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자고 한 소리가 실없이 던진 농담이 아닐 때가 있다. 웃음을 함유한 말(풍자)이 가진 힘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칼럼으로 문명비판을 신랄하게 하였는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초판 1995, 개정증보판 1990)이 대표적이다. 책은 에코의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증보판인데, 마지막 옮긴이(이세욱) 글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있다. 에코는 자기 글이 어렵다고 말하는 독자들을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 여겼다는 것. 나라 안팎에서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이 즈음, 에코가 살아있다면  어떤 일침을 가할까, <계시>마저 사라진 언론에 대하여!


기호학자이자 작가,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를 소설 장미의 이름은 그리스 비극의 미학을 입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후속편이, 곧 희극을 다룬 시학2가 세상에 나왔으나 극소수만 공유하고 있다, 금서를 숨기려는 세력과 발굴하려는 이들 사이의 갈등과 전쟁이 소설 장미의 이름 설정이다. 전문분야인 기호학과도 연관이 깊지만, 그가 장서(藏書)들 틈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소설을 흥미롭게 읽는 또 하나의 관점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수록된 컬럼들. ‘책과 원고를 활용하기’, ‘서재에 장서가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 ‘공공도서관의 체계를 세우는 방법(1981)’ 등에서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이 책 곳곳에는 에코표 웃음 코드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꼭지만 고르라, 곤란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한 꼭지만 고르라면 <연극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를 아는 방법>(1988)이다. 에코는 세상에 없는 책을 다룬 책(장미의 이름)을 썼다. 이 에피소드에는 문제작 시학(아리스토텔레스)이 극찬한(꽃 중의 꽃) 비극 <오이디푸스 왕> 관련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에코의 미국) 유학 시절, 필자(A)는 기숙사 문 닫는 시간(자정) 때문에 숱한 연극들을 처음부터 보면서도 딱 10분이 모자라 끝부분을 보지 못하였다.(A는 오이디푸스가 그 끔찍한 비밀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친구(B)를 만난다. 그도 학생이고 검표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B는 지각하는 관객들 때문에 극의 초반 10분쯤을 보지 못했다). 먼 훗날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대화가 흥미롭게 소개된다.

 


A(에코): 이제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얘기 좀 해봐

B(검표원 알바): 간단해 어머니는 목을 매고 그는 스스로 자기 눈을 멀게 하지

A: 안됐군. 하지만 결국 그건 자기 잘못에서 비롯된 거야.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했잖아.

B: 맞아 그런데 그는 어째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 그 점이 늘 궁금하더라고…….

A: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역병이 돌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왕이었고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B: 그런데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맞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A: 당연히 전혀 몰랐지! 그게 바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지.

B: 프로이드의 환자 얘기 같아. 자네가 오이디푸스라도 그들의 얘기를 곧이듣지 않을 거야.

 

천병희 옮김 <오이디푸스 왕>은 국내 공연에서 원전번역 텍스트가 그대로 대사로 사용, 공연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위 인용 부분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처럼, 이제 막 연극이 끝난(암전) 무대에서 (미리 녹음된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자네가 오이디푸스라도 그들 얘기를 곧이듣지 않을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0. 비전을 내놓으라 했습니다비전을 생각해 봤습니다제 마음에 가장 드는 비전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5공 때 내놨던 정의로운 사회였습니다노태우 대통령이 내놨던 보통 사람의 시대도 상당히 매력 있는 비전이었습니다. (중략저도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저도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제 가슴은 공허합니다그 말을 누가 못하냐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2001.12.10.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 및 후원회 연설. 20노무현재단 (엮은이돌베개 2022-05-16


#01. 게르마니아 부족들은 도시에 살지 않으며서로 연결된 집들에서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그들은 샘이나 들판이나 작은 숲에 마음이 이끌리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서로 떨어져 산다또한 우리처럼 건물을 서로 다닥다닥 붙여 마을을 설계하지 않으며각자 화재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든 아니면 건축 기술이 부족해서든 집 주위에 빈 공간을 남겨 둔다. __16. <취락 형태와 주거지>에서


