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의 글이 나오면 읽지 않고 못배길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너도 하늘 말라리야"를 비롯해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등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고 하기에는 나에게 크다란 감동으로 다가온 그녀의 책을 읽기 위해 다른 책을  읽기가 바쁘다.

이금이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이 책은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까?

 

 

 

 

올해로 작가의 나이가 42살쯤 되겠다. 번역은 김난주이다. 나이와는 달리 작가의 얼굴이 상큼하게 다가오며 또 새침떼기처럼 보인다.

119쪽을 읽고 있다. 학교에 갔다온 소현이에게 1에서10까지 더하면 얼마냐고 물으면 55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어떻게 아냐교. 일일히 더해 보았단다. 정직한 방법이고 흠잡을 수 없는 견실한 방법이란다. 그러면 1에서100까지 더하면 얼마냐고 물으니 얼굴색이 조금 변하더니 1에서1000까지 더하면은 몇날 몇칠이 걸리겠다고 하니  달아나 버린다. 난 안다. 이 책에 나와 있으니까.

초현실주의의 거장 달리의 꿈과 환상세계로 날 초대한다고 하나 나는 갈 수가 없다. 지금은 달리보다 더 바쁘니까^^^^

그냥 앉아서 조금 맛만 보겠다.

 

 

 

새벽 5시 30분 남자를 보내고 6시부터 아이들이 깨기전까지 책을 읽고 오전에 잠깐 외출하고 지금까지 틈틈히 읽고 있는 책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숙제를 봐주고 책을 한 권씩만 읽어주고......그러다가 보니 진도가 얼마 나가지 않았다. 그동안 아멜리 노통의 책을 다 보고 싶었지만 극찬과는 달리 선뜻 손을 잡기가 불안했는데 그 책들을 이제야 봐야겠다.

그런데 책이 너무 얇다. 특히 적의 화장법과 로베르 인명사전은 아쉬울 정도로 얇다. 솔직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잠깐 사이 사랑의 편지가 왔다. 이제 글씨를 알기 시작한 민수의 편지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눈씻고 봐도 없는데 적었단다.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한단다. 드래곤파워레인젼가 알아 듣지도 못하는 로버터를 선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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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살지 않은 내 인생도
소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면서 스치가는 기억들..기억의 저편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왜 그토록 안 좋은 기억들만 내 뇌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아니지....
좋은 기억도 자리는 잡고 있다. 다만 좋은 기억은 토해내지 않은 뿐이지......

 뭘 그런것 가지고 비오는 날 가슴이 아리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 울컥하는가?
 우리 할매와 할배.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의 인생살이는 소설 열 권으로도
부족한데 말이다.

특히 울 할매... 동구할매보다 열 갑절도 욕도 잘하고 힘도 센 우리할매는
아들 넷을 낳아서 군에 가서 다 죽고 울 아버지만 남았다는 말을 여러 수십번도 더 했다.
머슴아들 똥구멍을 빨아 먹어도 시원찮을 가스나 셋이만 살아 남은 것이 두고 두고
원통했다던 울 할매. 뭐가 그리 원통한지. 머슴아만 자식이고 가스나는 자식도 아니었는지.
그런 할매땜에 울 오빠는 7살때까지 할매 젖을 빨았다.오빠는 엄마의 자식이 아니었고
할매의 자식이었다. 외동아들을 가슴에 끼고 살다가 며느리한테 빼앗기고, 다시 찾은
 또 다른 자식이 울 오빠였던 것이다. 머리 끄랭이 잡아 뜯기는 사투에도 불사하고,
다 찌그러져 가는 집과 서방과 우리를 지킨  엄마는 할매의 눈에는 며느리도 아니고 
자식은 더더욱 아닌  울 아버지를 빼앗은 "적" 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며느리 머리 끄댕이 잡아 뜯는 울 할매와 아무 소리도 없이 그저 당하고만 있는
우리 엄마의 얼굴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왜 그리 살았을까? 나의 기억속에 있는 우리 엄마는 멍청하다.
현명하지 못하다. 밉다. 벙어리이다. 동구의 엄마처럼 할매가 없을때는 이웃들과의
내통도 하고 밖에서 갈비를 뜯고 와도 안 먹은척 입 쓱 닦고 할매에게는
김치꼬랭댕이에 물 한 그릇 내놓는 배짱이 왜 없었을까? 그리고 왜 이웃과 단절해야 했을까? 
기세등등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밥상 엎는 아버지에게 왜 꼼짝도 못했을까?
  (아버지도 동구의 아버지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었을까?)
그 엄마에 지금의 나 같은 딸이 나왔다는 것이 의문스럽다. 엄마가 두루두루 밝고 성격 좋고
이웃들과도 앉아서 할매 욕도 퍼붙고 수다떠는 평범한 여편네였으면 친구집에서 나오는 딸기며
참외며 복숭이며 수많은 과일들을 보며 침을 삼키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울 동네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전혀 닮지 않은 울 엄마와 나를 보고 "니 엄마 영판"
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생김새도 가장 많이 빼어 닮았고 성격도 그냥 딱이다고 했다.
정말 딱일까? 그렇다. 그 당시에는 엄마와 나는 딱이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동네 여편네들을 무시했고 나는 나대로 친구의 엄마들을 무시했으니까 말이다.

