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전투표 하루 전에 그것도 마지막 법정토론을 마치고 난 다음, 그것도 한밤중에 네 후보 중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함으로써, 이것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것이 야합인지 명분 있는 행위인지는 곧 밝혀질 것이고, 무엇보다 표심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몇몇 토론과정에서 <이솝우화> 중 하나를 인용하는 것을 보다가 교정이 필요하다 싶어 글을 쓴다. 

1,2번은 번호순으로 각각 A, B라고 하고 사퇴한 후보를 C라고 하자. B와 C가 단일화한 것을 두고, A측 패널이 비판하자, B측 패널이 당신들도 C와 단일화하고 싶었으면서 막상 안 되니까, (여우와) ‘신포도’였다고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공격한다. 출처는 우리가 <여우와 신포도>라고 알고 있는 이솝 우회다. 그런데 천병희 선생이 358편의 이솝우화 전편을 원전번역하면서 ‘신 포도’가 아니라 사실은 ‘덜 익은’ 포도라고 바로잡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032. 여우와 포도송이


굶주린 여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포도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고 따려 했으나 딸 수가 없었다. 

여우는 그곳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12)”


옮긴이의 각주는 다음과 같다. 

12) ‘덜 익다’의 그리스어 omphax(복수형 omphakes)는 ‘시다’는 뜻이 아니라 맛과 관계없이 ‘덜 익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sour grapes’라는 영어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덜 익은 포도는 쓴맛이 날 수도 있고 신맛이 날 수도 있다. 원래는 ‘덜 익었을’ 뿐인데, ‘신맛’이 나는 포도로 오역했다는 얘기다. 중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우화를 ‘신 포도’라고 알고 있는 것이며, 시청자들도 여우와 신 포도라고 해도 그런 줄 알고 넘어가는 것이다. 최근의 교과서에는 수록이 되어 있는지, 이 부분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B후보측 패널(허은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신 포도’ 운운에 반박하는 A후보측 패널(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미디어특보단장)도 ‘신 포도’를 운운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두 패널들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렇게 말해도 알아들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종교(기독교)의 영향으로 내용이 바뀌고, 번역 소개한 나라에 따라 간추려지고 번안되는 등 <이솝우화> 번역의 수난사는 그때그때 인간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바로잡지 못한 오역(誤譯)으로 독자의 뇌리에 각인된 정보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비단 이것뿐일까, 걱정하게 된다. 아직도 선거판에 ‘멸공’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그에 반응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반공교육은 참으로 끔찍한 상처로 남아 있지 않은가? 원전에 충실한 보다 정치한 번역으로, 후세들은 있는 그대로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랄 뿐. 


*관련 방송: [뉴스외전 정치 맞수다] 

"안철수의 굴복, 지지자 분노" vs "단일화, 국민 염원에 답한 것" (2022.03.04/뉴스외전/MBC)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2020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우리피데스 비극들을 다시 읽어야겠다, 이전에 읽던 전집을 펼치니 밑줄과 메모 등이 거슬린다. 딱히 정답은 없는데, 책을 읽는 동안 스치는 생각들을 해당 페이지 해당 지점에 메모하는 습관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텍스트와 새롭게 만나야 하는데 기존의 생각/느낌이 프레임으로 다가오는 것. 큰 맘을 먹고, 개정판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19편의 작품들을 마음이 가는 대로 골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어 군데 오자는 아니고 탈자가 보이는 것이었다. 다듬는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구나, 반가웠다. 이것이 개정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가독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어 (10년 만에) 개정판을 만든다." 옮긴이가 '펴내며'에서 언급한 부분을 가볍게 보고 지나친 것. 우아해보이는 백조의 고단한 물갈퀴질을 떠올렸다. 무엇인 바뀌었는지,  가볍게 생각한 내가 문제였다. 살핀다. 글자 크기(급수)는 조금 키웠고, 그리드(글자가 배열되는 사각형) 크기는 그대로인 듯한데, 자간과 행간이 조정되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하드커버 전집을 구입하는데 가격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고충은 상당하다. 재고를 무시하고 새로 만들 수도 없고, 재고가 소진되는 시점에 개정판을 만들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한다는 얘기다.(때가 때인지라. 구입 6개월 만에 미루고 미루다 완독한『조국의 시간』에는 인명 하나를 인쇄하여 붙인 곳이 있다. 또 무슨 흠을 잡을까, 싶어 고민한 흔적인가, 문득 씁슬해지는 것이었다.) 

