 최명길을 파직하라고 한다. 그러나 인조는 최명길을 버리지 못한다. 최명길만 오직 청나라와 소통할 수 있는 외교라인이기 때문이다. 최명길이 청나라 장수를 만나 외교문제를 논하고 오자, 오랑캐와 내통했다고 난리치는 인간을 보면서 정치적인 본질보다 권력의 정당성을 찾는 행위만 보여준다. 이런 한심한 행동에 누가 죽어 나가는가?

 

(3) <남한산성>, 백성이 녹아 없어지네.

조선은 왕조시대지만, 사대부들의 도움 없이 절대로 운영될 수 없다. 왕 혼자서 정책을 내리지 못하며, 정책을 수행할 인재도 필요하다. 신권이 지나치게 강하면 왕은 정사를 주도하는 자가 아니라 이끌려가는 보조자에게 불과하다. 인조가 무능하지만, 서인의 무능함은 백성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김상현은 우연히 알게 된 남한산성의 대장장이의 청을 국조에 언급한다. 급하게 조달된 군사들이 추위에 떨고 있으니, 그들을 위한 볏짚을 바닥에 깔고 몸에 걸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의 먹이가 부족하자, 농사보병의 볏짚을 빼앗아 말 먹이로 주고, 그것도 모자라 초가집을 헐어 그 짚을 말 먹이로 준다. 땔감을 위해 짚이 없는 집의 나무를 헐어 연료로 사용한다. 무능함 정치가가 군림하면 그 문제는 그대로 피지배계층인 백성에게 돌아간다. 영화도입부 김상현은 인조가 계신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이때 산성 아래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의 도움을 받는다. 뱃사공은 임금을 피신시킬 때 자신이 길잡이를 했는데, 김상현을 도와주면서 당시 아쉬움을 토로했다. 원래 이 일을 먹고 사는 자이니 임금을 피신할 때 좁쌀 정도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청나라 군세가 오면 길을 건너게 해주어 식량 정도 얻고 싶다고 한다.

 

김상현은 노인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군사적 전략을 고려하여 노인을 죽인다. 임금이 도망치고, 백성이 굶주리는 이유는 조정의 문제지만, 그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단 단지 눈 앞의 화근을 없애고 싶은 심정에 칼을 휘두른다. 그 이후 산성으로 뱃사공의 손녀 나루가 찾아오고, 그 아이를 인조에게 알현 후 김상현이 거두어 키우게 한다. 김상현은 어린 소녀를 보고 갈등을 느낀다. 나루를 보호하고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해줘야 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나, 오히려 그 나루의 명줄인 뱃사공을 죽였다. 김상현은 처음에 최명길과 반대의 각을 세우나, 이후 다른 관점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뱃사공 손녀 나루가 보여주는 희망의 봄을 들었기 때문이다. 뱃사공은 나루를 위해 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음식을 해준다. 그 생선 맛이 좋아 눈이 녹고 개나리가 피는 봄날이 오면 나루는 김상현에게 그 물고기를 잡아 대접해주고 싶다고 한다. 김상현은 실제 정사에서 청국으로 끌려간 후 병으로 죽지만, 영화에서 자살을 한다. 그의 자살은 무엇인가? 최명길이나 김상현은 인조반정이 신세계를 열어 나가지만, 결국 자신들이 늙은 시대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리뷰 서두에 위치한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남한산성>을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1세기에 와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전쟁을 수행하거나 계획할 경우 그 정권을 바로 망한다. 국가가 당장 망하는 게 되었는데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20세 초 조선이 멸망할 때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이 진보와 보수가 나누어져 있었던가? 자유주의 내지 사회주의자들은 진보라면, 성리학자들은 보수주의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4) <남한산성>, 임금은 어찌 되던지 백성은 살아간다.