엄마에겐 내가 동구였다. 아니 울 집의 형제들이 동구였다. 글자를 깨우친 동구였다.
매일 매일 그 글자를 깨우치던 날의  동구가 아니었을까?  자식이 자존심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울 옆집에선 우리집 아이들 똥빨아 먹어라는 소리가 늘상 들려왔으니까?
동구가 글을 읽던 날, 동구의 할매가 울고 아버지가 울고 엄마가 소리 쳐 울었던 것처럼
자식들이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던 것 같다.

새 엄마와 앉아서 가끔 엄마 이야기를 한다. 그냥 남의 집 이야기 하듯이 한다.
새엄마는 이야기 했다. 엄마가 이 동네에서 제일 괜찮은 여자였다구. 나는 아니라고 한다.
바보 멍청이라고 했다. 그러면 새엄마가 다시 말한다. 25살때 자궁 덜어내고
혼자 산 여자보다는 엄마는 짧게 산 인생일지라도 행복했을 거라고.
그러면 아버지가 옆에서 거든다. "무슨 쓸데 없는 소리를 하고 있냐! 앞만 보고 살으라고,
자꾸 생각하면 죽은 사람도 가지를 못한다"......

새엄마는 엄마의 제삿날에 여지 없이 상을 차린다. 절도 안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린다. 그중 사이다는 빼놓은수가 없다. 아버지의 기억속에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사이다라는 이유로.
 나는 매년 똑같이 나오는 눈물을 숨긴다. 할매 죽고 1년뒤에 따라간 여자를 향해서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라도 외친다.

그러나 멍청하고 벙어리이고 지지리도 무식하고 한 가지 밖에 모르면서 살은 엄마를 이해한다.
사는 것이 그러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악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버지도 이해하고 동구 할매보다 더 한 우리 할매도 이해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밖에 나가서 얼어 죽은 할배의 인생도 아버지를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한 할매의 인생도 밥상 뒤엎는 아버지의 인생도 입만 다물고
살다간 엄마의 인생도 자식 한 놈 못 낳고 살다가 이제야 예쁜 화분을 사다 나르는
새엄마의 인생도 그리고 울 시어머니의 인생도 울 남자의 인생도 내가 사는 지금도 글로 쓰면
소설이 되는 것을 이해한다.

자꾸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띄여 갈겨봤다. 그러나 당분간 이런류의 소설은 읽지말아야겠다. 
왜냐하면 자꾸 베개에 꼬를 쳐박고 우니까! 혼자 차를 몰아 엄마한테 가는 병이 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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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어디에도 > 반딧불의 묘

어디에도 님의 서재에서 보고 찾았다.

없다. 없다. 어! 어디 갔지..누굴 주었나... 토토로도 없고 원령공주도 없고 붉은돼지도 없고 귀를 기울이며도 없고 ..........눈에 띄는 것이라곤 폼포코너구리대전쟁이라는 것 뿐이다. 도대체 어딜갔지..다른 곳에 놓아 두었나!!!!!잊고 있었던 물건들을 찾아본다. 반딧불의 묘. 다시 보고 싶다.


기억을 더듬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갔지?????