원전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는 천병희 선생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오점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번역은 원죄처럼  그런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1판과 2판 전집을 일일이 대조할 수는 없다. 해서 나는 에우리페데스를 읽는 동안 별표 몇 개로 체크해놓은 부분만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왜 촉발되었으며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과감한 선택과 그 선택에 집중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처럼 주제가 '분노'라서 이 전쟁은 누구의 승리로 끝났는지조차 독자들은 알 수 없다. 그리스 비극들은 좀 더 섬세한 터치로 이야기(일리아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이후 이야기를 무대에서 들려준다. 멸망한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는 오뒷세우스의 하인으로 살아가야 할 처참한 운명 앞에 서 있다. 그런 그녀에게는 딸(캇산드라, 아가멤논의 첩이 될)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다른 딸은 폴뤽세네는 전사한 아킬레우스 무덤에서 제물로 바쳐지며, 이웃나라로 대피시겼던 어린 왕자의 죽음을 확인해야 하는 등 2차, 3차 가해 앞에 오열한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아래 인용 부분은 그 '순간'을 짚어낸다. 

비극 「헤카베」코러스는 포로가 된 트로이아 여인들이다.「헤카베」의 두 번째 정립가(오르케스트라에 위치한 코로스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부르는 노래. 선행 에피소드에 대한 성찰이나 감정을 표현. 나중에는 선행 에피소드와 무관한 막간가(幕間歌)로 변질된다) 세 단락 중 전반 두 단락이다. 왼쪽은 개정판(2판), 오른쪽은 1판의 해당 부분이다. 


「헤카베」 629~646행(제1판과 제2판 비교, 원전번역 제1판 1쇄 발행, 2009년 5월 10일)  


헤카베」 (2판 1,  2020.2.10.)

헤카베」 (1판 5,  2018.2.10.)

[코로스 좌]

나는 이미 불상사를 당하도록,

고통을 당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네.

알렉산드로스1)가 이데산에서,

바다의 심연 위를 지나 황금빛

찬란한 헬리오스2)가 비추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의 침상으로 갈 배를

건조하려고 전나무를 베던 순간.

 

[코로스 우]

고생이그리고 고생보다 더 나쁜

강압이 나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네.

단 한 사람의 어리석음으로

시모에이스3)  강 유역에

만인 공통의 파멸이타인들에 의한

고통이 덮쳤네이데산에서

목자4)가 신들의 세 따님 사이에서

시비를 가릴 때5)

[코로스 좌]

나는 이미 불상사를 당하도록,

고통을 당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네.

알렉산드로스가 이데 산에서,

바다의 심연 위를 지나 황금빛

찬란한 헬리오스가 비추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의 침상으로 갈 배를

건조하려고 전나무를 베던 순간.

 

[코로스 우]

고생이그리고 고생보다 더 나쁜

강압이 나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네.

단 한 사람의 어리석음으로

시모에이스 강 유역에

만인 공통의 파멸이타인들에 의한

고통이 덮쳤다네이데 산에서

목자가 신들의 세 따님 사이의

시비를 가릴 때.

1)과 4)파리스의 다른 이름.   2)태양신.   3)트로이아 옆을 흐르는 스카만드로스 강의 지류.   5)‘파리스의 판정을 말함(줄임).