#02. 그들보다 더 연회와 환대에 탐닉하는 종족은 없다어떤 사람이든 문밖으로 내쫓는 것은 죄악시된다주인은 형편이 닿는 대로 한 상 잘 차려 손님을 환대한다식량이 떨어지면 지금까지 주인 노릇을 하던 자가 다른 숙소로 안내하기 위해 손님과 동행한다두 사람은 초대받지도 않고 이웃집으로 간다초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그들은 어차피 환대를 받으니 말이다. __21, <반목과 우정은 대물림된다손님 환대>에서


#03. 그 믿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깊이 뒤얽힐수록 서로 성가시러워진다살다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기 때문이다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 싶다.__약간의 거리를 둔다, 120약간의 거리를 둔다』 ,



#04. 인용 #01과 #02의 출처는 게르마니아이고. #03약간의 거리를 둔다[소노 아야코),김욱 옮김책읽는 고양이, 2016-10-20 원제 人間分際(2015)]이다인간(人間)에 사이 간()이 있고인격(人格)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간격(格: 나무들처럼)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놓친 것은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물체  중 하나로서 우리 인간이 너무 오만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5.  적어도 위의 책들은 코로나19 이전에 출간되었거나 발언한 것이다. 그래서 의미구나, 했다. 인용1에서 감탄하는 것은 마음에 와 닿는 풍경(자연) 속에 슬며시 보금자리를 놓았다는 것. 인용2에서는 추위도 있지만, 그러므로 그렇게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연결되어 있다. 인용3 작가를 최근에야 좀 다른 정보로 살폈다. 소노 아야코(1931~ )는 일본의 보수주의 작가다. ‘약간의’와 ‘거리’의 다른 맥락, 일본의 대표적인 혐한주의자로 활약하고 있다는데, 이것도 간격이라면 간격인 듯 


#6. 어쨌든, 약간의 거리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든, 심리적인 거리 유지에 실패한 인간 무리에게 물리적인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한 수 가르치고 있다. 자연이든, 늘 사이에 있는 신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든,  이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단다. 그 섬, 찾다가 우린 헤매는 듯. ‘사이에’ 뭔가 있다. 들판이나 작은 숲 마음 이끄는 곳에 그들처럼, 노마드처럼 임시 거처라도 마련하여 일부가 되고 싶다. 사는 동안 임시 거처 아닌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말로만 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차이 혹은 거리(인용#00) 사이에, 거기에, 뭔가,  있다. 열세 번째 그날이 내일 모레다. 듯.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5-22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쉿~, 망자의 이름은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망자(亡者)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 영화 초반에서도  이곳에서는 금기라며, (아프리카) 현지 가이드가 경고하지만 무심코 스쳤다.  감독 시드니 폴락, 주연  니콜 키드먼숀 펜.. 감독도 제작진도 화려한 영화,  2005년에 제작되어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넷플릭스에서 만난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 2005) 이야기다.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아프리카 오지의 한 나라와 미국 뉴욕 UN본부 안팎,  아프리카 태생인 UN 통역사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 분)이 그녀 외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언어로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을 엿들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제 그녀는 살인 대상 1순위가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 그녀가 연방요원 토빈 켈러(숀 펜 분) 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인터프리터(interpreter), '통역사'의 얘기에 귀를 기울울 시간이다.  


연방 요원(숀 펜): 분노는요? 이 일이 시작되고 만난 사람 중에서 당신이 주와니(아프리카의 독재자)에게 가장 원한이 많더군요. 그 자의 지뢰 때문에..

