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담아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음악으로 가요가 있지만, 대중가요의 한계는 가사소재 대부분이 연인간의 사랑, 이별 등과 같은 연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대중가요라고 해도 모든 곡이 연애문제가 아니다. 블랙홀 4집에 수록된 “마지막 일기”는 광주에 사는 어느 고등학생의 일기를 본 후 블랙홀 리더 주상균 씨가 만든 곡이다. 가사를 보면 ‘못 다한 나의 숨결은 오월의 늘 위에 붉게 떠 있는 부신 큰 빛이 되어 리운 모든 사랑을 바라 볼 거야.’라고 나온다.
가사의 의미를 본다면 그 학생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한 운명의 강을 넘은 것이다. 물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그 학생뿐만 아니다. 수많은 광주의 학생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 518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정도 될 정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518의 진상은 7~8년 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 망월동에 위치한 518묘역은 4~5년 전에 가본 것 같았다. 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으나, 518의 참혹한 기록을 간직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잔인하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노인, 여성, 어린이 할 것 없이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사격까지 가했다. 인터넷 사진을 보면 어떤 여성이 하체가 다 벗겨진 채 목 위로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성폭행 후 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518기념관 옆에 있는 희생자 영정이 모셔진 곳에 가면 더 놀라운 모습을 본다. 영정사진 중에 아직 돌 전후의 어린 아이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다. 실제 인터넷에 찾아보면 4~5세 정도의 어린아이가 살해당해 거리에 그대로 방치된 사진도 있다.
518을 두고 많은 의견을 분분하다. 어느 누구는 광주의 민주화 운동이라 하고, 누구는 북한군 개입설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 해제에서 북한의 개입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미국은 이런 상황을 두고 지켜보려 했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한국이 자신의 우방국으로 배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중요했다. 만일 북한이 개입했더라도 한국의 20사단이 아니더라도 미군의 첩보로 통해 사전조치를 했을 것이다.
계엄군에 대항한 시민군이 가진 무기는 겨우 파출소에서 탈취한 구형소총이고, 계엄군은 신식 소총인 M-16에 기갑탱크부대를 끌고 올 정도이니, 전략상 처음부터 이기지도 못한다. 설사 그런 작선을 실행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이 상대 진영에게 대놓고 보여준다면, 그런 작전을 세운 장교부터 총살될 확률이 높다. 최근 미군의 기록만이 아니라 당시 국방부 자료를 찾고, 사격탄알 흔적을 찾아 분석하니 군부가 무리하게 진압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광주의 민주주의 운동이라 하나, 사실 서울도 민주주의 운동이 계속 진행되었고, 서울에서 5월의 봄이 스쳐간 것 같으나, 광주에서 그런 비극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광주의 5월은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말하기 전에 제노사이드라고 먼저 칭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자국민의 저항에 총으로 사격하는 행위가 지역적 갈등을 이용한 점에서 본다면, 집단살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계엄군 부대 병사들은 주로 경상도 권역, 장기복무 부사관 미 장교들은 베트남전쟁 경험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자국민을 대하는데도 몽둥이로 무참하게 때리고, 칼로 배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시신의 사진을 보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격당한 피해자가 있고, 머리를 전기톱으로 자른 것도 있다. 차라리 총으로 사격하여 즉사했다면, 장례식을 치룰 때 시신을 온전하게 모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시신도 있었다. 이 모든 비극이 일어날 때 광주 밖에 있는 한국사람들은 모두 모르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오히려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북한군의 개입 내지, 불량 조직폭력배가 개입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
광주에 전화선로가 끊기고, 모든 교통이 통제되어 있으니 아무도 그들의 비참함을 알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피터) 기자이다. 독일인이던 그가 일본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할 때 한국의 극한 상황을 듣고 김포공항으로 입국한다. 기자이던 그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들어왔지만, 문제는 광주에 어떻게 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이때 개인택시 운전사인 만섭이 사글세를 벌기 위해 피터를 데리고 광주로 간다. 영어도 되지 않고, 오로지 먹기 살기 위해 택시를 모는 만섭에게 서울 오월의 봄과 민주주의 운동보다 석가탄신일의 손님이 더 관심이었다.