주(註) 번호는 필자가 임의로 지정했다. 희랍어에 정통하고 우리말에도 능숙해야 좋은 번역인지를 관찰자 시점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다만, '이데 산->이데산'으로 바꾸는 것이야, 편집규범에 따르면 되는 것이지만, '사이의'->'사이에서'로 수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선택의 무게 중심이 달라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는, 것인가, '해주는' 것인가? 그 '순간'(위) 그 '때'(아래)의 주체가 파리스인가, 아닌가의 차이로 달라지는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국내 연극 무대에서 원전 번역 그대로 상연된 일이 있다. 특정 부분만을 선택하여, 무작위로 개정판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 실험 결과이지만, 책은 움직이는 비석(碑石)과도 같은 것이라, 독자들이 알아주면 감사한 일이지만, 보다 완전해지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생략한 '파리스의 선택' 주5)는 이런 것이다. 

"이른바 ‘파리스의 판정’을 말한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테티스가 결혼식을 올릴 때 신들 중 하객으로 초대 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앙심을 품고 연회장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사과를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제우스의 주선으로 당시 트로이아 근처의 이데산에서 목동으로 생활하던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가서 판정받게 된다. 헤라는 아시아를 통치할 권력을, 아테네는 전쟁에서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약속하는데, 파리스는 이 경연에서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 그 대가로 파리스는 헬레네를 아내로 삼게 되지만 함께 경연에 참가한 헤라와 아테네가 트로이아를 집요하게 미워하면서 결국 트로이아는 멸망한다. 특히 헤라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에도 아이네이아스가 이끄는 트로이아의 유민들이 세운 로마를 미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0#) “나는 종이다. 사람 없는 오래된 절에 있는, 미리 스위치를 눌러두기만 하면 시간과 횟수 정확하게 지켜 울리는 전자동 종이다. 오늘 나는 평소와 달리 자정이 조금 못 되어 제야를 알리기 위한 중후하고 엄숙한 소리를 마호로 마을로 보낸다.” _12월 31일 토요일, <나는 종(鐘)이다>에서, "나는 기계다."  


소설 『천일의 유리』(전2권)는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난데없는 에피소드를 만나, 따분할 때마다 펼치는 책이다. 이게 소설이 맞나, 여느 독자의 첫인상도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하루에 한 꼭지씩 무려 1,000개의 퍼즐들의 첫문장은 ‘나는 □□이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은 시점이며, 화자(話者)이다. 이번에는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 즈음에 울리는 ‘종(鐘)’이 관찰자(시점)다. (내 구조의 비밀은 세상에 죄 알려지고 말아) “아무도 내 소리에 옷깃을 여미지 않는다.” 오로지 소년(요이치)과 그의 친구인 파란 새(큰유리새)가 ‘내 소리’에 어김없이 반응하고 “쓸쓸하네,”라며 운다. 이에 그들이 가련하여 나는 고백한다. 


“나는 결국은 괘종시계와 마찬가지로 그저 기계일 뿐이니까. 아무쪼록 가볍게 흘려버리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일부러 한 번, 즉 백아홉 번째 소리를 장치가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내 자신의 의지로, 고오옹, 하고 낸다.”  


#01. '괘종시계와 다를 바가 없다'며 자신을 비하하는 종이 108번 다음 한 번 더 울릴 대한민국 서울 종로의 종각에서는 33번, 일명 보신각 종소리가 울린다. 108번(백팔번뇌)처럼 타종 33회는 불교의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원래는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108번 울렸는데, 아침과 저녁 예불을 알리는 타종 횟수도 그렇고, 제야의 종도 33회로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왜 하필 보신각 제야의 종이 33회인가 그 유래는 조선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오른다. 1396년에 한양성이 완성되고 종루는 1398년에 완공했다. 이때부터 새벽 4시에 33번(28수+중앙 별자리 5수) 타종하여 성문을 열고, 저녁 10시에는 28회(동서남북 별자리인 28수 반영) 타종하여 성문을 닫는 의식이 시작되었다는 것. ‘숭유억불(崇儒抑佛)’ 이념을 실천한 조선이지만 불교가 국교였던 전 왕조의 영향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않았나 싶다. 