 

 

 

 

 

 

어디에도님께 퍼온글...

작년이었나 내가 토토로에 환장한 것을 알고 난 친구 녀석이 그 영화를 구해서 시디로 구워주었다. 가끔씩 기분이 좀 안 좋을 때, 난 그 토토로 시디를 돌려 보면서 그 속의 음악처럼 둥당둥당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지켜보는 게 무척이나 좋다. 그런데 그 친구가 토토로를 주면서 몇 개 다른 영화도  같이 구워줬는데 매번 토토로만 보느라 바빠서 다른 것들은 그냥 방구석을 굴러다니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우연찮게 그 중의 하나를 골라서 보다가...... 정말 우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제목은  <반딧불의 묘>.

 

 

 

 

 

 

 

 

 

 

 

 

 

 

 

 

 

 

 

 

 

 

대강의 줄거리 정도는 어찌어찌 주워 들어 알고 있었고 또 감독인 다카하시 이사오라는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지브리 스투디오를 어쩌구 저쩌구 한 여차저차한 사이라고도 하니(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해야하니 대충 얼버무리기 전법;;) 내 마음은 이미 예전부터 심각하게 반딧불의 묘를 원하고 있은 셈. 허나 함부로 그 시디를 돌려보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는, 주변에서 본 인간들마다 무지하게 슬퍼서 펑펑 울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우는게 겁나서)매번 시디 껍데기만 만지작만지작 망설이다가 에이, 다음에~ 하고는 늘상 토토로만 줄창 봤던건데, 어제 밤 실행에 옮긴 결과, 조울증의 주기 중 울의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편안한 조증 상태에서 밥먹고 술먹고 (둘다 얻어 먹어)기분이 좋았고 집에 와서 씻고 보니 웬일로 맥주도 냉장고에 얌전히 앉아 있어 혼자 캬캬 거리며 맥주를 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영화를 척 돌리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곧장 희희낙락의 시간은 끝이 났고 그에 이어 바로 마시는 맥주가 그대로 눈을 통해 다시 빠져나오기라도 하는양 계속 줄줄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고 안되었고 속상하고 해서 목에서 꺽걱 소리가 날 지경이었는데 약간의 술기운이 감정의 오바를 가져왔을 지언정, 이 영화는 아마 근 5년 아니 10년안에서라도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한 영화로 단숨에 기록되었다.

주인공은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다. 세이타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 여동생인 세츠코는 다섯 혹은 여섯 살 정도이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어디. 전쟁 때문에 엄마가 죽고 군인인 아빠도 죽고 결국 고아가 된 그들이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점차 냉대와 구박을 받고, 둘 만 방공호 속에서 지내면서 굶고 훔쳐먹고 굶고 하면서 겨우 살아가는, 죽는, 뭐 그런 이야기.

나는 전쟁의 가장 극단, 반대말은 아이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전쟁의 광기와 끔찍함을 아직 세상이 뭔지 납득은 커녕 미처 다 알지도 못하는 나이의 아이들이 겪는다는 건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다. 허나, 그래서,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아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을 하고 실눈을 뜨게 된다. 흥, 얄팍할 수도 있어. 어린 아이가 주인공에다 전쟁이 배경이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웃다가 결국 맑고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장면 보여주려고? 흥! 내가 이번엔 그렇게 순순히 같이 울어줄줄 아시나? 하는 같잖은 반항심으로 말이다.

물론 <반딧불의 묘>는 그딴 알수 없는 반항보다는 무조건적인 기대감과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주변 인간들이 울었다는 말에 약간은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그딴 마음은 눈사람 녹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미 나는 줄줄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눈물은 다 마셔버린 맥주병을 다시 채우고도 넘칠 만큼 멈추질 않았다. 함께 넘쳐버린 먹먹한 감정들은 밤사이 내내 나를 들쑤시고 떨게 만들었다.