영화 <남한산성>은 비참한 조선의 운명을 보여준다. 인조가 청나라 칸에게 패배를 시인한 후 청국에 끌려간 조선인은 50만 명이다. 이중 일부는 다시 돌아오지만, 여성들은 청나라 놈에게 몸을 팔았다는 누명을 받아 환향녀가 되어 비극의 삶을 마감하고, 청국의 문화를 영향을 받아 간첩으로 취급당하는 남자도 많았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가서 성실히 몸과 마음을 다스려 백성을 두둔하고 조선에 돌아와 새로운 문물을 전파하려 했지만 인조의 질투심에 온 가족이 몰살한다. 인조는 수치를 겪고, 조선은 전쟁의 피해로 큰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을 보면 뱃사공 손녀 나루는 대장장이 집에서 같이 살면서 봄을 맞이한다. 대장장이는 정묘호란 시기 가족을 모두 잃었고, 나루는 할아버지 손에서 외롭게 컸다. 김상현은 나루를 대장장이 날쇠에게 부탁한다. 가족을 모두 잃은 날쇠와 나루, 그들은 부녀가 아니나 부녀가 되어 남한산성에서 다시 봄을 맞이한다. 나루는 동네친구와 화창한 봄을 맞이하며 놀러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남한산성 내 어전에서 인조와 고관대신의 고민과 방황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봄을 맞이한다. 최명길이 말한 그 수치는 결국 백성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고, 패배자의 굴욕을 받아들이는 것은 만 백성을 지켜야 하는 임금의 책임인 것이다. 처음에 작은 것을 내주기 싫다가 점차 큰 위협으로 오자, 비로소 조선은 청나라에 굴복한다. 남한산성 내 피신한 자들의 기록을 보면 사실 비참하다. 먹을 것도 없고 추위는 여전히 온 몸을 얼게 만든다. 고립되어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강화도에서 들려온 포로가 된 왕세자 가족의 기별은 인조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지경이 된다.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은 백성 혹은 국민이나, 어떻게 국가적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의 일이다. 정치가가 어떤 상황에 문제가 발생하여 자신의 입장이 난처할 때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자신에게 더 큰 장애물이 다가오고, 국민들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남한산성>에서 서인들은 무능했지만, 그들의 눈에서 광해군 역시 무능한 임금이고, 광해군 시절 사대부가 아닌 천민들도 벼슬자리를 준 것에 대해 매우 거슬리게 생각한다. 어느 누구는 돈을 주고 관리직을 받았다고 하나, 그런 점은 명종시대가 더 심각했다.

 

백성들 입장에서 왕이 누가 되는지가 관건이 아니라 전쟁이 나지 않고 세금을 마구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좋은 것이다. 때로는 자신들의 말이 위로 가서 언로가 막히지 않은 것이 중요했다. <남한산성>에서 보면 백성의 언로가 철저히 막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솔직히 인조와 조정대신, 유생이 없어도 백성들은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의 사소한 자존심이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장 한심한 장면은 인조반정을 주도한 김류가 청나라 군대를 습격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불찰을 부하에게 떠맡기는 모습이다. 실제 정사에서 김류는 청나라 군대가 매복 유인을 위한 보급물자를 군사를 풀어 가져오게 하다가 모두 몰살시켰다고 한다.

 

병자호란은 결국 명나라의 재조지은에 대한 충성심에서 자초한 사건이고, 청국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 국제정세를 판단한 광해군을 폐위한 것은 김류이다. 김류를 비롯한 많은 조정대신은 백성의 삶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전쟁에 내몰린 것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병사이지 자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조 이후 효종과 헌종, 숙종과 영조로 넘어가면서 정치권력이 누가 되던 백성은 상관이 없었다. 단지 그 권력자들이 백성의 삶을 좀 먹는 자가 아니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권력자가 없으며, 그런 짓을 저지하려던 정치가들은 모조리 숙청된다.