#02. 타종 횟수 관련,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친구는 일행과 함께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에 있는 지금은 퇴락한 사찰을 찾은 적이 있단다. 찻길은 있지만 오가는 중에 차를 만나면 교행하기가 힘든 곳. 2박3일쯤 머무는데, 거기 한 처사(남자 신도)를 만난다.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절 바깥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 다담(茶談)을 물리고 ‘차곡차곡(茶穀茶穀)’ 절차에 따라 곡차(穀酒)를 마시는데, 주지 스님도 속세에서 공수하는 곡차(막걸리)를 모른 척해주신다는 것.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예초기를 가동하며 사찰 일원의 시설관리부터 정원사 노릇까지 하는 처사에게 월급을 대신한 일종의 배려였다. “여기서도 하는 일이지만……,” 

곡차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처사가 이전 절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꺼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사찰인데, 처사는 거기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는데, 중요 일과 중 하나가 조석으로 예불을 알린 타종이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책이라고는 거의 없는 수납장에 가까운 책꽂이에서 종이컵 하나를 꺼내더란다. 구겨진 흔적이 역력한 그 종이컵에는 노란색이 선명한 굵직한 콩이 반쯤 담겨 있었다. 

“새벽에는 스물여덟 번, 저녁에는 서른세 번 종을 쳐야 하는데 내가 몇 번을 치고 있는지 늘 헷갈리는 거요,”

해서 마련한 궁여지책이 33개의 콩알이었다. 저녁 타종 때는 처사의 오른쪽 호주머니에 33개의 콩알이 담겨 있고, 한 차례 타종을 할 때마다 콩 한 알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식으로 숫자를 체크했다. 새벽종을 울리려 나갈 때는 책꽂이에 콩 5알을 남겨 놓고 나가는 식이었다는 것. “누가 세겠어, 그런데 아닙니다. 어느 날 새백, (타종이) 한 번인가 빠진 모양인데, 주지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친구는 33개의 콩알 사진을 촬영해 두었다고 보내주었다(사진). 새벽(朝)예불에 28회, 저녁(夕)예불에 33회, 조선의 보신각 타종 횟수와는 정반대다. 여기에도 뭔가 음모가 있는 것인가? 


#03. “백아홉 번째 소리를 장치가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내 자신의 의지로, 고오옹, 하고 낸다.” 원 플러스 원(1+1)도 아니고 투 플러스 원(2+1)도 아니고, 무려 백팔번뇌 플러스 원(108+1)이 새롭게 다가온다. 왜 108일까? 불교의 발생과 전파가, 인도 어디쯤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데는 이론은 없을 듯하다. 소설 『천일의 유리』(전2권) 시간 배경은 1987년~1989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천황이 죽고 새로운 천황이 즉위하여 연호가 바뀌는 격동기다. 그리고 그 종소리는 오늘 우리가 아는 여느 사찰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한 일본의 절, 신사(神祀)에서 울려퍼진다. 

남산 아래, 해방촌에는 108계단이 있다.(331면) 용산고 뒤편 후암동 옛 종점에서 남산의 남사면 언덕 위로 오르는 긴 계단이 그렇단다. ‘108 계단’이라고 부르니, 108개의 계단이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이 108계단을 오르면 신사(神社)가 있었단다. 일본제국을 위해 생명을 던진 일본군들의 명복을 기리는 곳, 거기에 조선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했다. 그 흔적이다. 이제 108이란 숫자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도 계엄군 지휘본부를 옛 신사가 위치한 자리했다는, 조망이 좋은 산 정상에 설치한다. 전남 구례에 출장을 갔다가 지인의 안내로 손쉬운 등반을 한 적이 있다. 지리산 정상 가운데 하나인, 노고단 정상을 쉽게 오를 수 있다고. 정상 가까이 주차하고, 느리게 걸어도 왕복 두 시간쯤 발품을 팔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거기 S자 곡선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나무(방부목) 계단이 있는데, 혹시 오를 때는 생각했는데, 내려올 때 따박따박 세어보니 계단 숫자가 108개였다. 숫자에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런 숫자가 있다. 