보통사람 모두나 만섭 같이 가난한 서민이고, 만섭은 아내를 사별한 후 낡은 택시를 몰며 돈을 벌어 외동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었다. 택시 주행거리가 60만㎞, 지금 나온 차들도 30만㎞ 가까이 되면 무리가 오는데, 옛날 차가 60만㎞이면 움직이는 것도 용하다. 만섭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 없이 딸 은정이가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고 행복이다. 사우디에서 5년동안 고생하여 귀국하여 아내를 잃고 좌절한 그에게 단 하나의 희망은 은정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만섭의 중심으로 클로즈업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만섭의 얼굴에서 표정과 눈빛, 눈물과 입술의 주름까지 모든 게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다.
평범한 가장, 그리고 세상의 문제보다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던 만섭의 모습은 송강호 씨가 전에 촬영한 <변호인>과 비슷하다.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세무전문 변호사로 돈을 벌고 좋은 아파트에 가서 가족과 편안한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다. 그런 그에게 과거 우연히 만난 국밥집 주인과 그 아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변했다. 만남은 우연이나, 만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연이 되어 운명으로 되었다.
<택시운전사> 만섭이 피터를 만나 광주까지 들어갈 때까지 그저 골치 아픈 외국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주에 가서 광주시민들을 보고, 광주에서 택시를 운행하던 운전사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송강호 씨의 연기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 민주주의 운동을 하던 학생을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이 이제는 그들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리게 된다. 송강호 씨의 연기는 마치 스펀지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 후, 어느 일정 선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폭발한다.
서울에서 택시를 몰던 서울시민 만섭이 이제는 불의를 세계에 알리는 광주시민으로 변한다. 폭도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정 많고 다정한 이웃이었다. 기름을 무료로 넣어주고, 주먹밥도 그냥 주는 인심, 만섭이 차를 고치기 위해 순천에 가면서 그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주먹밥이었다. 아무 것도 넣은 것도 없이 쌀밥을 모아 만든 주먹밥은 참 맛이었다. 옥상에서 맛있게 주먹밥이 순천 시내 식당에서 국수를 시키면서 서비스로 나온 주먹밥을 먹으면서 만섭이 고뇌한다.
게다가 옆 자라의 손님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신문에서 폭도라고 하니, 만섭의 마음은 서울과 광주 사이에서 갈등한다. 기자 피터는 택시운전사 만섭을 두고 진정한 영웅이라 말한다. 하지만 영웅이 되어주던 만섭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이었다. 영웅은 만섭만이 아니다. 광주시내에서 부상당한 시민을 데리고 병원에 옮겨주던 광주의 택시기사와 시민, 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주던 의사와 간호사, 그들을 위해 밥을 내어주던 동네 아낙네까지 모두가 영웅이었다.
그러나 영웅이란 언제나 영광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나라에서 법으로 국가유공자로 기리지만, 가족을 잃고 몸을 다친 그들에게 국가유공자란 법적인 대우보다, 당시 급박한 상황과 비참한 죽음, 억울한 누명을 알려 다시 재조명을 받는 것이 목표이다. 최근까지 518비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37년 동안 상처를 받은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진실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다. 나도 이번에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지 않았다면 당시 택시운전사들의 활약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피터가 어떻게 외국에 무사히 필름을 전달할 수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로서 재미도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로 통해 충분히 사회적 함의를 이끌어내 수 있다. 영화라는 것은 대중문화이고, 대중문화는 기득권, 정치세력 혹은 거기에 대항하는 세력에 의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부여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의 대중문화에서 보는 관점은 영화라도 단순히 영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영화 <변호인> 역시 부림사건을 소재로 했기에 그 잔혹한 역사를 보고 우리는 영화관을 나오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택시운전사>에서 518의 참혹함을 담아내던 피터의 이야기이기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잔인할 수 있다(어느 어린 아이의 어머니는 계엄군이 광주시민에게 사격을 가할 때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운전사>는 518운동에서 피터의 여정을 그리지만, 피터는 518의 광주사람의 있는 그 모습을 담아내었다. 피터를 안내해주던 재식은 대학생이다. 그가 대학교에 간 이유는 대학교를 가야할 곳보다 대학가요제를 가고 싶어서 갔다고 한다. 광주에서 총을 맞고 쓰려진 그 많은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피터가 광주에 간 이유는 자신이 기자이기에 간 것이고, 만섭이 나중에 피터를 끝까지 책임지고 공항에 데리고 간 이유는 그가 택시운전사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정한 시각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택시운전사는 손님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서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무시할 수 있다. 