 

영화 <남한산성>을 두고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사실 역사를 두고 비슷한 사례로 들어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어느 하나에 매몰된 이유는 없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역사는 2번 반복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소극으로말이다. <남한산성> 영화는 그 영화 자체로 본다면 비극이나, 이미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입장에서 소극에 불과하다. 정치적 상황과 배경, 인물만 다를 뿐 반복되는 역사는 늘 우리 앞에 등장했다.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논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두고 <남한산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한 착오일 것이다. 최명길과 김상현의 대사에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김상현은 과거에 불과한 인물이고, 최명길 역시 그런 과거와 함께 퇴장해야 할 존재이다. 최명길이 진보이고, 김상현이 보수라고 프레임을 나누고, 보수와 진보의 눈으로 모든 것을 정하는 순간, 그 담론조차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넘어 진보적으로 갈 수 있지만, 그 진보적인 성과란 나루와 날쇠의 삶이다. 삶이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를 말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 과연 그것이 올바른 답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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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0-23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회되면 정도전,서경덕,조식,이황,이이,정약용 같은 조선 유학자들에 대해서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듯 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7-10-23 09:22   좋아요 0 | URL
아 너무 할 게 많습니다!!
 

음악에서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담아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음악으로 가요가 있지만, 대중가요의 한계는 가사소재 대부분이 연인간의 사랑, 이별 등과 같은 연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대중가요라고 해도 모든 곡이 연애문제가 아니다. 블랙홀 4집에 수록된 마지막 일기는 광주에 사는 어느 고등학생의 일기를 본 후 블랙홀 리더 주상균 씨가 만든 곡이다. 가사를 보면 못 다한 나의 숨결은 오월의 늘 위에 붉게 떠 있는 부신 큰 빛이 되어 리운 모든 사랑을 바라 볼 거야.’라고 나온다.

 

가사의 의미를 본다면 그 학생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한 운명의 강을 넘은 것이다. 물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그 학생뿐만 아니다. 수많은 광주의 학생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 518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정도 될 정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518의 진상은 7~8년 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 망월동에 위치한 518묘역은 4~5년 전에 가본 것 같았다. 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으나, 518의 참혹한 기록을 간직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잔인하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노인, 여성, 어린이 할 것 없이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사격까지 가했다. 인터넷 사진을 보면 어떤 여성이 하체가 다 벗겨진 채 목 위로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성폭행 후 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518기념관 옆에 있는 희생자 영정이 모셔진 곳에 가면 더 놀라운 모습을 본다. 영정사진 중에 아직 돌 전후의 어린 아이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다. 실제 인터넷에 찾아보면 4~5세 정도의 어린아이가 살해당해 거리에 그대로 방치된 사진도 있다.

 

518을 두고 많은 의견을 분분하다. 어느 누구는 광주의 민주화 운동이라 하고, 누구는 북한군 개입설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 해제에서 북한의 개입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미국은 이런 상황을 두고 지켜보려 했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한국이 자신의 우방국으로 배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중요했다. 만일 북한이 개입했더라도 한국의 20사단이 아니더라도 미군의 첩보로 통해 사전조치를 했을 것이다.

 

계엄군에 대항한 시민군이 가진 무기는 겨우 파출소에서 탈취한 구형소총이고, 계엄군은 신식 소총인 M-16에 기갑탱크부대를 끌고 올 정도이니, 전략상 처음부터 이기지도 못한다. 설사 그런 작선을 실행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이 상대 진영에게 대놓고 보여준다면, 그런 작전을 세운 장교부터 총살될 확률이 높다. 최근 미군의 기록만이 아니라 당시 국방부 자료를 찾고, 사격탄알 흔적을 찾아 분석하니 군부가 무리하게 진압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광주의 민주주의 운동이라 하나, 사실 서울도 민주주의 운동이 계속 진행되었고, 서울에서 5월의 봄이 스쳐간 것 같으나, 광주에서 그런 비극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광주의 5월은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말하기 전에 제노사이드라고 먼저 칭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자국민의 저항에 총으로 사격하는 행위가 지역적 갈등을 이용한 점에서 본다면, 집단살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계엄군 부대 병사들은 주로 경상도 권역, 장기복무 부사관 미 장교들은 베트남전쟁 경험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자국민을 대하는데도 몽둥이로 무참하게 때리고, 칼로 배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시신의 사진을 보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격당한 피해자가 있고, 머리를 전기톱으로 자른 것도 있다. 차라리 총으로 사격하여 즉사했다면, 장례식을 치룰 때 시신을 온전하게 모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시신도 있었다. 이 모든 비극이 일어날 때 광주 밖에 있는 한국사람들은 모두 모르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오히려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북한군의 개입 내지, 불량 조직폭력배가 개입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