#04. 고대 그리스, 스파르테 정체의 초석을 다진 사람, ‘뤼쿠르구스 전’(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입법자 뤼쿠르고스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첫 문장)지만 숫자는 의외로 정확히 등장한다. 원로원의 원로는 28명. 그가 창설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 원로원(비극의 상원) 원로는 28명.  28인가? 

1)(아리스토텔레스): 뤼코르쿠스와 결의한 30명 중 두 명이 겁이 나서 빠졌다(30-2=28) 

2)(스파이로스, 6*4=28): 처음부터 28명이었다. 7*4=28(28의 약수 중 28을 제외한 나머지 약수 1,2,4,7,14의 합이 28이므로 28은 완전 수)이다. 

그런데 정설은 있다. 이 책에도 있지만, 내(플루타르코스) 생각에, “뤼쿠르코스가 원로원 수를 28명으로 정한 까닭은 28명에 2인의 왕을 합하면 모두 30명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28명+2명=30명의 원로들) 다음이 중요합니다. 28+2인의 왕들(씨족 1명, 부족 1명: 혈연 1인 지연 1인)의 세력(입지)을 반영했다는(플루타르코스 26~27면 해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ta4 2022-02-23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알 사진을 올리다보니, 아마도 종이컵채 호주머니에 넣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 2021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원전 412년에 공연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는 메난드로스가 대표작가인 그리스 신희극 등장과 관련하여 각별한 의미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정통 그리스 비극이라는 장르가 해체 혹은 진화되는 이정표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비극이 끝나는 즈음에 그리스 비극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성을 되새기게 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 부록(2권) 옮긴이 해설, 「헬레네」 소개 말미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발견한다. 과연 ”「헬레네」를 비극으로 볼 수 있을까?“ 현대적 비극 개념에서 본다면(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전학자들이 정립한 그리스비극이란 이런 것이란 개념인지, 현대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비극’이란 뜻인지)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에우리피데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당연히 비극이었다.“는 것(2권, 677면). 1)여전히 신화와 영웅 전설이 소재다. 2)디오뉘소스제에서 공연된 드라마다. 3)“(그들에게는) 불행한 결말보다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관련된 비극적 상황”이 있다. 이상 비극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

”「헬레네」를 비극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과연 ‘(그리스)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그리스)비극’ 장르가 지닌(갖춰야만 하는) 일반적인 특성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특히 2)는 그 시절, 그 (비극)무대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비극이란 논거다. 대학 시절 호기심에 선택한 미학 강의(그들에겐 전공필수)에서 관심 있게 들었던 ‘예술제도론’(‘제도미술론’으로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사람을 미술가로 정의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미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미학자인 조지 디키는 어떤 대상이 ‘예술’로 불리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유명한 예술제도론이다. 대표적인 예는 이렇다. 상업 공간(매장)에 전시·판매 중인 공산품 양변기를 갤러리로 옮겨 전시했다. 이 때 그 상품은 예술공간에 전시되었으므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처럼 (그래도)「헬레네」는 (아직) 그리스 비극이라는 얘기다. 「헬레네」는 정통 그리스 비극 장르의 정체성을 흔든 문제작, 그리고 그 ‘경계’에 위치한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연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비극(예술제도론?) 

「헬레네」는 비극으로 볼 수 없다!! 비극적 상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인간과 신들의 의미심장한 만남이 없다. 2)주어진 운명에 맞서는 처절한 자기주장도 없다. 3)(비극 구성의 필수인 ‘필연’은 사라지고) ‘우연(偶然)’이 새로운 힘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우연’은 이후 아테나이 신희극(메난드로스가 대표작가)의 지배적 원리가 된다는 것. 다만 근거3) 관련 에우리피데스에게 우연은 ‘우연의 유희’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인간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으며, “슬기로써 대처해 나가는 인간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 에우리피데스의 후기 비극 세계가 그리스 신(新)희극의 소시민적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을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아테네 신(新)희극의 길을 연 에우리피데스 

