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살지 않은 내 인생도
소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면서 스치가는 기억들..기억의 저편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왜 그토록 안 좋은 기억들만 내 뇌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아니지....
좋은 기억도 자리는 잡고 있다. 다만 좋은 기억은 토해내지 않은 뿐이지......
뭘 그런것 가지고 비오는 날 가슴이 아리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 울컥하는가?
우리 할매와 할배.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의 인생살이는 소설 열 권으로도
부족한데 말이다.
특히 울 할매... 동구할매보다 열 갑절도 욕도 잘하고 힘도 센 우리할매는
아들 넷을 낳아서 군에 가서 다 죽고 울 아버지만 남았다는 말을 여러 수십번도 더 했다.
머슴아들 똥구멍을 빨아 먹어도 시원찮을 가스나 셋이만 살아 남은 것이 두고 두고
원통했다던 울 할매. 뭐가 그리 원통한지. 머슴아만 자식이고 가스나는 자식도 아니었는지.
그런 할매땜에 울 오빠는 7살때까지 할매 젖을 빨았다.오빠는 엄마의 자식이 아니었고
할매의 자식이었다. 외동아들을 가슴에 끼고 살다가 며느리한테 빼앗기고, 다시 찾은
또 다른 자식이 울 오빠였던 것이다. 머리 끄랭이 잡아 뜯기는 사투에도 불사하고,
다 찌그러져 가는 집과 서방과 우리를 지킨 엄마는 할매의 눈에는 며느리도 아니고
자식은 더더욱 아닌 울 아버지를 빼앗은 "적" 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며느리 머리 끄댕이 잡아 뜯는 울 할매와 아무 소리도 없이 그저 당하고만 있는
우리 엄마의 얼굴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왜 그리 살았을까? 나의 기억속에 있는 우리 엄마는 멍청하다.
현명하지 못하다. 밉다. 벙어리이다. 동구의 엄마처럼 할매가 없을때는 이웃들과의
내통도 하고 밖에서 갈비를 뜯고 와도 안 먹은척 입 쓱 닦고 할매에게는
김치꼬랭댕이에 물 한 그릇 내놓는 배짱이 왜 없었을까? 그리고 왜 이웃과 단절해야 했을까?
기세등등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밥상 엎는 아버지에게 왜 꼼짝도 못했을까?
(아버지도 동구의 아버지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었을까?)
그 엄마에 지금의 나 같은 딸이 나왔다는 것이 의문스럽다. 엄마가 두루두루 밝고 성격 좋고
이웃들과도 앉아서 할매 욕도 퍼붙고 수다떠는 평범한 여편네였으면 친구집에서 나오는 딸기며
참외며 복숭이며 수많은 과일들을 보며 침을 삼키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울 동네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전혀 닮지 않은 울 엄마와 나를 보고 "니 엄마 영판"
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생김새도 가장 많이 빼어 닮았고 성격도 그냥 딱이다고 했다.
정말 딱일까? 그렇다. 그 당시에는 엄마와 나는 딱이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동네 여편네들을 무시했고 나는 나대로 친구의 엄마들을 무시했으니까 말이다.
엄마에겐 내가 동구였다. 아니 울 집의 형제들이 동구였다. 글자를 깨우친 동구였다.
매일 매일 그 글자를 깨우치던 날의 동구가 아니었을까? 자식이 자존심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울 옆집에선 우리집 아이들 똥빨아 먹어라는 소리가 늘상 들려왔으니까?
동구가 글을 읽던 날, 동구의 할매가 울고 아버지가 울고 엄마가 소리 쳐 울었던 것처럼
자식들이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던 것 같다.
새 엄마와 앉아서 가끔 엄마 이야기를 한다. 그냥 남의 집 이야기 하듯이 한다.
새엄마는 이야기 했다. 엄마가 이 동네에서 제일 괜찮은 여자였다구. 나는 아니라고 한다.
바보 멍청이라고 했다. 그러면 새엄마가 다시 말한다. 25살때 자궁 덜어내고
혼자 산 여자보다는 엄마는 짧게 산 인생일지라도 행복했을 거라고.
그러면 아버지가 옆에서 거든다. "무슨 쓸데 없는 소리를 하고 있냐! 앞만 보고 살으라고,
자꾸 생각하면 죽은 사람도 가지를 못한다"......
새엄마는 엄마의 제삿날에 여지 없이 상을 차린다. 절도 안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린다. 그중 사이다는 빼놓은수가 없다. 아버지의 기억속에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사이다라는 이유로.
나는 매년 똑같이 나오는 눈물을 숨긴다. 할매 죽고 1년뒤에 따라간 여자를 향해서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라도 외친다.
그러나 멍청하고 벙어리이고 지지리도 무식하고 한 가지 밖에 모르면서 살은 엄마를 이해한다.
사는 것이 그러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악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버지도 이해하고 동구 할매보다 더 한 우리 할매도 이해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밖에 나가서 얼어 죽은 할배의 인생도 아버지를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한 할매의 인생도 밥상 뒤엎는 아버지의 인생도 입만 다물고
살다간 엄마의 인생도 자식 한 놈 못 낳고 살다가 이제야 예쁜 화분을 사다 나르는
새엄마의 인생도 그리고 울 시어머니의 인생도 울 남자의 인생도 내가 사는 지금도 글로 쓰면
소설이 되는 것을 이해한다.
자꾸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띄여 갈겨봤다. 그러나 당분간 이런류의 소설은 읽지말아야겠다.
왜냐하면 자꾸 베개에 꼬를 쳐박고 우니까! 혼자 차를 몰아 엄마한테 가는 병이 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