 

광주에 전화선로가 끊기고, 모든 교통이 통제되어 있으니 아무도 그들의 비참함을 알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피터) 기자이다. 독일인이던 그가 일본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할 때 한국의 극한 상황을 듣고 김포공항으로 입국한다. 기자이던 그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들어왔지만, 문제는 광주에 어떻게 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이때 개인택시 운전사인 만섭이 사글세를 벌기 위해 피터를 데리고 광주로 간다. 영어도 되지 않고, 오로지 먹기 살기 위해 택시를 모는 만섭에게 서울 오월의 봄과 민주주의 운동보다 석가탄신일의 손님이 더 관심이었다.

 

보통사람 모두나 만섭 같이 가난한 서민이고, 만섭은 아내를 사별한 후 낡은 택시를 몰며 돈을 벌어 외동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었다. 택시 주행거리가 60, 지금 나온 차들도 30가까이 되면 무리가 오는데, 옛날 차가 60이면 움직이는 것도 용하다. 만섭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 없이 딸 은정이가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고 행복이다. 사우디에서 5년동안 고생하여 귀국하여 아내를 잃고 좌절한 그에게 단 하나의 희망은 은정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만섭의 중심으로 클로즈업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만섭의 얼굴에서 표정과 눈빛, 눈물과 입술의 주름까지 모든 게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다.

 

평범한 가장, 그리고 세상의 문제보다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던 만섭의 모습은 송강호 씨가 전에 촬영한 <변호인>과 비슷하다.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세무전문 변호사로 돈을 벌고 좋은 아파트에 가서 가족과 편안한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다. 그런 그에게 과거 우연히 만난 국밥집 주인과 그 아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변했다. 만남은 우연이나, 만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연이 되어 운명으로 되었다.

 

<택시운전사> 만섭이 피터를 만나 광주까지 들어갈 때까지 그저 골치 아픈 외국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주에 가서 광주시민들을 보고, 광주에서 택시를 운행하던 운전사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송강호 씨의 연기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 민주주의 운동을 하던 학생을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이 이제는 그들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리게 된다. 송강호 씨의 연기는 마치 스펀지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 후, 어느 일정 선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폭발한다.

 

서울에서 택시를 몰던 서울시민 만섭이 이제는 불의를 세계에 알리는 광주시민으로 변한다. 폭도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정 많고 다정한 이웃이었다. 기름을 무료로 넣어주고, 주먹밥도 그냥 주는 인심, 만섭이 차를 고치기 위해 순천에 가면서 그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주먹밥이었다. 아무 것도 넣은 것도 없이 쌀밥을 모아 만든 주먹밥은 참 맛이었다. 옥상에서 맛있게 주먹밥이 순천 시내 식당에서 국수를 시키면서 서비스로 나온 주먹밥을 먹으면서 만섭이 고뇌한다.

 

게다가 옆 자라의 손님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신문에서 폭도라고 하니, 만섭의 마음은 서울과 광주 사이에서 갈등한다. 기자 피터는 택시운전사 만섭을 두고 진정한 영웅이라 말한다. 하지만 영웅이 되어주던 만섭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이었다. 영웅은 만섭만이 아니다. 광주시내에서 부상당한 시민을 데리고 병원에 옮겨주던 광주의 택시기사와 시민, 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주던 의사와 간호사, 그들을 위해 밥을 내어주던 동네 아낙네까지 모두가 영웅이었다.