아테나이 구(舊)희극(아리스토파네스는 대표작가)이 절찬리 상연되던 시기에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들도 공연되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희극에 당대 인물인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에우리피데스를 등장시켜, 조롱하고 비판한다. 그의 비극이 내용과 기법에서, ‘전통’을 벗어나는 것이 못마땅하였으리라. 무엇보다 두 작가는 ‘연설술(수사학)’을 무기로 등장하여 시대정신이 되는(특히 철학계를 뒤흔든) 소피스트들에 대한 수용 태도에서도 대립한다. 당대의 ‘뉴웨이브’에 대한 에우리피데스의 진보적인 수용(작용)과 아리스토파네스의 보수적인 반발(반작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현대의 드라마는 내용(소재)와 스타일에서 여러 장르로 분화되어 있지만(장르소설, 장르드라마도 있다) 일반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하게 하는 개연성 있는 주인공의 등장,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흥미를 유발하는 에피소드가 흥행에 필수요소인 것. 에우리피데스가 「헬레네」에서 사용한 우연이 ‘진지 모드’였다면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에서 우연은 유희(遊戲)를 위한 소스(도구, 에피소드, 구성 요소)였다. 그렇게 현대 드라마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희극에만 국한되지 않는) 세련미를 갖춘 드라마 장르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헬레네」에서 진지한 ‘우연’, 신희극에선 유희 

「엘렉트라」(1권 마지막에 수록)에서 에우리피데스는 당대의 비극 소재(신화와 영웅전설)를 새롭게 해석하여 파란을 자초한다.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고 친딸 엘렉트라와 친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되는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보다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녀는 헬레네와 자매이다(아가멤논과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형제이다). 이어 공연된 「헬레네」(2권 첫 작품)에서 이런 경향은 가속된다. 자의건 타의건 트로이아로 간 헬레네는 환영일 뿐이라는 것. 헬레네가 스파르테를 떠난 것은 분명하나 실제 헬레네는 그 기간(대략 17년)에 이집트에 머물렀으며, 그의 배경도 이집트(아이귑토스)이다. 이 비극 작가는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독자들이) 그렇다고 여기는 ‘사실’을 과감하게 흔든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은 아닌가, 영웅 신화와 전설, 그에 기반한 서사시의 서사, 그 ‘정설’을 거침없이 뒤틀었다. 가능한 변화이지만 당대의 통념과의 정면승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교나 운율 등에 깃든 그리스 비극의 ‘진화’(?)를, 혹은 생성과 소멸, 계승을 (원전 번역의 탁월함에도) 비전공자로서는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 문학(서사시와 비극)에서, 트로이전쟁이 실제 역사인가 논란마저 진행 중임에도, 민감한 인물이고 예민한 소재이며 영원히 아름다움인 ‘헬레네’의 여러 모습을 따라가며 읽는다. 필자에게 「헬레네」는 이런 독서 탐사, 독특한 경험의 출발점이자 분기점이다.  

그리스 비극의 창조적인 파괴자,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를, 아이스퀼로스는 (비극의)‘창시자’, 소포클레스는 (비극의)‘완성자’자로 부르는 데에 이견은 없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면 늘 애매하다. 필자는 ‘그리스 비극의 파괴자’라는 수식을 그에게 선사하고 싶다. ‘창조적인’ 파괴자. 그리고 여기에 ‘현대 드라마의 창시자’라는 각주를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ta4 2022-02-1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는 말) 개정판에 올리는 첫리뷰라는 것을 확인하고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덧붙인디.『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에는 에우리피데스의 현존하는 작품 19편이 수록되어 있다. 1권 세 번째 수록된 「알케스티스」가 공연연대로는 첫 작품. 그런데 (비극 경연에 출품한) 비극3부작은 아니고 사튀로스 극를 대치한 말하자면 ‘소품‘. 이 작품을 1권 세 번째에 수록한 것을 예외로 하고, 나머지 18편이 1권과 2권에 공연연대 순으로 실려 있다. 1권 마지막 작품이 「엘렉트라」, 2권(9편 수록) 첫 작품이 「헬레네」다. 이들 비극 작품들은 여느 비극들처럼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재해석한 작품군, 그리스 신화(전설)를 차용하고 재해석한 작품군,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난데없이 「헬레네」이야기를 한 것 같아, 설명을 덧붙인다.

