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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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못 읽겠다가... 그럼에도 다시 읽다가...를 반복하게 하는 책.

난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 독서를 하는지.

알지만 모르는 척...

어설픈 감상과 작위를 덜어내고 어찌보면 스산한 기분마저 들게 기록(이라고 해야 맞는 말일것 같다)되어 있어, 마음에 구멍이 더 휑하게 뚫린 기분이 들었다.

단 한명의 공식적인 피해자가 남았다는 것을 가정한 이야기지만,

그 가정은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고,

이제까지 그랬던 것 처럼 무심하게 지나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은 예정된 현실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읽게 되었다.

같이 기억하기 위해서.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게 죄가 되나?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이어도? - 17

그녀는 신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찡그린 표정일까, 화가 난 표정일까, 체념한 표정일까, 안쓰러움이 담긴 표정일까. 그런데 신에게도 얼굴이 있을까? 그렇다면 신의 얼굴도 인간의 얼굴처럼 늙을까? 그녀는 신에게 얼굴이 있다면 늙지 않을 것 같다. 신의 얼굴이라서 늙지 않는 게 아니라, 더는 늙을 수 없을 만큼 늙은 얼굴이라서. - 24

양옥집 대문을 그녀는 한참 응시하고 서 있다. 한 백 년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심정이다. 애기 때 나갔다 더는 늙을 수 없을 만큼 늙어서야.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기가 겁난다. 대문에서 돌아서서 골목을 되돌아나가고 싶지만 그녀는 갈 곳이 없다. - 78

나도 피해자요.
백지에 쓴 문장을 소리 내 읽던 그녀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말을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 152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오빠는 알았으리라. 성화이던 자매들과 다르게 오빠는 그녀에게 한 번도 시집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12년 만에 돌아온 고향집에서 가을과 겨울을 나고, 다시 식모를 살러 떠나겠다는 그녀에게 오빠는 말했다. ˝네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디냐.˝ - 170

반군은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을을 습격해 여자들을 성폭행한다. 겁 먹은 얼굴로 문가에 서 있던 아프리카 소녀가 말한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들이 왜 내게 그런 짓을 했는지.˝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못하던 말을 피부 빛깔이 다른 아프리카 소녀가 해서, 그녀는 놀랍고 신기하다. - 181

세상으로 눈길을 주면서 그녀는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전히 무섭다는걸. 열세 살의 자신이 아직도 만주 막사에 있다는 걸. - 258

2016.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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