 

그러나 영웅이란 언제나 영광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나라에서 법으로 국가유공자로 기리지만, 가족을 잃고 몸을 다친 그들에게 국가유공자란 법적인 대우보다, 당시 급박한 상황과 비참한 죽음, 억울한 누명을 알려 다시 재조명을 받는 것이 목표이다. 최근까지 518비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37년 동안 상처를 받은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진실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다. 나도 이번에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지 않았다면 당시 택시운전사들의 활약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피터가 어떻게 외국에 무사히 필름을 전달할 수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로서 재미도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로 통해 충분히 사회적 함의를 이끌어내 수 있다. 영화라는 것은 대중문화이고, 대중문화는 기득권, 정치세력 혹은 거기에 대항하는 세력에 의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부여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의 대중문화에서 보는 관점은 영화라도 단순히 영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영화 <변호인> 역시 부림사건을 소재로 했기에 그 잔혹한 역사를 보고 우리는 영화관을 나오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택시운전사>에서 518의 참혹함을 담아내던 피터의 이야기이기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잔인할 수 있다(어느 어린 아이의 어머니는 계엄군이 광주시민에게 사격을 가할 때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운전사>518운동에서 피터의 여정을 그리지만, 피터는 518의 광주사람의 있는 그 모습을 담아내었다. 피터를 안내해주던 재식은 대학생이다. 그가 대학교에 간 이유는 대학교를 가야할 곳보다 대학가요제를 가고 싶어서 갔다고 한다. 광주에서 총을 맞고 쓰려진 그 많은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피터가 광주에 간 이유는 자신이 기자이기에 간 것이고, 만섭이 나중에 피터를 끝까지 책임지고 공항에 데리고 간 이유는 그가 택시운전사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정한 시각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택시운전사는 손님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서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무시할 수 있다. 피터나 만섭이나 모두 돈을 벌기 위해 기자가 되고 택시를 몰았지만, 거기서 모든 것이 결정된 게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출발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시민과 적대하던 계엄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위는 차마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한 집단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나 계엄군 속에서도 양심이 있는 자가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피터와 광주를 떠나던 만섭은 계엄군 감시를 피해 산길로 돌아가나, 그 곳에서 검문을 당할 때 어느 중사가 그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보내주려 했다. 이때 검문소로 전화 온 명령이 모든 외국인을 포박하라고 했기에 만섭은 택시를 급하게 몰며 간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들지만, 영화는 광주시민을 학살하던 계엄군 그 자체를 악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연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제목처럼 <택시운전사>이고, 택시운전사들이 활약하던 장면은 보안사령부 비밀요원들이 만섭의 택시를 추격하는 장면이다. 위기의 순간,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만섭을 무사히 보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광주택시가 앞에 있는 만섭의 택시 뒤에 따라오는 보안사 지프차량의 추격으로부터 막아준다. 예상외의 차량 추격전에서 광주택시의 희생으로 무사히 필름은 지킬 수 있었다. 광주택시를 몰던 그들은 영웅심리로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영웅이 되고자 했다면, 피터의 도주를 도운 재식의 죽음이나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옮기려다 죽고 다친 광주시민들의 의지를 비웃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진보성향과 보수성향의 영화에서 서로 스토리나 흐름이 비슷하거나 목적하는 바가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영화의 재미를 기대하더라도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라는 이름 아래 서사구조를 가지고, 그 서사구조에서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긴 이데올로기 매체이다. 이데올로기란 틀에서 영화서사 내 의미하는 바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성웅이고, 한국과 조선의 역사에서 무의 완성인 분이다.

 