통역사 (니콜 키드만)~, 망자의 이름을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누군가 살해되면 익사 재판이란 의식으로 1년간 애도 기간을 보내죠. 강가에서 밤새 열리는 의식으로 새벽에 살인자를 배에 태워 물로 띄워 보내 빠지게 하죠. (살인자는) 묶여서 수영도 못 하죠. 망자의 가족이 선택해요. 살인지를 익사시키든가 구해주든가 족은 가족이 살인자가 죽도록 두면 정의는 실현하지만 평생 애도하면서 보내요. 그러나 살려두고 목숨을 뺏는 거로 결론짓지 않으면 그걸로 슬픔은 사라져요. 복수는 애도의 게으른 형태죠. __<인터프리터>, 러닝타임 40분 전후


영화 초입의 의문점이 풀리는 대목이지만 소화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는 '그렇'지만 가슴을 설득하기까지, 1년이란 애도기간처럼 시간이 필요하였다.  망자와 이별하는 데 필요한 49일처럼,  그날 망자와 작별하는 우리의 49재처럼 1년째 되는 날 진행된다는 의식(Drowning Man Trial)은 많이 닯았다. 살인자를 죽일 수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선택권은 유족들에게 있다.  1년 동안 살인자는 혹은 그의 가족 친지들은, 망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용서를 구했을까?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들이 어찌했건 용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유족들은 선택할 뿐이다. 살리면 슬픔은 사라진다. 그러나 복수(방치)하면 정의는 실현된다. 하지만 평생을 애도하면서 보내야 한다. '용서'했다면, 더 이상 망자의 이름마저 언급하면 안 된다. 생각의 여지가 넓어지는 대목이다. 


아래 인용에서 '그곳'은 오늘날 독일어권인 게르마니아이고, 수집하고 관찰한 그들의 '생태' 를 들려주는 이는 기원후 100년 전후를 살아가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다. 


"그곳에서는 아버지나 친족의 원한과 우정이 대물림된다. 그러나 원한이 조정될 가능성도 없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도 정해진 수의 소나 양을 바치면 속죄되고, 전 가족이 이런 보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에도 이롭다. 원한은 인관 관계가 제약받지 않는 곳에서는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__66면, 게르마니아21장 중에서


우정처럼 '원한'이 대물림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 전제이다. 하지만 다른 길도 있는데, 앞서 살핀 영화에서처럼, 복수심은 주머니 속 송곳이다. 분노를  품은 이가 결국 상처를 입는다.  그  마음고생에서  벗어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 현재인의 심사에는 더 다가오지 않을까.  원한을 산 자(=살인자)는 '헤아릴 수 없는' 보석금을 내고 용서를 받았다는 얘기일까? 그런 재력만 있으면 살인해도 무방하다는 그런 해석일까? 더 큰 그림을 읽을 수 있다. 

한 부족이 생존하는 데 구성원들이 그런 원한을 품고 살아간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한이 대물림되고 쌓이면 공동체 전체가 내분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인근 부족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약탈하고 약탈당하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거대한 로마 제국과도 맞짱을 떠서 치명타를 날리는 그들의 힘은 이런 가능성을 열어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투키디데스는 복수혈전이 진행되는 어지러운 로마 황실을 떠올리면서 '한편 부럽고 한편 두려운' 게르마니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했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통보하는 것인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태도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건부 감사 못지 않게 조건부 용서도 개운치 않은 뭔가를 남긴다. 용서도 아니고 감사도 아니다. 이런 무늬가 통용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영화 속 용서는 한편으로는 남은 이들의 이기적인 선택이다. 책 속의 용서는 '조건'이 따르지만 더 '인간적'일 수 있다. 가문이 멸망할 정도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살인, 하려면, 하렴. 현실에는 말 그대로 현실적으로 따라야 할 문법이 필요한 것. 그래도 책이나 영화나 용서를 구하는 이의 진정한 참회가 전제되어 있겠지, 생각하고 싶다.  이 선택 또한 이기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넷플릭스 <바바리안시즌1(모두 6)은 독일에서 제작한 드라마로 독일학자들이 고증하였고 언어도 독일어랍니다. 기원후 9년 게르마니아 토이토부르크 숲(Teutorburger Wald)에서 벌어진 게르만족 연합과 로마군 사이의 전투를 다루고 있답니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 타키투스(기원후, 55년경-117~130년 사이) 활동기의 지도입니다.  『게르마니아』의 부록을 스캔해서 올립니다.  한반도의 지형이 동고서저라,  높은 동쪽에서 낮은 서쪽으로 강이 흐른다면, 이곳에선 북쪽이 낮고 남쪽에 낮아.,  강도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그래서 게르마니아의 하부와 상부도 나뉘는 것 같습니다.  상부게르마니, 형관펜으로 표시한 부족들이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로마군 3개 군단(2만여 명)를 궤멸시킨 주역들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아르마니우스는 케루스키족 족장의 아들로, 동맹의 조건으로 로마에 인질로 끌려가 로마군 전사로 자랍니다. 그의 양부인  로마 장군 바루스가 게르마니아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정체성을 회복하며, 부족연합을 이루고, 대승을 거두는 데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우선은 지도를 참고하면서,  『게르마니아』 옮긴이 서문만 읽어도(미리보기) 드라마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다양한 경영 패러다임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대륙마다 다르고 국가마다 다르다매우 거친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인사조직 측면에서 크게 두 종류의 패러다임이 있다하나는 영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앵글로색슨 모형이다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경영방식으로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을 설계한다다른 하나는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게르만 모형이다이는 분권화된 경영방식으로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로 조직을 설계한다." (최동석 성취 예측 모델