새우 2022-02-19 11:24   좋아요 1 | URL
한번 읽는데도 오래 걸리고, 관해서 리뷰쓰기도 벅차고 그렇지요. 배려에 감사..
 

인터넷 검색 중 해외토픽 하나가 눈에 띈다. “고래 입에서 살아난 미국인, 20년 전 비행기 추락사고 생존자” 주인공은 미국인 마이클 패커드(2021, 56세). <뉴욕포스트>는 2021년 6월 12일 고래 입에서 탈출한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마이클 기사를 익일 보도했다. 기사는 그가 20년 전 경비행기 사고에서도 생존한 ‘행운(?)의 주인’이라는 데 강조점을 찍었지만, 필자의 관심은 두 번째 위기 그 자체였다. 

바닷가재를 잡으러 물에 들어간 패커드를 고래가 삼켜버렸다. 상어인 줄 알았는데 이빨이 없어서 고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다행히 고래는 30초 정도 뒤에 패커드를 뱉어냈다. 고래 입속이지만 잠수 탱크로 숨은 쉴 수 있었다. 구출되어 검진한 결과 크게 다친 데는 없어서 몇 시간 뒤 퇴원했다는 것. 고래 전문가인 필립 호어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가디언> 인터뷰) 당시 그를 삼킨 고래도 ‘패닉’에 빠졌을 것이라며 “통상 고래 식도에는 멜론보다 큰 음식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 


[02]현실과 동화는 확실히 다른가 보다. 했는데.. 

그때 필자가 읽고 있던 책 중 하나는 『철학 놀이터』(양문덕 지음, 숲, 2020)였다. “철학과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철학마을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고방식을 귀엽고 상큼하게,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여는 글’에 책의 성격이 담겨 있다. 최초 발행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쯤 독자들에게 철학이란 무엇인지, 필자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을 알기 쉽게 들려주는 식이었다. 이른바 <피노키오의 철학> 시리즈로 상당히 많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책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 개정판(출판사)일 듯한데, 이번은 전면 개정판이다. 아마도 고대 서양의 고전들, 특히 플라톤전집을 완역한 천병희 선생의 원전번역서 등을 펴낸 출판사로서는, 서양철학에 관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일종의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펴낸 것처럼 보인다. 

“아이에게 <피노키오>를 읽어주다가 불현듯 어떤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이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사람 같다고 느껴져서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싶더군요.”(PART1 인간은 무엇인가, 리드문) 피노키오는 인형일 때부터, 사람으로 변한 이후에도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때론 플라톤과 ‘대화편’ 형식으로 등장하는 등 시르즈 전편에 걸쳐 독자들의 감정 이입 대상으로 활약한다. 일종의 ‘캐릭터’가 부여된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데, 필자는 동화 속 피노키오 이야기와 좀 달라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피노키오 줄거리로 피오키오를 공유하자고 한다. 

“천사는 피노키오에게 착한 아이가 되면 ‘진짜 소년’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원작과 다르지만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쪽을 예시로 쓰겠습니다). 피노키오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고래 배 속에 갇힌 할아버지를 구하고 쓰러집니다. 이 장면에서 천사는 피노키오를 진짜 소년이 되게 하죠.” (41면)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 할아버지가 고래에게 먹히고 구출되는 부분이다.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를 찾으러 바다에까지 간 제페토 할아버지는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고래 배 안에 갇히게 되고, 피노키오는 그 소식을 듣습니다. ……피노키오는 앞뒤 재지 않고 그 길로 바다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듭니다. ……피노키오가 꾀를 내어 연기를 피우자 고래가 재채기를 하게 되고, 그사이 고래 배 속에서 빠져나와 피노키오와 할아버지는 허겁지겁 도망치죠.”(48면)