새삼스레 전쟁의 무모함이니 잔혹함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건 뭣도 모르는 내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고, 애써서 말하려 한다고 해도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부족할 것이다. <반딧불의 묘>를 보고 그 배경이 된 전쟁에 관해서나, 스토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감독의 의도나 덧붙여 많은 이들이 칭찬해마지않는 그 섬세한 동작과 표정의 표현에 관해서조차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설사 잘 안다고 해도 그것에 관한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나는 역시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흔들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만났을 때, 진정으로 감.동.했을 때는  진짜 할 말이 없어진다. 그저, 부르르 떨면서 맘껏 울면 그 뿐. 그리고 그러한 순간 순간들이 주는 힘으로 어쩌면 계속
살아 갈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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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를 준다고 해서 교회에 갔다. 그 맛이 달콤했다. 친구들도 데리고 갔다. 동생도 오빠도 맛있는 것 준다고 하면서 데리고 갔다. 할매한테는 죽도록 맞았다. 엄마는 당신 자신만 믿는다고 거절했다. 아버지는 돈 내어야 한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난 그 정도는 굴하지 않는 전도의 꼬마 여왕이었다.

초등학교...높이 뛰기 선수를 했는데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울 동네에 사셨다. 궁상 맞은 동네에서도 제일 못살아 생활보호대상자로  되어 배급 받는 돈과 논과 밭이 없어서 남 수확하고 난 밭에서 시래기를 주워서 고이 포장해서 새벽 번개시장에서 사투를 벌리는 엄마. 몇년째 방구들만 짊어지고 있는 아빠. 85살의 연세에도 며느리 보다 더 힘이 세고 며느리를 종년 취급하는 할매.(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나오는 할매는 우리 할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런 집에서 공부는 지질이도 잘하는 줄줄이 울 형제들을 그 선생님은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가난한 집에는 콩 한쪽 나눠먹지 않는 시골의 인심과는 달리 (시골의 인심이 후하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선생님은 일요일마다 교회로 우리를 이끌어셨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아버님 어머님은 나날이 울 엄마 아빠를 갈시하는 동네사람들에게 앙심을 품고 두고봐라는 나의 투쟁을 다소곳이 잠재워 주셨다. 그렇게 나의 믿음은 시작되었다.

.......(중간 생략) ..이런 날엔 끝도 없이 기억을 파헤치고 들어가는데. 찌짐을 구워먹자고 윗층새댁이가 왔다.....그래서 니가 구워라고 하고  생각하고 있던 주요 요인만 쓰고 나갈란다.

교회에 대한 인식을 상당히 좋게 자리 잡었고, 고등학교때에는 친구를 전도를 할 정도로 빠져 있었다. 친구는 지금 마산의 어느 교회에서 제법 큰 위치에 있다.  

그럴 즈음 비가 억수로 퍼붓던 음력 4월19일 울 엄마가 죽었다. 동네 사람들은 사고로 죽은 사람은 상려를 메어주는 것이 아니라며 꺼려하고 동네에도 못 들어 오게 했다. 그것이 다 무엇때문인지 안다. 울집이 가난했기때문이다. 원인은 다른 것이 없다. 가난하고 못사는 집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사도 하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집에는 들여놓으면 안되고 동네에 들어오면 안된다고 실랑이를 벌이며  그렇게 엄마는 동네만 한번 훑어보고 갔다. (작년에 아버지가 동네를 떠나야하나 말아야하나하면서 망설일때 나의 한마디가 크게 작용했다. 아빠가 심어놓은 나무에는 미련이 많지만 이 동네에 무슨 미련이 있소. 징그럽지도 않소. 이렇게 말이다.) 그런 동네가 지금은 대통령을 잘 만나서 빛내고 광내었지만. 그 광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직까지도 치를 떤다.

그러면 어떻게 장례를 치루었나!! 세월이 지나서  제법 교회티가 나도록 지어 올린 목사님이 동네사람들이 가까이 오기도 싫어했던 시체에 염을 같이 하고  엄마의 관에 십자가를 덮으면서 주관을 하셨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상려를 몇몇 교회사람들이 다 메고 뒷처리를 다해주셨다. 그당시 우리동네사람들은 교회를 딴 세상으로 봤지만....그렇게 교회다니는 사람이 적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았다. 언젠가 은혜를 갚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난 교회에 안 다닌다. 친정부모와 오빠 여동생 . 남동생이 교회에 다닌다. 그중에서 오빠와 여동생과 제부는 거의 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현을 이렇게 쓰니 너무 미안하지만 그래야마  적절하다) . 안부 전화라고 온다. 그러면 당연 교회이야기이다. 나는 불교를 믿고 절에 가서 절을 한다고 하면 돌덩어리에 절을 한다고 기겁을 한다. 자꾸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죽고도 못사는 형제간과도 멀어진다. 오늘은 동생에게 그냥 이대로 살다 가게 언니를 놓아두라고 하니 늘 언니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나를 위해 기도 할 시간 있으면 엄마 아빠를 위해 더 해라고 하지만 막무가내이다.

