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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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하루 전에 그것도 마지막 법정토론을 마치고 난 다음, 그것도 한밤중에 네 후보 중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함으로써, 이것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것이 야합인지 명분 있는 행위인지는 곧 밝혀질 것이고, 무엇보다 표심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몇몇 토론과정에서 <이솝우화> 중 하나를 인용하는 것을 보다가 교정이 필요하다 싶어 글을 쓴다. 

1,2번은 번호순으로 각각 A, B라고 하고 사퇴한 후보를 C라고 하자. B와 C가 단일화한 것을 두고, A측 패널이 비판하자, B측 패널이 당신들도 C와 단일화하고 싶었으면서 막상 안 되니까, (여우와) ‘신포도’였다고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공격한다. 출처는 우리가 <여우와 신포도>라고 알고 있는 이솝 우회다. 그런데 천병희 선생이 358편의 이솝우화 전편을 원전번역하면서 ‘신 포도’가 아니라 사실은 ‘덜 익은’ 포도라고 바로잡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032. 여우와 포도송이


굶주린 여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포도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고 따려 했으나 딸 수가 없었다. 

여우는 그곳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12)”


옮긴이의 각주는 다음과 같다. 

12) ‘덜 익다’의 그리스어 omphax(복수형 omphakes)는 ‘시다’는 뜻이 아니라 맛과 관계없이 ‘덜 익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sour grapes’라는 영어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덜 익은 포도는 쓴맛이 날 수도 있고 신맛이 날 수도 있다. 원래는 ‘덜 익었을’ 뿐인데, ‘신맛’이 나는 포도로 오역했다는 얘기다. 중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우화를 ‘신 포도’라고 알고 있는 것이며, 시청자들도 여우와 신 포도라고 해도 그런 줄 알고 넘어가는 것이다. 최근의 교과서에는 수록이 되어 있는지, 이 부분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B후보측 패널(허은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신 포도’ 운운에 반박하는 A후보측 패널(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미디어특보단장)도 ‘신 포도’를 운운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두 패널들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렇게 말해도 알아들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종교(기독교)의 영향으로 내용이 바뀌고, 번역 소개한 나라에 따라 간추려지고 번안되는 등 <이솝우화> 번역의 수난사는 그때그때 인간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바로잡지 못한 오역(誤譯)으로 독자의 뇌리에 각인된 정보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비단 이것뿐일까, 걱정하게 된다. 아직도 선거판에 ‘멸공’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그에 반응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반공교육은 참으로 끔찍한 상처로 남아 있지 않은가? 원전에 충실한 보다 정치한 번역으로, 후세들은 있는 그대로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랄 뿐. 


*관련 방송: [뉴스외전 정치 맞수다] 

"안철수의 굴복, 지지자 분노" vs "단일화, 국민 염원에 답한 것" (2022.03.04/뉴스외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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