피터나 만섭이나 모두 돈을 벌기 위해 기자가 되고 택시를 몰았지만, 거기서 모든 것이 결정된 게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출발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시민과 적대하던 계엄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위는 차마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한 집단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나 계엄군 속에서도 양심이 있는 자가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피터와 광주를 떠나던 만섭은 계엄군 감시를 피해 산길로 돌아가나, 그 곳에서 검문을 당할 때 어느 중사가 그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보내주려 했다. 이때 검문소로 전화 온 명령이 모든 외국인을 포박하라고 했기에 만섭은 택시를 급하게 몰며 간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들지만, 영화는 광주시민을 학살하던 계엄군 그 자체를 악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연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제목처럼 <택시운전사>이고, 택시운전사들이 활약하던 장면은 보안사령부 비밀요원들이 만섭의 택시를 추격하는 장면이다. 위기의 순간,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만섭을 무사히 보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광주택시가 앞에 있는 만섭의 택시 뒤에 따라오는 보안사 지프차량의 추격으로부터 막아준다. 예상외의 차량 추격전에서 광주택시의 희생으로 무사히 필름은 지킬 수 있었다. 광주택시를 몰던 그들은 영웅심리로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영웅이 되고자 했다면, 피터의 도주를 도운 재식의 죽음이나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옮기려다 죽고 다친 광주시민들의 의지를 비웃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진보성향과 보수성향의 영화에서 서로 스토리나 흐름이 비슷하거나 목적하는 바가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영화의 재미를 기대하더라도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라는 이름 아래 서사구조를 가지고, 그 서사구조에서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긴 이데올로기 매체이다. 이데올로기란 틀에서 영화서사 내 의미하는 바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성웅이고, 한국과 조선의 역사에서 무의 완성인 분이다.
그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보수는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영웅적인 요소를 찾는다면, 진보는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같이 활약하던 이름 없던 수군과 민초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영화 <대립군>에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인물 중에 하나인 광해군의 청년기를 보여준다. 정실부인 출생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광해군이 분조의 수장이 되어 고난을 겪을 때 광해군에게 자신의 소임을 일깨워준 것은 조선의 백성이었다. 돈이 없어서 남의 군역을 대신하던 대립군과 그들의 가족을 보면서 삶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영화 소재나 장르는 언제나 형식이나 틀에 얽매일 수 없다. <스펙타클의 사회>를 제작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해 절규>란 영화를 1번 아닌 2~3번 이상 볼 수 있다면 말을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라는 그 자체를 해체 내지 부정하지 않은 이상 어느 영화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면 아무리 빤히 보이는 내용이라도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택시운전사>를 보면 518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상당히 낯설지 모르나, 518에 있었던 사람을 보면 전혀 낯설지 않다. 다들 꿈 많고 정 많은 소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지금 그런 사람들을 두고 다소 바보로 취급받아 무시당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정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실사에 가려진 허구의 세계이다. 허구의 세계에 현실과 더불어 현실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넣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택시운전사> 현실과 허구의 재구성에서 현실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를 약간의 허구를 가미하여 재구성했기에 대중영화의 영역에서 일반영화와 르포르타주영화 영역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일반 대중영화지만, 영화전개는 르포르타주의 재구성으로 조합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장면은 피터가 죽기 전에 인터뷰한 모습이 나온다. 피터는 자신을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피터는 결국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를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피터는 1980년 5월, 그 비참하고 아름다운 5월의 택시운전사를 만나 우리에게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준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신파적인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그 자체를 보여주려 한다. 영화서사에서 목적지는 광주518이지만, 영화에서 카메라의 관점이 되어주는 인물은 피터와 만섭이다. 처음에 광주시내로 가는 것을 반대하던 만섭이 뒤로 가면 병원에서 주저앉은 피터를 일으켜준다. 기록하고 기억해주게 하라고 말이다. 이 글의 윗부분에 블랙홀의 노래 <마지막 일기>가 소개한 것처럼, 가사의 주인공인 광주의 고등학생 518 당시 죽는 것이 무섭고 어머니가 그립지만, 그래도 그곳을 찾아간다. 만섭 역시 피터를 데리고 가려면 목숨을 잃을 수 있고, 만섭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딸은 고아가 된다. 그래도 손님은 끝까지 목적지까지 모시고 가는 게 택시운전사의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성적 판단을 내린다. 만섭이 내린 판단은 이성의 논리보단 인간의 도리에서 나온 행동이다. 인간의 도리는 이성의 판단보단 감정의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보다 감성적인 존재인 게 더 나은 것이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의 사상은 그저 말뿐인 단어에 불과하다. 옳은 일이란 머리로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