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시절 너무나 어려운 형편때문에 부잣집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하얀 날개옷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철물점 친구도 부러웠고,
아빠가 한전 소장을 하는 친구도 부러웠다.
머리 드라이하고 예쁜 정장 차려 입고 학교에 찾아오는
친구의 엄마도 부러웠다.
아예 우리 엄마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학교에 같이 간다고 친구집에 들어서는 순간 눌리면 뽕하고
소리내며 들이미는 병우유 그 우유도 한 모금 마시고 싶더니
친구 엄마는 나에게 한 방울도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난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다.)
친구는 귀찮다는 듯이 뿌리쳤다.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우유를..
우리 엄마도 나에게 저렇게 해 주었으면...
아빠가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친구는 아예 왕자님같이 보였다.
엄마는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모르고 그 당시 얼마나 졸랐는지.
유달리 욕심이 많은 탓에 공부는 항상 1등이었다.
책을 펴면 몇페이지에 뭐가 있는지 알정도로 달달달 외웠다.
전과를 그렇게 사고 싶었는데.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싶고 예쁜 옷도 입고 싶었고 책상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볶는 나를 엄만 항상 "저 미친것이 살기도 힘든데. 공부도 다 치워라."
그래도 항상 우등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동네 사람들 보란듯이
액자에 넣어 마루벽 가득도배를 해 놓으셨다. (액자 살 돈은 안 아깝으셨나?)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일만 하셨지만 항상 동네 사람들 앞에서는
자존심 하나로 살고최고 부러움의 대상이셨다. (자식들에 대해서 만큼)
화병 난 할머니(할머니의 자식이 7명이 있었다는 데 군에 가서 다 죽고 우리 아빠만 남았다고 한다) 수발에 줄줄이 딸린 아이들...
몸이 아파 별로 일을 못하시는 아버진 그래도 정말 무서웠다.
엄만 아버지께 꼼짝도 못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모든것이 연기였다. 자식들이 혹 아버지를 가벼이 볼까봐)
나도 자식 낳고 살아보니 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알것 같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새벽부터 밤까지.
피아노 학원에 못보내주고 재미있는 책 한권 못사주고
(항상 친구집에서 한권씩 빌려와 읽었다)
좋은 옷 못 입혀주고... 우리 엄만 얼마나 우셨을까?
지금의 내 딸은 날 지겨워 하는 것 같다.
자주 사주는 책도 이젠 왜 사오셨나 하는 눈치고 문제지도
풀기 싫어하는 것 같고 피아노도 시키면 가고 안시키면 안가도 되는 것 같고.
너무 풍족한 것이 아이를 더욱더 모자라가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 그렇게 모자랐기에 그렇게 하고싶고 먹고싶은 것도 많았는지..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