내가   이렇게 절실한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기독교도 아닌채로 사는 것은 또 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터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종교로 우리 싸우지 말자.

무슨 종교이든지 종교다는 나의 철칙에는 변함이 없다. 종교란 말은 사전에 나와 있는 그 자체의 해설로서 충분하다.

에이 진지하게 썼는데 찌짐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결론은 뭐냐고오!!!!!!!!!!!!!

결론은 찌짐이나 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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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남자가 도착했다. 그것도 10시쯤. 들어서는 남자에게 저녁은 먹었냐고 했다. 아직 못 먹었단다.
"으매 어쩐다고요... 배가 등가죽에 달라 붙었겠네유"
"달라 붙다 못해서 뼈가 등을 뚫고 나온다"
인삿말로 했지만 참 별꼴이 반쪽이다. 한끼 굶었다고 몸무게 80이 넘은 배가 등가죽도 아니고  뼈가 등을 뚫고 나온다니....
내 배가 부른지라 밥은 차리기 싫지만 내색은 안하고 또 인사말로..
밥 차릴테니 빨리 씻고 먹으슈"
"굶은 김에 오늘은 살 뺄란다."
우와!!듣던중 반가운 소리^^^^치!!!!그 소릴 하루 이틀  들었나!! 한끼 굶는다고 살이 빠질것 같았으면 벌써 뼈만 남았제!!

아이들은 모두다 차렷..경례... 다녀오셨습니까. 고함을 지르고 남자가 답례로 경례를 하고 "바로"하면 제 자리에 돌아가서 각자 하던 놀이를 하고...오늘은 자지도 않네....
정말 남자가 저녁을 안 먹는다고 한다. 생식 한잔을 먹으면서 (사실은 큰 잔이라서 한잔은 아니다) 하는말
" 정말로 남자는 힘이 있어야 한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음 xx랑 차를 한 대 보러 갔는데 엄청 사고 싶어 하는데 마누라땜에 짤렸다."
"xx씨 차가 엉망이라 사야 되지 않아요. 그리고 차가 꼭 필요한 사람이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마누라가 차 살 돈 없다고 그냥 버스타고 다니라네."
"뭐라고요... 그 길을....너무했다.그 집 돈 있는데. 마누라 요즘 잘 나가는데."
"그렇제. 그러길래 나이 40이 넘으면 남자는 힘이 있어야 된다."

그런말을 들으면서 남자는 자신이 엄청 힘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사실 힘은 있다. 그 힘이 무엇인고 하니 사소한 곳에는 그저 나에게 져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정을 내려준다. 집안의 대소사며 큰일에는 남자의 판단이 옳은 것이고 그 판단에 나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모든것이 순탄해진다.그래서 힘은 있다는 것이다.

고로 나는 우리집에서 내 남자의 힘은 막강하다고 본다. 또 재잘재잘 철없이 정신나간 망아지마냥 까불고 실수 연발인 나를 항상 뒤에서 받혀주는 남자가 있었기에 나도 힘있게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내 남자에게 당신을 끝까지 믿고 따르고 당신밖에 없고 내가 살면서 가장 올바른 선택은 당신을 만났기 때문이기 않았나하는 나의 사탕 발림 같은 말에 또 내 남자가  힘이 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집 남자
당신은 항상 힘이 있다. 당신이 힘이 없고 꼬구라져도 내가 당신을 힘있는 남정네로 생각하겠다. 그러면 당신도 나를 힘있는 여자로 생각하겠지...당신이 왕이면 나는 여왕 울 새끼들은 왕자와 공주...

여자가 , 마누라가 남자의 아래라는 차원을 떠나 서로 서로 힘있는 남자와 여자로 남고 싶다. 언제까지나...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 놓았다. 문이나 닫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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