, 248-249)


지방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방자치 단체장 등 지역 일꾼들 뽑는 선거입니다. 앞서 새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대통령. 말 그대로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자치는 지방정부의 재정과 행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방정부의 재량권 강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나도 거칠게 말하자면, 하나는 앵글로색슨 모형에서, 다른 하나는 게르만 모형에서 장점을 취하지만, 대립적이라 상호 보완하지 않으면 갈등은 일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라!" 재정자립도 낮은 상당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게 이런 요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방정부 내 조직이 중앙집권식(앵글로색슨 모형)으로 설계되고, 작동된다면, 분권화, 명분 채우면서 장점 살리기, 주장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게다가 '관내(管內)'라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힘이 작동하는 것까지, 분권화된 지방정부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그런 생각 합니다. 좋다는 것 다 가져왔다고 좋아지는 것 아닐 것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며칠 전 그래, 구례!’라는 글을 올리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피는데 오류가 있다. 구례(求禮)를 아홉 가지 예를 구하는 곳으로 풀이한 것. 두 군데의 문맥을 수정했다. 구례에서 찾고자 하는 아홉 가지 예(九禮)가 있다는 그것은 무엇일까, 정도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그래? 그렇다면 구례(求禮)에서 구례(九禮)를 찾아볼까호기심이 꼼지락거렸다. 검색어는 구례 아홉 가지 예. 인의예지신에다 그럴듯한 네 가지만 덧붙여도 되는데, 호사가(好事家)들이 지나칠 리가 없다 생각하면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서울신문>, [그림과 가 있는 아침] 코너다.

 



=네이밍을 하는 이라면 필독서인 크라튈로스의 부제는 이름에 관하여'’. 플라톤 전집3(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이온/크라튈로스/소피스트/정치가)에 수록되어 있다.


스무 살 적엔 구례에 살고 싶었지요. 아홉 가지 예를 갖춘 마을, 이름만으로 이상향이라 생각했습니다. 섬진강 마을을 따라 산수유 매화 벚꽃 차례로 피고 살구꽃 복숭아꽃 자두꽃 한참입니다. 강물 위에 분홍색 살구꽃과 연두색 자두꽃 은은히 잠긴 모습 환상이지요. 강물은 흘러도 마을 떠나기 싫은 꽃은 물살 위에 그대로 머뭅니다. 시인이 구례에 이사 왔으니 밤새 술 마실 만합니다. 시도 사랑도 삶도 녹록지 않을 땐 술만 한 친구가 있겠는지요. 술 덜 깬 아침 가연이가 아찌 정말 시인이세요? 묻는군요. 구례에 왔으니 아홉 가지 예를 갖춘 인간의 시를 꼭 쓰라는 격려의 말입니다.”(곽재구 시인 시평, 서울신문, 2021. 04. 02.)