그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보수는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영웅적인 요소를 찾는다면, 진보는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같이 활약하던 이름 없던 수군과 민초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영화 <대립군>에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인물 중에 하나인 광해군의 청년기를 보여준다. 정실부인 출생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광해군이 분조의 수장이 되어 고난을 겪을 때 광해군에게 자신의 소임을 일깨워준 것은 조선의 백성이었다. 돈이 없어서 남의 군역을 대신하던 대립군과 그들의 가족을 보면서 삶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영화 소재나 장르는 언제나 형식이나 틀에 얽매일 수 없다. <스펙타클의 사회>를 제작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해 절규>란 영화를 1번 아닌 2~3번 이상 볼 수 있다면 말을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라는 그 자체를 해체 내지 부정하지 않은 이상 어느 영화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면 아무리 빤히 보이는 내용이라도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택시운전사>를 보면 518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상당히 낯설지 모르나, 518에 있었던 사람을 보면 전혀 낯설지 않다. 다들 꿈 많고 정 많은 소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지금 그런 사람들을 두고 다소 바보로 취급받아 무시당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정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실사에 가려진 허구의 세계이다. 허구의 세계에 현실과 더불어 현실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넣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택시운전사> 현실과 허구의 재구성에서 현실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를 약간의 허구를 가미하여 재구성했기에 대중영화의 영역에서 일반영화와 르포르타주영화 영역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일반 대중영화지만, 영화전개는 르포르타주의 재구성으로 조합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장면은 피터가 죽기 전에 인터뷰한 모습이 나온다. 피터는 자신을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피터는 결국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를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피터는 19805, 그 비참하고 아름다운 5월의 택시운전사를 만나 우리에게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준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신파적인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그 자체를 보여주려 한다. 영화서사에서 목적지는 광주518이지만, 영화에서 카메라의 관점이 되어주는 인물은 피터와 만섭이다. 처음에 광주시내로 가는 것을 반대하던 만섭이 뒤로 가면 병원에서 주저앉은 피터를 일으켜준다. 기록하고 기억해주게 하라고 말이다. 이 글의 윗부분에 블랙홀의 노래 <마지막 일기>가 소개한 것처럼, 가사의 주인공인 광주의 고등학생 518 당시 죽는 것이 무섭고 어머니가 그립지만, 그래도 그곳을 찾아간다. 만섭 역시 피터를 데리고 가려면 목숨을 잃을 수 있고, 만섭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딸은 고아가 된다. 그래도 손님은 끝까지 목적지까지 모시고 가는 게 택시운전사의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성적 판단을 내린다. 만섭이 내린 판단은 이성의 논리보단 인간의 도리에서 나온 행동이다. 인간의 도리는 이성의 판단보단 감정의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보다 감성적인 존재인 게 더 나은 것이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의 사상은 그저 말뿐인 단어에 불과하다. 옳은 일이란 머리로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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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06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만화애니비평님의 닉네임은 아무래도 너무 짧습니다. 만화애니도서영화비평으로..... 알라딘은 20바이트 닉네임 용량을 보장하라.

만화애니비평 2017-08-06 17:42   좋아요 0 | URL
보장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20177월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에 나는 영화 <군함도>를 보았다. 군함도란 이름을 이전에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3~4년 전 조선의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일제침략 시절 강제징용 역사에서 군함도에서 일어난 일들이 엄청난 만행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 것일까? 류승완 감독이 영화 <군함도>를 제작한다는 말에 군함도에 대한 역사학자의 도서 내지 소설가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아마 이전에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군함도가 소개된 것이 있을 것이다. 군함도 이야기가 20177월 한국을 강타하기 전 시골에 있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99세이다. 조만간 100세를 향해 가는데, 외할아버지가 태어난 시점은 일제강점기가 한참이던 시절이다. 외할아버지가 예전에 징용을 끌려간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만나보면서 일본에 징용을 갔는지 물어보니 끌려갔다고 했으며, 징용피해자에겐 1년마다 소정의 보상금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외할아버지가 징용을 가면서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계신 노인복지센터에서 나온 후 이제는 아버지가 태어난 시골집으로 갔다.

 

본래 친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나 친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으나, 작은 아버지가 시골에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징용과 관련하여 이래저래 이야기하니, 우리 할아버지는 4형제 중 3번째인데, 4형제 중 제일 큰형과 막내가 징용에 끌려갔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잠시 봤을 정도로 어느 정도 천수를 누렸지만, 제일 큰형이던 큰할아버지는 징용을 다녀온 후 병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집안에 일제에 의한 징용피해자가 3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이란 나라에 그렇게 적대심은 없고, 일본인에게 그래 나쁜 감정은 없지만, 일본정부와 기득권에 대한 분노는 강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일제 앞잡이들이 다시 광복 후 권력을 잡았는데, 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군사정권 시대의 기득권에게 상당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독재정권 시절, 독재정부에 이익을 보던 자들 대부분이 친일파들이었고, 친일파들은 남성들은 강제징용으로 여성들은 위안부로 강제로 보내는데 일조를 했다.