덕분에 나무 인형이던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었지만,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진정한 의미의 사람의 도리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정으로, 철학을 통해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피노키오의 사고의 성장과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2]1990년대 초반.. 고래 속을 가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어느 날, 누군가 소개한 책을 대형서점(당시 종로서적)에서 찾던 중이었다. 요즘과 같은 검색의 시대도 아니고, 찾다찾다 매장 직원에게 문의를 해도 그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충 기억으로 찾는 <고래 속을 가다>라는 책은 없었다. 결국 구매할 수도 없었고,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초등학생일 무렵, 견학 필수코스이던 ‘인체대탐험전’과 같은 것을 떠올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고래 속을 가다니.. 서점 언니로서도 좀 황당했을가? 

얼마 후에야 그 책을 소개한 친구 얘기를 들으니 ‘고래’가 아니라 <고뇌 속을 가다>(1986년 한국어판 출간)였다는 것. 그러나 동일 제목의 책은 결국 찾지 못하였고, 이후 번역된 한국어판 소설의 제목은 『고난의 길』(전4권, 3부작, 동광출판사)이었다. 작가는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장편소설뿐 아니라 수많은 단편과 중편·역사소설·희곡 등을 남겼고, 특히 러시아인의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사람.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로 유명한 레프 톨스토이(1829~1910)라는 대문호의 유명세에 묻히는 바람에 또 한 사람의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면서도 덜 알려진 사례다.  

"당신은 제가 괴테 다음으로 좋아하는 문학의 거인입니다. 내가 반하고, 또한 작가로서의 내가 그 누구보다 은혜를 입은 작가지요. 당신이야말로 러시아 문학 전통이 지닌 모든 위대함을 반영하는 러시아적 작가입니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1875-1955)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1943.5.8.)의 일부다. 최고의 찬사다. 『고난의 길』 제1권(제1부)은 ‘두 자매’다. 제2권(제2부)은 ‘1918년’ 제3부 ‘음산한 아침’은 상하권으로 발행되었다.(1990, 이상 동광출판사 전4권) 


[3]그 톨스토이 말고 이 톨스토이의 『고난의 길』

얼마 전 대대적인 이사를 하면서 책들을 상당수 버렸는데, 대략 펼쳐놓은 책장에서는 이 소설집을 찾을 수가 없다. 이곳 중고서점에는 재고가 있긴 한데, 전4권이 10만원이다. 단지 오래된 책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소위 386, 486, 586로 불리는 세대가 대학시절 ‘커리큘럼’에 따라 읽었던 일명 ‘사회과학’ 서적들이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으로 모여 있는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이 책을 찾기 위해 한 차례 들러야 할 것 같다.


”열아홉 살의 다샤는 페테르스부르그 법대에 갓 입학한 재능 있고 매력적인 처녀다. 다샤는 품위 있고 아름답지만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텔레긴을 향한 사람의 감정에 눈뜨면서 다샤는 새롭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해간다. 한편 명성 높은 변호사 니콜라이의 아내인 다샤의 언니 카챠는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취미, 능숙한 사교술을 겸비했다. 카챠는 사교계의 모임에서 언제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카챠는 행복하지 못하다. 퇴폐적인 생활을 슬퍼한다. 천박한 성격을 지닌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어버리자 연약하고 섬세한 카챠는 파리로 떠난다. 크림반도의 아름다운 여름과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포도주를 즐기며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다샤와 카챠 자매의 삶은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제1부 ‘두 자매’ 개요)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 속 시간 배경은 1921~1941. 아, 여기서 고뇌 속을 가다가 나왔구나. 고래 속을 가다. 고뇌 속을 가다. 고난의 길. 언젠가 책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볼 생각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그 누구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imeroad 2022-02-1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정 축하드리려 왔더니 새 글.. 잘 읽고 가요..

초란공 2022-02-1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 톨스토이를 혼동한 적이 있어요.ㅋㅋ 조지 오웰의 에세이에 나왔던 것 같은데 어떤 ‘눈 밝으신 분‘이 지적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Meta4 2022-02-19 10:42   좋아요 0 | URL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