 

이원규 시인의 <뒷집 소녀 때문에>에 대한 시평이다. 시인이 다른 시인의 시에 감상을 덧붙이는 마당이니 그러려니 할까, 구례(求禮)를 구례(九禮)로 해석하면서 어떤 설명도 없다. 더구나 시평을 쓴 시인의 이름이 재구(在九)이지 않은가. 포구기행에서 이 시인의 아홉()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다산초당이 있는 강진 도암만의 옛 이름이 구강포 혹은 구십포인데, ‘(이곳) 사람들은 강진읍까지 들어오는 긴 바닷길을 도암만이라는 이름 대신 구강포 앞바다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130). 시인은 구십포는 강진 남쪽 6리인데 월출산에서 남으로 흘러온 물이 강진현 서쪽의 물과 합하여 구십포가 된다동국여지승람까지 인용한다

시인은 오래전에 <귤동리 1>이란 시에서 이 도암만을 장검(長劍) 같다고 했다.


아흐레 강진강 지나/ 장검 같은 도암만 걸어갈 때

겨울 바람은 차고/ 옷깃을 세운 마음은 더욱 춥다



곽재구의 포구기행구시포 편(천천히, 파도를 밟으며, 아주 천천히……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에서도 아홉()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구시포의 옛이름은 새나리불똥‘ '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로 풀이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포구 이름이 구시포(九市浦)’로 바뀐다. '아홉 개의 도시, 혹은 아홉 개의 저자(市場)를 먹여 살릴 마을이란다. 새로운 시작인 극수(極數) ()가 지명에 포함된 사례가 무수히 많다. 그러니 구례의 구()가 이례적일 수밖에,

굳이, 구례를 아홉 가지와 연결시키면, 구구례(求九禮)쯤이 된다. 그런데 옛 구례도 아니고 좀 그렇다. 이제 약간의 기지를 발휘할 때다. 전라선 남원역에서 순천역 사이 굵직한 역 가운데 하나가 구례구역인데, 뜻밖에도 이 역은 행정구역상 구례에 있지 않고 순천시(황전면 선변리)에 위치한다. 역을 빠져나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구례교)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구례다. 옛날에는 지리산을 등반하려는 산악인들이 어김없이 구례구역에서 내려, 은어회 한 접시나 민물참게 매운탕을 먹고 산으로 향하곤 했다. 어쨌든 구례(求禮) 입구(入口)에 있다고 하여, 구례구(求禮口) 역이니, 구구례라는 어색한 이름 대신, 구례구(九禮求)쯤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떠할지. 그래, 구례구(九禮求) 구례(求禮)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달빛을 깨물다(시작시인선293, 천년의시작, 2019-06-17)에 수록된 이원규의 시 <뒷집 소녀 때문에> 전문은 아래와 같디. 가연이 '덕분에'  좋은 시 한 편 썼지만 여기서는 '때문에'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뒷집 소녀 때문에


                                        이원규



 기필코 좋은 시를 써야겠다

 섬진강 변 녹차밭 대밭 옆으로 이사 온 뒤

 집들이 꽃놀이 밤새 너구리처럼 술만 퍼마시다

 뒷집 소녀 때문에 시를 써야겠다

 

 평균 연령 71세의 강마을에

 쫑알쫑알 아이 목소리가 들려

 필름 끊긴 창문을 열고 헛기침을 하니

 강아지 얼씨구와 놀던 아홉 살 소녀

 먹포도 두 눈을 반짝이며 인사를 한다

 

 아찌, 정말 시인이세요?

 두 눈이 빨개, 밤새 시 쓰다 나왔어요?

 슬그머니 눈곱을 닦으며

 마침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생 단 한 편의 좋은 시를 써야겠다

 오로지 뒷집 귀농자의 딸 가연이 때문에



 =왼쪽은 구례구역(求禮口驛)  전경, 한국관광공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ta4 2022-05-1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올리고 보니, 부지를 내주고 이름까지 내준 순천시의 아쉬움이 입석 문구에 남아 있지 싶다. 순천시 황전면 구례구역이라니. 영역표시가 확실하다. ˝아홉 가지를 예를 찾는(九禮求) 구례구역(求禮口驛)입니다.˝로 바꾸면 어떠할까? 예를 찾는 데 순천이면 어떻고 구례면 또 어떠하겠는가!