 

가끔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 과거 징용 내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고, 피해 받은 자들이 겪었던 슬픔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앙금이기 때문이다. 영화 <군함도>를 보기 전에 집안 상황을 다시 확인한 나로서는 군함도가 가진 의미가 단순히 지나간 일보단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재형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영화 <군함도>를 보면서 고증의 절차를 다시 생각했는데, 광부들이 지하 1,100m 정도 내려가면 더위도 문제지만, 산소도 부족하고, 게다가 석탄가루가 내려오니 폐병에 잘 걸렸고, 음식이나 휴식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니 영양실조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사람들이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으면 그들에겐 별 의미는 없다. 다시 새로운 조선인을 데리고 와서 죽음의 섬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 <군함도>를 그런 시점에서 보고 나니 조선인들의 비참한 모습이 다시 스크린 위로 올라왔다. 영화 속에서도 비참함이 그대로 전해지지만, 실제 상황은 더욱 참혹하고 비참했다. 누구는 이 영화를 두고 너무 국뽕에 취해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드나, 영화로서 재미보단 이런 일이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슬픈 영화라는 점은 분명했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짓눌린 억압에 대해 다시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군함도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되자, 광복군 소속 장교가 군함도에 잠입하여 친일파를 제거하고, 모두 탈출하려 했다.

 

일본 입장에서 군함도에서 고생하던 조선인이 탈출하면 모든 만행이 드러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어 끝내 전쟁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자료를 모두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증인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일본은 징용을 끌려간 조선인을 살해하거나,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침몰시키기도 했다. 역사에 가려진 조선인들의 원한은 21세기에 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어질 것처럼 보였다. 20세기 대한민국은 징용피해자들의 원한을 대중에게 노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만일 일본이 그랬고, 그런 자들이 고생했다면, 중간에서 누가 그들을 죽음의 절망으로 떠밀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그 사실을 드러내기 싫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영화 <군함도>가 많은 논란에서 시작된 원인도 그렇고, 또한 영화 내용조차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상당히 어두운데도 나름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배우 황정민 씨의 연기력이 발휘하는 것은 아무리 절망의 나락에서도 어떻게든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자신의 딸과 같이 탈출하기 바라는 아버지로 나오나, 뒤에는 자신이 죽더라도 딸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을 감는 아버지가 된다.

 

조선인들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기에 처음에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 아래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증거와 증인을 없애려는 그 마지막에도 일본의 인텔리적 요소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옳다. 단지 그 선택의 조건과 상황이 어느 정도 부합되어야 성립된다. 영화 <군함도>에서 그런 상황이 주어진 게 특징이고, 그 상황을 맞추어 살아남았다는 게 특징이다.

 

단지 영화연출 요소에서 지나친 슈퍼히어로 요소가 가미되었기에 아쉬웠다. 광복군 장교라면 분명 뛰어난 두뇌와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총을 관통하고 며칠도 되지 않은 상태에 과감한 전투장면, 부소장이 불에 타고 있을 때 한 손에 일본도를 가지고 목을 잘라 내버리는 것은 너무 지나친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점이 국뽕적인 요소로 보일 수 있으며, 연애적인 요소에선 억지로 맞추어 넣는 신파적 요소 역시 없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영화 <군함도>1번을 봐야 하는 이유는 그때 살아가던 조선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또한 거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군상과 다양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마지막에서 일본이 군함도를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했고, 거기에 있었던 잔인한 만행을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근대라는 역사적 유산에서 우리 인류는 발전이란 이름을 전쟁과 착취 그리고 파괴를 일삼아왔다. 근대와 현대는 연결되나, 근대에 새겨진 상처의 얼룩을 지우려 하면, 그 겉은 보이지 않아도, 속은 곪아 썩어가게 된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상해임시정부로 통해 광복 후에 정식으로 가진 이름이지만, 광복 전에 우리 한국인은 여전히 조선인이다. 군함도에 끌려가거나 그밖에 많은 죽음의 땅으로 끌려간 사람 모두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이라고 말해도 조선인이라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인이란 이름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의 상처 입은 과거를 망각하고,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영화 <군함도> 작품보다 그 영화를 통한 수입배급 체계나 혹은 작품 내 지나친 설정은 문제가 있지만, 영화 소재로 본다면 반드시 보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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